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econd Coming of Shinken RAW novel - Chapter 198
레이크가 꺼낸 이름이 워낙에 뜬금없어서, 라덴은 잠깐 동안 대답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어버렸다. 류가미. 랭킹 6위이자, 무투가 랭킹 1위. 일본 랭킹 1위. 스사노오의 길드장. 류가미는 그런 수식어를 달고 있는 플레이어였고, 반 년도 전에 라덴과의 1:1, 노 패털티 PVP에서 패배한 전적이 있는 플레이어였다.
정신을 차린 라덴이 대답했다. 류가미가 왜 만나고 싶어하는 것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솔직히 말해서, 라덴은 류가미에게 조금 미안하다는 감정을 품고 있었다. 져줄 생각은 없었기에 이기기는 했지만, 라덴이 이겨버린 탓에 일본 내에서 류가미의 입지가 상당히 난감해져기 때문이었다.
“만날 수는 있는데. 어디서 볼까요?”
[투기장에서 보도록 하죠.]
투기장은 도시가 달라도 만날 수 있는 장소이기에, 이런 갑작스러운 만남에도 자주 애용된다. 라덴은 머리를 끄덕거리면서 몸을 돌렸다.
백설에게 잠깐 나갔다 온다고 보고를 한 뒤에, 라덴은 서량의 투기장으로 향했다.
투기장에 접속한 뒤에, 라덴은 레이크가 미리 파 두었다는 커스텀 매치 방에 접속했다. 잠깐의 부유감 뒤에 발이 땅에 닿는다. 제법 오랜만에 들어 온 투기장이었지만 반가움을 느낄 틈은 없었다.
“오랜만입니다.”
류가미가 그렇게 말했다. 라덴은 이쪽을 빤히 보는 류가미를 향해서 살짝 머리를 숙였다. 류가미의 곁에는 레이크가 서있었다. 레이크는 지난번에 싸웠을 때에 입었던 갑옷을 그대로 입고 있었는데, 어찌어찌 장비를 수리하는 것에는 성공한 모양이었다.
“…네. 오랜만이네요.”
라덴은 조금 난감한 기분을 느끼면서 그렇게 대답해 주었다. 반 년 전의 PVP 이후로 류가미와는 처음 만난다. 친구 추가를 한 것도 아니라서 이야기를 나눌 기회도 없었었다.
“류가미님이 라덴님과 할 말이 있다고 해서.”
레이크가 류가미와 라덴, 둘과 모두 친구 추가가 되어 있었기에 중간 다리 역할을 하러 나선 것이다. 라덴은 살짝 머리를 끄덕거리면서 류가미에게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루카스에 대한 일입니다.”
류가미가 입을 열었다.
류가미는 자신이 겪고서 알고 있는 것들을 라덴에게 전해주었다. 시작은 한 달쯤 전. 라덴이 레이크와의 싸움에서 승리하고, 키아미르에서 스토리 퀘스트를 진행하기 전이다.
루카스는 류가미를 포함한, 라덴과 악연을 맺었던 최상위 랭커들에게 접촉했다. 자카이드, 에클레어, 잭헤드. 알라베스 산에서 라덴에게 물을 먹었던 랭커들이다. 류가미까지 끌어들인 뒤에 루카스는 라덴을 견제해야 한다는 뜻을 피력했고, 류가미는 그런 식으로 연합을 맺어 라덴과 적대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기에 먼저 거절하고 자리를 뜨기는 했지만,
“제가 떠난 이후로 그들이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그들의 목적은 라덴님을 압박하는 것이라는 것은 압니다.”
최근 일주일 동안 루카스와 다른 랭커들의 길드 연합은 흑접을 압박하고 있다. 라덴은 입술을 꾹 다물고서 주먹을 쥐었다.
라덴은 바보가 아니었다. 상황이 어찌 돌아가는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루카스. 직접 만나 본 적도 없는 놈이지만, 놈은 라덴에게 확실한 적의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 루카스와 알라베스 산에서 라덴에게 물을 먹었던 랭커들이 만났다.
‘잭헤드 그 새끼는 왜 낀 거야?’
자카이드와 에클레어가 루카스와 손을 잡은 것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잭헤드는 대체 왜? 라덴은 잭헤드와는 직접 만난 적도 없었고, 알라베스 산에서 만나 적대한 적도 없었다.
“…그러니까. 나를 조지기 전에 먼저 내 주변에 있던 흑접과 루아노스 누님을 조졌다는 거네요.”
