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494
492화 차린 것은 없지만 (3)
콰직, 불길에 휩싸인 오토바이의 잔해가 전투화 아래에 짓밟혔다. 에리크는 도끼를 인벤토리에 넣고 대신 양손에 단검, 스틸레토와 쿠크리를 들었다. 노아가 완전히 용으로 변한다면 모를까, 전투 도끼는 날렵하고 작은 표적을 노리기엔 적합지 않았다. 에리크의 손등을 타고 스틸레토가 빙글, 과시하듯 돌았다.
“비늘을 벗겨 주지.”
노아 루히르는 상급 용종화 스킬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여느 보조계와는 달리 전투능력도 강화되었을 것이었다. 특히 용의 가죽은 갑옷을 두르고 있는 것과 다름없었다.
하지만 에리크 또한 노련한 S급 헌터다. 용종에 따라 다르지만 노아와 같은 비늘 형은 틈새를 노려 긁어내면 의외로 쉽게 방어력을 낮출 수 있었다. 강력한 용종이야 투르셴 길드 관리하 S급 던전에서 더러 나와 전투 경험도 충분했다. S급 몬스터인 언데드 드래곤의 머리를 수차례 베어 넘긴 그다. 오히려 신경 쓰이는 것이라면.
에리크는 선착장 기둥 위의 해연 길드장을 흘끗 쳐다보았다.
“명단에는 없었잖아. 초화운은?”
해연 길드장은 누군가와의 통신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끼어들 낌새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거리낄 필요가 없었다. 에리크는 커다란 바늘처럼 뾰족하게 가는 스틸레토를 앞으로 겨누며 스킬을 사용했다. 꼬리잡기. 특정 타깃의 움직임을 보다 쉽게 따라잡게 해주는 전투보조 스킬이었다. 이어 인벤토리에서 작은 알약을 꺼내어 한쪽 볼에 넣었다. 강력한 해독제로서 약 한 시간 동안 서서히 녹으며 효과를 발휘하는 아이템이었다. 지니고 있는 독 저항 반지에 해독제가 더해지면 S급 독 스킬도 어느 정도 버틸 수가 있었다.
뿐만 아니라 언데드로 유명한 프랑스 소속 헌터답게 저주 저항 장비도 든든히 갖추고 있었다. 에리크의 손에 들린 두 무기에 회복력 저하 스킬이 깃들었다. 무기 자체에도 재생을 더디게 만드는 옵션이 붙어 있었다. 역시나 계속 재생하는 언데드를 상대하기 좋은 스킬과 무기였지만, 자체 회복이 가능한 헌터에게도 효과가 뛰어났다.
반면에 노아는 사슬장갑 외에는 무기도 아이템도 꺼내지 않았다. 그 가벼운 태세에 에리크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특정 소속이 된 이상 봐줄 이유도 없어!”
타 길드들의 요청을 받고 움직여 주던 예전과는 다르다. 그때야 괜히 사이가 틀어졌다간 필요할 때 의뢰를 하지 못하니 보조계가 건방지다 싶으면서도 속으로만 삼켰다. 하지만 이제는 아예 먼 나라의 사육소라는 엉뚱한 집단의 소속이었다.
끼이익, 에리크의 발에 힘이 들어가며 바이크의 일부였던 쇳조각이 일그러진다. 발끝이 비틀리고, 텅! 쇳조각이 강하게 걷어 채였다. 표창처럼 날아간 쇳조각을 노아가 고개만 까딱 기울여 피했다. 동시에 에리크가 노아의 앞으로 들이닥쳤다.
날카롭게 찔러드는 스틸레토를 노아의 손이 가로막았다. 장갑의 사슬 중 일부가 길게 늘어나며 카가각, 거친 소리와 함께 뾰족한 칼끝을 휘감는다. 공격이 막혔지만 에리크는 당황하지 않고 스틸레토를 뒤로 뺌과 동시에 쿠크리를 휘둘렀다. 단검에 속할 정도로 짧지만 장검 이상으로 묵직한 검이 공기를 가르고, 노아의 몸이 공중으로 휙 치솟았다.
