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405
403화 가지 않을 길 (1)
노아는 눈을 깜박였다. 우거진 나무 사이로 조용한 도시의 풍경이 비춰졌다. 이제는 많이 익숙해진, 서울이었다.
‘던전.’
시스템 메시지창은 이곳이 던전 안이라고 알려 주고 있었다. 현대의 모습을 가진 던전은 이제껏 본 적 없었지만, 지난번 일본의 던전도 평범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노아는 침착하게 은신 스킬부터 사용했다.
보조계라고 해도 노아의 던전 공략 횟수는 그 양도 질도 웬만한 S급 헌터에게 뒤지지 않았다. A급 헌터일 때부터 강력한 S급 헌터인 리에트에 의해 온갖 나라의 온갖 던전에 끌려다녔으며, S급으로 성장해 자신의 길드를 만든 후에도 타 길드의 공략 보조 요청을 줄기차게 받아 온 덕이었다.
그러니 갑작스럽게 낯선 던전에 떨어졌다고 해서 당황할 이유는 없었다. 심지어 노아는 여느 S급 헌터보다 생존에 있어서는 뛰어났다. 무력이야 부족할지도 모르지만, 살아남기에는 최적화된 스킬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은신으로 몸을 숨길 수 있으며 비행으로 수월한 도주가 가능했다. 높은 독 저항이 있으니 던전 내 생물을 섭취하기도 수월하였고 독과 저주를 사용하면 다양한 트랩을 설치할 수도 있었다. 여기에 자체 회복까지 가능하니 어디서든 살아남는 것만큼은 어렵지 않았다.
‘유진 씨라면, 사육소나 해연 길드로 향했겠지.’
노아의 등 뒤로 금빛 날개가 펼쳐졌다. 소리도 없이 가볍게 그의 몸이 떠올랐다. 이곳 몬스터의 등급을 알 수 없으니 은신 스킬을 썼다고 해도 최대한 신중하게 움직였다. 일부러 전룡화보다 상대적으로 작은 용인화하여, 빌딩의 그늘에 숨듯이 날갯짓했다.
비늘처럼 다닥다닥 이어지는 유리창들을 스치며 노아의 시선이 아래를 살폈다. 골목골목 자세히 확인하였지만 몬스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헌터?’
무장한 헌터 두 명이 어슬렁거리고 있는 것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노아는 조용히 아파트 난간 위에 내려섰다.
‘공략자들인가?’
던전에 먼저 공략자들이 들어갔다고 해도 게이트가 바로 닫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이따금 다른 공략팀이 끼어드는 경우도 발생했다.
하지만 이 던전은 중국에서 발생했을 것이고 저들은 중국인으로 보이지 않았다. 노아는 통역 아이템을 끄고 귀를 기울였다.
“어째 좀 추운 거 같은데.”
“가을치곤 날이 쌀쌀해.”
한국어였다. 아직 한국어를 완전히 익히지 못했지만, 가을과 춥다는 소리 정도는 알아들을 수 있었다. 어떻게 된 것일까. 게다가 헌터들의 움직임 또한 수상쩍었다. 긴장감 없이 거리를 걷는 태도가 던전 공략 중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노아는 잠시간 더 신중히 헌터들을 살피다가 작은 화분 하나를 집어 들어 헌터들을 향해 던졌다.
“어! 뭐야.”
“누가 떨어뜨렸나?”
헌터들이 떨어지는 화분을 재빠르게 피했다. 그 모습을 노아의 두 눈이 똑똑하게 담아냈다.
‘아마도 B급, 혹은 A급 하위.’
중급치고는 빠른 반응속도였지만 상급이라기엔 모자람이 있었다. 주위에 다른 헌터나 몬스터의 기척은 없다. 접혔던 날개가 펼쳐지고 노아의 몸이 아파트 아래로 뚝 떨어졌다. 날개가 바람을 가득 받으며 소리 없이 둥실, 두 헌터들 위로 노아를 실어다 주었다.
헌터들은 여전히 무방비했다. 별 내용 없는 잡담을 주고받는 그들을 향해 노아가 독기를 흘려냈다. 공기 중으로 서서히, 신체를 둔화시키는 독이 퍼져나가고 헌터들이 이상을 깨닫기 직전, 노아의 손이 뻗어졌다.
