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362
360화 도깨비들 (2)
도깨비들의 눈 같은 것이 폭탄을 따라 좌우로 흔들렸다. 그런데 왜 모양새들이 저 꼴이지. 작게는 야구공에서 크게는 사람 머리통 정도 크기에, 대충 만든 하얀 보자기 유령 같다. 흐릿하고 반투명한 데다 수증기처럼 일렁거리고 있었다.
“우리는 여기 인간들 공격하면 안 되는데.”
“안 되는데.”
도깨비들이 중얼거렸다. 역시 무슨 일이 있긴 있었던 모양이었다.
“왜 안 되는 걸까.”
“말 못 해.”
“그리고 싸우는 거 싫어.”
“싫어.”
셋이 동시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평화주의구나. 아무래도 계약이나 기타 무언가로 입막음을 당한 듯했다.
“너희들은 그냥 심부름만 해 주면 돼. 그러니까, 보물찾기 같은 거지.”
“보물찾기?”
“무슨 보물인데?”
“먹는 거?”
먹으면 큰일 난다.
“우선은, 너희 은신 스킬은 쓸 수 있는 거지? 여길 몰래 돌아다니고 있으니까.”
“맞아.”
“우린 다 쓸 수 있어.”
“그리고… 혹시 공간 이동도? 쓸 줄 알아?”
윤윤은 은신에 공간 이동, 비행, 변신 스킬까지 가지고 있었다. 종족 기본 스킬이 공간 이동이면 대박인데.
“그건 몇 명만.”
“다 못 써.”
아쉽게도 공간 이동은 몇몇 도깨비만 쓸 수 있는 모양이었다. 그것도 1미터 내의 초단거리였다. 하지만 1미터만 되어도 웬만한 건물은 다 몰래몰래 드나들 수 있다. 벽의 두께를 1미터 이상으로 짓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까.
내 앞에 나타난 도깨비들은 모두 공간 이동 스킬을 가지고 있었다. 그에 더해.
“날아다니는 건 다들 할 수 있어.”
“도깨비불로 변하는 것도.”
공간 이동 스킬을 쓸 수 있다니, 대단하다고 칭찬을 하자 으쓱거리며 다른 스킬들도 다 불어 버렸다. 애들이 많이 순진하구나.
“혹시 지금 모습이 도깨비불이야? 불이라기엔 좀 이상한데.”
“낮이라 그래.”
“밤엔 반짝거릴 수 있어.”
“난 노란색.”
“빨간색!”
“진한 노란색!”
그렇군. 은신 스킬 등급도 도깨비마다 다 다르다고 했다. 내 앞의 셋은 개중 능력치가 뛰어난지 은신 스킬 B급으로, B급 헌터 이하면 안전하고 A급 상대면 들킬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너희 셋 말고도 더 있는 거지?”
“응.”
“있어.”
“걔들은 못 와.”
도깨비들의 목소리가 시무룩했다. 윤윤에 대해선 말 못 하고 약한 동족이 여럿이라.
‘…설마 도깨비들을 인질로 잡힌 건가.’
윤윤 혼자라면 위험할 일이 거의 없다. 공간 이동이라는 사기 스킬이 있으니까. 하지만 약한 도깨비들은 공간 이동 스킬을 지니지 못했으니, 쉽게 사로잡히고 말았을 것이다, 다른 헌터들에게.
‘그 생각을 미처 못 했어.’
당연히 무사할 거라 생각해서 소식이 없어도 걱정하지 않았었는데. 혹시 윤윤도 여기 있는 걸까. 도깨비들이 돌아다니고 있는 걸 보면 멀지 않은 곳에 있지 싶었다. 동족들 때문에 중국 군부에 붙잡힌 채로…….
잠깐만, 그럼 황림이 한국 헌터들을 잡을 자신 있어 하는 이유가 윤윤 때문인가?
‘장거리 공간 이동으로 타 지역 S급 헌터들을 단숨에 데리고 올 수 있을 테니까.’
군부의 S급 헌터 수가 많다 해도 중국 땅은 너무 넓다. 한국처럼 안정적이라면 모를까, 던전은 물론이요 무림맹이라는 적대 세력도 있는 상황에서 S급 헌터들을 한곳에 모아 놓기란 불가능했다. 대륙 곳곳의 주요 도시를 지켜야만 하니까.