까드득. 라덴은 이를 갈고서 내뱉었다. 왜 굳이 루아노스를 고른 것인지는 모른다. 중요한 것은, 루카스와 길드 연합들이 흑접을 공격하고 루아노스를 압박하는 것의 진짜 목적이 라덴을 끌어들이기 위함이라는 것이었다.
“라덴님.”
레이크가 라덴을 불렀다. 라덴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기분이 아니었다기 보다는, 라덴은 레이크의 부름 자체를 듣지 못했다.
라덴은 기묘한 분노를 느끼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적대받는 것은 그럭저럭 익숙한 일이었다. 판타지아 시절부터 라덴을 싫어하는 플레이어는 많았으니까. 하지만 이런 식으로, 라덴을 노리기 전에 라덴 주변의 다른 누군가를 노리는 상황에 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간단한 이유였다. 판타지아에서의 라덴은 혼자였다. 하지만 지금은? 발할라에서는?
“라덴님.”
레이크가 다시 라덴을 불렀다.
“라덴님이 그들을 공격한다면…”
“알아요. 놈들이 바라는 대로 되겠죠.”
라덴이 머리를 끄덕거렸다.
“그런데 나는 말이에요. 이유없이 한 대 얻어 맞았는데… 가만히 있어줄 정도로 착한 놈이 아니라서.”
쥐고 있던 주먹을 풀었다. 루아노스의, 연민서의 울적한 목소리가 귓가를 맴도는 것 같았다. 그런 라덴을 보면서 레이크가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다면 저도…”
“아뇨.”
레이크가 말을 마치기도 전이었다. 라덴이 머리를 가로 저으면서 레이크의 말을 끊었다.
“레이크님은 도와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 문제니까, 제가 알아서 해결할 게요.”
“하지만 라덴님. 상대는 각각 랭킹 3위와 4위, 5위, 7위에 10위입니다. 그들 뿐만이 아니라, 그들이 이끌고 있는 길드원 전원이 라덴님의 적이란 말입니다. 아무리 라덴님이라고 해도…”
“괜찮아요.”
라덴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나도 무식하지는 않아요. 놈들을 상대로 정면승부를 걸 생각은 없다고요. 내가 아무리 잘 싸워도 몇 백 명이나 되는 플레이어를 모조리 쓰러트릴 수는 없는 일이니까.”
라덴은 류가미에게 시선을 옮겼다. 그는 이 일에 대해 알려준 류가미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느꼈기에, 꾸벅 머리를 숙였다.
“어쩔 셈입니까?”
류가미가 물었다. 그는 자그마한 호기심을 느끼고 있었다. 적은 최상위 랭커 다섯 명과 그들의 길드. 족히 몇 백 명을 될 적을 상대로, 과연 라덴은 어떻게 나설 것인가?
“일단 찾아 봐야죠.”
라덴은 머리를 천천히 옆으로 기울였다. 뚜둑. 라덴의 목에서 작게 뼈 소리가 울렸다.
“만만한 새끼를.”
놈들이 그랬던 것처럼.
*
발할라에서 특정 플레이어의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서로가 친구추가를 하는 수밖에 없다. 친구추가를 하게 되다면 서로의 친구 목록에 각자의 이름이 새겨지고, 귓속말이나 현재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친구추가의 부가 기능인 위치 확인은 상대에 따라 켜고 끄는 것이 가능하다.
안타깝게도. 라덴의 친구 목록에는 라덴이 만나고자 하는 플레이어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넓디넓은 발할라 전역을 뒤지면서 플레이어를 탐색해야 하는 것일까?
그것도 방법의 하나기는 하다. 효율이 극악이고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긴 하겠지만. 시간이 넘친다면 넓은 사막의 모래알 하나하나를 세어가면서 바늘 하나를 찾을 수도 있겠지.
라덴은 그럴 생각은 없었다. 그런 무식한 방법을 쓰려 한다면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릴 것임을 알기 때문이었다.
정보 길드라는 것이 있다.
발할라에 존재하는 다양한 길드들의 한 종류로서, 그들은 오직 정보만을 취급하고 다른 플레이어에게 자신들이 모은 정보를 판매한다. 현실로 치면 사람 찾기 전문의 심부름센터의 역할을 하는 놈들이다.
