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635
633화 아이들 (2)
[건강해 보여서 다행이에요!]신입이 내 주위를 빙글빙글 맴돌며 외쳤다. 벽난로와 알록달록한 양말, 루돌프와 썰매, 아기천사 등의 장식품들도 보였다. 신입 녀석 크리스마스깨나 좋아하는 모양이구만. 신입이 원래 살던 세상에도 크리스마스 같은 게 있었던 걸까.
“다시는 못 볼 뻔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내 말에 배구공이 울상을 지었다.
[채터박스가 그렇게 나올 줄은 정말로 몰랐어요! 저희도 깜짝 놀랐다고요. 파티 중에는 허니 일행을 해칠 수 없도록 계약도 철저히 했었는데, 근데 채터박스가 채터박스가 아니게 되면 다 무효가 되는 셈이니까요!]채터박스 일 만이 아니라도… 뭐, 내 수명은 아이템이 고장 난 거였을 수도 있고. 하루아침에 그렇게 늘어날 리 없으니 역시 고장이겠지.
“우와, 별이 제 몸보다 더 커요!”
트리 꼭대기로 날아 올라간 예림이가 아래를 향해 두 팔을 흔들며 소리쳤다. 거대하기가 무슨 빌딩만 한 트리였다. 주절주절 변명을 내뱉는 신입에게 카드를 내밀었다.
“자, 크리스마스카드 겸 연하장이야.”
메리크리스마스 앤 해피 뉴 이어. 일부러 크리스마스카드에 더 가까운 것으로 골랐다. 펄과 은박이 들어간 겨울 숲과 산타클로스 오두막. 신입의 말이 뚝 끊겼다. 배구공에 그려진 두 눈이 카드에 딱 고정되어 멈추었다.
“신입 너도 새해 복 많이 받아라.”
신입 세상에서는 카드나 편지 같은 거 주고받는 문화가 없었던 모양이지. 배구공에서 스르륵 촉수가 나와 카드를 받았다. 촉수가 그렇게나 편하냐. 핑크색 반짝이에 꽃까지 단 게 신경 쓰긴 했다만 그게 더 징그럽다, 야.
[고마워요, 허니! 앗, 저는 아무것도 준비 못 했는데!]“이건 우리 동네 풍습이니까 괜찮아.”
[허니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촉수에 들려 있던 카드가 사라졌다. 아니, 촉수 내밀어 오진 마라.
“그래서 상황은 어때?”
[채터박스 일은 다들 당황스러워했어요. 초월자가 자기 격을 포기하는 경우는 정말 드물거든요. 그것도 다른 초월자의 복수를 위해서라니! 그 나이 먹고 저러는 게 놀랍다고도 하고요. 너무 감정적이잖아요.]“감정적인 게 뭐 어때서. 감정은 나쁜 게 아니야.”
내가 채터박스 놈 편을 들 줄은 몰랐다만, 그렇잖아. 모든 사람들이 지극히 이성적이면 평화롭기는 하겠지. 하지만 그냥 그걸로 끝일 것이다. 죽은 듯이 고요하고 흔들림 없는 세상이 그리 좋을 것만 같지는 않았다. 애초에 좋다는 것도 감정이잖아.
좋아가 있으면 싫어도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게 문제겠지만, 싫어를 버리기 위해 좋아까지 사라지게 하느니 둘 다 끌어안고 사는 편이 난 더 좋았다. 대신 좋아하는 걸 더 많이 보고 말하고 표현하면 되는 거 아닐까.
“자기 좋은 일 하겠다고 남한테 과하게 피해를 주는 건 안 되겠지만. 엉뚱한 복수 대신에 먼저 간 사람을 그리며 덕이라도 쌓았음 얼마나 좋아. 애초에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말이야.”
정당방위잖아. 내가 남의 집에 침입해서 잠자던 해파리 목을 땄다면 이해라도 하겠다만 가만히 있는 날 잡아가려고 든 게 누군데. 감정적이든 이성적이든 그걸 향하는 방향이 중요한 거지. 내 말에 신입이 우물쭈물 눈을 빙그르 굴렸다.
[그래도 저희는 세상을 구하려고, 하는 거긴 해요.]“그래, 그러니까 잘 좀 도와줘 봐. 새로 효도중독자가 오기로 했어? 이젠 좀 손 떼면 안 되나.”
