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econd Coming of Shinken RAW novel - Chapter 197
“이건 또 뭔 일이야?”
샤워를 끝내고 별 생각 없이 웹 서핑을 하던 도중. 김현성은 검색 사이트 메인에 걸린 인터넷 기사를 보고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불칸, 볼트, 헌터즈, 애로우즈, 홀리데이. 다섯 개 길드가 연합하여 흑접의 길드원을 습격하고 있다는 기사였다.
불칸이나 볼트, 애로우즈와는 별 인연 없었지만. 헌터즈와 홀리데이는 김현성과 직접적으로 인연을 맺었었다. 좋은 인연이 아니었다는 것이 문제였지만 말이다. 알라베스 산을 넘었을 적에, 김현성은 헌터즈 길드와 홀리데이 길드와 마찰을 빚었던 적이 있었다.
‘왜 서로 붙어먹어서 흑접을 노리는 거야?’
그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루카스의 랭킹은 5위. 자카이드의 랭킹은 7위. 에클레어의 랭킹은 4위다. 애로우즈의 길드 마스터인 잭헤드도 레벨이 올라, 랭킹 10위가 되었다. 그런 최상위 랭커들이 왜 흑접을 노리는 것일까.
흑접의 길드장인 루아노스는 한국 랭킹 3위다. 그런 루아노스의 레벨은 127. 이 좁은 한국 땅에서야 랭킹 3위의 최상위 랭커이지만, 전체 랭킹으로 치면 50위 권에 턱을 걸치는 정도밖에 안 된다. 루아노스와 흑접이 뭔가 사고를 친 것도 아니고. 최근 루아노스는 시즌 던전을 공략하느라 한창 바쁠 때다.
‘공격할 이유가 없어. 대체 왜 이런 지랄을 벌이는 거야?’
루아노스, 연민서와는 이런 저런 일을 많이 겪었다. 바로 같은 건물에 사는 이웃이기도 하고, 몇 번이나 사적인 자리에서 만난 적도 있다. 연민서의 첫인상에 대해서는 그리 좋은 기억이 없었지만, 그 이후 만남을 이어 오면서 좋지 않았던 첫 만남에 대한 기억은 거의 다 잊었다.
그렇다 보니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친한 사이라고 생각해서 더더욱. 김현성은 쩝하고 입맛을 다시면서 젖은 머리를 손으로 털었다.
“난 괜찮으니까 신경쓰지 않아도 돼.”
반쯤 열린 문 안 쪽에서 연민서가 그렇게 말했다. 그냥 듣는 것으로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연민서의 목소리는 좋지 않았다. 김현성은 아직 덜 마른 머리카락의 끝을 괜히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리면서 말했다.
“누님 목소리 들어보니까 별로 안 괜찮아 보이는데요.”
“어쭈. 내 평소 목소리가 어떤지도 기억하고 있었나 봐?”
“적어도 지금보다는 하이 톤이었죠.”
“나는 잘 모르겠는데.”
“계속 밖에 세워 둘 거에요?”
연민서의 투덜거리는 말을 끊고서 김현성이 그렇게 물었다. 문은 완전히 열려 있지 않았고, 문의 틈으로 연민서의 얼굴으 보이지 않았다.
“화장도 안 했어.”
“난 누님 쌩얼 봐도 별 상관없는데.”
“내가 상관있어, 내가. …신경써주는 것은 고맙지만. 나는 진짜로 괜찮으니까.”
“별로 안 괜찮아 보이는데.”
“그 새끼가 또라이라는건 예전부터 알고 있었어. 그리고 그런 또라이를 상대하는 방법도 잘 알고 있고. 알아? 그런 새끼들은 그냥 무시하면 돼. 내가 별 반응없이 무시하면, 제 풀에 지치고 재미없어서 떨어져 나갈 거야.”
과연 그럴까. 말은 그렇게 하기는 했지만, 연민서는 내심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루카스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놈이 또라이라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지만, 루카스가 벌이는 또라이 짓에는 언제나 마땅한 이유가 있었다.
‘단순한 재미로 공격하는 것은 아니야.’
루카스와 불칸만 움직인 것도 아니다. 헌터즈, 애로우즈, 홀리데이, 볼트. 네 개의 길드를 끌어들여 연합을 만들고, 연합의 길드원들이 모두 흑접을 노리고 있다. 그렇게까지 움직인다면 흑접을 공격하면서 무언가를 얻으려는 것일 터.
그게 대체 뭔지를 모르겠다. 도대체 무엇을 얻기 위해 이런 짓을 벌이는 것인지 감이 안 잡힌다. 흑접이 지금 공략 중인 시즌 던전? 겨우 시즌 던전 하나 뺏기 위해서 다섯 개 길드가 움직인다는 것도 앞 뒤가 안 맞는다.
“…누님.”
“괜찮다고 했잖아.”
김현성이 부르는 말에 연민서가 바로 대답했다. 티를 내지 않기 위해 노력하면서. 술을 꽤 마시기는 했지만 취했다는 느낌은 없다. 다만 속에서 뒤섞이는 복잡한 감정이 문제였다. 짜증, 분노, 서러움, 억울함 등.
