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849
848화 기억의 길 (1)
앞으로 한 걸음 내딛었다. 익숙한 보도블록이 발아래로 느껴졌다. 시간은 되었다. 하지만 곧장 키워드를 해제하지는 못했다. 도시의 풍경이 두 눈에 비춰졌다. …이곳으로 다시 돌아오지 못할까 봐 불안했다. 소중한 이들을 두고 가는 것이 망설여졌다.
이쪽 방향으로 조금 더 가면 도담 사육소가 나온다. 우리 집이 기다리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가볼까 싶었지만 더는 발을 떼지 못했다. 보고 나면 틀림없이 흔들릴 것이다. 그냥 이대로 돌아갈까, 하는 생각이 들고 말 것이다.
‘…내가 도망친다 해도 다들 괜찮다고 말해 주겠지.’
탓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절로 쓴 미소가 지어졌다. 그래서 더더욱 물러날 수 없었다. 다들 너무도 좋은 사람들이라서.
미련을 떨쳐내기 위해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시스템 창이 눈앞에 떠올랐다. 감화 완료 대상자. 가장 앞에 유현이의 이름이 자리 잡고 있었다. 막 회귀했을 때가 생각났다.
“사랑한다. 이 키워드도 애초에 정해져 있었던 거 아니냐.”
동생에게 사랑한다고 말해서 그렇게 된 거구나 싶었지만 어쩌면 처음부터 정해진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유현이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완벽한 양육자 칭호도 얻지 못했을까.
“뭐, 안 했을 린 없겠지만.”
없었던 일이 되었다, 라고 그땐 생각했었다. 그래서 스무 살 동생과 데면데면하기도 했었다. 8년간 가슴에 쌓인 것은 그대로인데 5년 전으로 돌아와 버렸으니 어색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대해야 할지 갈피가 잘 안 잡히는 느낌이었다.
그럼에도 사랑한다는 말이 쉽게 나온 것은, 그 순간 스물다섯 살의 동생에게 해주지 못한 한마디가 아직 입안에서 맴돌고 있었기 때문일 터였다. 동생의 얼굴을 본 순간 내뱉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짙게.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려 시스템 창 속 한유현의 이름에 대었다. 소리내어 말할 필요는 없었지만 의식이라도 행하듯 입을 열었다.
“키워드 OFF.”
또다시 돌아온다면 이번에는 다른 누구도 아닌 스물한 살의 너에게. 내 입에서 두 번째 OFF가 흘러나왔다. 시스템 창이 희미한 빛을 발한다. 감화 완료 대상자, 그 일곱 글자가 흐릿하게 번져가며.
▒▒현(S)
가장 앞의 이름부터 지워지기 시작했다. 유현아.
‘형.’
한유현의 기억이 내게 전해지기 시작한다. 한유현의 시선은 언제나 한유진을 향하고 있었다. 온갖 모습이 자신이 나타나 한유진은 무심코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음 지었다. 한유현은 웃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하며 슬퍼하거나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그 모든 다채로운 감정들이 모두 한유진을, 나를 통하고 있었다. 몇 번을 마주하든 변함없는 동생이었다.
‘형만을 기다릴 거야.’
최근의 기억 또한 떠올랐다. 언제까지나 한 사람만을 바라보는 마음이 있는 그대로 흘러들어온다.
“그래.”
나는 한때는 걱정하며 고쳐야 하는 게 아닐까 싶었던 그런 동생의 마음을 온전하게 인정하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닿지 않을 대답을 해주었다.
‘솔직히 아저씨도 이상해.’
이어 예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팔짱을 끼고 어른스러운 척 표정을 굳히며 나와 유현이를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다.
‘한유현만 탓할 게 아니라니까.’
처음에는 한유현이 제일 이상하고 기분도 나쁘고 껄끄럽고 그랬는데. 예림이의 시선이 다른 곳을 향했다. 성현제와 송태원이 보였다.
‘소올직히 저 아저씨들도 이상하죠.’