신입이 다른 사람들은 듣지 못하도록 차단막을 쳤다. 밀려 나간 피스가 불만스럽게 막을 앞발로 긁었다.
[우리가 직접 관리하는 근원은 모두 넷이고 평균적으로는 한 근원이 세상 하나씩 차례로 삼키지만 가끔은 두셋을 동시에 삼키려 들 때도 있거든요.]“욕심도 많지. 우리 쪽은 세상이 몇 개나 있는 거야? 다섯 번째 근원 말이야.”
[그때그때 달라요. 요즘은 문명을 이룬 세상은 가장 많을 때도 근원 하나당 천 개를 넘기기 힘들어요.]…엄청 많잖아. 인구 10억씩만 쳐도 몇 명이야. 하기야 그쯤 되니 패륜아들이 인간 하나하나는 쉽게 여기고 다루는 거겠지. 심지어 세상 하나 정도는 여차하면 버려도 괜찮다 여기기도 하고.
[두 번째 근원에서는 계속 삼켜져서 십여 개로 줄어 버린 적도 있댔어요. 아슬아슬했죠. 시스템이 초반에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하면 일 년도 채 못 버티고 삼켜지기도 하거든요. 게다가 갈수록 줄어드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대요.]“빨라졌다고?”
[네. 아주 옛날에, 시스템이 만들어지기도 전의 옛날에는 근원이 세상을 열 개 만들면 하나 삼키는 정도였거든요. 하지만 이제는 삼키기만 하고 있어요. 그래서 강제로 뱉어 내게 만드는 게 중요해진 거고요.]만들진 않고 삼키기만 하다니, 위험한 거 아니냐.
“그 뱉어 내게 만든다는 건 정확히 어떤 건데?”
[근원을 일부 부수는 거예요. 떨어져 나간 조각들이 새로운 세상이 되는 거죠. 근원이 부서져서 생겨난 세상은 문명도 빨리 자리 잡거든요. 잘만 하면 한 번에 몇백 개가 새로 생겨나요! 그래서 요새는…….]신입이 내 뒤쪽에 약간 떨어져 서 있는 유현이를, 그 너머의 송태원을, 트리 위의 예림이와 노아를 차례로 바라보곤 다시 내게로 시선을 옮겼다.
[세상을 구하는 것보다요, 새로운 초월자를 발굴해 내는 데 더 신경 쓰는 것도 같아요. 그래서 허니 세상에 관심이 더 많이 가고 있는 거고요. 그리고 특히 허니가요.]“내 특성 때문에?”
[네. 회귀 후에 허니 동생도 더 빠르게 성장하고 있고 대장장이 씨와 물방울 선배의 힘을 얻은 아이에 용인종과 도깨비왕도 생겨났잖아요. 그 밖의 전체적인 각성자 성장 상태도 회귀 전보다 훨씬 좋아졌고요. 상위권이 올라가면 그 아래로도 영향을 받게 되거든요.]“…그래서 50명 모으라고 한 거야?”
[…그런 것도 있고요. 아무튼, 그래서요. 효도중독자 쪽에서 새로 오긴 올 예정이에요. 하지만 허니에겐 최대한 피해가 가지 않게 할 텐데.]신입이 우물거렸다. 그냥 우리 좀 내버려 두지 뭘 또 온대.
“그래도 이번엔 채터박스처럼 복수하겠단 놈은 아니지? 간접적으로 훼방 놓는 것 정도는 감당할 만한데.”
[그게-!]신입이 뭔가 말하려고 했다. 그와 동시에 차단막이 깨지며.
텅!
“섣부른 짓 하지 마라.”
벽난로에 장식되어 있던 솔방울이 배구공을 두들겼다. 거의 순간 이동하듯 나타난 어린 혼돈의 손이 신입을 꾹 눌러 잡는다.
“지금 첫째는 들어봐야 막지도 피하지도 못해. 그런 정보를 주기 위해 제약을 깨는 건 무의미한 짓이다. 어차피 한 번 제약을 깰 생각이라면 후에 행동으로 도와줘라. 그게 나아.”
…상황은 잘 모르겠지만.
“그래, 신입아. 들어도 내가 대비하기 힘든 정보라면 어르신 말이 맞는 거 같아. 게다가 네가 규칙을 어겨서 활동이 어려워지는 건 원하지도 않고.”