“너는 신경 쓰지 마. 진짜로, 부탁할 테니까. …알았어?”
“…누님이 괜찮다면야.”
괜찮지 않다는 것이 뻔히 느껴지는데도. 김현성은 한숨을 삼키면서 대답했다. 저렇게까지 말하면서 밀어내니, 이쪽이 나설 수도 없다. 아니, 나설 수야 있겠지. 하지만 그 뒤에는?
연민서는 자존심이 세다.
“누님이 도와달라고 하면 제가 도와줄게요.”
“괜찮다고 했잖아.”
“나중가면 또 모르는 일이니까.”
“나중에 정 도움이 필요하면 말할게. …됐지? 피곤해서 말이야. 좀 자고 싶거든?”
“알았어요.”
김현성은 입맛을 다시면서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
“잘 자요.”
오후 9시. 잠들기에는 조금 이른 시간이 아닌가 싶었지만, 김현성은 연민서를 더 붙잡지는 않았다.
“당연히 짜증나겠지.”
마실래? 이근성이 캔 맥주를 꺼내면서 물었다. 김현성은 머리를 끄덕거렸고, 이근성이 맥주 두 캔을 양 손에 들고 와 김현성의 앞에 앉았다.
“발할라가 오픈하고서 2년. 소규모 길드 연합의 전례가 없었던 것은 아니고, 길드가 제대로 자리 잡기 전의 초기에는 상위 길드들이 연합하여 던전을 공략하는 일도 있기는 했어. 하지만 전체 랭킹 10위 권 내의 최상위 랭커들의 길드 다섯 개가 연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야.”
이근성이 캔을 따고서 캔 맥주를 입술로 가져갔다. 김현성도 묵묵히 맥주 캔을 땄다.
“그런 전례 없는 일을 벌인 주제에, 놈들이 하는 짓은 뜬금없는 흑접 사냥. 뭔가 노리는 것은 틀림없는데…”
“뭔지 모르는 것이 문제죠.”
“민서도 그래서 여러 가지로 복잡할 거야. 도대체 뭘 노리고 얻어맞는 것인지 모르니까 답답할 수밖에.”
“도와줘야 하는 것 아니에요?”
“화낼 걸.”
캔 맥주를 비우고서 이근성이 입가를 손등으로 닦았다.
“걔 자존심 세거든. 판타지아부터 시작해서 발할라까지. PK를 재미로 삼는 어쌔신 플레이어들을 끌어 모아 흑접을 만들고, 한국 최상위 랭커로 지내던 여자야. 먼저 도와 달라 한 것도 아닌데 괜히 도와주겠다고 나서면, 분명 화낼 걸.”
“…그럼 어떻게 해요?”
“일단 내버려 두는 수밖에.”
쯥. 이근성이 입맛을 다시면서 텅 빈 캔 맥주를 내려 보았다.
“놈들이 뭘 목적으로 저러는 것인지도 모르고 말이야. 게다가 도와주고 싶어도 뭘 어떻게 도와줘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잖아. 최상위 랭커 다섯 명. 놈들이 이끄는 다섯 개의 길드. 그게 무슨 뜻인지, 너도 잘 알잖아?”
“잘 알죠.”
발할라 내에서 레벨이 높기로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다섯 명. 발할라를 즐기는 플레이어 중에서 못해도 5% 안에는 들어갈 상위 랭커 플레이어가 몇 백 명. 그런 놈들이 연민서와 흑접을 압박하고 있는 것이다.
“놈들을 상대로 싸움이라도 걸려고?”
이근성의 질문에 김현성은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조금 맥주를 마셨다.
“아서라.”
짧은 한숨과 함께 이근성이 제지하고 나섰다.
“경우가 다르잖아. 일대일도 아니고. 알라베스 산 때처럼 치고 빠지는 것도 힘들어. 주목도도 다르고.”
“알아요.”
툭. 손끝으로 맥주 캔을 가볍게 두드리면서 김현성은 혀를 찼다.
“누님도 말했어요. 괜찮다고. 신경 쓰지 말라고.”
전혀 그런 느낌이 아니었지만.
김현성은 씁쓸한 기분을 삼켰다.
*
일주일.
백설이 요구했던 조건에 간신히 턱을 걸칠 정도가 될 때까지 걸린 시간이었다. 몸에 두른 호신 강기를 얇게, 얇게 응축한다. 라덴은 식은땀을 흘리면서 제 몸을 내려 보았다. 진한 백색의 강기가 몸을 얇게 두르고 있는 것을 확인하면서, 라덴은 천천히 호흡을 조절했다.
차라리 몸을 직접 움직이는 것이라면 모를까. 이런 식으로 강기의 밸런스를 맞추는 것은 영 라덴에게 맞지 않았다. 일주일 동안 매일 이것을 시도하였지만, 감을 잡은 것은 시작한지 나흘이 된 후였고, 이렇게 안정적으로 강기를 두르게 되는 것에는 이틀이 걸렸다.
‘마법사 직업을 선택하지 않아서 다행이야.’
