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econd Coming of Shinken RAW novel - Chapter 245
방어는 세우지 않는다. 상체를 활짝 열었다. 먼저 들어와라. 바보도 알 수 있을 노골적인 도발이었다.
투구를 써라, 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렇게 챙겨 줄 정도로 녹록한 상대는 아니다. 애초에 카사벨라가 입고 있는 것은 턱시도. 쥐고 있는 것조차 바닥에 떨어져 있던 것을 주워 들은 것이다.
‘나를 이길 수 없다, 그렇게 말은 했지만.’
쉬운 상대는 아니다. 라덴은 우두커니 선 카사벨라를 바라보았다. 먼저 와라. 그렇게 말했지만, 카사벨라는 당장은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흠.”
오른 손에 쥐고 있는 검을 가볍게 흔들면서, 카사벨라는 머리를 끄덕거렸다. 이 정도라면 쓸만한 검이다. 기존에 사용하던 것과 비교하자면 영 손에 안 익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선공을 양보해 주신다면야.”
카사벨라는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성큼거리며 라덴에게 다가가갔다. 붕, 붕. 앞으로 걸어오면서 카사벨라는 쥐고 있던 검을 휘둘렀다. 라덴은 여전히 뒷짐을 진 모습으로 카사벨라가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카사벨라의 발이 앞으로 쭉 뻗어졌다.
쏘아진 화살처럼 빠른 찌르기였다. 파앙! 공기가 찢어지면서 구멍이 난다. 라덴은 머리를 옆으로 기울이는 것으로 카사벨라의 찌르기를 피해냈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카사벨라는 당황하지 않았다. 귀 옆을 찌른 검이 그대로 옆으로 움직인다.
라덴의 상체가 크게 뒤로 젖혀졌다. 카사벨라가 휘두른 검이 라덴의 가슴을 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갔다. 거기서 다시 검의 움직임이 바뀐다. 횡으로 휘둘렀던 검이 꺾이면서 대각선으로, 라덴의 허리를 노린다.
‘흠.’
뒤로 넘겼던 라덴의 손이 올라온다. 활짝 펼친 손이 대각선으로 내리 꽂히던 검을 더 아래로 내리 누른다. 파각! 카사벨라가 휘둘렀던 검이 라덴의 발 바로 옆 바닥에 꽂힌다.
“호.”
카사벨라가 놀란 소리를 냈다. 설마 이렇게 걷어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모양이다. 라덴은 기울였던 상체를 바로 세워 균형을 잡고선, 카사벨라를 향해 활짝 펼친 왼 손을 뻗어 낸다. 얼굴로 다가오는 손. 카사벨라는 미련없이 검을 놓고서 물러섰다. 파앙! 라덴의 손바닥이 허공을 때렸고, 뒤로 크게 물러선 카사벨라는 텅 빈 양 손을 들어 올렸다.
노린 것일 테지. 카사벨라의 발 옆에는 데라드가 떨어트렸던 검이 뒹굴고 있었다. 카사벨라는 발끝으로 검을 위로 튕겨 올려 허공에서 검을 낚아 쥐었다.
이번에는 라덴이 먼저 움직였다. 라덴은 카사벨라와의 거리를 좁히며서 활짝 펼친 손을 카사벨라의 가슴으로 내질렀다. 카사벨라의 상체가 휘청거리더니 옆으로 돌아간다. 카사벨라의 몸이 그대로 회전하면서, 라덴의 허리를 향해 검을 휘두른다. 닿지 않는다. 카사벨라의 검이 움직였을 때, 라덴도 함께 움직였다.
카사벨라는 아쉬워하지 않았다. 그는 쥐고 있는 검을 확인했다. 평범한 검. 길이는 확인해 두었다. 평소 쓰던 것과 달라 거리감이 익숙하지 않았지만, 방금 전에 한 번 휘두른 것으로 거리감에는 적응했다.
‘그래도.’
카사벨라는 쯧하고 혀를 찼다. 쥐고 있는 검의 끝에 새파란 강기가 어린다. 파바박! 섬전과도 같은 찌르기가 라덴을 덮친다. 라덴은 피하지 않았다. 정면으로 들어오는 검끝을 보면서, 라덴의 양 손이 위로 올라간다.
라덴의 손과 카사벨라의 검이 허공에서 부딪혔다. 타다다닥! 검과 손이 닿는 소리라기보다는, 달군 기름판에 콩을 볶는 것 같은 소리가 이어졌다. 몇 십 번의 찌르기에 몇 십 번의 손바닥이 대응한다.
“…음.”
카사벨라가 뒤로 물러섰다. 그는 자신이 쥐고 있는 검을 보면서 작게 혀를 찼다. 날카롭게 세웠던 검 끝은, 지금은 뭉툭하게 변해 있었다. 라덴은 손에 묻은 쇳가루를 털어내면서 물었다.
“검이 무르네요.”
“귀 경이 너무 단단한 것이오.”
“그런가?”
라덴은 히죽 웃으면서 대답했다. 카사벨라는 한숨을 내쉬면서 쥐고 있던 검을 떨어트렸다.
