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econd Coming of Shinken RAW novel - Chapter 220
투왕 라덴과 랭킹 10위 이내의 최상위 랭커 다섯. 그들이 덴하우어 근처, 라모르 유적지에서 싸웠다. 라덴은 다섯 랭커 중에서 랭킹 7위인 자카이드와 랭킹 4위의 에클레어를 쓰러트렸고, 랭킹 5위인 루카스에게 패배했다.
그 소식은 발할라에 열광하는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당연히, 한국 내에서도 크게 이슈가 되었다. 실시간으로 방영 된 라모르 유적지의 싸움이 라덴의 죽음으로 마무리 된 이후, 각종 매체에서 김현성에게 인터뷰를 요구했다. 싸움에 관여한 랭커들이 죄다 입을 다물었기에, 한국 내의 매체 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에서도 김현성에게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다.
모두 무시했다. 딱히 할 말도 없었거니와, 좋은 말이 나올 것 같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김현성의 침묵은 결국 또다른 가십거리를 만들어냈다. 각종 매체는 왜 라덴이 이 불리한 싸움을 받아들였는가에 대해 추측하는 것에 바빴고, 인터넷에서는 싸움의 내용으로 설전이 벌어졌다.
사실 김현성에게 나쁜 이야기는 그리 떠돌지 않았다. 저 불리한 조건에서 싸우면서 에클레어와 자카이드를 쓰러트렸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대다수의 사람들은 불리한 싸움을 받아 들이고두 명을 쓰러트린 김현성에게 찬사를 보냈고, 비겁한 싸움을 벌인 랭커들을 비난했다.
김현성이 알 바는 아니었다. 접속 패널티 사흘. 흑백 레아스를 잃은 것에 분노하고, 자신을 죽인 루카스에 대한 대책을 생각할 틈도 없었다.
토요일. 루아노스- 연민서와의 데이트. 비록 술 기운을 빌린 것이라고는 해도, 연민서는 김현성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했었다. 그런 말을 듣고서 데이트를 하게 된 것이다. 김현성은 데이트 경험이 많지 않았다. 게다가 데이트 상대인 연민서는, 한국의 최상위 랭커이면서 모델이었고, 연예인이었다.
“…데이트?”
페페로, 이현지는 평소 김현성과 곧잘 통화를 하곤 했었다. 통화할 때에 그리 대단한 이야기는 나누지 않는다. 그녀는 고등학생이었기에, 전화 중에 하는 말이라고 해 봐야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 재잘거리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현지의 나이는 19살. 수험생이다. 그렇기에 이현지는 최근 발할라에 그리 접속하지 않고 있었다. 부모님이 대학에 가는 것을 원했기 때문이었다. 그 건에 대해서는 김현성이 고등학생일 때의 사정과 비슷했기 때문에, 그를 주제로 이야기도 곧잘 나누곤 했다.
“…그래서, 오빠가. 그… 연민서랑 데이트를 한다고요? 화장품 모델이나 예능 프로그램에 게스트로 자주 출연하는 그 연민서랑?”
[응.]
“…하, 하하하…”
이현지는 헛웃음을 터트리면서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그녀의 앞에는 두꺼운 참고서가 펼쳐져 있었다. 마음 먹고 공부에 집중하려던 판에 이런 쇼킹한 이야기를 듣게 될 줄이야. 아무래도 오늘은 공부를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보고 조언을 해 달라?”
[어… 응. 나는 데이트 경험이 적거든.]
작년에 이현지는 김현성과 현실에서 직접 만났었다. 크리스마스 이브. 연인들이 만나 오두방정을 떨며 염장을 지르는 날. 그 시점에서, 이현지는 김현성에게 두근거리는 감정을 품고 있었다. 그것은 이현지에게 있어서는 첫사랑이었다.
그 이후로 현실에서 김현성과 만난 적은 없다. 김현성이 라덴이라는 것이 밝혀져 유명인이 된 탓이었다. 그렇게 되면서, 이현지는 자연스럽게 김현성에 대한 감정을 접을 수 있었다.
흔히들 하는 말이다.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이현지도 똑같았다.
‘그래도, 이렇게 직접 들으니까 마음이 쓰리네.’
이현지는 한숨을 푹 내쉬면서 의자를 뒤로 기울였다. 너무 멀리 있는 사람이라 생각해서 납득하고 마음을 접었다. 고민 상담을 하면서 친한 오빠 동생 사이로 남으려고 했다. 그런데 이렇게 확인 사살을 꽂을 줄이야.
물론, 김현성은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 그는 단순하게, 궁지에 몰려서. 주변의 아는 여자에게 상담을 요구하는 것 뿐이었다.