라덴은 긴장을 유지하면서 생각했다. 마법사는 마나의 배분을 생각하고 마법을 사용해야 한다. 뼛속부터 무투파인 라덴과는 맞지 않는 직업이다.
“…후우.”
호신강기를 유지하면서 몸을 움직여 본다. 강기의 밸런스를 어떻게 잡아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감을 잡았지만, 아직 문제는 넘치도록 남아 있었다. 급박한 전투 상황에서 호신강기를 유지하는 것에 신경을 이리 쓰다가는 정작 중요한 전투 반응이 늦어버릴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고 호신강기에 소홀하자면 그간의 노력이 말짱 도루묵이 되어 버린다.
‘차라리 몸을 움직이는 것이 낫지.’
난이도 높은 허공답보나 무르시엘라고의 망토 변환을 익히는 것에 고생을 하기는 했지만, 어찌어찌 익히기는 했다. 하지만 강기 조절만큼은 도저히 잘 되지 않았다. 굳이 비교하자면 무르시엘라고의 망토 변환에 필요한 이미지의 유지와 비슷하겠지만, 비슷하다고 해도 난이도가 너무 차이가 나버린다.
‘이거 하나만 익숙해져서 될 일도 아니고.’
라덴은 아랫입술을 잘근 씹었다. 일주일. 호신강기의 수련을 하면서, 라덴은 짬짬이 새로 익힌 스킬인 ‘백호 류’가 어떤 스킬인지 확인했다.
시스템 적으로 기존의 백호 무술관 스킬들은 모두 사라졌다. 어디까지나 시스템 적으로. 하지만 라덴은 어렴풋이 이전 백호 무술관 스킬을 어떻게 펼쳐야 하는지에 대해 알고 있었다. 액티브 스킬로 펼치는 것이라고는 해도, 라덴의 몸이 그 동작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백호 류는 그 동작에 위력을 더해준다. 스킬처럼 편하게 쓸 수는 없겠지만, 라덴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라덴의 스킬 목록에 존재하지 않는 이전의 백호 무술관 스킬들을 펼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그것 뿐만이 아니다. 라덴은 자신의 주먹을 내려 보았다.
라덴이 가진 기술 중에서, 보하미르의 엘프인 유성에게 배웠던 ‘회전격’이라는 기술이 있다. 타격의 순간에 공격에 회전을 넣어 위력을 극대화시키는 기술이다. 백설은 라덴의 회전격을 ‘전사경’이라고 말했었다.
회전격은 강력한 위력을 가진 기술이었지만, 액티브 스킬로서 펼치는 백호 무술관의 스킬과 병행해서 사용할 수는 없었다. 시도를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방어를 무시하고 때리는 파쇄권이나 대호격타. 위력을 극대화시키는 호왕진산과 철산포. 무기의 특수 스킬인 용왕격 등. 라덴은 자신의 타격 스킬에 회전격을 더하려고 몇 번이나 시도해 보았지만, 이미 형태가 고정되어 있는 기존의 액티브 스킬에 회전격을 섞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백호 류는 다르다. 백호 류는 액티브 스킬이 아닌 패시브 스킬이다. 라덴이 대호격타를 의식해서 주먹을 내지른다면, 거기에 회전격을 섞는 것이 가능해진다.
백호 류는 그 정도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다. 확실히, 백설이 말한 대로였다. 직관적이고 편한 스킬보다는 당연히 쓰기 힘들겠지만, 그만한 위력은 충분히 보장된다.
“잘 쓸 때의 말이지만.”
라덴은 한숨을 푹 내쉬면서 중얼거렸다. 그 한숨과 함께 라덴의 몸을 덮고 있던 호신강기가 흩어져 사라졌다.
최근 들어 라덴은 이런 저런 생각이 많았다. 게임 속에서도, 현실 속에서도. 머릿속을 떠돌고 엉키게 하는 생각의 중심은,
흑접을 공격하는 다른 길드 연합에 대한 것들이었다.
일주일 동안 길드 연합은 멈추지 않고 흑접의 길드원들을 공격했다. 시즌 던전을 공략 중인 루아노스와 흑접의 주력 멤버들은 공격당하지 않았지만, 도시와 인스턴트 던전, 필드를 떠도는 흑접의 길드원들은 대부분 공격 받아 PK를 당했다. 그런 상황에서 루아노스가 여전히 침묵을 고수하고 있으니 길드 내부에서 불만이 터져 나왔고, 흑접 내에서도 이탈하는 멤버들이 속출했다.
그렇게 괴롭힘을 이어나가면서도 길드 연합의 랭커들은 아무런 입장도 발표하지 않았다. 라덴도 루벡과 함께 걱정스러워서 몇 번이나 루아노스에게 연락을 해 보았지만, 루아노스는 ‘신경 쓰지 말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도와달라고 하면 될 것을.’
라덴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런 중에, 귓속말이 도착했다. 레이크였다.
“예?”
[아, 계시는군요. 다름이 아니라… 류가미님이 라덴님과 만나고 싶다고 해서 말입니다.]
그 말에 라덴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끝
ⓒ 목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