점프로 공격을 피하면 낙하 지점을 바꾸기 힘들기에 불리해지기 쉽다. 비행 또한 짧게나마 멈칫거리는 틈이 존재했다. 하지만 노아는 완전히 날아오르는 대신,
펑-!
일순간만 날개를 거칠게 펼쳤다. 커다란 날개가 등 뒤로 솟아오르며 공기를 크게 밀어냈다 사라지고, 추진력을 얻은 노아의 몸이 순식간에 에리크의 머리 위를 넘어간다. 적의 등 뒤에 내려서자마자 돌아서지도 않고 바로.
퍼억!
“큭!”
꼬리를 꺼내 후려쳤다. 무방비하게 등을 얻어맞은 에리크가 밀려나며 휘청거렸다. 예상치 못한 연속 공격이었지만 에리크는 당황하지 않고 재빠르게 땅을 박차며 앞으로 달려 나갔다. 거리를 충분히 벌린 그가 노아를 향해 돌아섰다.
“용종화란 거, 제법 까다롭군.”
인간 형태와 비슷한 이족보행 용종이야 더러 상대해 보았다. 하지만 저렇게 몸의 일부를 순간순간 바꾸는 적은 처음이었다. 길게 나와 있던 꼬리를 거두며 노아가 묵묵히 에리크를 바라보았다.
‘확실히… 도움은 돼.’
지금만큼 전투 상황에 따라 능숙히 부분 수화할 수 있게 된 데에는 한유현의 덕이 꽤 컸다. 같은 용종화 스킬을 지닌 리에트도 있었지만 그녀는 가르치는 데는 재능이 별로 없었다. 그냥 몸으로 여러 번 겪으면 알게 되겠지, 라는 타입이었다. 반면에 한유현은 그래도 길드장이어서인지, 혹은 한유진이라는 보호자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나름 자세한 조언을 덧붙여가며 교육적은 대련을 해주었다.
“하지만 어차피 변변찮은 공격 스킬은 없으니!”
스탯과 스킬의 차이까지는 좁힐 수 없을 것이다. 에리크는 긴장감을 한껏 끌어올리며 다리를 크게 굽혔다가 노아를 향해 뛰어들었다.
[송 실장님 말로는 담배 팔러 왔다는데.]“…뭐?”
한유현의 눈썹이 사납게 치켜올라갔다. 그렇잖아도 형에게 담배를 건넨 것이 불쾌하건만 아예 장사를 하러 왔다니.
[나도 진짜 어이없는데… 일단 초화운은 동행하지 않은 모양이야.]“알았어. 여기서 처리할게.”
[아니, 잠깐만. 처리라니.]“제 발로 왔으면 죽여 달라는 소리잖아.”
당연하다는 듯 말하는 한유현의 태도에 한유진이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게 일단은 명단에 있긴 하고, 미국 국적이거든. 그리고 공식적으론 중국은 날 구하는 데 협조한 걸로 되어 있잖냐. 그러니 거긴 보는 눈이 너무 많아서 안 돼.]“그럼 헬기 방향을 틀라고 할까? 한 명만 태운 채로 근처 암초 같은 곳으로.”
[그냥 넘어갈 수는 없지만, 일단 오늘은 참자, 응?]한유진이 동생을 달래며 말했다. 중국에서의 일의 내막을 아는 사람들도 더러 있을 것이었다. 그러니 얕보이지 않기 위해서라도 황림을 멀쩡히 돌려보내선 안 되었다. 확실한 보답을 해주어야겠지만, 첫날에는 곤란했다. 형의 다독임에 한유현이 불만스러워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그 프랑스 헌터는 어떻게 됐어?]한유현이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노아가 빙글, 반 바퀴 몸을 회전시키며 부드럽게 공격을 피한다. 이어 에리크를 향해 손을 뻗었다. 에리크가 딱 아슬아슬히 스칠 정도로만 회피하려는 순간, 날카로운 손톱이 길게 뻗으며 에리크의 어깨를 할퀴었다.
“신경 쓸 필요 없어.”
저 정도쯤은 노아가 알아서 처리할 수 있어야 하고, 충분히 그럴 것이었다.