[…허니.]아니, 그런 표정으로 보지 마라. 미안하지만 순수하게 널 걱정해서 한 말은 아니라고. 그나마 신입이라도 있어야지 다른 패륜아들은 영 믿음이 안 간다.
“어르신, 여기 연하장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꾸벅 인사하며 혼돈에게 카드를 내밀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유현이도 눈치껏 인사하고 예림이와 다른 사람들도 새해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저어, 안녕하세요.
예림이 숄에 숨어 있던 결이가 머리를 살짝 내밀었다. 이제는 슬슬 신입에게 보여 봐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함께 온 것이었다. 인간 어린애로 변한 결이가 어린 혼돈에게 공손히 인사했다.
“한결이에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할아버지.”
“제 아들입니다.”
몬스터로 태어났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혼돈이 결이를 가만히 바라보더니 손을 뻗어 복슬복슬한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있는 줄이야 알고 있었다.”
하기야 결이가 아직 내게 속해 있을 때부터 눈치채고 계셨을 테니까.
“루가 폐야가 일 친 거 수습해 준 게 결이였잖아. 신입 네가 느낀 힘은 그때 썼으니까.”
다행히 둘 다 결이에게 별다른 문제를 느끼지 않는 모양이었다. 긴장했던 결이의 얼굴에 미소가 번져 나갔다.
“결이가 일단은 몬스터잖아. 세상이 다시 변하거나 하면 영향을 받지는 않을까?”
[걱정 마세요. 몬스터는 테이밍 된 순간부터 허니 세상의 일원으로 인정받게 되니까요. 이 아이도 허니에게 속해 있었으니 던전과 몬스터가 사라진다더라도 아무 문제 없어요!]그렇다니 안심이었다. 그럼 피스와 다른 사육소 몬스터들도 세상이 어떻게 바뀌든 괜찮겠구나. 만약을 대비해서 마석을 충분히 모아 놓아야겠다.
[그리고 허니.]신입이 무언가 결심한 듯 내게 말했다.
[제게 선물을 주세요.]“응?”
[제가 충분한 가치를 느낄 만한 것을 받으면 나중에 허니를 도와주기 쉬워지니까요. 대가를 주는 셈이니 제 부담도 덜해지고요.]“그래? 그럼 당연히 줘야지!”
줘야 하는데… 내 인벤토리를 열어 보았다. 신입이 가치를 느낄 만한 것이라니, 쟤 초월자잖아.
‘S급은 물론이고 SS급 아이템도 잡템으로 느껴질 텐데.’
서랍… 은 너무 아깝고. 그렇다고 은혜를 줄 수도 없고. 충분한 가치라, 가치. 아무리 봐도 줄 만한 게 없었다.
카드? 그건 그냥 크리스마스카드… 아. 신입에게 없는 것. 신입이 가지지 못한 것. 신입과의 일들을, 그간의 행동을 반응을 떠올려 보았다.
“신입 너 잠깐만 눈 감고 있어 봐.”
[네?]“원래 선물 받으려면 그래야 해.”
신입이 빙그르르 돌았다.
[아무것도 안 보고 있어요!]“그래, 그래. 착하다.”
한쪽에 놓인 테이블로 다가가 그림을 펼쳐놓았다. 그러곤 펜을 꺼내 들었다.
“어? 이거-.”
“쉿, 예림아.”
보자, 신입이… 배구공으로 그리긴 좀 그렇고. 예전에 본 신입의 아마도 원래 모습을 떠올렸다. 코카스파니엘과 비슷한 머리칼과 귀에 아래를 향한 꽃송이 같던 옷. 음…….
“아저씨도 예술적 재능은 별로 없는 거 같아요.”
너무하네. 그래도 알아볼 만하게 그려진 거 같은데. 솔직히 이건 명우 실력이 너무 뛰어난 탓도 컸다. 이왕 그리는 김에 결이도 요정용 모습으로 넣었다. 꽤 그럴싸해서 마수 모습의 꼬마와 흑룡도 넣고 그리고…….
“…혹시 노아 오빠랑 리에트 언니예요?”
예림이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내게 속삭였다.
“…아니, 이건 송 실장님이야. 머리스타일이 좀 비슷하잖아.”
“아… 이건 세성 아저씨 맞죠? 사슬이랑 코트.”