그러니 한국에서 나를 구하러 온다 해도, 정확한 공격 시기를 모르는 상황에서는 많아야 대여섯 명의 헌터밖에 대기시키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윤윤이 있다면 공격 받자마자 다수의 헌터들이 시간 차 없이 바로 지원해 올 수가 있었다.
‘심지어 군부 소속이면 손발도 잘 맞을 테고.’
여느 독립적인 S급 헌터들과 다르게 합격 연습도 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생각하자 슬쩍 위기감이 들었다. 스킬 시너지 잘 맞는 S급 헌터 너덧을 혼자 상대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좀 아슬아슬하겠지.
‘윤윤부터 찾아야겠다.’
내가 도망치면 안 되는 거지 남을 구해 주지 말란 소린 안 했으니까.
“자, 자. 이걸 봐.”
오백 원짜리 동전 크기부터 카드 크기만 한 것까지. 다양한 폭탄들을 줄줄이 꺼냈다.
“요것들을 이 건물 여기저기에 숨겨 놓는 거야. 절대 찾을 수 없도록!”
“못 찾게?”
“아무도?”
“응, 찾으면 안 되지. 찾지 못해야 우리가 이기는 거거든. 그러니 비밀도 꼭 지켜야 해.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돼.”
제아무리 감시가 철저한 건물이라 해도 사람 사는 곳이니 틈이 없을 리는 만무했다. 가구 밑이나 환풍구, 배수관, 계단 밑 등등 살짝 숨겨 놓을 곳이야 많다. 일반 폭탄이 아니니 폭발물 감지기 같은 것에 걸릴 일도 없었다.
“같은 곳 말고 최대한 구석구석 넓게. 특히 1층과 지하층 위주로.”
“1층이랑 지하!”
“못 찾으면 이겨?”
“이기면 뭐 주는데?”
“우리가 이기면 불꽃놀이를 아~주 크게 하고, 먹고 싶은 거 다 사 줄게.”
내 말에 도깨비들이 신나하며 춤 같은 것을 추었다.
“좋아!”
“이기자!”
“이기자!”
도깨비들이 폭탄을 한아름씩 안아들었다. 그러곤 훌쩍 훌쩍 사라진다.
공간 이동 좋겠다, 부럽다. 1미터라도 어디냐. 다만 능력은 좋은데 애들이 너무 순진했다. 당하고 나서도 내 말을 덥석 들어주다니…….
싸우는 것을 싫어하는 애들한테 폭탄을 나르게 하자니 양심이 찔렸지만, 어차피 건물만 부수고 말거다. 사망자가 나올 정도로 강한 폭탄은 아니었다. 여기 사람들은 중급 이상 각성자인 모양이니 제일 위험한 건 오히려 나지. 물론 방어막 스킬 쓰고 터뜨릴 거지만.
‘그런데 지금이 도깨비불 변신 상태라면 원래 모습은 어떤 거지.’
윤윤처럼 인간 형태인가? 어쨌든 윤윤을 찾아야 하는데, 일반 병사들은 나와 말도 안 할 거고, 모를 가능성도 높고. 초화운이나 황림을 찔러 봐야 하나.
…둘 다 만만치 않을 텐데. 겉으론 느슨해 보여도 어쩌면 초화운보다 황림이 더 까다로울지도 모른다. 나머지 한 명의 S급은 어떨까.
일단 후다닥 샤워를 했다. 씻고 나갈 때까지 밖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역시 욕실에는 감시 카메라 같은 게 없나 보네.’
있었으면 그냥 문을 닫고 씻으라고 했겠지. 머리 대충 닦고 침대에 걸터앉았다.
‘한국 헌터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는 거 서로서로 다 알아도 대놓고 타국을 헤집고 다니겠습니다~ 하고 오지 못하니 분명 위장 신분으로 조용히 들어올 거고.’
그럼 준비가 필요하겠지. 빨라도 이삼 일은 걸리지 않을까. 중국에 도착해서도 곧장 공격해 오진 않을 것이다. 그래도 오래 지체할 리는 없으니… 빠듯하네. 노아 씨와 연락 할 방법이 없을까.
