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642
640화 임시 시스템 관리자 (3)
툭. 내 두 발이 바닥에 닿았다. 무사히 풀려났지만 그걸 마냥 기뻐할 수도 없었다. 주위의 크고 작은 뱀들이 대가리를 치켜들며 금방이라도 덤벼들 듯 나를 쳐다봐온다. 작은 뱀이라면 그래도 괜찮겠지만 나를 삼킬 만큼 커다란 뱀도 저만치 멀리서 도사리고 있었다. 뱀 뱃속에 들어가 질식사하는 것은 은혜도 막아 줄 수 없다.
“조그만 것아.”
초월자가 분명할 붉은 뱀이 손을 들어 턱을 괴었다. 손목과 손가락에 달린 금속 장식들이 찰랑거린다. 길고 날카로운 손톱 또한 보석처럼 광택이 돌았다. 상체는 금빛 어깨갑옷 같은 것만 걸쳐 단단한 배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포유류라면 배꼽이 있을 부분부터 붉은 비늘이 드문드문 덮이기 시작하며 뱀의 하체로 이어졌다. 허리에도 서너 겹의 금속과 보석 줄을 두르고 그 줄에 속이 살짝 비칠 정도로 얇은 천을 휘휘 매달았다.
마치 이국적인 신을 떠올리게 하는 모습이었다. 인간과 흡사한 상반신은 뛰어난 미남이었으나, 뱀의 몸뚱이 또한 아름답다 해도 좋을 빛을 머금고 있었으나 기이하게 소름이 돋았다. 무심코 마른침을 삼키며 붉은 뱀을 올려다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심장이 다 덜컹거렸으나 시선을 피하지는 않고 버텼다. 말 그대로 뱀 앞에 선 생쥐가 된 기분이었다.
“네가 패륜아들의 대리자인가.”
“…정황을 듣지 못해서 대답을 할 수가 없습니다.”
일단은 공손하게 말했다. 나더러 패륜아의 대리자라고 묻는 걸 보니 효도중독자 쪽 초월자인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괜히 성질 긁어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게 만들 필요는 없었다.
“저는 단지 시스템의 관리자 권한을 받겠냐는 메시지를 승낙했을 뿐입니다.”
어떻게 돌아가는 판인지 진짜로 모른다. 뱀의 눈이 가늘어졌다.
“마법사를 죽인 인간이라기에 약간은 기대를 했건만.”
“…마법사라면.”
“기 오스 사누스. 한때 인연이 있었다.”
설마 또 복수 어쩌고 하는 건 아니겠지. 다행히 그런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운이 따라 주었을 뿐입니다. 사실상 스스로 목을 조인 셈이기도 하고요.”
“마법사가 초월자의 격을 포기하였다는 말은 들었다. 어리석게도.”
낮은 목소리는 감정이 거의 담겨 있지 않은 듯 건조했다. 나쁘지 않은 반응이었다. 만약 나를 시시하게 여긴다면 효도중독자로서의 일도 대충 하고 말지 않을까. 눈치를 살피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세상을 꼭 망하게 만들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많기도 많다던데 그중 하나쯤은 지나쳐도 별문제 없을 거고요.”
몇백 개도 더 된다면서.
“효도중독자 소속이실 듯한데, 열심히 효도하실 것 같지는 않아 보이신다고 할까요…….”
대충대충 적당히 삽시다. 내 말에 붉은 뱀이 입술 끝을 약간 올렸다.
“나는 근원을 창조주로서 경배하지 않는다. 보존하여 탐구해야 할 대상으로도 여기지 않는다.”
디아르마와도 루가 폐야와도 달랐다. 그렇다면 혹시, 기대를 품자마자.
“그러나 나는 근원의 포식을 따른다.”
서늘한 금속성 목소리가 이어졌다.