물론, 그들이 모든 정보에 대해서 알고 유통하는 것은 아니다. 정보 길드가 절대로 취급하지 않는 정보 중 대표적인 것은 시즌 던전에 대한 것이다. 시즌 던전의 정보를 유통하는 것은 공언된 금기다. 시즌 던전의 중요성이 높다는 것에 대해서는 최상위 랭커와 길드들이 가장 잘 알고 있다. 정보 길드가 이미 공략 중인 시즌 던전의 위치 정보를 다른 길드에게 넘긴다면 지저분한 싸움이 일어나게 된다. 그를 방지하기 위해 정보 길드들은 절대로 공략 중인 시즌 던전의 위치에 대해 누설하지 않을 것임을 큰 소리로 말했었고, 최상위 길드와 랭커들도 정보 길드에게 공략 중인 시즌 던전의 위치에 대해서는 절대로 묻지 않는 것이 규칙이 되었다.
라덴과는 상관없는 일이다. 라덴은 당장에는 시즌 던전의 위치에 대해서는 아무 욕심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들쥐.
보하미르에 길드 하우스를 두고 있는 정보 길드의 이름이다. 정보 길드에도 종류가 다양하다. 몬스터의 정보, 아이템의 정보, 퀘스트 NPC, 필드, 사냥터 등. 들쥐 길드는 그 중에서, ‘플레이어’에 대한 정보를 전문적으로 취급한다. 물론, 그들이 취급하는 정보는 발할라 안에서의 정보 뿐이다. 현실의 정보는 취급하지 않는다.
충분했다. 라덴은 미리 알아 둔 들쥐 길드의 하우스로 향했다. 놈들의 길드 하우스는 보하미르의 외곽 지역, 흔히들 ‘슬럼가’라고 느끼는 골목에 위치해 있었다. 보하미르는 플레이어들이 여태까지 발견한 도시 중에서 가장 크고 번화한 곳이었지만,
그런 도시에도 슬럼가는 존재한다. 지저분한 골목에서는 풍경과 어울리는 냄새가 났다. 쓰레기 냄새, 술 냄새, 오물의 냄새. 왜 굳이 이런 곳에 길드 하우스를 둔 것일까. 라덴은 혀를 차면서 골목의 안쪽으로 깊이 들어갔다.
‘쥐 굴.’
낡은 간판에는 그렇게 적혀져 있었다. 오래된 서부극 영화에서만 나올 법한 주점 건물이 골목의 가장 안쪽에 서있었다. 라덴은 헛웃음을 흘리면서 삐걱거리는 나무 문을 열었다.
“손님?”
바 테이블 너머에는 험상궂게 생긴 바텐더가 빈 잔을 닦고 있었다. 라덴은 문을 닫으면서 말했다.
“방문하겠다고 미리 연락을 드렸었는데요.”
“아아. 홈페이지로 방문 예약을 잡으신 분이군요. 이쪽으로 앉으시죠.”
바텐더가 테이블 너머의 자리를 권했다. 바텐더의 앞에 앉은 라덴은 바텐더의 얼굴을 노려 보았다.
“어떤 정보를 원하십니까?”
“마오.”
라덴의 입이 열렸다.
“불칸 길드에 소속 된 플레이어. 마오의 위치 정보.”
일 년 전. 아라포니아의 퀘스트를 완수하기 위해서, 라덴은 당시에 흑접과 불칸이 공략하고 있던 세하라의 왕릉에 잠입했던 적이 있었다. 어찌어찌 퀘스트는 완수했었지만, 그때 라덴은 불칸의 길드원인 마오와 싸우게 되었었다.
좋은 기억은 아니었다. 당시 라덴은 레벨이 너무 낮았고, 마오는 검강을 자유롭게 사용하는 고레벨이었다. 마오와의 싸움 도중에 라덴은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서 장비의 특수 스킬에 의존하여 마오와의 싸움에서 도주했었다.
그때 마음 먹었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마오와 다시 싸우겠다고.
“…마오라. 유명한 플레이어죠.”
바텐더가 중얼거렸다.
“죄송하지만 마오에 대한 정보는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그는 최상위 랭커고, 난폭하기 짝이 없는 루카스의 길드 소속이니까요. 고객님이 누군지도 모르는데 마오에 대한 정보를 넘겼다가는…”
“내가 누군지 밝히면, 마오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겠다는 겁니까?”
“…꼭 그런 것은 아닙니다. 고객님이 누구인지에 따라…”
바텐더가 말하는 도중에, 라덴은 손을 들어 올렸다. 그는 머리에 뒤집어 쓰고 있던 투구를 천천히 벗었다. 라덴의 얼굴이 드러나자 바텐더의 입이 멍하니 벌어졌다.
“…투왕?”
“이 정도면 됩니까?”
라덴이 투구를 내려 놓으면서 물었다. 잠깐 머뭇거리던 바텐더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면서 닦고 있던 잔을 내려 놓았다.
“…잠깐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길드장님에게 여쭤볼 테니.”
끝
ⓒ 목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