“컥!”
비늘 돋은 단단한 손아귀가 헌터의 목을 움켜잡았다. 옆의 헌터가 얼른 무기를 빼어들려 했으나,
퍼억!
금빛 굵직한 꼬리가 헌터의 옆구리를 거칠게 후려쳤다. 노아는 상대적으로 약한 헌터를 그대로 붙잡은 채 바닥을 구르는 헌터의 목을 발로 짓밟아 눌렀다. 바닥에 깔린 헌터가 무기를 휘두르려 했으나 꼬리 끝이 탁 쳐냈다.
“사, 살려…….”
“여기서 뭘 하고 있었지.”
은신을 푼 노아의 물음에 그의 손에 붙들린 헌터가 얼른 대답했다.
“그냥, 산책 중이었습니다!”
“산책? 던전에서?”
“…예?”
노아의 말에 헌터가 어리둥절해했다.
“여, 여기는 서울입니다. 한국 서울이요. 코리아.”
발밑에 깔린 헌터 또한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노아는 두 헌터를 바라보며 눈을 깜박였다. 이들은 이곳이 던전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던전이, 아닌가?’
하지만 진짜 서울이라기엔 거리가 너무도 조용했다. 게다가.
“나는 노아 루히르다.”
“그, 그러시군요.”
두 헌터 모두 노아를 알아보지 못했다. 한국의 헌터인데도. 특징적인 외모에 극히 희귀한 전룡화 스킬, 그에 더해 A급 랭킹전 때 리에트와 싸우는 모습이 TV로 중계되기도 했었다. 그러니 비각성자도 아닌 중급 헌터가 노아를 모를 가능성은 없다시피 하였다.
이상했다.
노아는 헌터를 던지듯 놓아준 뒤 은신 스킬을 쓰며 날아올랐다.
‘서울인데, 서울이 아닌 걸까?’
일본의 던전이 떠올랐다. 그곳 또한 던전이었지만 사람들은 평범하게 생활하고 있었다. 그와 비슷한 상황인 것일까.
역시 한유진을 찾아가는 것이 최우선일 듯했다. 그라면 무언가 알고 있을 것이다. 노아는 빠르게 빌딩 숲을 헤쳐 나가며 길을 확인했다. 간간이 헌터들이 보였지만 무시하고 지나쳤다. 높이 솟은 빌딩을 빙그르 돌아가는 그때.
“이게 뭘까.”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노아의 몸이 반사적으로 굳고.
콰앙!
누군가가 아스팔트를 박살 내며 도약했다. 순식간에 치솟은 인영이 빌딩의 외벽을 디디며 정확히 노아에게로 치달았다. 뒤늦게 노아의 날개가 크게 퍼득이고 손톱이 날카롭게 드러나며 적을 향해 휘둘러졌다. 하지만 상대는 팔뚝을 들어 가볍게 손톱을 막아냈다. 마치 철판을 긁는 듯한 소리와 함께, 단단한 손이 노아의 목을 움켜잡았다.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인데.”
노아의 코앞에서 사나운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푸른빛이 도는 검은 눈. 붉은 기 섞인 금발.
“……!”
노아의 눈이 크게 뜨였다. 그녀, 리에트가 노아의 목을 붙잡은 채 그대로 땅에 내리꽂았다.
쿵! 이미 엉망이 된 아스팔트 바닥이 다시금 진동했다. 검은 파편들이 이리저리 튀어 올랐다. 노아는 습관적으로 스스로에게 치유 스킬을 쓰며 독기를 내뿜었다.
“날개에, 눈알도 다르고. 독?”
“큭, 무슨…….”
리에트의 입꼬리가 바싹 올라갔다.
“죽은 동생이 이상하게 변해서 튀어나왔네?”
“…예?”
노아의 발버둥이 순간 멈추었다. 방금, 뭐라고.
“죽, 윽!”
“이상하네. 페블이 맞긴 한 거 같은데.”
사냥한 짐승처럼 노아를 질질 끌며 리에트가 걸음을 옮겼다. 노아의 손이, 발톱이 자신의 목을 움켜쥔 손과 팔을 긁어댔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옷자락만 찢어질 뿐 그 아래 피부에는 긁힌 자국조차 남기지 못했다.
“여기도 이상해. 내가 왜 서울에 있지. 현아가 떠난 뒤로는 온 적 없는데.”
