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490
488화 어서들 오세요 (3)
“적색등은 뭔 놈의 적색등. 경고의 의미라면 처음부터 시뻘겠다.”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투덜거렸다. 포털 사이트 메인에 세성 길드와 기승수 사육소의 미묘한 기류 어쩌고 하는 기사가 눈에 띄어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보고 말았다. 내용은 요즘 양측 사이가 영 좋지 않더라~ 하는 추측성이었다. 그야 그런 척했으니까 나올 법한 소리였지만.
“버림받긴 누가 버림받아.”
연관 기사 몇몇의 뉘앙스가 영 거슬렸다. 세성 없어도 사육소 잘나간다고. 차라리 해연이랑 갈라지는 게 더 위기지. 유현이가 해연 길드장인 이상 그럴 일은 절대 없지만.
“맞아, 그러니까 아빠도 기사라는 거 내자!”
결이가 건조된 옷을 꺼내 펼치며 말했다. 손 조그만 것 좀 봐라. 역시 애들은 귀엽다. 유현이 어릴 때 생각나네.
“아빠가 세성 길드 먼저 버린 거라고! 그리고 앞으로 영영 갈라선다고 하는 거야.”
어때? 하며 금빛 눈을 반짝거린다. 아니 그냥 연기라니까.
“이런 헛소문은 신경 쓸 필요 없어. 그리고 버리기엔 세성 길드가 아깝긴 하잖아.”
휴대폰을 내려놓고 옷을 바구니에 담았다. 그사이 위쪽 건조기가 수건 다 말랐다는 소리를 낸다. 세상 참 편해지긴 했다니까. 이제 빨래 개는 기계만 나와 주면 되는데. 양말과 속옷까지 완벽하게 개주는 기계.
– 끄웅.
빨래바구니를 들고 세탁실 밖으로 나가자 피스가 자기도 돕고 싶다는 듯 다가와 꼬리를 흔들었다. 결이가 인간 모습으로 집안일을 돕는 게 부러운 모양이었다. 하지만 피스야, 털이 날린단다. 때문에 세탁실은 출입 금지였다. 그래도 붉은 털이 세탁물에 종종 달라붙곤 하지만. 최근에는 검거나 회색인 털도 추가되었다.
“결이가 보기엔 없어도 될 거 같은데.”
“왜, 쓸모 많아.”
그리고 쓸모가 없다고 하더라도, 이제 와서 나 몰라라 하기는 그렇지. 미우나 고우나 성현제란 인간도 자기가 원하는 자기 삶을 살아갔으면 싶었다. 충분히 많이 끌려다녔잖아. 나라고 해서 명쾌한 해결책이 있는 건 아니지만.
내 말에 결이가 포옥 한숨을 내쉬었다.
“성현제가 왜 그렇게 싫은 거야?”
“아빠한테 위험하니까.”
“요샌 괜찮은데.”
“아니야. 안 괜찮아.”
뭐, 성현제가 여러 번 위협해 오긴 했으니.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지. 빨래 다 정리해 넣고 애들 밥 챙겨 주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서경훈이었다.
[최종 명단이 나왔습니다. 자택으로 보내 드릴까요?]“아뇨, 곧 나갈 거예요. 소장실로 보내 주세요.”
S급 헌터들 중 참석을 희망해 온 사람들 우선으로 초대장이 보내졌다. 덕분에 처음에는 한국을 제외, 고작해야 스무 장이 채 못 되는 초대장이 발부되었다. 그중 열 장은 클로이 쪽에 주어졌기에 실제로는 열 명 미만의 S급 헌터들만이 먼저 연락해 온 것이었다.
잘나가는 S급 헌터인데 알아서 초대장 보내오겠지, 라는 오만의 결과였다. 몇 년간 대접만 받아 온 이들이 대부분이니까. 평범한 사람들과는, 중급은 물론 A급 헌터들과도 비교가 안 되는 특별한 자들.
던전이, 헌터가 나타난 지 이제 겨우 4년 가까이 되어갈 뿐이건만 이미 특별대접이 뿌리박혀 버린 것이었다. 실제로 대단한 거야 사실이지만.