“모든 생명은 먹고 먹힌다. 약자는 포식 당하고 강자는 삼킨다. 때로는 약자가 강자의 목덜미를 물어 역전되기도 한다. 그것은 당연한 생명체의 삶이다.”
검은색과 금색의 동공이 나를 가소롭다는 듯이 내려다보았다.
“근원 또한 생명의 흐름에 함께하니, 나는 마땅히 가장 거대한 포식에 순응한다.”
“…그래서, 순순히 잡아먹히라고?”
“싸워라.”
붉은 뱀이 몸을 일으켰다. 금가루를 뿌린 보석 같은 비늘들이 일제히 서며 차르르 맑은 소리를 낸다.
“포식자의 위협 아래 사슴은 발굽을 단단히 하며 피식자를 쫓기 위해 늑대는 송곳니를 기른다. 안전한 우리 속에 주어지는 먹이만을 받아먹는다면 아무런 변화도 발전도 없으니.”
뱀의 독니가 드러났다. 그가 미소 지었다.
“작은 것아, 나는 땅을 기는 포식의 왕이요, 녹여 삼키는 붉은 독이다.”
“……!”
돌연 독기가 확 덮쳐들었다. 붉은 뱀이 억누르고 있던 지독한 독이 고개를 치켜들기 무섭게 주위를 배회하던 뱀들이 우르르 물러난다. 하지만 내겐 도망칠 기회가 없었다.
“…쿨럭!”
독 저항 L급. 그것이 없었다면 지독한 독기에 말 그대로 녹아 사라졌을 것이다. 눈앞이 어지럽게 일그러졌다. 기침과 함께 피가 튀어나왔다. 어느새 두 무릎이 구부러지고 손이 바닥을 짚고 있었다.
즉사는 독 저항 덕에 면했지만 저항력이 다 막지 못한 독성이 전신을 파고들었다. 피부는 차갑게 식고 속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독한 감기에 걸린 것처럼 목이 바싹 말라붙었다.
“나를, 흐욱, 죽여서는…….”
“약한 소리를 지껄이는 것치곤 잘 버티는구나.”
붉은 뱀이 다시 자리에 앉는 것이 흐릿한 시야 속으로 비춰들었다. 다시 콜록 피를 토했다. 해독제가, 인벤토리에. 등급은 낮지만 해독기가 더해지면 그래도…….
“패륜아들의 제안은 일단 받아들였다만, 싸움을 시작하기 전부터 피하려 드는 종자는 눈길을 둘 가치가 없다.”
내가 잘못 판단을 했구나. 아니 그래도 이렇게 제멋대로─! 뱀의 꼬리가 다시 내 몸을 감아 들어올렸다.
“여기까지 기어와라. 네 녀석의 발로 도착한다면 다시 생각해 보마.”
그대로 휙─ 높이 던져졌다. 독기와 멀어지자 독 저항이 빠르게 몸을 회복시켰다. 손상된 속까지 치료된 건 아니었지만 그럭저럭 맑아진 시야 속에.
“빌어먹을 뱀 새끼야!”
우글거리는 색색의 뱀 떼가 들어왔다. 저 미친놈이! 쿵! 뱀들이 스륵거리며 떨어져 구르는 나를 피했다. 전신이 욱신거렸지만 재빨리 몸을 일으켰다. 일단 포션, 어르신이 쓰지 말랬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다. 서둘러 포션 부터 꺼내드는데.
– 시익.
– 쉿!.
날선 소리들이 귀를 찔러왔다. 여기저기 빳빳하게 치켜들린 뱀 대가리가 나를 노리며 기웃거린다. 급히 뚜껑을 열어 포션을 입에 붓기 무섭게.
쇅─!
팔뚝만 한 뱀 한 마리가 내 팔을 향해 독니를 드러냈다. 피하는 대신 팔을 내어주고 물고 늘어진 뱀을 잡아 뜯어 던졌다. 뱀 한 마리를 떼 내기 무섭게 또 다른 뱀이 덤벼들었다. 젠장, 그나마 이놈들 독은 통하지 않지만!