예림이의 말에 강소영이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언니도 좀 특이하긴 해요, 하고 예림이가 말했다. 소영 씨가 그런 소리 가끔 들어, 하고 웃었다.
“예림이도 참.”
평범함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 사이에서 점차 넓어져 가는 어린 마음이 느껴졌다. 그 사이사이 감추지 못한 외로움도 스며 있었다. 산호가 태어난 이후로는 외로움이 많이 사라져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로 다행이었다.
“그래도 얼른 돌아갈 테니까.”
예림이 생일도 머잖았는데 그 전에 갈 수 있을까. 챙겨 줘야 하는데.
‘유진아.’
명우가 나를 불렀다. 세상 밖에 있음에도 키워드 해제 자체는 적용이 되는 모양이었다. 황금 대장간 스킬을 얻기 전의 명우가 잠을 설치다 일어나는 모습이 보였다. 어둑한 복도에서 내 침실 문을 가만히 바라보고 서 있다.
“저땐 정말 걱정되었었는데.”
내가 느꼈던 것보다 훨씬 더 고민이 많았었구나. 절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으나 그것도 잠시였다. 유명우는 이내 자기 자신을 믿게 되었다. 성현제 못지않게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지녔다. 나보다 훨씬 단단해졌다.
‘유진이가 너무 질색해서요.’
촉수 홍보를 하는 신입과 곤란해하는 명우가 나타났다. 시스템을 바라보는 명우의 눈이 빛나고 있었다.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다.
“단순히 날 도와주는 것만이 아니라 다행이야.”
시스템 관리자로 남는 일은 명우가 바라는 미래이기도 했다. 손가락이 모자라다니, 촉수 한두 개 정도는 괜찮다고 해줄걸 그랬나. 하지만 명우에게 그런 거 달게 하고 싶진 않단 말이야.
‘무리하시면 안 되는데.’
김성한의 목소리였다. 들고 있는 저건… 내 신체 기록? 언제 잰 거지? 내 신체 기록을 심각하게 살펴보다가 길드장실로 들어간다. 고향 어르신들 사이에서 잘하기로 유명한 한의원이라는 말에 유현이도 귀를 기울였다.
“진짜 맛없었지.”
유현이 녀석이 한약 개수를 세어 가며 감시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챙겨 먹었었다. 나에 대한 성한 씨의 감정은 자연스럽게 옅어져 갔다.
‘역시 길드장님의 형님다워.’
TV 속 채터박스 파티를 바라보며 김성한이 중얼거렸다. 조부로 여기는 감정은 사라졌지만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인 마음은 그대로였다. 오히려 점점 더 강해졌다. 심지어 존경심…까지 섞여들었다.
“성한 씨가 이렇게까지 날 좋게 보는 줄은 몰랐는데.”
그래도 F급이지 않냐는 길드원에게 중요한 것은 등급이 아니라며 엄하게 꾸짖기도 했다. 하긴 내가 잘하긴 했으니까. 좀 쑥스럽긴 해도 사실은 사실이지.
‘아빠!’
피스가 폴짝폴짝 뛰었다. 풍성한 꼬리가 흔들거린다. 내가 유체화한 피스를 안아들었다.
‘피스야, 아빠 보고 싶었어!’
‘응!’
피스의 기억이 그대로 전해져, 화염 뿔사자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피스가 내 말에 귀를 기울인다. 뾰족한 귀가 까닥까닥 귀엽게 움직였다.
“…우리 피스, 아빠 말 다 알아들었구나.”
다만 피스의 아빠는 자신의 생물학적 부모 개체를 뜻하고 있지 않았다. 내가 자신을 아빠라고 하기에 그렇게 부를 뿐이었다. 피스에게 아빠는 안아 주고 놀아 주고 먹을 것을 주며 다른 어린 개체들을 데려와 품어 주는 존재였다.
