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857
856화 안녕
“내가, 계속…….”
말을 잇지 못했다. 뜨거운 것이 울컥 가슴을 목을 두 눈을 가득 채웠다. 온갖 감정이 한 번에 치솟았다. 지나간 시간들이 머릿속 생생히 떠오른다. 놓친 줄 알았다. 지키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혼자 두고 온 것이 미안하고 분하고 서럽고 원통해서 몸서리가 쳐졌다. 잠을 자다가 밥을 먹다가 아무렇지 않게 웃고 이야기하다가도 문득문득 심장이 조여들었다. 몸뚱이 절반을 눈밭에 두고 온 듯 섬뜩하게 추워졌다.
“…계속.”
죽은 동생이라 해도 찾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미 죽은 사람이다. 되찾는다 해도 흙에 덮여 사라져가고 불에 타올라 재만 남을 몸뚱이다. 산 사람이 더 중요하지. 그리 말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며 나 또한 그런 생각이 없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다른 무엇보다도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선 버틸 자신이 없었다. 막막한 길이라 해도 발버둥을 쳐야만 숨이 트였다. 한 걸음 한 걸음 필사적으로 나아가고…….
그러다 보니 어느새, 숨이 쉴 만해졌다. 동생을 그리 두고도 나는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었고 또 생각보다 더 잘 살고도 있었다. 그것이 이상하고도 슬프면서… 앞으로도 어떻게든 살아가겠구나 싶어졌다.
“나는…….”
동생을 집으로 데리고 오면 아픔과 슬픔을 함께 묻어 그리움으로 덮어 둘 수 있겠구나 싶었었다.
그리고 스물여섯 살의 동생과 만나고 보내 주었다. 아무렇지 않을 수는 없었다. 미어지는 속으로 작별 인사를 했다. 그래도 잘 보내 주었고 그것으로 잘 마무리 지었다고 생각했었다. 이걸로 다 된 거라고.
하지만 나는.
“…형.”
유현이가 가만히 팔을 뻗어 나를 안아 주었다. 두 눈과 목이 아프고 뜨거웠다. 흐느끼는 내 목소리가 남의 것처럼 들려왔다.
나는 여전히 미련투성이라. 아직도 다 끌어안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여전히 아무것도 놓지 못하고 움켜쥐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 남은 것들이 쏟아져 내렸다. 나는 처음부터 놓은 적 없다는 말에 비로소 놓아졌다. 온갖 것을 눈물과 함께 흘려보냈다. 희뿌옇게 꽃잎은 자꾸자꾸 떨어졌다. 끝도 없이 흩날린다.
“…유현이 너도.”
한참 만에 젖은 눈가를 닦아냈다. 아직 보은 스킬이 적용 중이라선지 붓지는 않은 것 같았다. 그래도 눈물로 얼룩졌을 것이라 물방울을 만들어 냈다. 내가 울 때면 곧잘 물을 보내 주던 예림이가 떠올라서 웃음이 작게 나왔다. 세수를 하는 나를 따라 삐약이도 파드득 물장구를 쳤다.
“네가 나를 기다려 줘서 내가 여기까지 온 거야.”
동생을 두고 왔다는 사실을 몰랐다면 이렇게까지 필사적이진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성현제와 송 실장님의 일도 내 능력 밖이라며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두 번 다시는 널 놓치고 싶지 않아서, 그래서 아무것도 포기할 수가 없었어. 넌 내가 널 완성시켰다고 했지만 그건 결코 일방적이지 않아. 여기 서 있는 한유진도 한유현이 있어서 가능했던 결과니까.”
그리고 나는 더 많은 사람들과도 주고받았다. 심지어 또 다른 나한테까지.
“던전 속의 나 말이다. 이젠 던전은 아니지만. 아무튼 그 녀석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이상하리만치 태평하더니. 혹시 걘 너에 대해 알고 있었던 거냐?”
“내가 만든 세상이고 그곳의 한유현 또한 던전이 만들어 낸 것이라 해도 한유현과 연관 깊은 존재라 잠깐 연결된 적이 있어. 자세히는 아니고 내가 근원에 자리 잡고 있으며 형을 기다린다는 것 정도?”
“새삼스럽게 얄미워지네. 걔들은 여전히 잘 지내고 있지?”
“완전히 독립적인 세계로 안정화되었으니까. 괜찮을 거야.”
