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394
392화 크리스마스 캐럴 (6)
“미리 말해 두지만 난 얌전히 당해 줄 생각 없어. 여전히 내가 몬스터라는 생각은 들지 않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대화를 나눈 상대를 해치는 건 어린애가 해선 안 되는 일이야.”
“난 헌터야. 싸울 수 있어.”
“각성자든 비각성자든 어린 건 어린 거지. 어른이라고 해도 좋을 거 없어.”
몬스터와는 다르다. 아니, 설사 말이 안 통하는 몬스터라고 해도 감정의 교류가 있었다면 쉽게 손댈 수 없는 게 보통이었다. 감정을, 특히 긍정적인 감정을 나누었다면 그 상대에게 자신의 마음 일부가 담겨 있다는 뜻이니까.
마음을 준 상대를 해친다면 그 건넨 마음 또한 다치게 되는 게 당연했다.
“게이트석 있어?”
“아니, 그거 엄청 귀한 거잖아.”
“귀하긴 해도 지금은 꽤 흔해졌는데. 내가 가지고 있는 걸 줄 수 있나?”
박예림이 인벤토리를 열어 보곤 눈살을 찌푸렸다.
“기본 장비 말고는 아무것도 없잖아. 하긴 몬스터가 포션이나 아이템 쓰는 일은 없으니까… 내게 확실히 문제가 있단 게 점점 더 실감 나는 느낌이야.”
이걸 어쩐다, 고민하는 박예림을 바라보던 당예가 아! 하고 소리쳤다.
“아저씨가 잘 쓰는 방법 있어!”
“응?”
“통할지는 모르겠는데, 배구공 씨!”
당예가 허공을 향해 크게 외쳤다.
“보고 있죠? 보고 있는 거 다 알아요! 이 던전 많이 이상하니까. 분명 아저씨가 또 화낼 텐데, 좀 도와줘요!”
“뭐 하는 거야?”
“시스템 관리하는 배구공 있거든. 내가 나를 해쳐야 했던 거 알게 되면 아저씨가 슬퍼할걸요! 화도 엄청 낼 거고, 절대 그냥은 안 넘어가요! 그니까 쫌만 도와줘요! 그럼 내가 아저씨한테 잘 말해 줄게요! 배구공 씨 편들어 줄 테니까!”
서로서로 도와주자고요~~ 당예의 목소리가 노을 진 하늘 위로 짜랑짜랑하게 퍼져 나갔다. 그럼에도 별 반응 없나 싶더니.
[특별 공략 퀘스트!]시스템 메시지창이 떴다. 당예가 얼른 메시지창을 확인했다.
[★정정당당한 승부☆구역 보스 몬스터가 패배 선언 시 해당 구역이 자동 공략됩니다! 승부 내기는 어떤 것이라도 OK!
※ 단 보스 몬스터의 동의 필요, 퀘스트 수락 시 보스 몬스터의 패배 선언을 받아내지 못하면 공략 불가]
“이것 봐! 어떤 내기든 괜찮대.”
시스템 메시지의 말대로라면 간단하게 가위바위보를 해도 된다는 뜻이었다. 박예림의 눈앞에도 같은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박예림이 신기해하며 메시지창을 들여다보았다.
“진짜 배구공이 던전을 관리하는 거야? 각성자 상태창도 그렇고, 게임 시스템 비슷하니 관리자가 있을 거라는 예측은 들어 봤지만 진짜 있었네.”
“모양은 배구공인데 배구공 말고 다른 사람들도 있어.”
“대체 뭐 하는 사람들이고 왜 이런 걸 갑자기 만들어 낸 걸까.”
“어, 그건…….”
당예가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얻은 지 얼마 안 된 힘과 연이어 생기는 온갖 일에 휩쓸려 아직 깊게 생각해 본 적 없는 질문이었다.
“던전이 터지는 걸 막아야 세상을 구할 수 있는데, 아마 그걸 도와주기 위해서인 거 같았어. 근데 던전은 왜 생긴 건지는, 모르겠어.”
“던전과 각성자를 관리할 수 있는데 왜 던전 자체를 없애진 못하는 거지?”
“그, 그러게?”
세상은 어쩌다가 이렇게 변하게 된 걸까. 배구공과 인어여왕의 정체는 뭘까. 과거에 멸망한 다른 세상을 바탕으로 만든 던전에도 다녀왔지만 당예가, 박예림이 아는 것은 별로 없었다.