옥상 정원의 블루 앞에서 피스가 자랑하듯 날개를 펼쳤다. 블루가 자기 날개를 파닥이며 즐거워했다. 이어 노아도 노려보았다. 우리 피스, 질투도 했었구나. 피스는 어리광을 계속 부리고 싶었다. 하지만 내게 도움도 되고 싶었다. 화염 뿔사자는 유체화 스킬을 얻고 날개를 얻었다.
‘아빠 언제 와.’
피스가 현관 앞에 앉았다. 아빠는 몇 번이나 떠났다가도 돌아왔다. 그러니 이번에도 그럴 것이다. 중문 너머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일어난다. 빙그르 한 바퀴 돌고는 거실로 향했다. 금빛 섞인 붉은색 털 몇 가닥이 현관 앞에 남았다. 피스가 앉아 있던 자리…….
지금도 저렇게 기다리고 있을까. 안타까움 속에 주먹이 꽉 쥐어졌다.
“피스야, 아빠 꼭 돌아갈 거야.”
당장이라도 피스를 품에 꼭 안아 주고 싶었다. 내 눈앞에서 피스의 모습이 흐려졌다.
‘재밌어!’
꺄아우, 황금 그리폰이 힘차게 소리쳤다. 블루가 즐겁게 하늘을 날았다. 경기도 사육장 근처 헌터 훈련소에 일부러 내려가자 헌터들이 우르르 몰려와 멋지다고 칭찬을 한다. 블루가 으쓱해하며 마음에 드는 헌터를 등에 태워 주었다.
“블루 녀석, 정말 잘 지내고 있었네.”
낯선 헌터와도 금방 친해진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관심받는 걸 아예 즐기고 있었구나. 내 입술에 미소가 맺혔다. 앞으로도 그럴 것 같아 안심이 되었다.
‘가끔 짠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고. 그래.’
다시 기억이 바뀌었다. 언제 적 일일까, 문현아가 잠들어 있는 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자기 말로는 서른이니 나보다 많다곤 하지만. 영 불안불안 하다니까.’
“솔직히 현아 씨가 저보다 더 어른스럽게 느껴지긴 했어요.”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을 한 명 고르라 하면 가장 먼저 현아 씨를 꼽지 않을까. 내게 있어 문현아는 그런 사람이었다. 소중한 가족이나 친구, 이상형과는 또 다르게, 엇갈리는 길에 서 있어도 믿을 수 있는 사람.
‘형님은 나를 너무 믿어.’
현아 씨의 불안감이 느껴졌다. 항상 굳건한 것은 아니었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향해 걸어 나가면서도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마음이 있었다. 몇 번이나 흔들리고 고민하는 평범한 사람이기도 했다. 한유진을 두고 시그마를 두고 수없이 갈등했다. 그러나 언제나 곧게 서 있었다.
“그래서 더 믿는걸요.”
항상 더 나은 방향을 고민하여 최선을 다할 사람이니까. 언제든 믿고 뒤를 맡길 수 있었다.
‘대장 김서방!’
허연 것이 펄쩍 나타났다. 깜짝이야, 반사적으로 반걸음 물러서고 말았다. 직접 전해지는 기억이라 공포 저항도 효과가 없나. 윤윤 너 이번에는 성공했구나.
“역시 할머니라고 생각하진 않네.”
키워드가 적용된 처음에는 그렇게 여겼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윤윤에게 있어 나는 믿을 만한 대장이었다.
‘괜찮아, 대장 김서방 돈 많아! 다 먹어! 더 먹어!’
윤윤의 호언장담에 도깨비들이 환호했다. 사고 좀 쳐도 괜찮아, 대장 김서방이 어떻게 해줄 거야! S급들도 대장 김서방 말이라면 끔벅 죽어! 대장 김서방이 인간들 대장이야!
“…아니, 너무 믿는 거 아니냐.”
좀 당황하며 뺨을 긁적였다. 야, 내가 채터박스 덕분에 재산이 확 늘어나긴 했어도 도깨비 방망이를 가진 건 아니라고. 윤윤은 내가 뭐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죽었지만 살아 돌아올 것이라고도 믿어 줄까.