[부탁하신 대로 연락순으로 정리를 해놓았습니다. 가장 먼저 연락 주신 분들은 따로 분류를 해놓았고요.]말하자면 S급 헌터들 중에서도 내게 유독 우호적이거나 선민의식에 덜 물들어 있거나 눈치가 빠른 자들쯤 되겠다. 이 사람들은 신상명세를 따로 기억해 둘 필요가 있었다. 친해져서 나쁠 건 없으니까.
반대로 미적미적 늦게, 마지못해 연락해 온 자들은 안 좋은 쪽으로 기억해 두어야 했다. 도발에 쉽게 넘어올 무리이기도 하고. 내가 성현제라면 일일이 기억해 둘 필요 없이 그냥 확 다 눌러 버릴 수 있을 텐데. 부럽긴 하다니까.
“수상한 사람은 없었습니까?”
세성과 각관실, 헌터 협회, 그리고 아마테라스까지. 가지고 있는 해외 상급 헌터들에 대한 정보를 모두 우리 쪽에 전해 주었다. 참석 명단과 그 정보를 비교, 정리하느라 비서팀 분들이 고생 많으셨지. 해연에서도 지닌 정보를 추가해 도와주러 왔었다.
해외 몇몇 곳은 한국에 비해 신상 감추기도 쉽다 보니 과거를 지워 버린 상급 헌터들이 더러 있었다. 한국도 회귀 전 시점에는 그런 경우가 많았었고.
[반면에 동행하는 A급 이하 헌터들 중에는 불명확한 경우가 삼 분의 일 정도 됩니다.]“많네요. 딴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있나 봐요.”
단순히 아직 알려지지 않은 중하급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도하민이나 박하율처럼 특수 스킬을 가진 헌터일 가능성이 더 높았다. 즐거운 파티가 되겠구만.
통화를 끊고 집을 나섰다. 먼 곳에서 오시는 손님들이니 열심히 노력해서 대접 잘 해드려야지.
* * *
모임이 열리는 섬이 그리 멀지 않은 만큼 한국에서는 대다수의 S급 헌터가 참석하게 되었다. 심지어 송 실장님도 이번에는 동행하기로 하였다. 예전에도 성현제 때문에 해외 출장을 간 적 있었지만 그땐 대부분 조용히 출국했었다. 유일한 국가 소속 S급 헌터다 보니 자리를 비운다는 것만으로도 말이 나오기 쉬웠기 때문이었다. 던전 공략도 가능한 줄여라, 라는 소리를 듣기도 하셨고.
하지만 이젠 한국은 비교적 안전해졌고 수능도 무사히 잘 끝나서인지 여유가 생긴 모양이었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자국 S급 헌터들의 보호겠지만.
“솔직하게는 이번엔 예림이 네가 남았으면 싶지만.”
“한 번쯤 동해를 날아서 건너 보고 싶었어요.”
떼놓을 수 있으면 떼놓아 보라는 듯 예림이가 말했다.
“걱정되니까 그렇지. 예림이 네가 강하긴 하지만 어른이 괜히 어른인 게 아니야. 다른 쪽으론 상처받을 수도 있어.”
깔끔하게 힘겨루기만 한다면 걱정을 덜 하겠지. 바다 가운데 섬이기도 하고. 하지만 세상에는 더럽고 치사한 인간들도 널려 있었다. 게다가 몬스터가 아닌 같은 인간과 싸우는 건, 역시 예림이에겐 일렀다. 성인이라도 좋을 일은 아니지만.
“저 순간이동 스킬도 있잖아요. 이번엔 최대한 시비는 피해 다닐게요. 아님 현아 언니랑 붙어 다니거나요.”
“하긴 현아 씨가 있지. 리에트도 참석할 모양이더라. 둘 다 근처에 없으면 송 실장님에게 달라붙어.”
“네!”
그 셋이라면 각자 다른 의미로 든든했다.
“그럼 이번에도 성한 씨에게 부탁드려야겠네요.”
조금 미안해하며 바라보자 김성한이 괜찮다는 듯 미소 지었다.
“저로서는 집 지키가 더 편합니다. 눈에 띄는 건 사실 그리 좋아하지도 않고요. 그러니 맡겨 주십시오.”