리에트가 흥얼거리듯 말했다.
“조용하고. 사람도 없고. 원래 이랬던가? 헷갈려.”
“누님!”
“응, 페블.”
“전 페블이 아니라 노아입니다!”
“시끄러워.”
약간 짜증 난다는 듯 리에트가 말했다. 목적지도 없이 설렁설렁 걸어가던 그녀의 앞으로 헌터들이 다가왔다.
“지금 뭐─”
소리도 없었다. 말을 걸던 헌터의 몸뚱이가 두 동강 나며 풀썩 쓰러진다. 다른 헌터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몸이 잘려 나간다는 자각조차 하지 못한 채 조각조각 흩어졌다. 짙은 피비린내 속에서 리에트가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묻겠네.”
고여 가는 피 웅덩이를 힐끗 내려다보고는 질질 끌고 오던 노아를 어깨에 들쳐 멨다.
“공항이 어느 쪽이더라. 비행기가 뜰까.”
“무슨,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집에 가야지.”
노아가 리에트의 등을 주먹으로 내리치며 외쳤다.
“제 집은 여기입니다!”
“응? 페블 너 한국에 온 적도 없잖아?”
이상했다. 분명 리에트였는데, 알 수 없는 말만 하고 있었다.
“저는 기승수 사육소 소속입니다!”
“기승수 사육소?”
“그리고 누님은 지금, 브레이커 길드에 머물고 계시잖습니까!”
“무슨 소리를 하는 거니, 페블. 브레이커는 망했잖아.”
노아의 목소리가 뚝 끊겼다. 입이 다물리고 미간이 좁혀졌다. 리에트는 동생이, 노아가 죽었다고 말했다. 브레이커 길드는 망했으며 기승수 사육소에 대해서도 모르고 있었다. 또한, 머리색과 눈 색이 디오 발쉐시스의 쌍둥이 칭호를 얻기 전의 것이었다.
노아는 시스템 메시지창의 내용을 떠올렸다. 크리스마스 캐럴. 과거 미래 현재. 리에트의 겉모습만 보면 과거겠지만.
‘…미래?’
기승수 사육소가 없고 디오 발쉐시스의 쌍둥이를 공략하지 못한, 만약의 미래. 그런 것일까.
“누님! 전룡화 스킬 없으세요?”
“전룡화?”
“디오 발쉐시스의 쌍둥이 말이에요. 아니, 지금 나이가, 연도가 어떻게 됩니까?”
“네가 죽은 지 2년 지났어.”
리에트가 가볍게 말했다.
“그래, 분명 죽었는데. 어떻게 된 걸까. 용종화되어 버리기까지 하고. 그 도마뱀 새끼 짓인가? 아무렴 어때. 이번에는 죽지 말자, 페블.”
“누님!”
“물론 네가 가짜라면 내가 직접 찢어 버릴 거지만.”
그때 툭, 리에트가 보이지 않는 막에 부딪혔다. 그녀의 눈매가 일그러졌다.
“이건.”
투명한 반구의 막. 어리둥절해하는 리에트와 달리 노아는 어렵지 않게 그것의 의미를 알아챘다. 던전의 구역. 노아가 크게 숨을 들이켰다.
‘몬스터.’
리에트가, 그리고 아까의 헌터들이 바로 이 던전의 몬스터였다.
인상을 찌푸린 리에트가 막을 거칠게 발로 찼지만 변하는 것은 없었다. 그녀가 불쾌해하며 앞머리칼을 쓸어 올렸다.
“어떤 새끼가 이런 걸 만들어 놓은 걸까.”
“그게 아니라…….”
노아의 말끝이 흐려졌다. 리에트에게 그녀가 몬스터라는 사실을 알린다면 어떻게 될까. 노아로서는 난폭한 반응밖에 떠올릴 수가 없었다. 어쩌면 몬스터라는 위치에 충실하겠다며 그를 죽이려 들지도 몰랐다.
‘누님이라면, 그러고도 남겠지.’
그러니 리에트가 알아채기 전에 빠져나가야만 했다.
“누님, 내려 주세요.”
“안 돼.”
“어차피 막혀서 달아나지도 못합니다.”
“저 막 만든 놈이 근처에 있을지도 모르잖아. 넌 약해서 안 돼.”