‘아이 예뻐!’
강소영의 목소리였다. 코메트가 머리를 크게 흔들며 말했다.
‘예뻐!’
코메트에게 나에 대한 기억은 많이 옅어져 있었다. 자신을 돌봐 줬고 여전히 좋아하기는 했지만 코메트의 동료는 소영 씨였다. 함께 먹고 자고 비행하며 사냥하는 새로운 가족.
검은 비룡 옆으로 금빛 용이 날개를 펼친다. 강소영과 함께 코메트가 노아를 반갑게 맞이했다. 노아 씨의 날개는 아직 피막이었다. 그것이 깃털로 뒤덮여간다.
‘누님을 이해할 수가 없어요.’
노아 씨가 내게 하소연했다. 한유진의 모습 위로 리에트가 얼룩진다.
‘만약에 누님이 유진 씨 같았더라면.’
내가 용의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었다. 노아 씨가 눈을 감았다. 그는 사육소에 몸을 담으려고 했다. 과거를 잊고 이곳에서 새롭게 시작하려고 마음먹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노아 씨는 리에트에게 맞섰다.
“노아 씨가 정말로 원하는 것이었죠.”
노아의 기억들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험난했고 쉽지도 않았다. 리에트를 영원히 잃어버릴 뻔하기도 했었다. 그럼에도 노아는, 두 사람은 나란히 설 수 있었다. 노아 씨는 자신이 바라는 대로 날아갈 수 있을 것이다.
‘아빠!’
‘아빠아!’
새끼 몬스터들이 뛰어왔다. 대부분은 내 이름이 아빠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사이로 굵직한 목소리가 섞여들었다.
‘…어머니.’
“아이고…….”
절로 앓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저게 뭐야. 시시오가 내 사진을 들여다보며 눈물짓고 있었다. 중국에 납치되었을 때인가.
“다른 사람들은 다 키워드 영향에서 벗어났는데 말이야.”
‘훌륭하신 나의 어머니!’
“으아악…….”
하지 마, 하지 마! 날 생각해 주는 마음은 고맙다만 커다란 성인 남성이 저러는 꼴을 보자 어쩔 수 없이 소름이 돋았다.
‘저는 언제까지나 어머니를…….’
“악! 이거 기억 넘기지는 못하나.”
직접적으로 흘러들어오는 것이기에 귀를 막아도 소용이 없었다. 다행히 이내 중국에서 데려온 몬스터들이 기억이 시시오의 어머니 타령을 밀어냈다. 저것만 아니면 좋은 사람인데 말이야.
어린 몬스터들에 이어 새로운 기억들이 계속해서 나타났다. 채터박스 파티의 주연으로 등극한 한유진에 대한 기억들이 가득했다. S급 헌터들이 나를 인정하는 마음이 직접적으로 느껴진다.
“…뿌듯하긴 하지.”
몇 번을 느껴도 기분 좋은 감정이었다. 아직은 타인의 평가에 연연하지 않을 정도는 아니었다. 역시 신경이 쓰였다. 해연 길드장의 형답고 싶었다. 박예림의 보호자답고 싶었다. 도담 사육소의 독립적인 사육소장이고 싶었다. 세성 길드장의 동등한 파트너이고 싶었다. 아이들이 자신을 믿고 의지할 어른으로 생각해 주길 바랐다.
나는 생각보다 더 욕심이 많았다.
‘유진이 혀엉!’
박하율이 징징거린다. 컴퓨터 앞에 붙어서는 내 사진을… 보정하고 있었다.
“뭐 하냐, 저거.”
배송받은 내 사진이 들어간 쿠션… 포장을 푸는 박하율을 마리 씨가 한심하게 쳐다보았다.
‘차라리 성현제 님 사진을 넣어.’
‘네가 어려서 아직 뭘 모르는 거라고! 유진이 형이 최고야!’