“…으음… 저도 경험이 없는데요. 그냥, 어… 그, 있잖아요. 흔히 말하는 데이트 루트? 인터넷에 검색만 해도 나오는거.”
[영화보고 카페가고 밥먹고 야경보고 뭐 그런거?]
“…네. 그런거면 되지 않을까요?”
[상대가 연민서인데?]
그 말에 이현지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상대는 연민서다. 여성 팬과 남성 팬을 두루 갖춘 한국의 스타 랭커. 당장 인터넷에 연민서 이름 세글자만 검색해도 팬클럽 사이트나 연민서가 주요 모델로 활동하는 화장품, 의류 브랜드 사이트가 연달아 떠오른다. 그런 연민서와 데이트하는 것. 그것만으로도 데이트의 난이도가 우주까지 솟아 버린다.
“…패스. 전 모르겠어요. 다른 사람한테 물어보는게 어때요?”
결국 이현지는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데이트?”
다음으로 전화를 받은 것은 새턴, 서아인이었다. 그녀는 런닝 머신의 속도를 줄이고, 목에 걸고 있던 수건을 들어 이마를 타고 흐르는 땀을 닦았다. 운동은 서아인이 게임 외에 가지고 있는 유일한 취미였다.
현재 한국에서 가장 핫한 발할라 여성 유저는 둘이 꼽힌다. 새턴과 알케나. 알케나는 판타지아 시절부터 여고생 랭커로서 유명했고, 새턴은 발할라 투기장에서 1년 전부터 서리여왕이라 불리며 인기를 몰았다. 최근 레벨이 높아져 상위 랭킹에 이름을 올리기 시작하면서, 새턴과 알케나는 갑작스레 스타덤에 오르게 되었다.
자신을 꾸미는 센스가 괴상한 것 뿐이지, 서아인은 미인에 몸매도 좋다. 발할라에서 인기를 끌게 되면서 서아인에게 이런 저런 제의가 찾아왔다. 모델 제의나 공중파나 케이블 예능 프로그램의 출연 제의. 심지어는 그 관련 소속사에서도 연락이 왔다.
물론, 서아인은 그런 쪽에 관심이 전혀 없었기에 관련 제의는 모조리 거절했다. 그렇다고는 해도 서아인은 유명인이다. 지금 당장도 뒤편에서 서아인을 노골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운동도 마음대로 못한다니까.’
차라리 운동기계를 구입해서 집에 두는 편이 나을지도. 서아인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속도를 줄인 런닝머신 위를 걸었다.
“다시 말해봐. 데이트? 무슨 데이트를 말하는 건데.”
그 질문에 김현성이 설명을 시작했다. 설명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졌다. 연민서에게 고백을 받았고, 어쩌다 보니 데이트를 하게 되었다고. 김현성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으면서,
서아인은 미묘한 패배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리 티는 내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서아인이 김현성에게 품고 있던 감정은, 티를 내지 않아도 될 얕은 호감이었으니까.
하지만 서아인 주변에 남자는 거의 없고, 그녀가 이런 식으로 호감을 품게 된 상대는 김현성이 유일했었다. 딱히 고백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고 잘 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그래도, 혹시라도. 가능하다면…
“…나도 데이트 해본 적은 없어.”
서아인은 머릿속을 떠도는 ‘만약’이라는 여지를 지워냈다.
“미안한 말이지만. 나한테 물어봤자 제대로 된 대답은 들을 수 없을 걸.”
[…왜 내 주변 여자들은 다 이런 거야?]
김현성이 탄식을 흘렸다. 그 말에 서아인의 표정이 멈칫 굳었다. 그녀는 런닝머신 위에 올려두었던 물통을 들어 올리며 물었다.
“나 말고 다른 사람들한테도 물어본 거야?”
[아? 어, 응.]
“누군데? …아니, 아니다. 하나만 물어볼게. 그, 알케나. 그 사람한테도 물어봤어?”
[아니. 너한테 물어보고 다음에 물어보려고 했는…]
“그 사람한테는 물어보지 마.”
서아인이 김현성의 말을 자르고 들어왔다.
[어? 왜?]이 새끼는 정말 눈치가 없구나. 서아인은 벌컥거리며 물을 마셨다. 도저히 뛰거나 걸을 기분이 아니었다. 서아인은 런닝머신에서 내려오면서, 이쪽을 힐긋거리며 보는 남자들을 싸늘한 눈으로 노려보았다. 그 시선에 남자들이 움찔 몸을 떨면서 모르는 척 하던 운동에 열중했다. 보란 듯이 중량을 높이고 근육을 과시하는 남자들에게는 안쓰러운 일이었지만, 서아인은 그들에게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실례되는 질문이니까.”
[…실례?]
“응. 실례되는 질문이야. 그러니까, 여자한테는 그런 것을 물어보면 안 돼.”