방어계 성향이 보통 그런 걸까. 한신 길드장 박민규도 불참하겠다는 대답을 보내왔다. 박민규는 애초에 한국을 벗어나는 것을 좋아하지도 않는다고 들었다. 전에 성현제가 한신은 안심해도 된다고 말한 게 그런 이유에서였을까. 자기 집을 지키려고 들면, 당연히 효도중독자들에게 넘어갈 리 없겠지.
“그럼 한국에는 김성한 헌터와 박민규 헌터만 남게 되는 거네요. 에블린 헌터는 아직 확정은 아니지만요.”
참석하게 될 확률이 더 높긴 했다. 와주면 좋긴 하고. 일단은 우리 편이니까 말이다.
“전에 살짝 듣기론 한신 길드장과 사이가 별로 안 좋다고 하던데, 요즘은 어때요?”
김성한에게 물어보았다. 설마 성한 씨 혼자 남고 다른 S급들 없다고 시비 걸어오는 건 아니겠지.
“아 그게…….”
김성한이 조금 멋쩍어하며 말을 이었다.
“한때 직장 동료였습니다.”
“네? 그랬어요?”
“예. 그리고, 어쩌면 제가 한신 길드장이 될 수도 있었지요. A급 헌터의 수도 그리 많지는 않았으니까요.”
게다가 김성한은 S급의 자질이 있는, A급 중에서도 최상급 스탯을 가진 헌터였다. 만약 박민규가 없었더라면 한신 회장은 같은 방어계이자 A급 헌터인 김성한을 집안에 들이려 했었겠지. 성한 씨도 초기 각성자였으니까 박민규보다 먼저 각성했던 걸까? 그러다 박민규가 각성하고, 성한 씨는 밀려났고?
“그럼 오히려 성한 씨가 한신 길드장을 꺼려야 하지 않나요. 물론 그러실 분이란 말은 아니고요.”
“저도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한신 길드장이 될 뻔했다는 것 자체가 거슬렸던 모양입니다. 제 예전 직장에 대해서도 감추길 바랐었고요.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괜찮아진 것 같습니다.”
김성한이 S급 헌터가 되고 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화해하자는 의미의 연락이 오기도 했었단다. 성한 씨야 별 유감 없었기에 받아들였고. S급이 되면 더 견제할 줄 알았는데 거참 의외네.
“한신 길드장도 한번 제대로 만나 보고 싶네요.”
성한 씨처럼 든든하게 뒤를 받쳐 줄 사람이라면 이것저것 좀 챙겨도 드려야지.
모임 주최자인 만큼 나는 먼저 출발하기로 했다. 물론 유현이와 예림이도 따라왔다. 피스 역시 동행했지만 나머지 애들은 S급들이 득시글한 위험한 자리인 만큼 사육장에 맡겨 놓았다. 결이도 두고 가고 싶었지만.
– 결이도 날아서 따라갈 거야!
“결아, 위험하다니까.”
– 안 위험해! S급 헌터도 날 해치진 못해! 다치겐 못 한다고!
“잡아갈 순 있잖니.”
– 그래도 싫어! 아빠 쫓아갈 거야!
놓아두고 가면 가출해서라도 쫓아올 거라고 고집을 부렸다. 하는 수 없이 무슨 일이 있어도 평범한 F급 몬스터인 척해야 한다고 약속하고 데리고 가기로 했다. 랑이도 피스랑 떨어지게 되었다고 깽깽 울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결이처럼 외부 공격에 면역이 있는 것도 아니니. 잠깐이 아니라 며칠 집 비운다는 걸 어떻게 안 건지, 눈치도 빠르지.
“피스야, 랑이한테 착하게 기다리고 있어, 해줘.”
– 크흥
피스가 시큰둥하게 뿔여우 앞으로 다가갔다.
– 키이잉, 캐앵! 키앙!
– 크르릉.
피스의 앞발이 바닥에 납작 엎드린 새끼 여우의 머리를 꾹 눌렀다. 아니, 그게 아니라.
“아빠한테 하듯이 몸을 비비거나 핥아 주거나 하는 게 어떨까? 응? 다정하게.”
– 끼앙.