“던전 관리하는 사람들은 여기에 직접 들어오진 못한다고 했거든. 그러니까 우린 던전만 잘 막으면 된다고 했는데. 우리 세상 밖에 있는 사람들은, 엄청 강했어.”
당예는 다섯 번째 원반이 설치된 직후, 하늘을 가르며 나타난 존재를 떠올렸다. 무시무시한 위압감이었다.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결코 이기지 못할 것만 같았다. 심지어 그때는 등급도 더 높았는데도. 당예의 어깨가 살짝 처졌다.
“으, 그동안 잊고 있었는데 또 쫌 자신 없어지잖아.”
“그렇게 강해?”
“응. 하지만 그 사람들은 아주 오래 살았다고도 했거든. 그러니 나보다 강한 거야 당연하겠지만. 나도 언젠가는 그만큼 강해질 수 있을까? 그렇게 강해지면 우리 세상에서는 못 사는 걸까. 생각해 보면 내가 모르는 게 너무 많은 거 같아.”
“그건 아니지. 던전 관리자의 존재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인걸. 배구공이라니, 진짜 예상 밖이다.”
박예림이 손가락으로 시스템 메시지창의 수락 버튼을 눌렀다.
“자, 승낙했어.”
“그럼 뭘 할까?”
“뭘 물어봐. 당연한 거지.”
박예림의 손끝에 빙그르, 창이 나타나 맴을 돌았다. 당예 또한 활 대신 마력 지팡이를 꺼내들었다.
“한판 붙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소리쳤다.
투명한 반구형 막은 물보라 길드 건물을 중심으로 제법 넓게 쳐져 있었다. 박예림은 일단 길드로 돌아가 무슨 소리가 들려도 신경 쓰지 말고 대기하라고 한 뒤 적당한 장소를 찾았다.
“동묘공원 위치가 애매해서 아쉽네.”
그곳 외에는 죄다 건물로 빼곡했다. 길드와 적당히 떨어져 있고 싸우다가 막에 걸리지 않을 만한 장소로 옮긴 두 사람이 서로 마주보고 섰다.
“헌터 경력은 훨씬 짧아도 난 S급이니까 호락호락하진 않을걸!”
“진짜 S급 맞아? 나와 별 차이 안 나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맞아. 근데 내가 보기에도 그런 거 같아서… 여긴 A급이 S급쯤 되는 걸까.”
박예림이 뛰어난 A급이라고 해도 S급에 비해서는 여러모로 뒤쳐져야 맞았다. 어쨌든 일반 몬스터도 아닌, 제대로 맞붙어 볼 상대라면 S급으로 강화된 편이 더 반가웠다. 박예림이 장비를 착용했다. 당예 또한 숄이며 팔찌 등 무장을 마쳤다.
“어? 그거 혹시 물결의 마고스 숄 아니야? 색은 다르지만 똑같이 생겼는데.”
“알아?”
“예전에 경매로 나왔었거든. 사고 싶었는데 그땐 돈이 없어서 구경만 해야 했어.”
“나도 돈 주고 산 건 아니야. 사실 아저씨가 슬쩍한 거야.”
“진짜?”
“이거 말고 지금 업그레이드 중인 창도 있어. SS급 예상!”
“좋겠다!”
박예림이 솔직하게, 어린애처럼 감탄을 내뱉었다.
“SS급 무기는 지금도 S급 헌터조차 구하기 힘든 건데.”
“내가 이렇게 잘 살고 있다니까.”
둘이 키득키득 웃으며 거리를 벌렸다. 속성은 비슷하다. 지니고 있는 스킬 또한 비슷했다. 짧은 침묵이 두 사람의 사이를 가르고, 당예가 먼저 스킬을 사용했다. 그림자 없는 낮. 광역 스킬의 영향이 순식간에 퍼져 나갔다. 이어 얼음 조각들이 공중에 떠오르며 박예림의 그림자를 노려 쏘아졌다.
그림자 없는 낮의 속도 저하 효과는 빙결과는 달랐다. 그러니 냉기 저항을 지닌 박예림에게도 통할 터였다.