얼굴로는 못 알아보는구나. 하긴 나도 못 알아보겠다. 그래도 어떻게든 이 사람, 저 사람, 어르신까지 그려 넣었다. 음, 처참하다. 아니 그렇게까지 못 그린 건 아닌데 명우가 준 사진급이라…….
“그동안 정말 많이 변했네.”
엉망이긴 해도 그림을 보자 감회가 새로워졌다. 명우가 그림을 그려 줬던, 노아와 리에트가 싸운 그 날에도 회귀 전과는 많은 것이 변해있었다. 그리고 또다시 많이 달라졌다.
부끄러워서 그림을 돌돌 말아 다시 신입에게 갔다.
“내가 바라는 건 별거 없어.”
그림을 신입에게 건네며 말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다 같이 즐겁게,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어.”
촉수가 받아 든 그림을 펼쳤다. 특징이 확실하니까 자기 모습은 알아 볼 수 있겠지.
“그리고 신입 너도, 지금은 그중 하나였으면 싶고. 처음에는 솔직히 미덥지도 않고 꺼림칙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그래.”
애가 착하긴 하잖아. 배구공 모습도 정 많이 들었고 원래 모습도 귀여웠지. 도움을 받기 위해서만이 아닌 솔직한 심정이었다. 신입이 한참을 가만히 그림을 들여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저도요.]배구공의 모습이 변했다. 다른 사람들은 반응이 없는 것으로 보아 내 눈에만 그렇게 보이는 듯했다.
[저는 세상을 구하고 싶었고 구해 왔어요.]동그랗고 빨간 눈이 나를 올려다봐왔다. 촉수가 아닌 작은 손이 그림을 펼쳐 잡고 있었다.
[그게 옳은 일이니까요. 제가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요.]“좋은 일이긴 하잖아.”
[네. 하지만 허니, 저는 단 한 번도 그 세상에 사는 사람의 행복을 바라본 적은 없었어요.]그저 짊어진 당연한 의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며 신입이 말했다.
[허니는 행복했으면 좋겠어요.]“고마워.”
신입이 수줍게 웃었다. 그림이 사라지고 다시 배구공이 통통 튀었다.
[곧 새로운 효도중독자가 도착할 거예요. 이미 채터박스가 남긴 이들에게 손을 뻗었을지도 모르고요!]“하긴 그냥 버려 두긴 아깝겠지. 최대한 빨리 정리해야겠다.”
특히 내게 원한을 가진 초화운이 걱정이었다. 최석원만 해도 신입의 도움을 받아 겨우 처리했는데 채터박스의 힘을 얻은 초화운이 새로운 초월자까지 등에 업게 되면 정말 위험해지겠지.
[저희는 허니를 지킬 테지만 그래도 조심하세요, 허니!]“응. 그리고 혹시 초승달의 움직임에 대해서 알고 있어?”
[완전히 깨어났다고는 들었어요.]“그게… 초승달이 내게 제안을 해 왔어. 나는 거절했지만.”
성현제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신입을 못 믿는 건 아니지만, 오히려 신입이 나를 좋아하고 있기에 더욱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성현제만 내놓으면 우리 세상이 안전해진다니까. 심지어 근원도 완벽히 막을 수 있다고 하고. 그러니 날 지키겠다면서 성현제를 초승달에게 넘겨줘 버릴 확률이 없지는 않았다. 내 말에 신입이 높이 튀어 올랐다.
[그럴 수가! 무슨 제안을요?]“지금은 말할 수 없어.”
[계약인가요? 제가 한번 알아볼게요. 조용히요!]“부탁할게.”
용건을 마치고 나가려고 하는데 어린 혼돈이 내게 말했다.
“흑룡 이름은 속성과 반대되게 지어라. 그래야 성질이 좀 죽을 거다.”
“네? 어, 지금은 그렇게까지 성격 나빠 보이진 않던데요.”
“첫째 네가 또 아끼고 돌 게 뻔해서 그래. 네 세상에 머물게 할 거라면 그 성질 죽여 놓는 게 좋아. 본디 남과 어울리기 힘든 성질이니. 혼자 살아가게 놓아 줄 것이라면 아무래도 상관없고.”
…타고난 성질을 탓하고 싶진 않았지만 꼬마를 아끼던 흑룡의 모습이 떠올랐다. 함께 살 거라면 어르신의 말을 따르는 게 좋을까. 어차피 이름을 받아들이는 건 흑룡이니까 물어보면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