‘아니면 한국 각성자 관리실 실장이나.’
‘정말 보는 눈 없구나.’
“…아니, 마리 씨 눈이 훨씬 더 높은 거 같다만.”
하율이 녀석 언제 봐도 즐겁게 살았구만. 시스템 창의 이름이 거의 다 지워졌다. 스물여섯 살의 유현이는 이미 떠나갔으니… 박하율이 마지막이었다. 마지막 이름마저 사라져간다.
이제는.
‘아빠!’
“…결아?”
한결의 목소리였다. 결이는 키워드 등록이 안 되어 있었을 텐데? 우리 세상 자체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고는 했지만, 그래도…….
‘아빠 좋아해.’
별이였다. 설이의 기억도 느껴졌다.
‘싫지는 않아.’
‘우리 집이야.’
‘또 하자! 빵빵!’
‘아빠가 결이 아빠라 다행이야.’
꿈결이었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 세계는 박하율이 기둥이 되어 현실을 바탕으로 빚어낸 꿈이다. 그리고 박하율의 능력의 두 배치가 내게 적용되었다. 모두의 꿈에 내가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인 걸까.
‘주님 덕분에 하고 싶은 거 다 할 수 있게 되었다니까~.’
“…도하민?”
하민이 녀석이 햄스터 도자기 장식품을 닦으며 웃었다. 아니, 박하율의 능력이 있다고 해도 이건 양육자 키워드 해제인데? 도하민을 키워 준 기억 같은 건 없다고.
‘일이 너무 많아! 그래도 행복해! 주님 만세!’
석하얀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이어서.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한유진 씨는…….’
클로이였다. 그녀가 무거운 표정으로 나에 대해 섣불리 판단했던 마음을 바꿔 말한다. 여전히 더 많은 사람을 위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조금쯤은 바뀌었다.
“…클로이 씨까지.”
‘저도… 살고 싶어졌기 때문일 겁니다.’
송 실장님. 키워드에 감화되지 않은 그가 나직이 말했다. 샛노란 꽃이 보였다. 송 실장님이 바라보는 나는, 내 주위는 봄이었다. 그리고 송 실장님도 내게 한 걸음 다가왔다.
조금씩… 이해가 갈 듯했다.
‘한유진 님이 그날 결혼식에 뛰어들지 않으셨다면!’
마리가 웃었다. 행복해 보였다. 그 밖의 다른 사람들도 보였다. 내가 아는 얼굴들 사이로 내가 모르는 얼굴들도 있었다.
‘하급 헌터라고 해서 어떻게 될 진 알 수 없지!’
‘솔직히 한유진이 특별한 거긴 한데, 그래도 혹시 모를 일이니까.’
‘특수 스킬 연구 모임이죠? 제 스킬 특이하지만 쓸모는 없다고 생각했는데요, 어때 보여요? 응용 방법이 있을까요?’
낯선 헌터들이 가득했다. 비각성자들도 있었다.
‘한유진 말이야, 왜 고생 많이 한 것처럼 느껴지지. 각성한 지 1년도 채 안 되었는데. 아무튼 저기까지 자리 잡느라 힘들었겠다.’
‘역시 조금 더 해보자. 적어도 각성할 때 관련 스킬이라도 얻겠지.’
‘나도 S급 각성자들을 지켰다고!’
‘세상을 구하는데 한몫했지.’
‘내가 SF 도와줬다. 몬스터도 잡았고.’
세상 모든 사람은 아니었다. 내게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었다. 크든 작든 무언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영향을 받은 이들.
“…양육자는.”
단순히 키워드를 적용한 사람들만이 아니라. 아니, 애초에 키워드를 써서 감화시키는 것은 시스템에 속해 있는 스킬에 따른 것이었다. 그 시스템에서 벗어나 순수하게 양육자 칭호를 바라본다면. 양육자는.
나와 연결된 꿈들이 쏟아져 내렸다. 그 앞으로 하얀 새끼 새가 나타났다.
– 삐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