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726
725화 상담 (2)
모든 지성체에게는 근원의 조각이 깃들어 있다. 그것은 말 그대로 사람의 근원일 것이다. 초월자들조차 명확히 파헤치지 못한 존재의 근본. 아마도 그곳에 문제가 생겼다.
“그러니까… 좀 많이 중요한 곳에 금이 간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정확하게 설명하기는 어려웠다. 사실 확신도 없었다. 시스템을 끊어내고 모든 감각을 잃었을 때, 포식의 왕이 준 보석을 마시고 회복했음에도 아직 남아 있는 작은 흠집을 느꼈다. 내 존재자체가 삐걱거리는 감각이었지만, 어쩌면 내 착각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다행이겠지만 불안했다.
“이거 부서지면 진짜 끝이겠네 하는 직감 같은 거?”
“직감이냐.”
내가 코웃음을 쳤다. 아니 황당하게 들릴 수 있겠다만 그게 말이야, 걱정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
“나 시스템 잘라냈다.”
“뭐?”
쿵. 인벤토리에서 신살 창을 꺼내 바닥에 내리찍어 세웠다. 의식 속이지만 원래 모습 그대로 둔탁한 백색 빛을 흘리고 있다. 힘을 소진했다 해도 심상찮은 기운을 느꼈는지 내가 떨떠름한 표정을 했다.
“…뭔데 이게.”
“초월자 잡는 창.”
내가 미심쩍어하며 창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그리곤 미간을 깊게 좁혔다.
“미친. 진짜잖아. 근데 나는 못 쓰네.”
“그래?”
“너랑 나도 이젠 많이 갈라졌으니까. 그래서 그때 이후론 못 볼 줄 알았고.”
“하긴 다른 사람이나 마찬가지지. 한유진 2는 못 쓴다는 건가.”
“내가 왜 2냐. 시기상으론 1이지.”
“야, 내가 더 오래 살았다. 그러니 첫째지.”
“2 맞네. 더 큰 숫자. 늙어서 좋겠다.”
“몸뚱이는 스물다섯, 해 지났으니 스물여섯이다!”
“오냐, 형님이라고 불러 봐라. 세배도 하고.”
한마디도 지지 않는 나 새끼가 얄밉기 그지없었다. 내가 저렇게나 재수 없는 인간이었던가.
“이걸로 시스템을 부쉈다고.”
“초월자도 하나 잡았지.”
내 것보다 더 단단하게 굳은살 박힌 손이 창을 만지작거렸다. 우리 둘 다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 터였다. 모든 일에는 대가가 따른다.
“시스템 보상으로 받은 창이 있었다 해도 그걸 휘두르는 건 나니까. 실제로 거의 죽을 뻔했거든.”
“아주 막사는구나.”
“낯짝에 떨어진 침이나 닦아라.”
“스물아홉 살 때까진 기껏해야 상급 헌터한테나 덤벼들었거든?”
“F급한테 초월자나 S급이나 한 방 컷인 건 똑같지.”
물론 나가떨어지는 건 나다. 내가 그래서 간이 부은 건가 하는 눈빛을 보내왔다. 비슷한 시선을 던져주며 상황을 대충 설명해 주었다.
“무사히 집에 돌아가서 평화롭게 살았습니다, 할 수 있으면 괜찮겠지만 솔직히 아닐 거 같거든.”
초월자들이 가만히 있을 리도 없거니와 내겐 아직 남은 일이 있었다.
“지금까지도 아슬아슬했는데 이제는 진짜 바닥까지 긁어내게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
어린 혼돈은 내게 나보다 격이 높은 존재, 초월자에게 종속되어 수명을 늘릴 수 있다고 알려 주었다. 하지만 내 근본 자체가 부서진다면 그 방법도 소용이 없을 듯했다. 초월자가 아닌 그 위의 근원쯤은 되어야 해결책이 있지 않을까. 의사소통도 불가능한 존재지만.
“어쨌든 감이잖아.”
“그렇지.”
“어쨌든 포기할 생각은 없고.”
“그렇지.”
하얀 창이 사라졌다. 의자를 만들어내 걸터앉았다. 물이 살랑살랑 밀려들어온다. 부드럽게 발끝을 휘감아 쓸곤 스르르 물러난다.
“사실 우리가, 우리 사는 데는 크게 집착이 없었잖냐.”
“난 아닌데.”
“뭐? 네가 난데 뭔 소리야.”