그 녀석 알았으면 나한테 말은… 못 해줬겠지만. 제약도 있었지 싶고 무엇보다 유현이에 대해 알게 되었다면 도리어 이곳까지 오지 못했을 것 같았다. 유현이가 근원이 되었다면 솔직히 송 실장님의 방법에 동의했을…….
“와… 진짜 큰일 날 뻔했구나.”
생각해 보니까 만약 소원의 달의 계획이 성공했다면 유현이도 살해당하는 거였잖아. 그간 몇 번이나 성현제를 초승달에게 넘길 기회가 있었다. 심지어 초승달은 내게 원하는 것을 들어주겠다며 유혹하기도 했었다. 그 말에 넘어갔더라면 나는 나도 모르는 새 동생을 영영 잃고 말았을 것이다. 상상만으로도 등골이 서늘해졌다.
“소원의 달이 새로운 근원을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더라면 유현이 너도 무사하지 못했겠지.”
– 저도요, 아빠.
삐약이가 한쪽 날개를 들어 올렸다.
“응? 삐약이 너도?”
– 근원으로 완전히 자리 잡지 못한 상태로 한유현이 사라지면 전 다시 빈자리로, 근원으로 돌아가게 될 거예요. 저희가 함께하는 것으로 하얀새의 소원은 이루어졌지만요.
언제든 다시 헤어지게 될 수도 있었다며 삐약이가 말했다.
– 그렇지만 아빠가 어떤 선택을 해도 괜찮았어요. 하얀새와 저는 짧게나마 같은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었으니까요.
“나도 그래, 형. 형의 의지로 선택한 결과라면 어떤 것이든 괜찮았을 거야.”
“…아니 너희 둘 다 꿈을 좀 더 크게 가지라고. 괜찮긴 뭐가 괜찮아. 난 안 괜찮다. 특히 유현이 너 말이다, 네가 하고 싶은 걸 해!”
유현이가 눈을 깜박거렸다. 그러더니 웃는다. 그런 식으로 넘어가려 하지 말고.
“응, 형. 나는 형이 내가 있는 곳으로 와주기를 바랐어.”
“…그래. 그래서 이렇게, 왔잖냐.”
하얀색 벤치가 나타났다. 그 위로 꽃그늘이 어른거린다. 언젠가처럼 의자에 나란히 앉았다. 유현이가 배고프지 않느냐고 물었다. 살짝 허기진 듯도 했다. 유현이의 무릎 위에 도시락 상자가 놓였다. 샌드위치와 김밥, 유부초밥. 내가 동생에게 싸 준 적 있는 음식들이었다. 처음 만들었던 김밥은 속 재료도 다 갖추지 못하고 엉성하게 옆구리가 터졌었는데.
캔 사이다를 땄다. 시원한 소리가 들려온다. 삐약이가 샌드위치 옆의 방울토마토를 물어 들었다. 4단 도시락 통에 꽃잎이 내려앉았다. 흩날리는 꽃을 바라보았다.
“유현이 너 말이다, 전부 다 지켜보고 있었던 건 아니지……?”
샌드위치를 먹다 말고 슬쩍 걱정이 들었다. 근원이라잖아. 나랑 연결도 되어 있다고 하고.
“다는 아니야.”
“아니, 그게. 우리가 형제기도 하고 못 볼 거 없는 사이인 건 맞는데, 그래도 형에게도 프라이버시라는 게 있긴 있어서 말이야.”
목욕탕도 같이 다니다 못해 내가 씻겨 주며 키운 동생이지만 그동안 내가, 그게… 유현이에게 보이기 쪽팔린 일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어서……. 뒷목에 조금 열이 올랐다. 채터박스 파티도 봤을까. 시청자분들한테 하트 보내고 막……. 새삼스럽게 부끄러워졌다.
“걱정하지 마, 직접적으로 보는 식은 아니었어. 그리고 난 어떤 형이라도 좋아해.”
“그거야, 뭐. 아니, 봤다고 해도 그 덕분에 네가 외롭지 않았다면 말이다. 나도 뭐, 괜찮아. 그거면 됐지.”
유현이가 내 샌드위치로 떨어진 꽃잎을 떼어 주었다.
“외로운 적은 없었어. 형이 얼마나 나를 생각해 주고 있는지 알 수 있었으니까. 그전보다 훨씬 더 확실하고 분명하게. 내가 존재하고 의식을 유지하며 성장해 가는 모든 것이 형에게서 비롯되었으니까.”