쿵! 묵직한 메이스가 모래사장을 내리찍었다. 폭탄이라도 터진 것처럼 모래가 높게 치솟았다. 에리크는 얼마 버티지 못하고 단검을 포기했다. 노아의 움직임 자체는 따라잡기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변칙적인 부분수화였다.
손톱, 날개, 꼬리. 그 모두가 순간적으로 튀어나왔다가 빠르게 사라져 갔다. 페이크까지 섞은 탓에 예측을 하고 대응하기에는 너무 까다로웠다. 그러니 차라리 무식하게 힘으로 밀어붙이는 편이 나았다.
“그저 할퀴기나 할 뿐이지!”
에리크의 몸 군데군데 마치 돌과 같은 것이 도드라져 있었다. 특히 두 팔은 단단한 암벽에 감싸진 듯했다. 움직임은 느려지지만 방어력이 크게 상승하는 스킬이었다. 덕분에 노아의 발톱쯤이야 팔만 대충 들이대도 쉽게 막을 수 있었다.
“공격력이 없으면 결국 반쪽짜리 S급이다!”
피하는 것만으로는 보스 몬스터를 사냥할 수 없기에. 던전은 몬스터를 죽여야만 공략이 된다. 그러니 전투계 헌터들이 대우받는 게 당연했다. 보조계와 치유계는 없으면 아쉬울 뿐이다. 좀 더 쉽고 안전하게 던전을 공략할 수 있겠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하지만 전투계가 없으면 공략 자체가 불가능하다.
“보조계는 혼자선 안 돼!”
콰르르르! 메이스가 휘둘러지는 선을 따라 모래가 파헤쳐지고 밀려들던 물결이 뒷걸음질 친다. 노아는 들이닥치는 메이스의 끝을 발끝으로 가볍게 밟아 올라섰다. 교묘하게 균형을 잡으며 휘두르는 힘의 방향 그대로 훌쩍 뛰어 공중제비를 돌아 착지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요.”
아쉬워도. 노아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 사이 새로 도착한 헌터들 몇이 멀찍이서 둘의 싸움을 구경하고 있었다. 노아가 다시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날개를 펼쳐 바람을 타고 활공해, 헌터들 중 한 명의 앞에 내려섰다.
“A급 전투계, 맞으시죠?”
“예? 아, 네.”
A급 헌터가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한유진의 명단 정리를 도와주다가 본 적 있는 헌터였다. 그리고 영국인이다. 노아가 부드럽게 미소를 머금었다.
“S급 헌터를 한 번쯤 눌러 보고 싶지 않으십니까. 그것도 프랑스 소속을.”
A급 헌터가 머뭇거렸다. 그러자 주위 동료 헌터들이 그를 부추겼다.
“A급이니까 져도 봐준다.”
“그래, 대신 이기면 다음 던전 몰아줄게.”
영국 S급 헌터가 웃으며 말했다. 그들의 대화에 에리크가 입꼬리를 비틀었다.
“고작 A급 끌고서 같이 덤빌 셈이냐!”
“저는 보조만 할 겁니다. 보조계니까요.”
그 말에 에리크가 비웃음을 흘리고 A급 헌터가 난감해했다. 그러면서도 밑지는 건 없기에 앞으로 나선다. A급이 자신의 스킬에 대해 노아에게 작게 알려 주었다. 노아 또한 무어라 속삭였다.
“치유 스킬도 있으시다니까, 그럼.”
그다지 자신은 없는 채로 A급이 앞으로 나섰다. 장검을 뽑아드는 그를 향해 보조스킬이 펼쳐졌다. 이어 주위의 마나가 크게 일렁거렸다. 마나의, 마력의 흐림이 평소보다 배 가까이 원활해지는 것에 A급이 눈이 둥그레졌다. 그것을 길게 느낄 틈도 없이 에리크가 황소처럼 달려들었다.
“A급이 보조스킬 받아 봐야! 날 한 번이라도 넘어뜨린다면 이긴 걸로 쳐주지!”
“헉!”