‘삼켜지면 끝이지.’
아직 저만치 뒤에서 어슬렁거리는 거대한 뱀들. 기둥만 한 굵기에서부터 코끼리도 가볍게 삼킬 만한 덩치의 괴물도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반면에 포식의 왕의 옥좌는 죽어라 뛰어도 오 분은 걸릴 거리였다. 힘도 좋으시지 멀리도 던졌네.
뱀을 너무 자극하지 않도록 검을 검집째 휘두르며 옥좌 쪽으로 두어 발 물러났다. 하지만 작은 뱀도 끝도 없고 좀 더 큰 뱀들까지 슬금슬금 다가오기 시작했다. 뭔가 방법이, 아.
“잠깐만, 좀!”
장비를 꺼내 착용하려 했지만 뱀 떼는 그럴 틈을 주질 않았다. 한 마리 쳐내면 세 마리가 덤벼드는 판국이었다. 이대로는─
– 삐익!
그때 돌연 새소리가 들려왔다.
– 뱀! 삣!
은혜였다. 파랑새가 나타나자 뱀들의 시선이 우르르 그쪽으로 쏠렸다. 새와 뱀. 천적 중의 천적인데다 작은 뱀들도 딱 먹기 좋게 삼킬 만한 크기. 은혜가 포르르 날아오르기 무섭게 뱀들이 입을 쫙쫙 벌린다.
“조심해, 은혜야!”
– 삑!
은혜가 힘차게 대답하고 뱀들이 한눈을 파는 사이 얼른 장비를 꺼내 착용했다. 마지막으로 장갑을 착용함과 동시에 그그그그 묵직한 소리와 함께 거대 뱀들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작은 뱀들이 길을 내어주듯 갈라지고 은혜가 내게 돌아왔다.
– 삐익! 뱀!
“괜찮아.”
새와 뱀은 먹고 먹히지. 그리고 뱀의 천적 중 하나는.
“고양이 아니냐.”
물론 작은 뱀에 한해서고 뱀이 크면 되레 잡아먹히기도 하지만, 그럼 큰 고양이면 되는 거잖아?
– 섀애액.
수십 미터쯤 됨직한 뱀이 입을 쩍 벌렸다. 인간 하나쯤 간식거리로 소화시킬 그 모습을 앞두고 델로우즈 스킬을 썼다. 내 눈높이가 순식간에 높아지며 뱀들이 조그맣게 줄어들었다.
– 시익!
– 쉿! 식!
왕뱀이 움찔 입을 다물었다. 뱀 떼가 썰물처럼 물러난다. 드래곤을 잡아먹은 고양이, 델로우즈.
– 캬아아아!
덩치만 큰 허수아비지만 쟤들이 알게 뭐냐. 갑자기 나타난 초월자의 포효에 뱀들이 바싹 굳었다. 그 틈을 타 옥좌를 향해 달렸다. 덩치가 큰 만큼 순식간에 도착─
스스스슥!
가장 뒤에서 웅크리고 있던 칠흑색 거대 뱀이 나를 향해 빠르게 덤벼들었다. 놈의 머리 위의 비늘이 치솟더니 열두 개의 뿔처럼 날카롭게 변한다. 내 능력치로 피하는 건 불가능하다. 급히 옥좌의 방향을 확인한 뒤 몸을 틀었다. 그 직후.
쿵-!
검은 뱀이 나를 강하게 들이받았다. 몸이 붕 떠오름과 동시에 스킬을 풀었다. 작아진 몸뚱이는 가볍게 허공 높이 떠 옥좌를 향해 날아가고, 그 위를 지나치기 직전.
탕!
총을 꺼내 천장을 겨누어 쏘았다. 반동으로 내 몸이 비행을 멈추고 아래로 뚝 떨어진다. 살쾡이 세트의 힘을 빌어 정확히 옥좌 앞에 가볍게 탁, 착지했다. 붉은 뱀을 향해 두 팔을 벌려 인사해 보였다.