“…다행이다.”
꽃은 예쁘고 날은 따스했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도 기분이 좋았다. 무엇보다도 동생과 함께 꽃놀이를 한다는 자체가 즐거웠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별것 없는 잡담 속에 웃음이 섞여 들었다. 그러나 마음 한켠에 어쩔 수 없는 그림자가 자리 잡고 있었다.
무엇이든 영원할 수는 없었다. 꽃은 질 것이고 이 따스한 시간도 결국은 흘러가게 된다. 그러니 더더욱 만끽해야 하는데.
“너도 좀 먹어. 먹을 필요 없을 거 같지만, 그래도 같이 먹어야지.”
“응, 형.”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뭐 좀 만들어 올걸. 아, 혹시.”
인벤토리를 뒤적였다. 남아 있었던 거 같은데.
“있다!”
유현이가 곧잘 먹어서 틈이 날 때마다 만들어 두었던 과일절임. 별이도 좋아하고 결이랑 설이도 잘 먹었지. 집에 잠깐 갔을 때 챙겨 두었었다. 그것을 병째로 유현이에게 건넸다. 유현이가 과일 한 조각을 꺼내 입안에 넣었다. 예쁘게도 웃는다.
“맛있어, 형.”
그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제는, 유현아.”
너는, 그리고 나는 어떻게 되는 것이냐고. 나직한 물음에 유현이가 몸을 일으켰다. 나 또한 일어나 섰다. 삐약이가 빙그르 날아올랐다.
“형. 나는 죽었어.”
“…응.”
“그것만큼은 변하지 않아.”
짐작은 하고 있었다. 하얀새가 가져간 것은 유현이의 마석이었다. 스물다섯 살의 유현이는 내게 다시 돌아올 수 없었다. 마석을 바탕으로 새롭게 태어날 수는 있었지만 같은 존재는 분명 아니었다.
결이는 완전히 달랐다. 성현제의 기억은 조금 가지고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지식으로서일 뿐 동일한 존재라 생각되지는 않았다. 디아르마와 용인종의 흔적은 용종이라는 종족 외엔 찾아볼 수 없었다.
별이도 예전의 기억은 흐렸다. 영향은 분명 주어졌지만 종족도 모습도 완전히 달라졌다. 이전 생의 자신과 현재의 자신을 헷갈려 하지도 않았다. 별이는 별이였다.
반면에 설이는 조금 달랐다. 흑룡을 그대로 검으로 만들고 유지되어 왔기 때문일까, 흑룡의 심장에서 태어난 설이는 과거의 기억을 상당수 지니고 있었다. 그럼에도 현재의 자신과 흑룡 사이에 선은 분명히 존재했다. 성격도 꽤 달라졌다.
결국 마석이 남았다고 해서 그 사람이 살아 있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도 내 자리는 이미 채워졌어. 스물한 살의 나는 현재를 살아가는 형의 동생이야.”
과거로 묻어 떠나보낸 스물여섯 살의 유현이. 현재에서 나와 함께하게 될 스물한 살의 유현이. 그리고 내 앞의 또 다른 한 명의 동생은.
“나는, 근원은 아직 태어나지 않았어. 다만 나는 이미 형의 동생으로 존재하기에 이렇게 자의식을 가지고 움직일 수 있을 뿐이야.”
“…오래가진 못하는 거지?”
“응. 이대로 태어나지 않은 채라면 근원은 또다시 포식 행위를 시작하겠지. 지금은 형이 머무는 세계를. 그리고 또 다른 세계를.”
유사 근원만 해결되었을 뿐 원래대로 돌아가는 셈이었다. 이대로 두면 초승달, 소원의 달도 결국은 다시 나타나게 될 것이다. 까만 눈이 나를 마주 바라보았다. 그 눈이 희미하게 일렁이는 듯했다. 아니, 내 눈동자가 흔들거렸다.
“형이 원한다면 나는 근원으로서 새롭게 태어날 수 있어. 하지만 그건 분명 내가 아니야.”
“…그래, 분명 그렇겠지.”
결이와 별이처럼. 어쩌면 그보다 더 원래의 모습을 찾을 수 없는 아이로.