“약하지 않아요! 저는!”
크게 숨을 들이마시며 노아가 외쳤다.
“누님과 싸워서 이겼습니다!”
한유진의 도움이 컸다고 해도, 그래도 사실은 사실이었다. 리에트의 걸음이 우뚝 멈추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일까. 페블, 네가?”
“예.”
“내 기억에는 없는데.”
“저는…….”
던전이라는 말은 해선 안 된다.
“노아지만, 누님이 아는 노아와는 다릅니다. 누님과 함께 전룡화 스킬을 얻었고, 한국에 와서 싸웠으며 이겼습니다. 제가 아는 누님도 지금의 누님이 아니에요.”
“내가 아니라고?”
“제 누님은 전룡화 스킬을 가진 흑룡입니다.”
“그럼.”
리에트가 나직이 말을 이었다.
“내 동생은 정말로 죽었어?”
“…모릅니다. 저는 살아 있으니까요.”
노아는 리에트의 등을 내려다보았다. 지금의 그로서는 그녀의 얼굴을, 표정을 볼 수가 없었다. 혹시 슬퍼하는 것일까. 자신이 죽어서 조금이라도 안타까움을 느끼고 있는 것일까. 하지만.
“약하면 죽는 게 당연하다고 했잖습니까.”
노아가 이를 갈며 말했다.
“그러니까 죽었겠죠. 그건 페블(Faible)이니까!”
새삼스럽게, 뭘, 슬픈 듯이 중얼거리고 있는 것일까. 자신이 말한 대로 되었을 뿐인데.
“하지만 저는 노아입니다!”
파악, 날개가 거칠게 펼쳐졌다. 노아는 몸집을 최대한 크게 전룡화했다. 그 무게를 리에트가 버텨내지 못할 리는 없었다. 하지만 갑자기 부피가 늘어나면, 그것을 들고 있던 상대적으로 작은 덩치의 인간에겐 틈이 생길 것이다.
예상대로 리에트의 팔이 일순 느슨해졌다. 그대로 꽉 눌러 잡을 수도 있겠지만 그랬다간 노아가 큰 부상을 입게 된다. 두꺼워지는 덩치만큼 리에트의 팔이 벌어지고, 그 틈을 타 몸집을 살짝 줄인 노아가 미끄러지듯 몸을 빼내었다.
이어 재빠르게 하늘로 날아올랐다. 리에트의 눈이 용인화한 동생을 올려다보았다.
“부족했던 거야.”
“예?”
“좀 더 강해지게 만들었어야 했는데. 보조계라도 S급 정도면 죽지는 않을 줄 알았어.”
노아의 표정이 크게 일그러졌다.
“등급이 낮지만 강한 사람도 있어요! 그리고 S급이라도, 전투계라도 죽기도 합니다!”
“하지만 페블. 지금의 넌 나를 이길 수 없어. 내가 마음만 먹으면 여기서 죽는 거야.”
“쉽지는 않을걸요.”
노아가 낮게 으르렁거렸다. 천천히 날갯짓하며 거리를 벌리는 그를 보며 리에트가 이가 드러나도록 미소 지었다.
“그래? 넌 확실히 좀 다른 것 같네. 덤벼 봐, 페블.”
“네, 누님!”
노아는 크게 대답하고, 그대로 몸을 돌렸다. 리에트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어? 페블?”
“유진 씨도 이렇게 했을 거예요!”
당연히 못 이긴다. 심지어 지금의 리에트는 미래 시점이라서인지 현재의 리에트보다 더 강한 듯했다. 이미 막 근처에 다다라 있었기에 노아는 리에트가 어쩔 새도 없이 순식간에 막 너머로 빠져나갔다. 이대로 한유진과 다른 사람들을 찾아서,
“윽?!”
노아의 몸이 돌연 확 아래로 끌려 내려갔다. 무언가에 의해 발목이 당겨진 것이었다. 그대로 주르륵, 막 안쪽으로 끌려 들어온 노아를 내려다보며 리에트가 활짝 웃었다.
“정말 많이 변했어! 하지만 아직 페블이지. 나는 이기지 못했잖아?”
어느새 노아의 발목을 묶고 있었던 투명한 줄이 풀려났다. 노아가 이를 악물며 자신의 누나를 노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