눈앞의 나 또한 의자에 앉아 한쪽 발목을 무릎 위로 걸쳤다.
“네 덕이지.”
“내 덕이라고?”
“그래. 어떤 짜증 나는 새끼가 내 인생 대신 살아 주지 않겠니 헛소리를 해댄 덕에 내 인생은 내 거다 미친놈아 싶어졌거든.”
악몽 던전에서의 일을 말하는 거구나. 내가 그때 짜증 나게 굴긴 했지. 내가 인상을 확 구겼다.
“진짜 기분 더럽더라. 기껏 동생이 찾아와 줬나 싶었더니 나는 던전 속 몬스터라지 않나 진짜라는 새끼는 내가 내 동생을 죽게 만들었는데 나도 오래 못 살 거야 징징거리고 있질 않나. 슬슬 눈치 보며 날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하는 사람들도 거슬렸지만 역시 제일 재수 없었던 건!”
빠득 이를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내가 참…….
“세성 길드장 개새끼!”
“…응?”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열 받아. 자기가 뭐라고 날 거두겠다는 거야? 시바 진짜 취급하는 놈은 따로 있는데 나도 한유진은 한유진이니까 남아도는 거 주워 가서 재미 보겠다는 티를 감추지도 않고! 감추려는 노력을 할 가치도 없다 이거지!”
“그, 음.”
“가짜 취급 잔뜩 받고 나니까 도리어 더러워서라도 난 내가 챙겨야겠다 싶어지더라. 성현제 놈은 아직 살아 있냐.”
“어, 뭐. 그래도 전보다 성격 많이 좋아지긴 했는데. 요샌 좀 착해.”
“깨어나거든 나 대신 그 창으로 찔러 줘. 초월자도 잡는 창이라며.”
“…발 정도는 밟아 볼게. 기억한다면 말이다.”
“희미한 잔상 정도는 남겠지. 그때도 느꼈는데 너 그 인간이랑 꽤 친하다?”
“대충 친구 정도는 되는 사이라.”
몇 번째인지 모를 이 미친놈, 하는 눈빛이 뺨을 찔러댔다. 아니 생각보다 그렇게까지 나쁜 인간은… 더럽게 까다롭고 얼굴값 하는 성질머리긴 하지만……. 음. 그냥 내가 이상하다고 치자. 하지만 송 실장님 같은 분도 성현제와 나름 친구 비슷하게 지내고 있단 말이야. 나만 이상한 게 아니라고.
“그래서 넌.”
말이 툭 던져졌다. 나는.
“살아야지 생각은 하고 있었어. 정확히는 애들 때문에라도 죽으면 안 되지 정도였지. 그러다가 조금씩 즐거워졌다, 라고 해야 하나. 엉망진창으로 바닥을 기어도 말이야, 살아서 돌아가기만 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거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의 내 모습. 한 발 물러서서 바라보던 행복한 광경에 이제는 나도 넣을 수 있게 되었다.
“근데 내가 살려고 하면. 몸을 사리면 그걸로 끝이잖냐. 죽고 싶은 건 아니야. 살고 싶어. 다만.”
“아무도 잃지 않고.”
“그게 문제지! 내 욕심이 더 커서. 그리고, 그리고…….”
발을 적시는 물결을 내려다보았다. 고민하고 거듭 생각해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물러설 수 없으니 나아가는 수밖에.
“다 끝난 후에 나도 있었으면 좋겠다.”
“약한 소리는.”
내가 코웃음을 쳤다. 은근 열 받네. 자기는 평화롭다 이건가. 고작해야 동생에게 목숨을 위협받을 뿐이니까.
“계속 버텨. 그럼 잘될 거야.”
“남 일이라고 쉽게 말하긴.”
“남 일까진 아니거든. 우리한테도 나름 중요해.”
“뭔 소리야? 일단은 동일 존재였어서?”
내가 잘못되면 저 녀석에게도 타격이 가나? 녀석이 일어났다. 그 옆으로 커다란 침대가 나타났다. 놈의 손이 침대를 탕탕 두들겼다.
“더 자라.”
“자면 안 된다면서.”
“보통은 그렇고 넌 깨워 줄 사람이 있잖아. 여기서 자면 효율은 좋을걸. 그래도 오래는 위험하고 한 시간쯤 뒤에 물에 빠뜨려 줄게.”
망설이다가 침대로 가 드러누웠다. 아직 피곤하긴 피곤했다. 눕자마자 절로 눈이 감겨왔다.