“도착했습니다, 나으리. 비록 땅을 기지는 않았지만.”
뱀과는 다르게 두 다리 멀쩡히 달려 있어서 말이야. 포식의 왕의 두 눈이 느릿이 휘어졌다. 내 점수가 나쁘진 않은 모양이었다.
“그럼 이제 견습 관리자를 위한 상황 설명을 부탁드리지요.”
그래도 붉은 뱀이 초월자 중 최악의 상대는 아니었다. 우리 쪽에 별다른 감정은 없는 듯하고 승패가 나면 깔끔하게 받아들일 성격인 것 같으니. 이기기 쉽지 않다는 게 제일 큰 문제였지만.
“좋다. 네겐 들을 자격이 있는 듯하니.”
포식의 왕이 비스듬히 옥좌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말을 이었다.
“패륜아들은 네 세계에 더 이상의 무리한 간섭을 막기 위해 초월자가 아닌 각성자를 대리인으로 세우길 원했다.”
…그러니까, 초월자가 너무 나댔으니 이젠 좀 물러나서 우리 세상 사람들에게 맡기자고 했다는 건가.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진작 그러지.
“그리하여 패륜아 측에서 너를 임시 시스템 관리자로 발탁하였다.”
“그럼 효도중독자 측에서도 우리 세상의 각성자에게 관리자 권한을 주었겠군요.”
“그렇다. 원래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네가 채터박스의 유산을 이어받음으로서 저울의 평형을 위해 또 한 명의 비초월자 관리자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만약 제가 상속을 거부했다면요?”
“직접 시스템을 다루는 대리자가 아닌 조언자가 되었을 것이다.”
시스템을 다루는 초월자에게 이래라 저래라 참견할 수 있는 위치쯤 될까. 신입 상대라면 그것도 괜찮았을지도. 하지만 역시 시스템을 건드릴 기회를 놓치는 건 아까웠다. 효도중독자 쪽 대리자라면 그 예언자이려나.
“네 세상의 각성자를 다섯 명 고르거라.”
“다섯 명이요?”
“체스 말이 필요하니. 우선은 다섯.”
음… 혹시 내가 채터박스처럼 시스템을 이용해 승부를 낼 무대를 마련하는 건가. 일단 우리는, 유현이는 당연히 넣고 예림이는 어쩌지. 성현제와 송 실장님, 현아 씨, 노아 씨면 예림이를 제외하고도 다섯 명인데.
‘이번에도 사람들끼리 싸우는 것에다 방송용이 아니니 더 위험할지도 모르지.’
역시 예림이는 제외하는 편이 낫겠다. 애들과 함께 집에 가 있으라 하면, 화내겠지. 그래도 어쩔 수 없잖니.
“다 정했습니다.”
“시스템을 통해 메시지를 보내어 승낙을 받아라.”
“…예?”
시, 시스템을… 어……. 시스템, 음, 상태창 열듯 열려고 하면……. 생소한 마력의 움직임이 느껴지더니 눈앞에 창이 나타났다.
[시스템 임시 관리자 – 한유진]창을 손끝으로 건드리자 새로운 문자가 나타났다.
[수습생을 위한 음성 인식 모드입니다.]“어, 다섯 명에게 메시지를 보내야 하는데. 내 세상 각성자들에게 말이야.”
[구역을 선택해 주십시오.]주르륵 기호와 번호가 나타났다. 아니, 야, 메뉴얼! 메뉴얼 없냐!
“프, 프랑스! 프랑스인데!”
[알런 베이어알런 린지]
알파벳순 A부터 이름이 쭉 뜨기 시작했다. 와, 각성자 참 많네…….
“프랑스에 있는 한유현!”
[한유현]“그래, 그리고…….”