무시무시한 위력을 휘감고 들이닥치는 메이스에 A급이 기겁하며 뒷걸음질 쳤다. 날개를 펼쳐 날아오른 채 노아가 외쳤다.
“스킬을 전부 활성화시키십시오!”
“예?”
“마나 걱정은 마시고요.”
A급의 움직임이 확연하게 빨라졌다. 마나 소모가 커 필요할 때만 사용하던 전투 보조 스킬도 아낌없이 유지했다. 그런데도 마나는 바닥날 줄을 몰랐다. 에리크의 메이스를 가볍게 피하던 A급 헌터가 돌연 뒤로 물러나 공격 스킬을 자신의 무기에 밀어 넣었다. 짙은 마력이 장검을 감싸며 1미터 이상 치솟았다.
“A급치고는 제법 강한 마력이다만, 느려!”
저렇게 멍청히 서서 마력을 모아 휘두르는 공격에 어느 얼빠진 S급이 맞아 줄까. 에리크는 코웃음을 치며 공격을 피하려고 했다. 그때.
“억!”
에리크의 몸이 돌연 둔해졌다. 돌갑주로 몸을 감싸는 방어 스킬이 갑자기 더 두껍고, 무거워진 것이었다. 방어력은 분명 상승했다. 하지만 그와 함께 속도는 더 느려졌다. 그와 동시에.
콰과과!
A급이 검을 휘둘렀다. 집중된 마력이 노아의 보조를 받아 더욱 강하게 에리크의 가슴을 후려쳤다.
콰앙!
요란한 소리가 울렸지만 강화된 돌갑주는 금 하나 가지 않았다. 대신.
“윽!”
첨벙! 뒤로 날려간 에리크의 몸이 바다에 빠졌다. 급히 벌떡 일어났지만 그가 넘어진 모습을 모두가 똑똑히 보았다.
“A급한테 맞고 나가떨어지냐!”
영국 S급 헌터가 배를 잡고 웃었다. 다른 헌터들 또한 비웃는 기색이 역력했다.
“넘어졌으니 제가 이긴 거죠?”
A급 헌터가 신나하면서도 보복이라도 당할세라 얼른 동료들에게 돌아갔다. 에리크가 시뻘게진 얼굴로 노아를 노려보았다.
“너, 대체 나한테 무슨 짓을!”
“부서진 바이크는 투르셴 길드로 청구하겠습니다.”
“아직 끝나지 않았어!”
으르렁거리며 다시 덤벼들 기세인 에리크를 노아가 차갑게 내려다보았다. 그의 날개가 탁, 접히며 에리크를 향해 뚝 떨어져 내린다. 얼마든지 받아 주겠다는 듯 에리크가 두 다리를 굽혀 단단히 버티고 섰다. 두 사람이 맞부딪치기 직전, 노아의 양손이 1미터 간격을 두고 벌려졌다.
잘그랑- 금속성 소리와 함께 장갑의 사슬들이 뻗어져 서로 길게 얽혔다. 동시에 노아의 꼬리가 에리크의 메이스를 후려쳤다. 메이스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대신 노아의 몸이 탄력을 받아 둥글게 에리크의 머리 위를 스쳐 등 쪽으로 내려선다.
사슬은 그대로 앞쪽에 둔 채.
“컥!”
사슬이 에리크의 목을 휘감고, 조이는 것을 막기 위해 곧장 드드득 돌판이 목을 감쌌다.
“이쯤이야, 윽.”
그에 아랑곳없이 노아가 전룡화하였다. 무게를 이기지 못한 에리크가 뒤로 크게 기울어지고 그대로 첨벙, 용과 인간이 바닷속으로 사라졌다.
“…안 나오는데요?”
십여 분이 지나고, A급 헌터가 의아해하며 말했다. 그때 새로운 헬기가 도착했다.
“해연 길드장님! 안녕하세요~”
모래사장 위로 뛰어내린 강소영이 두 팔을 흔들어 한유현에게 인사했다. 이어 에블린과 클로이 또한 해변으로 내려섰다. 한유현이 클로이를 보고 눈살을 미미하게 찌푸렸다.
“무슨 일 있었나 봐요. 바이크가 박살 나 있네요.”