‘있지.’
도깨비. 하지만 하루에 샤워를 두세 번씩 하면 수상해 보이겠지. 연락 신호 같은 걸 정할걸. 그래도 일반병들, 중급 헌터의 눈을 피할 방법이야 어떻게든 만들어 낼 수 있다.
일단 노아 씨와 연락이 가능해지면 여기 상황을 전할 수도 있을 거고, 윤윤의 행방을 찾는 데도 도움이 되겠지.
애들 오기 전에 위험한 가시는 뽑아 놔야지 않겠냐. 다시 몸을 벌떡 일으키며 군인들에게 말을 걸려다 말고 통신기를 꺼냈다.
“안녕하세요~ 저녁 스케줄은 어떻게 되는지 알고 싶은데요.”
초 씨든 황 씨든 자주 보고 싶진 않은데 어쩌겠어. 조금만 찔러 보자.
* * *
“여기서 뭐 해?”
박예림이 집의 안쪽 구석에 위치한 보조 주방으로 들어서며 물었다. 보조 주방이라지만 설비는 여느 주방 이상이었다. 심지어 한쪽에는 동결 건조기까지 자리 잡고 있다. 가정집이라기보다 소규모 식품 공장 같은 분위기였다.
한유현은 박예림의 말에 대답하는 대신 진공 포장기로 간편식을 포장했다. 긴 테이블 위에는 던전산 식재료를 건조시켜 채운 병이 줄을 서 있었다. 병 또한 인벤토리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것을 본 박예림이 눈을 가느스름하게 떴다.
“…우리 중국이 아니라 던전 들어가는 거였어?”
“그쪽 음식은 못 믿어.”
“뭐? 설마 내내 간편식 먹어야 하는 거야?”
한유현이 당연하다는 듯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루 이틀도 아닐 텐데. 박예림이 아쉬워하며 투덜거렸다.
“아저씨가 너 자꾸 저런 걸로 끼니 때운다고 싫어하던데.”
“형은 밥에 국과 반찬까지 제대로 갖춰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하지만 한유현의 입장에서는 누가 손댔는지도 모를 음식들보다는 직접 만든 간편식이 훨씬 나았다. 안전은 말할 것도 없고, 영양학적인 면에도 아무 문제 없다. 그럼에도 한유진은 못마땅해했지만, 덕분에 형이 그를 더 열심히 챙겨 주고 있으니 굳이 설득하려 들진 않았다.
“나도 좀 주라.”
박예림이 말했다. 해연 길드에서는 던전 공략용 간편식을 길드원이 직접 만드는 것을 권장했다. 그편이 가장 안전하기 때문이었다. 던전 내에서 혹시라도 음식에 문제가 생기면, 곤란한 정도를 넘어서 생명이 위험해질 수도 있다.
한두 명만 잘못된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공략팀 모두 같은 식량을 가지고 있다면 상황이 더욱 심각해진다. 그래서 길드 지급용 간편식은 수제작 권장을 위해 상대적으로 맛이 없었다.
하지만 박예림이 만든 것보다는 맛있었다.
“네가 만들어.”
“맛없다고! 그래도 네게 제일 낫던데. 명우 오빠 거 빼고.”
“연습해.”
“길드 지급용도 먹을 만은 하더라.”
길드 가서 몇 개 챙겨 오겠다는 박예림에게 한유현이 방금 포장한 간편식을 던져 주었다.
“해외 나갈 거라며. 타지에서 처음 자리 잡기 시작할 때가 가장 위험해. 먹는 건 전부 네 손을 거쳐야 할 거다. 그래도 넌 식수는 문제없으니 좀 낫겠지만.”
“으, 살벌한 소리~.”
“한국과는 달라. 거대 길드는 무슨 짓을 해도 처벌 못 하는 나라도 많고.”
“너도 해외 경력은 나랑 똑같잖아. 아니다, 내가 일본 한 번 더 갔다 왔지.”
“내가 안 갔을 뿐 길드 차원에서는 나갔다.”