“여기까지 하겠소. 더 이상 싸워 보았자, 내가 이길 수는 없을 터이니.”
“포기가 너무 빠른 것 아닙니까?”
“승패가 확실한 싸움을 이어나가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오. 하물며 명예가 걸려 있지 않은 싸움이라면 더더욱. 나는 이미 이 싸움의 승패와는 상관없이, 내가 속한 로얄 나이트의 명예를 약속받았소. 내가 목숨을 걸 필요는 없다는 말이지.”
카사벨라는 심드렁한 어투로 말하면서 양 손을 들어 올렸다.
“또한. 나는 귀경을 이길 수 없음을 인정하는 바이오. 그런 내가 그대와 계속해서 싸울 이유가 어디에 있단 말이오?”
“제대로 실력도 보여주지 않았으면서.”
라덴은 히죽 웃는 얼굴을 하고서 말했다. 라덴은 카사벨라가 본 실력의 3할도 보여주지 않았음을 알고 있었다.
“내가 본 실력을 냈다고 한들, 결과는 바뀌지 않았을 것이오.”
라덴의 말을 듣고서 카사벨라가 머리를 흔들었다. 이것은 겸손이 아닌 진실이었다. 라덴의 말대로, 카사벨라는 본 실력을 보여주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라덴도 마찬가지였다. 카사벨라는… 자신이 이길 수 없음을 너무나도 확실하게 인정하였다. 자신이 전 실력을 낸다고 해도 라덴을 이길 수는 없다. 아니, 과연… 곤란하게나 만들 수 있을까? 카사벨라의 눈썹이 찡그려졌다. 카사벨라는 로얄 나이트 소속이다. 황족을 바로 곁에서 보호하는 기사. 제국에서 가장 중요하고 고귀한 존재가 황족이니, 그런 황족을 수호하는 로얄 나이트는 제국에서 가장 강한 기사들로만 이루어져 있다.
카사벨라가 비록 로얄 나이트에서 서열 28위밖에 안 된다고는 해도. 그것은 로얄 나이트에 소속된 기사들이 지나치게 강한 것이지 카사벨라가 약한 것은 아니다. 당장 카사벨라만 하여도 어지간한 귀족의 기사단 하나 쯤은 무리없이 몰살시킬만한 실력자다.
그런 카사벨라였지만… 모르겠다. 끝을 알 수가 없다. 카사벨라는 자신의 앞에 서있는 라덴을 보면서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전력을 다한다고 하여도, 저 남자의 끝을 알 수 없을 것 같았다.
‘차이가 너무 커. 플레이어… 이 정도의 강함이란 말인가.’
“…하나 물어봐도 되겠소?”
결국, 호기심을 이기지 못한 카사벨라가 라덴을 향해 질문했다.
“당신은 플레이어 중에서 얼마나 강하오?”
“흠.”
카사벨라의 질문에 라덴은 잠깐 멈칫거릴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강한가. 라덴은 랭킹 1위인 레이크를 쓰러트렸다. 하지만 루카스에게는 패배했다. 비록 루카스와의 싸움 자체가 라덴에게 아주 불리한 상황이었다고는 해도.
라덴이 루카스에게 패배했다는 사실 자체는 사라지지 않는다.
“제일.”
하지만. 라덴은 그렇게 대답했다.
“…그렇군. 알겠소. 당신이 플레이어 중에서 제일 강하다라. 확실히, 그럴 만하다고 생각되오.”
카사벨라는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는 라덴을 향해 살짝 목례를 하였다.
“좋은 싸움이었소.”
그 말을 마지막으로, 카사벨라는 더 이상 라덴에게 말하지 않았다. 벨레로크 후작은 뻣뻣하게 굳은 얼굴을 하고서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카사벨라를 노려보앗다. 거창하게 소개를 하였는게 결과가 이 꼴이다. 물론, 결투가 시작되기도 전에 카사벨라는- 자신이 라덴을 이길 수 없음을 먼저 말하였지만. 벨레로크 후작으로서는, 그것이 그냥 겸손을 보이는 것이라고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정말로 이렇게 되어 버렸다. 싸움은 길지 않았다. 길지 않은 만큼, 결과도 허무했다.
“카사벨라 경.”
“미리 말씀드렸을 것입니다. 벨레로크 후작님.”
벨레로크 후작의 부름에 카사벨라가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제가 이길 수 없는 상대라고. 지금이라도 물러서는 것이 저나 후작님의 명예를 챙길 수 있는 상책이었습니다.”
“명예? 명예는 무슨…!”
“싸움이 3분만 더 계속되었어도, 저는 아까 전의 두 기사와 같은 꼴을 당했을 겁니다. 그것은 그리… 유쾌한 모습은 아니지 않았습니까?”
그 말에 벨레로크 후작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입술이 터지고, 코가 주저앉고. 꼴사나운 비명을 지르면서 나뒹굴던 두 명의 기사. 카사벨라의 말 대로다. 만약 카사벨라가 그런 꼴이 되었더라면… 벨레로크 후작은 빠득 이를 갈면서 머리를 끄덕거렸다.