“네가 포기하지 않으면 넌 안 죽어.”
“그럼 좋긴 하겠다만. 태생 S급까지도 안 바라고 S급, 아니면 A급만 되었어도 이런 걱정은 안 했을 텐데. 내구성이 다르잖아.”
내 몸뚱이로 감당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었다.
“지금이라도 뭔가 특별한 힘 같은 거 안 생기나.”
“그런 거 없다. 너나 나나 그냥 F급이야.”
“넌 던전 버프로 등급 올랐잖아. 그래 봐야 하급이지만.”
그렇게나 많은 일들이 있었음에도 타고난 몸뚱이만큼은 그대로였다. 내 스탯은 변함없이 F급에 머물러 있었다. 한 등급 정도는 올려 줄 만도 하지 않나. 시스템이 사라져야 한계도 사라진다고 했었지만 그래도 말이야.
“그래도 열심히 하고 있잖아. 힘내라.”
“위로하는 척 키워드 적용하지 마라.”
“어차피 다 아는 사인데 뭘. 등록되면 생사 확인하긴 편하잖아. 근데 안 되네.”
“너 죽으면 느껴질 거 같긴 하다만.”
의식이 가물가물해졌다. 내 머리를 쓰다듬는 손을 힘겹게 쳐냈다.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너무 걱정하지 마. 잘될 거야. 너한테는-.”
나한테는, 뭐. 걱정이 안 될 리가 있나……. 눈을 감았다. 까맣게 잠겨드는 듯하다가.
“푸핫!”
“형!”
허우적거리는 나를 유현이가 붙잡아 진정시켰다. 숨이 막힌 듯 헐떡거렸다.
“무, 물이…….”
물에 빠졌던 거 같은데. 꿈인가. 아, 예림이!
“예림이는!”
“밖에 있어. 무사해.”
유현이가 나를 부축해 창가로 데려다주었다. 유리 너머로 모여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꼬치에 꿴 커다란 물고기를 든 예림이와 불을 조절하는 송 실장님. 명우와 마리가 함께 죽 같은 걸 끓이고 있고 리에트는 잡아 온 사냥감을 손질하고 있었다. 노아는 능숙하게 고기를 썰고 사미르 역시 익숙하게 채소를 다듬었다. 의자에 앉아 있는 어르신 옆에 뻔뻔하게 서 있는 성현제와 그에게 뭐라고 말을 거는 문현아도 보인다. 거리가 멀어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즐거운 분위기였다.
– 끄우웅.
피스가 걱정 어린 소리를 내며 내 주위를 빙그르 돌았다. 괜찮다며 웃어 보였다.
“물난리를 겪어서인가 물에 빠지는 꿈을 꾼 모양이야.”
“몸은 어때?”
“멀쩡해. 푹 자서 그런가 꽤 가뿐해졌어.”
작게 하품을 했다. 빠졌다, 라기보다는 누가 날 빠뜨린 거 같았는데. 물귀신이라도 나왔나. 잘 기억은 안 나지만 독한 놈이었던 것 같았다. 허우적거리는데도 연거푸 내 머리를 물에 처박아서 나도 놈의 머리채를 붙잡고… 평범한 악몽이네.
“아직 한 시간밖에 안 지났어. 더 자도 돼.”
한 시간이라니, 그럼 조금만 더 잘까. 다시 침대에 눕자 피스가 올라와 지키듯 내 머리맡에 몸을 말았다.
“유현이 너도 눈 좀 붙여.”
물귀신 나오면 내쫓아도 주고. 다시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이번에는 꿈도 꾸지 않았다.
* * *
“유명우님은 천재예요!”
마리가 내 앞에 죽 그릇을 내려놓으며 외쳤다.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죽이랍니다!”
명우가 약간 지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봐왔다. 마리 씨가 좀 많이 활달하긴 하지. 감사 인사를 하곤 한 숟갈 떴다. 딱 알맞게 따스한 죽이 입안에 머금어졌다. 밥알이 혀 위를 살짝 구르는가 싶더니 부드럽게 녹아내렸다. 고소한 향과 함께 의식할 틈도 없이 그냥 꼴깍 삼켜진다. 그리곤 어느새 두 번째 숟갈을 뜨고 있었다. 와, 진짜 맛있어. 자극적인 맛없이 살짝 간간할 뿐인데도 물리지 않고 끝없이 들어갔다.
“이상한 곳은 없고.”