붉은 뱀을 흘끔 쳐다보았다. 그가 알려 주었다.
“임시 시스템 관리자 한유진의 소속 각성자 동의 메시지를 보내도록.”
“예. 유현이, 한유현에게 메시지 발송해 줘.”
내 소속이 되겠느냐는 메시지를 발송했다. 의심하면 어쩌지, 싶었는데 이내.
[각성자 한유현 – 동의]수락했다는 내용이 창에 떴다. 잘했어, 유현아! 다음으로 성현제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꽤 오래 답이 없더니.
“…어?”
성현제가 거부했다. …뭐지. 내쫓았다고 단단히 화가 나기라도 한 걸까. 아니면 초월자들이 수작 부리는 거라고 생각했나.
“…이거 혹시 나중에 추가 수정 가능할까요?”
“다섯은 최소 숫자다.”
그렇다면 일단 성현제는 넘기고 송 실장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각성자 송태원 – 부적합]뭐?! 아니 송 실장님이 왜? 설마 지닌 힘 때문인가? 당황하며 현아 씨에게 메시지를 보냈지만.
[각성자 문현아 – 부적합]또다시 부적합이 떴다. 아니 저기요… 이거 오류 난 거 아니냐. 이러면 몇 명 안 남는데……. 예림이에게도 보내야 하나.
[각성자 노아 루히르 – 동의]다행히 노아 씨는 무사히 내 소속이 되었다. 그래도 세 명이나 남았는데……. 예림이와 성한 씨 중 한 명은 해연에 있어야 하니까.
[각성자 박예림 – 동의]고민 끝에 예림이를 선택했다. 성현제한테 직접 가서 설득해 교체해도 될 테니까. 그리고 남은 두 명은, 한 명은 리에트면 되겠지. 다행히 리에트도 바로 동의해 주었다. 피스는 아무래도 말이 잘 통하지 않으니까, 음. 윤윤은 싸우는 걸 못 하고 명우도 당연히 안 되고 에블린 씨는… 거절할 것 같고 그 밖에도, 으으음… 가능한 사람이.
‘황림이냐 시시오냐.’
선택지 이것뿐이야? 진짜로? 그래도 둘 다 스킬은 괜찮았다. 황림 복제도 유용하게 쓸 수 있을 거고 시시오도 단체전에서 유리한 스킬이고……. 일단 최근에 자주 본 황림을.
[각성자 황림 – 부적합]“아니 왜들 이래!”
젠장, 그럼!
[각성자 시시오 – 동의]…괜찮아, 교체하면 돼. 송 실장님이나 현아 씨가 왜 부적합인지 항의하고 두 사람 중 한 명을 데리고 오면 된다.
“끝났습니다.”
“저쪽에서도 먼저 끝낸 모양이로군.”
“예? 어, 근데 전 패륜아 측 대리자가 아닙니까?”
“그렇기에 바꾼 것이다.”
포식의 왕이 몸을 일으켰다. 주위가 순식간에 어두워지며 공간 자체가 뒤바뀌고.
쏴아아─!
파도가 쳤다. 어마어마한 높이의 물결이 치솟는 앞을 원래의 크기로 돌아 간 붉은 뱀이 가로막는다. 포식의 왕이 크게 웃으며 파도를 손으로 갈랐다.
[푸른 물고기!] [붉은 뱀]어둠 속에서 인어여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새파란 비늘과 새빨간 비늘이 번뜩인다.
[그 배를 꿰뚫은 뒤로 처음 보는군.] [뱀답게 잘려나간 허리가 멀쩡히도 붙었어.]전신을 짓누르는 두 개의 기세가 팽팽하게 부딪쳤다. 나를 보호하는 힘이 아니었다면 제정신을 유지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두 초월자가 서로를 마주보며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밝아진 공간 맞은편에.
“…성현제?”
낯익은 얼굴이 서 있었다. 한쪽 눈과 한쪽 팔을 잃은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