하지만 박예림은 순간이동을 써서 공격을 피했다. 파바박! 얼음 조각들이 바닥에 박히고 이번에는 박예림이 냉기를 흘려냈다. 날카로운 얼음 창들이 박예림의 주위로 나타났다. 냉기 저항이 있다고 해도 단단한 얼음 창은 그 자체가 물리력을 지닌 무기다. 얼어붙지만 않을 뿐 창끝이 찔러드는 공격은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쐐액! 얼음의 창이 공기를 가르고 당예 또한 순간이동 스킬을 썼다. 하지만 이전처럼 박예림이 곧장 쫓아와 들고 있던 창을 내찔렀다.
“그러니까, 어떻게!”
창을 피하며 뒤로 풀쩍 뛴 당예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어느새 당예의 발밑이 얼음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것도 거울처럼 매끄러우면서도 표면이 살짝 녹은 얼음이었다. 냉기 저항을 가진 거지 미끄럼 저항은 없었다. 심지어 뒤로 뛴다는 동작의 불안정성 탓에 당예의 발이 크게 미끄러졌다.
“으악, 잠깐!”
“너, 체술은 제대로 안 배웠구나?”
당예가 균형을 잃은 사이 박예림이 순식간에 다가와 창끝을 겨누었다. 넘어지진 않고 엉거주춤 버텨 선 당예의 목덜미를 창날이 툭, 건드렸다. 당예의 뺨이 살짝 붉어졌다.
“아니, 배우긴 했는데.”
“순간이동과 비행만 믿고 적당히 배우고 치웠겠지.”
“비행 스킬 있으면 이런 함정에 걸릴 일 없어!”
주위가 막으로 뒤덮인 만큼 영역 밖으로 빠져나가기 쉬운 비행 스킬은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당예의 변명에 박예림이 혀를 쯧 찼다.
“원거리 계통 신인 헌터들이 흔히 하는 실수긴 해. 하지만 스킬을 쓰지 못하는 상황도 얼마든지 생길 수 있어.”
“나, 나도 아는데……. 이젠 제대로 배울 거야!”
“그래. 혹시 송태원 실장님과도 친분이 있어?”
“응.”
“그럼 한번 부탁해 봐. 열다섯 살 때라면 아직… 아무튼 국내 헌터 중에선 최고거든. 브레이커도 있으니까, 현아 언니랑은 당연히 아는 사이지? 현아 언니도 괜찮지만 거창 위주라, 아마도 내 것처럼 단창일 텐데 물보라 길드 박보라 언니가 창을 잘 써.”
“어… 둘 다 알아. 현아 언니랑은 친하고 물보라 길드는, 우즈 길드랑 합병했는데.”
“합병했어? 그럼 내 길드는─ 아, 해연 소속이랬지.”
다시 시작하자, 하고 박예림이 창을 거두었다. 당예가 발밑을 탁탁 신발 굽으로 두들겼다.
“갑자기 이러니까 당황했어. 이거 피하기 힘들겠는데.”
“너도 해봐.”
당예가 고개를 끄덕이곤 창을 고쳐 쥐었다. 박예림이 강하게 땅을 딛고는 당예를 향해 달려들었다. 창을 가로로 들어 방어할 태세를 취하며, 당예가 재빠르게 박예림의 발밑을 얼렸다. 조금 전과 똑같이, 매끄러운 표면을 살짝 녹여, 최대한 미끄럽게.
박예림의 발밑이 미끌렸다. 하지만 박예림은 당예와 달리 버티고 서려 하지 않았다. 그대로 주르륵, 미끄러지며 몸을 확 낮추었다. 예상보다 훨씬 낮은 위치로, 발목을 향해 찔러드는 창날에 당예가 기겁하며 순간이동을 썼다.
“뭐야!”
“이렇게 미끄러져도 되고!”
박예림이 자신의 발아래를 얼렸다. 냉기 저항을 신발 바닥에만 교묘하게 줄이며, 땅에 딱 얼려 붙였다. 그러자 미끄러지던 그녀의 몸이 순식간에 멈춰 섰다. 파지직, 얼음이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박예림이 옆으로 피한 당예를 향해 세차게 튕겨 나갔다.
카강!
창대를 부러뜨릴 듯 창날이 내리쳤다.
“얼려서 멈출 수도 있지!”
“내, 냉기 저항을 발밑에만 없애서?”
“우리 마력 컨트롤 능력은 끝내주잖아!”
“응!”
“그리고 탄식!”