“없어요. 포식의 왕이 몸에 좋은 거라면서 자기 피로 보석을 만들어 줬거든요. 그걸 먹으니까 싹 낫더라고요.”
내 말에 어린 혼돈이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대충 다 멀쩡해지긴 했다.
“다행이군.”
성현제가 말했다. 왜 자꾸 저 인간 뒤통수를 내리치고 싶어지는 거지.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지만 유독 강한 충동이 들었다. 발이라도 밟을까. 죽 그릇을 싹 비우고 명우를 돌아보았다.
“신입에게는 연락 없었어?”
“응. 아직 바쁜 모양이야. 곧장 돌아갈 수 있다면 좋겠지만 내기와 관련된 사람들은 붙잡힌 상황이라…….”
“서브 팀 보내길 잘했지.”
그럼 신입이 돌아올 때까진 계속 쉬고 있을 수밖에 없는 건가. 약간 초조해지는 나를 향해 어르신이 손끝을 까닥였다.
“첫째 네 몸뚱이 한번 만져 보자.”
“…예? 멀쩡한데요!”
“그래도 무리는 했으니. 안 아프게 하마.”
“전에도 그러셨으면서!”
도망치려 했지만 아무도 날 도와주지 않았다. 오히려 붙잡아 어르신에게 넘겼다. 한바탕 비명을 질러댔지만 확실히 개운해지긴 했다. 그리고 어린 혼돈은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었다. 역시 초월자라 해도 어쩔 수 없는 듯했다.
혼돈의 손에서 벗어나며 내내 날 묘하게 쳐다보고 있던 성현제의 발을 힘껏 밟았다.
“악!”
물론 내 발만 아팠다. 젠장.
“왜 그래, 형?”
“세성 아저씨가 또 무슨 짓 했어요? 제가 대신 밟아 줄까요?”
“아냐, 그냥……. 그보다 황림은 어디 있냐.”
한참 전부터 안 보이는 거 같은데. 예림이가 어, 그러네요 하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저쪽에 있더군.”
성현제가 숲을 가리켰다. 이내 황림이 슬렁슬렁 걸어 나와선 어린 혼돈을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아이고 어르신, 처음 뵙겠습니다.”
“첫째야, 이놈 30분 정도 없어졌었다.”
“아니 잠깐 볼일 좀 보느라고요!”
“잡아.”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리에트의 발차기가 날아갔다. 황림이 아슬아슬하게 피하며 재빠르게 변명을 쏟아냈다.
“자기야! 알잖아!”
“연락 안 된다며!”
“여긴 다르니까! 별말 안 했어, 상황보고만! 상황보고!”
저 수상한 놈. 인형술사와 연락 끊겼다더니 우리 세상을 벗어난 상태라 다시 접촉한 모양이었다.
“진짜 딱 그뿐이었어! 맹세해! 사랑해! 내 마음 알지?”
“어르신. 저놈이 저 납치했어요. 납치범입니다.”
“샤오진, 살려-.”
깡! 프라이팬이 황림의 뒤통수를 내리쳤다. 명우였다. 공간을 다룰 수 있으니 S급이라도 별 소용없구나. 힘은 그대로라 별로 아프진 않았겠지만 황림은 그대로 납작 머리를 숙였다. 명우가 서늘하게 말했다.
“유진아, 어떻게 처리할까.”
당장 내다 버리라는 기색이었지만 차라리 눈앞에 두는 게 맘 편하니.
“잘 묶어서 처박아 두자.”
그렇게 황림은 머리만 남기고 땅에 파묻혔다.
* * *
하루가 지났다. 메시지 창과 함께 신입이 나타났다.
[허니가 전에 말해 준 시스템 제작자님과 접촉했어요! 아주 잠깐 와서 보조는 해줄 수 있을 거 같으시다는데, 대신요.]“유현아, 복주머니 좀 꺼내 줄래?”
유현이가 인벤토리에서 검은 복주머니를 꺼내 내게 건네주었다. 나 또한 모양이 같은 더 큰 복주머니를 꺼냈다. 시스템 제작자, 나무늘보로부터 받은 세뱃돈이었다.
“제작자 넘버 05 소속으로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내 팔목에 깃들어 있던 푸른 문양이 나타났다가 빛을 발하며 사라졌다. 받은 것들을 돌려주며 도움을 청했다. 이내 검은 형체가 나타나 비실비실 몸을 일으켰다.
“소년.”
흑발을 길게 늘어뜨린 분홍 눈의 남자가 나를 바라봐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