대충 갖다 붙인 말일 뿐이다. 서아인은 알케나와 함께 일주일 동안 함께 지냈었다. 그리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알케나가 풍기는 분위기는 어느 정도 읽을 수 있었다.
알케나는 김현성에게 마음이 있다. 서아인은 딱히 스스로가 여성스럽다 느낀 적은 없었지만, 이 일에 대해서는 자신이 가진 여자의 감을 확신하고 있었다.
‘나야 문제없지만.’
애초에 성격이 그렇기도 하고, 호감도 얕았고. 결국 그런 식의 자기 위안이라는 생각이 끄트머리에 달렸지만, 서아인은 머리를 흔들어 부정했다.
서아인에게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알케나에게는 문제가 된다. 일주일 동안 함께 다니면서 느꼈다. 알케나는 서아인보다 더, 진하게. 김현성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멘탈이 그리 좋아 보이지도 않았다. 만약 김현성에게 데이트 조언 전화라도 받는다면…
사실 서아인이 신경쓸 바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여자로서의 정이랄까. 아니면 밀려난 패배자로서의 의리? 서아인은 피식 웃으면서 의자에 앉았다.
“뭐, 그렇다고. 알케나한테는 전화로 물어보지 마. 차라리 남자한테 물어보는 것이 어때?”
[…남자?]
“지석이… 는, 안되겠다. 걔도 연애 경험 없거든. 그래. 루벡은 어때?”
루벡. 이근성이라면 제법 그럴 듯한 조언을 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게 낫겠다. 알았어. 그리고… 어… 실례되는 말 해서 미안.] “난 괜찮으니까, 알케나한테나 전화하지 마.”서아인은 다시 한 번 그것을 강조했다. 전화가 끊어지고서, 서아인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녀는 땀에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털면서 눈을 감았다.
‘집에 가자.’
운동할 기분이 아니었다.
*
의도치 않게 여자 두 명의 가슴에 못을 박아버린 김현성은, 서아인의 조언대로 이근성에게 전화를 걸었다. 잠깐 동안 연결음이 이어지고 나서 이근성이 전화를 받았다.
[갑자기 왜 전화야? 방송 출연 결정한 거야?]
이근성이 물었다. 이근성과 연결되어 있는 V-스포츠 관계자들은 김현성의 인터뷰를 원하고 있었다. 김현성은 인터뷰를 할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의 연락을 일방적으로 무시하고 있었고, 결국 그들은 이근성을 통해서 김현성에게 인터뷰 요청을 보내고 있었다.
“그거 안 한다고 했잖아요.”
[어휴. 알았어. 내가 잘 말해 둘게. 그래서, 왜 전화한 건데?]
“…어, 그게요. 제가 내일… 토요일에 민서 누님이랑 데이트를 하기로 했는데.”
[지져스.]
김현성의 말을 듣고서 이근성이 신을 찾았다.
[드디어 그렇게 되었구나. 설마 이런 시기에 될 줄은 몰랐는데. 혹시 그거냐? 루카스 건을 다른 사건으로 묻어 버리려고? 캬, 새끼, 똑똑하네.] “아니아니아니아니. 그런 것이 아니라요. 그런 의도가 아니라 그냥 우연히…”[알았어, 알았어. 그래서. 민서랑 데이트하는게 왜?] “좀 조언해 달라고요. 형, 민서 누님이랑 친하잖아요? 한 몇 년은 알고 지냈죠?”
[그럭저럭 8년 정도 알고 지냈지.] “그러면 민서 누님 취향이나 뭐… 그런 것들 몰라요? 데이트는 하기로 했는데, 내가 누님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어서…”
김현성의 목소리에 간절함이 담겼다. 연민서는 김현성의 센스에 맡긴다고 했지만, 김현성은 도저히 자신의 센스를 믿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갑자기 전화로 물어본 주제에 말이 너무 심한 것 아냐?]
그렇게 말은 했어도 이근성은 조금도 기분이 나빠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진심으로 연민서와 김현성의 데이트 성립에 대해 순수한 축하의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네가 뭘 걱정하는 건지는 알겠는데. 그렇게 걱정 안해도 될 거야. 내가 생각하기에는… 아니, 틀림없이. 민서 걔는, 너랑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떡볶이만 먹어도 좋아할 테니까.] “…그건 아닐 것 같은데. 근거가 뭔데요?”[내가 여태까지 너랑 민서 보고서 느낀 감정이 근거야.]
이근성은 틀림없는 확신을 갖고서 대답했다.
[너무 고민하지 마. 진짜로, 민서는 네가 어디를 데려가도 좋아할 테니까.]김현성으로서는 영 믿음이 가지 않는 말이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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