‘그러게. 왜 부탁하지도 않은 짓을 하면서 나댄 거냐?’
카사벨라는 다른 귀족들의 시선을 무시하고서 샴페인을 들이키는 벨레로크 후작을 보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애초에 카사벨라가 이 파티에 참가하게 된 것은 벨레로크 후작이 고집을 부렸기 때문이다. 귀족과 접점을 갖지 않는 로얄 나이트. 그 로얄 나이트 소속인 카사벨라와 만남을 가졌고, 로얄 나이트와 모종의 관계를 형성했다는 것을 다른 귀족들에게 티를 내고 싶었던 것이겠지. 그러니 이와 비슷한 일이 일어날 것임은 카사벨라도 예상했었다.
결투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는 예상했었다. 다만, 카사벨라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자신이 이런 식으로 패배하는 그림이었다.
‘알크레토 후작의 기사… 강해. 알크레토 후작이 서량에서 직접 데리고 왔다기에 흥미는 가지고 있었는데. 설마 저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을 줄이야.’
이것은 묻혀 둘 일이 아니다. 자존심과 명예가 꽤나 실추되기는 하겠지만, 일단 로얄 나이트 쪽에 알려야 한다.
“수고했네.”
알크레토 후작은 다가오는 라덴에게 샴페인 잔을 건네주었다. 라덴은 알크레토 후작이 건넨 샴페인 잔을 받고서, 그것이 물이라도 되는 냥 꼴깍꼴깍 들이켜 버렸다.
“…아는가? 자네가 물처럼 마신 그 샴페인. 한 잔의 가격이 수도의 평민이 한 달은 일해서 버는 돈값을 한다는 것을?”
“뭐 어떻습니까? 제 돈으로 마시는 것도 아닌데.”
라덴은 입맛을 쩝 다시면서 알크레토 후작을 향해 빈 잔을 내밀었다. 알크레토 후작은 헛웃음을 흘리면서 라덴의 잔에 다시 샴페인을 부어 주었다.
“어땠나? 로얄 나이트는.”
“강하던데요. 확실히. ‘기사’라고 할 만한 강함이었어요.”
“하지만 자네가 이기지 않았나.”
“제가 이겼다고 해서 상대가 약하다는 것은 아니죠. 카사벨라 경은 강했습니다. 내가 그보다 몇 십 배는 강했을 뿐이지만.”
자신감이 넘치는 말이었지만 사실이었다. 알크레토 후작은 그런 라덴의 말을 그리 싫어하지 않았다. 이유 있고 증명 된 자신감 아닌가.
“왜 로얄 나이트가 벨레로크 후작과 만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덕분에 주목은 충분히 받게 되었군.”
알크레토 후작은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연회장을 빙 둘러 보았다.
“하나 묻지. 자네. 여자는 좋아하나?”“…예?”
“여자를 좋아하냐고 물었네.”
“무슨 뜻으로 하는 말입니까?”
“혹시 모르는 일 아닌가. 자네가 혹시, 여자보다는 남자를 더 좋아한다거나. 아, 물론. 그것은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아. 수도 귀족은 온갖 종류의 취향을 나눠 가지고 있거든. 찾아 본다면 자네 같은 남자를 좋아하는, 그런 귀족도 있기는 할 거야. 다행스럽게도 자네는 그리 못난 얼굴이 아니니까.”
“잠깐… 잠깐만요. 후작님. 저는 남자 안 좋아하는데요. 여자가 좋은데요.”
“그래? 그렇다면 더 잘 됐군.”
알크레토 후작이 머리를 끄덕거렸다.
“귀족 작위를 얻기 가장 쉬운 방법 중 하나일세. 여자 귀족과 혼인하는 것. 어떤가? 마침 이 살롱에는 많은 여자 귀족들이 와 있네. 귀족가의 딸, 남편을 잃은 미망인 등. 취향 것 골라잡아 보게. 마침 저들도 자네에게 상당한 관심을 보이고 있으니까.”
그 말에 라덴은 질색하면서 알크레토 후작이 보던 방향을 보았다. 모여 있던 여자 귀족들이 이쪽을 노골적으로 보면서 방긋거리며 웃고 있었다. 알크레토 후작이 말했던 대로 연령대도 다양했다. 스물도 안 되어 보이는 젊은 영애부터, 라덴과 비슷한 나이로 보이는 처녀들, 그리고 성숙한 귀부인들까지.
“…안 됩니다.”
라덴은 그들에게서 시선을 때고서 머리를 흔들었다.
“저는 사귀는 사람이 있습니다.”
“호오. 그런가?”
“네.”
“오는 여자 마다하지 않는 것이 남자라고 하는데.”
“전 아닙니다.”
라덴이 진지한 표정을 하고서 알크레토 후작을 보았다.
“전 지금의 여자친구를 사랑하거든요.”
“…음. 내가 자네의 발언에 감동이라도 해야 하나?”
알크레토 후작이 라덴의 진지한 눈을 마주 보면서 슬며시 물었다.
“아뇨.”
라덴은 괜히 민망해져서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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