주로 아이템 경매를 위해서였고, 길드장으로서 상황보고는 매번 받았다. 당연히 박예림에 비해 가지고 있는 정보량의 차이는 컸다. 박예림이 뚱하게 볼을 부풀리면서도 간편식과 유리병을 몇 개 챙겼다.
“대신 물은 식수부터 목욕용 온수까지 내가 다 대준다. 다른 건 뭐 안 챙겨?”
“짐은 적은 편이 나아.”
“돈은?”
“마석.”
환금성이 좋으니 어느 나라에서든 팔 수 있다.
“그럼, 어, 아저씨 보약은 안 챙겨? 약 타령 하더니.”
“형이 안심하라고 덧붙인 거다. 내가 한가한 소리 하면 너무 많이 불안해하진 않는다고 여기겠지.”
마지막 포장을 끝내고 한유현이 익숙한 손놀림으로 뒷정리를 하며 말했다.
“만약 형이 날 걱정하기 시작하면 무모한 행동을 할 확률이 높으니까. 얌전히 있으면 굳이 형에게 손대진 않겠지. 하지만 탈출 시도를 한다면 부상 정도는 입힐지도 몰라.”
“헉, 그럼 너 못 잔단 소리 안 할걸.”
“아니. 그건 잘했어. 내가 너무 멀쩡해도 형은 분명 의심할 테니까.”
“…아저씨는 까다롭구나.”
간편식은 작은 가방에 각자 챙겨 넣었다. 그 외엔 통신기만 들어 있었다. 거실 쪽으로 가자 피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유체화 한 화염뿔사자의 모습은 평소와 달랐다. 털을 검게 물들이고, 개에 가까운 형태로 다듬어 놓았다. 인형용으로 나온 미니햇으로 뿔까지 가리자 평범한 강아지처럼 보였다.
“피스야, 아니 초코야. 누가 보면 안 되니까 잠깐 가릴게.”
박예림이 너른 천으로 피스를 감아 안았다. 조금 불편해 하면서도 피스는 얌전히 들려 안겼다.
“근데 진짜 강아지 같다. 너 털 잘라 준 언니 솜씨 되게 좋네.”
– 카릉.
피스가 약간 불만스럽게 으르렁거렸다. 유체화 상태에는 등급이 낮아진다 해도 중급이다. 덕분에 해연의 헌터 중에서 강아지 미용을 할 줄 아는 사람을 찾아 부탁해야 했다.
“이제 한동안은 멍, 해야 한다니까. 아니면 컹, 이나.”
– 크르르.
“음, 야악간은 비슷해.”
삐약이와 벨라레는 빌딩 쪽에 맡겨 놓아 집에는 아무도 남지 않았다. 박예림이 문을 나서기 전 한동안 텅 비게 될 집을 향해 외쳤다.
“다녀오겠습니다!”
“…형도 없는데.”
“그래도 우리 집은 집이지. 다 같이 돌아올 거잖아.”
한유현은 대답하는 대신 집 안쪽을 잠시 바라보다가 몸을 돌렸다. 밖은 해가 진 지 오래라 어두컴컴했다. 공항으로 향하는 차 속에서 박예림이 조금 불안해하며 말했다.
“진짜 우리 둘, 피스까지 셋만 가는 거야? 어른 없이?”
“S급 헌터가 아닌 이상 방해만 돼.”
“한유현 넌 성인이긴 하지만, 그래도 기분 쫌 묘하다. 세성 아저씨네랑도 합류하긴 하겠지만.”
박예림은 차창 밖을 바라보았다. 유리에 그녀의 얼굴이 희미하게 비췄다. 가로등 불빛이 열을 지으며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예행이라고 생각해.”
“야, 그러기엔 아저씨가 있잖아. 단순히 깽판 치러 가는 거면 걱정 안 하지.”
“형은 내가 무슨 일이 있어도 구할 거야.”
“네, 그러시겠죠. 믿습니다, 길드장님아.”
셋이 탄 차는 오래지 않아 공항에 도착했다. 주위에 사람을 물리고 대기하고 있던 세성 길드원이 셋을 준비 된 비행기 앞으로 안내했다. 그곳에는 먼저 도착한 성현제와 송태원이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