“한때는 한유현이었지만 이제는 한유현이 아니게 된 어린아이. 형, ‘나’는 확실하게 사라져. 마석도 그 무엇도. 아마도 기억 또한 사라지게 될 거야.”
이제는 더 남기는 것 없는 확실한 이별이었다. 무심코 주먹이 꽉 쥐어졌다.
“하지만 그러지 않고 잠들 수도 있어.”
“뭐? 잠든다니.”
“한유현으로서 다섯 번째 근원과 함께. 더는 포식행위를 하지 않고서 형을 기다리면서. 이곳에는 다시금 눈이 내리겠지.”
새하얀 꽃이, 새하얀 눈으로 뒤바뀌어. 짧게 숨을 삼켰다.
“또다시 너 혼자 눈밭에 내버려 두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아니야, 형. 나는 괜찮아. 정말로.”
“괜찮기는 뭐가-!”
“포식행위를 멈춘다 하더라도 결국 모든 존재는 근원으로 돌아오게 돼. 형의 수명이 자연스럽게 다한다면.”
유현이가 손을 내밀었다. 내 가슴 위로 닿는다. 포근한 무언가가 나를 감싸는 감각이 들었다. 내 몸은 물론 그 너머, 가장 깊숙한 상처까지 어루만지는 부드러움이었다.
“형 또한 내게 오게 되겠지. 그럼 나는 형과 함께 계속해서 꿈에 빠져들 거야. 잠깐의 기다림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아.”
“…유현아.”
“형이 나를 잃고 싶지 않다면, 계속해서 함께하고 싶다면. 그럼 그럴 수 있어.”
다정하게 동생이 말했다.
“그 무엇이든 형이 바라는 대로.”
내가 원하는 대로. 목이 메어왔다.
“유현이, 너는. 너도 바라는 게 있을 거 아니냐. 그러니까 둘 중에…….”
“어느 쪽이든. 나는 어느 쪽이든 형을 지킬 수 있어. 형이 원하는 선택을 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
동생을, 꽃이 그득한 나무를 바라보았다. 두 눈 가득 담았다.
“…나는.”
나는. 울 듯 눈가를 일그러뜨리다가 웃었다. 내 동생. 내 동생들.
“만약에 스물여섯 살의 유현이를 만나지 않았다면, 스물한 살의 유현이가 기다리고 있지 않았다면. 그럼 아마도 나는… 너를 절대 보내지 못했을 거야.”
어떻게 그럴까. 미련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러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붙잡았을 것이다. 차라리 나도 여기서 같이 잠들겠노라고 말했을지도 모른다. 지금도 그런 충동이 아주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는.
“유현이 네가 너인 채로 나를 기다리고, 결국은 함께 잠드는 것도… 어쩌면 나쁘지 않을지도 몰라. 그렇지만 역시, 언젠가는.”
모든 것이 언젠가는.
“마지막이… 오고. 그리고 다시 시작하는 것이니까.”
매달리고 싶어도 끌어안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때가 있다. 그래서는 안 되는 순간이 있었다.
“유현아. 네가 한유현인 한, 내 동생인 한 나는 절대 너를 놓지 않을 거야.”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절대로. 누가 무어라 하든지.
“나는 계속 너를 기억하고 생각하고 그리워하겠지. 그러니까.”
하얀 얼굴을 몇 번이고 바라보았다. 언제든지 선명하게 되새길 수 있도록. 스물한 살의 유현이는 키도 더 커지고 조금쯤은 달라질 테니까 더더욱, 아주 작은 차이라도 잊지 않도록.
“안녕.”
한유현인 너는 내가 계속 품을 테니까. 네가 있어서 지금의 한유진이 있었고 그런 나는 계속해서 살아갈 테니까. 이미 꽃은 피었고 눈은 녹아내렸다. 언젠가 다시금 겨울이 돌아올지라도 지금은 아니었다.
“안녕, 유현아.”
희미한 빛이 번져 나간다. 두 팔을 활짝 벌려 동생을 끌어안았다. 유현이가 미소 짓는다. 시리게 눈이 부셨다.
“안녕, 형.”
그 목소리도 그 모습도 흐릿해져간다. 마지막에, 정말로 마지막에 해주고 싶었던 말.
“내 동생, 한유현.”
내게 와주고 머물렀던, 함께 살아갈, 그리고 새롭게 다시 와줄 아이까지 모두.
“사랑한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