“길을 따라가면 됩니다.”
에블린은 헬기에서 뛰어내리느라 살짝 흐트러진 치마를 바로잡고 길 쪽으로 걸어갔다. 클로이도 묵묵히 그녀의 뒤를 따랐지만 강소영은 남아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안녕하세요, 윌리엄 씨! 루시 언니!”
영국 헌터들 중에 아는 얼굴이 있었는지 강소영이 반가워하며 그들에게 다가갔다.
“안녕, 스위티! 요즘 황동 고리가 쏟아진다며?”
“드래곤 링이죠! 근데 왜 여기 서 계세요?”
“아, 그게.”
영국 헌터가 설명하려는 순간 물속에서 금빛 물체가 튀어 올랐다. 황금색 용이 물방울을 흩뿌리며 들고 있던 에리크를 해변으로 내던졌다. 강소영이 더없이 환한 얼굴로 소리쳤다.
“노아 씨!”
에리크가 쿨럭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강소영이 폴짝폴짝 노아를 향해 뛰어갔다.
“최고예요! 멋져요! 저 한 번만 태워 주세요! 저택까지! 한 번만!”
“안녕하세요, 소영 씨.”
노아가 용인화하며 말했다.
“젖으셨네요. 저 수건이, 음, 있었던 거 같은데.”
“저택에 가서 씻으면 돼요.”
“그럼 저랑 같이 가요! 저도 마침 거기로 가야 하는데!”
다들 저택으로 가는 손님이건만 과장스럽게 마침 잘됐다, 라며 눈을 빛내는 강소영을 노아가 조금 당혹스럽게 바라보았다. 그래도 싫은 기색까지는 아니었다.
“그럼 먼저 가보겠습니다.”
“예.”
노아는 한유현에게 짧게 인사하고 강소영과 함께 길 쪽으로 걸음을 옮겨갔다. 구경꾼들 또한 끝났다 싶자 슬슬 자리를 이동했다. 뒤에 남은 에리크가 이를 바득 갈았다. 그리곤 한유현을 향해 버럭 소리쳤다.
“나는 돌아가겠소!”
한유현은 그 말을 깨끗이 무시했다. 한참을 씩씩거리던 에리크는 다음 손님을 태워 온 헬기에게 사다리를 내려 달라고 하곤 정말로 돌아갔다. 남아 있어 봐야 내내 놀림거리나 될 것이었다. 물론 자리를 떠난다 해도 A급 헌터에게 한 방 먹은 S급 헌터라며 사방에서 떠들어 대겠지만.
“그쪽엔 별일 없지?”
[응. 아직은 조용해. 에블린 씨 도착하기 전에 현아 씨랑 예림이 교대시켰고. 아니, 현아 씨를 못 믿는 건 아니고요. 믿는데, 그냥 불편할, 아야야!]“형?”
한유진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새롭게 헬기가 나타났다. 한유현은 통신 채널을 바꿔 헬기 조종사에게 연락했다. 헬기가 속도를 줄이며 공중에 멈춰 섰다. 해변이 아닌 바다 위였다. 헬리콥터의 문이 열리고 하와이안 셔츠를 펄럭이며 황림이 모습을 드러냈다.
“왔어.”
한유현이 짧게 말했다. 바다 위에 헬기를 멈추는 것으로 반기지 않는다는 티를 냈지만 황림은 아랑곳없이 웬 파라솔을 펼쳐들었다. 사뿐히 아래로 뛰어내린 그가 물에 닿기 직전, 파라솔을 빙그르 뒤집어 돌려 배처럼 올라탔다. 아이템인지 파라솔은 제법 무게가 있을 황림을 받쳐 물 위에 떴다.
한유현의 눈매가 조금 날카로워지고, 그의 손에 군림자의 검이 들렸다.
[유현아, 웬만하면 그냥─]“인사만 할 거야.”
카가각, 군림자의 검이 용의 꼬리처럼 길게 늘어났다. 주인의 마력을 가득 품고서 연검이 크게 휘둘러지고-
촤아아아─ 두들겨 맞은 수면을 따라 파도가 높게 일어 황림을 향해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