피스가 몸을 홱 돌려 내게 다가오더니 다정스럽게 머리를 비볐다. 그리곤 호랑이를 향해 컁, 짧게 울었다. 뭐라고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새끼 여우가 얌전히 꼬리를 파닥거렸다. 아무튼… 달래지긴 한 것 같았다.
삐약이와 벨라레에게도 얌전히 있으라 말은 해두고 사육소를 떠났다. 김포 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이내 일본에 다다르고.
“아마 길드 또 저러네요.”
예림이가 비행기 창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제복 입고 모여 있어요.”
“제복 정도야 뭐…….”
그래, 옷이야 뭘 입든 무슨 상관이겠어. 이제 곧 착륙하는데 비행기에서 내리기가 싫어졌다.
‘둘만 있을 때라고 했으니까…….’
설마 다른 사람 있는 곳에서 헛소리하진 않겠지. 그래, 시시오도 체면이라는 걸 아는 길드장이잖아. …알면 그런 소리 할 것 같지도 않지만. 아니다, 성현제도 비슷한 소리 했었지. 그래도 성현제가 시시오보다는 나았다. 아이고 내 팔자야.
“형, 왜 그래?”
무심코 미간을 찌푸리자 유현이가 물어왔다.
“역시 부담되는 거야?”
“응? 부담되긴 되지.”
S급들 우르르 몰려드는 것보다 시시오의 한마디가 더 묵직하긴 하다만.
“너무 걱정하지 마, 형.”
동생이 다정하게 말을 이었다.
“마침 섬이잖아. 정 안 되겠다 싶으면 전부 쓸어버리면 돼.”
“아니, 유현아. 우리 목적은 초대장이잖냐.”
“빈자리가 다수 생기면 우리에게 알아서 주지 않을까.”
…그럴 것 같긴 한데.
“채터박스의 편을 들 거라면 어차피 없애야 하고.”
어떻게 보면 깔끔하고 확실한 방법이긴 했다. 그렇지, 계약할 S급 헌터가 한 명도 남지 않으면 효도중독자들도 우리 세계에 손대기 힘들긴 하지.
“그래도 자칫하면 국가적으로 문제가 생기고 별 관심 없던 S급 헌터들도 우릴 적대시하게 될 수도 있으니까 일단은 참자. 또 채터박스가 물러나더라도 던전은 남아 있잖냐.”
“물론 조심은 할 거야.”
아무렴 어련히 알아서 하겠냐마는, 유현이 너 은근 기분 좋아 보이는구나. 리에트도 거기선 다 밟아 놔도 된다면서? 하며 참석하겠다 연락해 왔었지. 싸움판 아니라니까. 일단은.
“헌터들이랑 싸우는 게 그렇게 좋아?”
“그보다도 형이 있잖아. 형이 주최자고.”
유현이가 화사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냥 싸우는 게 아닌, 말하자면 나를 위해서 시비 거는 놈들을 짓밟는 것이기에 더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역시 저택은 포기하고… 섬도 포기해야 할지도.
“예림아, 섬 날아가면 구조 부탁하마.”
“걱정 마세요~ 포션 든든히 챙겨 둘게요.”
“피스 너도 부탁한다.”
– 끼앙!
– 나도 아빠! 아빠 들고 날 수 있을 거야.
아니 그건 학대지. 그사이 비행기가 착륙했다. 양쪽으로 사열하고 있는 헌터들 가운데 시시오가 태양처럼 환한 얼굴을 하고서 서 있었다. 황금색 삐죽삐죽한 사자갈기 머리 스타일 때문에 더더욱 눈이 부셨다.
“한유진 소장님!”
목청 한번 크기도 하지. 성큼성큼 다가와 나를 끌어안으려 드는 시시오를 유현이가 막아섰다. 시시오가 조금 멋쩍어하며 유현이를 바라보았다.
“그간 잘 지냈습니까.”
시시오가 이상하리만치 공손하게, 또 다정하게 유현이에게 말했다. 유현이와 예림이가 미심쩍어하며 시시오를 쳐다보고 나는…….
‘내가 그… 그거면, 유현이는 시시오한테…….’
뻗어 나가는 생각을 멈추기 위해 노력해야만 했다. 아니야, 이건 진짜 아니다. 내 동생에겐 저런 덩치 크고 나이 많은 조… 따윈 없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