화악, 두 사람의 주위를 감싼 안개가 짙어졌다. 박예림이 두 눈을 감았다.
“눈을 가리고 연습해. 이왕이면 귀도 막고.”
텅, 카앙! 눈을 감았음에도 박예림의 움직임에는 거침이 없었다. 정확하게 당예를 노리며 창을 내찌른다.
“탄식의 안개로, 느끼는 거야? 아, 나도 전에 해봤어! 아저씨가 가르쳐 줬었는데, 근데 엄청 정확하잖아, 너!”
“연습해야지!”
휘잉, 창을 둥글게 휘감듯 하며 박예림이 멈춰 섰다. 그녀의 주위로 작은 얼음 구슬들이 나타났다. 당예가 공격에 대비하듯 창을 세워들었다. 박예림이 만들어 낸 얼음 구슬들이 당예를 향해 날아들었다. 뾰족하지도 않은, 그냥 둥근 구슬이다. 몸으로 맞아도 별 타격 없을 구슬을 왜 날려 보내나 어리둥절해하는데.
파직!
얼음 구슬이 당예의 몸에 닿기 전에 터져 나갔다. 그리고.
“악! 따가워!”
전류가 튀었다. 십수 개의 구슬이 동시에 터져 나가며 반짝반짝 몸을 마비시키는 전류를 쏟아낸다. 당예가 비명을 지르며 몸을 피했다.
“아까도, 쓰더니, 뭐야? 다른 속성 스킬도 얻은 거야?”
“아니, 아이템!”
박예림이 당예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번에는 스스로 발밑을 미끄러지게 만들어, 당예의 바로 앞에서 몸을 확 낮춘다. 하지만 당예도 똑같은 수법에 두 번 당하진 않았다. 곧장 창을 세로로 바닥에 내리찍으며 박예림의 공격을 막았다. 박예림이 당예의 창에 막힌 자신의 창으로 중심을 잡고, 빙그르 바닥을 미끄러졌다. 매끄럽게 날아드는 발길질에 발목을 호되게 맞은 당예가 깽깽이를 뛰었다.
“체술!”
“알았다고!”
“내 마력으로 만든 얼음은 여러 속성을 담기 좋아. 추천은 전류와 독. 이 둘이 제일 효율이 좋더라고. 둘 다 집중되어야 강해지는 속성력인데 얼음 안에 가두어 적에게 보내면 힘이 흩어지지 않아서 아이템으로 만들어 낸 비교적 약한 속성력이라 해도 효과가 좋아.”
“으, 알았어.”
당예가 고개를 끄덕이며 인도로 뛰어올랐다.
“이번에는 나도 제대로 보여 줄게!”
나도 충분히 강하다고! 당예의 손짓에 콰아아! 바닥에서 물이 솟구쳐 올랐다. 뿐만 아니라 주위 건물 내에서도, 주위 다른 길 안에서도 물이 터져 나온다. 박예림의 놀란 표정에 당예가 자신 있게 미소 지었다.
“난 물이 있으면 최강이거든!”
“정말, 장난이 아니네.”
박예림이 살짝 긴장하며 마력을 끌어올렸다. 이 주변 수도를 모조리 끌어내려는 듯 치솟은 물의 양이 계속해서 늘어났다. 그 엄청난 수량이 박예림을 향해 파도처럼 덮쳐들었다. 박예림이 냉기를 발산하며 덮쳐드는 물을 얼렸다.
쩌저저적, 물이 얼며 얼음벽을 만들어 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계속해서 두드려 대는 물에 얼음벽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대체 얼마나 끌어낼 수 있는 거야?!”
“커다란 공항을 전부 쓸어버렸지! 김포공항보다 더 큰 거 같았는데.”
그 말에 박예림이 질린 표정을 지었다. 솔직히 자신보다 어린 자신을 만만하게, 얕보았었다. 스탯이 비슷하다면 경험으로 가볍게 누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실제로도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이건.
“솔직하게 대단해! 너는. 진심으로!”
콰장창! 결국 부서지는 얼음벽을 바라보며 박예림이 웃었다. 웬만한 빌딩쯤 통으로 삼킬 만한 파도가 그녀의 앞으로 다가왔다.
“그 대단한 내가 너야!”
파도가 촤악, 흩어졌다. 두 사람 머리 위로 비가 쏟아져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