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econd Coming of Shinken RAW novel - Chapter 28
028/ 게리안의 둥지-3
뒤통수가 근질거렸다.
라덴은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면서 앞으로 걸었다. 게리안의 둥지에 들어오고서 한 시간. 송곳부리를 40마리 정도 잡았고, 억센 깃털은 21개를 더 모았다.
송곳부리 66/150
억센 깃털 30/100
돌파 속도는 결코 느린 편이 아니다. 라덴의 스킬은 대부분이 체력을 소모하는 것이었고, 마력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유일하게 마력을 소모하는 기공술은 체력 변환 스킬로 마력을 충당할 수 있는데다가, 송곳부리를 상대로는 기공술을 쓸 필요도 없다.
줄어드는 체력은 유혈 특성으로 커버한다. 덕분에 지금 라덴의 체력은 전혀 줄지 않아 그대로였다. 다만 신경쓰이는 것은 무기의 내구도와,
뒤에서 따라오는 걸음소리.
한 시간 동안 여자 넷은 적당한 거리를 두고서 라덴의 뒤를 졸졸 따라오고 있었다. 사냥을 방해하는 것도 아니고, 단순히 따라오기만 할 뿐이다.
‘확, 시비를 걸까.’
직접적으로 피해는 주고 있지 않지만, 누가 뒤를 따라오고 있다는 것은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라덴은 부글거리는 속을 삭히면서 뒤를 힐긋 보았다. 라덴을 따라오는 여자 넷은 뭐가 그리 재밌는지 서로 키득거리면서 잡담을 떨고 있었다.
‘대체 왜 따라오는 거야?’
저들을 움직이게 하는 이유는 별 것 없었다. 흥미와 심심함이다. 로일은 혀를 내두르면서 작은 목소리로 소곤거렸다.
“레벨 40은 훨씬 넘어 보이는데. 그렇지?”
“무슨 이름을 계승받은 걸까? 쓰는 스킬들 보면 극딜러 쪽인 것 같은데. 베이직 클래스를 권투가로 하고서.. 그렇지?”
“발도 엄청 빨라. 나 저렇게 공격 다 피하는 플레이는 처음 봤어.”
로일과 사켄, 아올이 소곤거리는 말을 들으면서 페페로는 눈을 빛내며 라덴의 등을 보았다. 레벨이 낮기는 했지만, 페페로가 보기에도 라덴의 움직임은 대단했기 때문이다.
얼마 가지 않아서 갈림길이 나왔다. 라덴의 걸음이 멈추었다.
게리안의 둥지에서 갈림길은 하나밖에 없다. 애초에 이 던전은 초기에 오픈 된 저 레벨 던전이다. 그러다 보니 길은 복잡하지 않다. 여기서 오른 쪽으로 간다면 바로 보스 몬스터인 게리안을 만날 수 있고, 왼쪽으로 간다면 게리안 대신에 더 많은 송곳부리와 조우할 수 있게 된다.
라덴은 장비의 내구도를 확인했다. 호령환의 내구도가 절반 가까이 줄어 있기는 했지만, 게리안을 잡을 때까지는 충분히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기왕 여기까지 온 거, 게리안 얼굴은 한 번 봐야지.’
결정을 내렸다. 성공하든 실패하든 일단 게리안 쪽으로 간다. 일단 해 보고, 안되면 죽어라 튄다.
“언제까지 따라 올 겁니까?”
문제는 뒤에서 따라붙는 여자들이다. 라덴은 미간을 잔뜩 찡그리고서 뒤를 돌아보았다. 그 말에 로일은 어설픈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했다.
“그게..”
“게리안의 둥지는 일직선이잖아요?”
대답한 것은 아올이었다. 그녀는 앞으로 나서면서 침착한 얼굴로 라덴을 바라보았다.
“그렇다 보니 당연히 동선이 겹치죠. 먼저 와 계셨던 것은 아저씨니까, 양보를 위해서 뒤로 빠져있던 것 뿐이에요.”
“..아저씨?”‘
아올이 하는 말에 라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꽉 쥔 주먹이 부들거리며 떨렸다.
“내가 왜 아저씨입니까?”
라덴의 나이는 22살이다. 라덴은 자신이 아저씨라고 불릴 나이나 외모는 절대 아니라고 생각했다.
“초면인데 오빠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
아올은 물러서지 않고서 말했다. 아저씨이니 오빠니 하는 문제는 접어 두고, 아올이 한 말은 이치에 벗어나지는 않았다. 그녀의 말대로 게리안의 둥지는 일직선이다. 당연히 동선이 겹칠 수밖에 없다.
“..그래, 뭐.. 좋아요. 일직선이니까 어쩔 수 없지. 그래서, 이 다음은?”
라덴은 손을 들어 뒤를 가리켰다. 두 갈래로 갈라진 갈림길을 보고서, 라덴은 눈을 가늘게 뜨고 아올을 노려 보았다.
“여기는 갈림길인데요. 어디로 갈 생각입니까?”
“아저씨는요?”
아니 왜 끝까지 아저씨야? 라덴은 울컥하고 솟는 감정을 삭히면서 대답했다.
“게리안 쪽으로요.”
“저희도 게리안 잡으려고 가는데요?”
아올은 물러서지 않고 대답했다. 그 말에 라덴의 얼굴이 싸늘하게 식었다. 뚜둑. 옆으로 꺾은 목에서 소리가 났다.
“게리안은 한 마리고, 그쪽 파티랑 저는 둘인데.”
“아저씨가 저희 파티 가입하면 되겠네요.”
“파티 가입할 생각은 없고. 괜히 보스 뺏기고 싶지도 않고. 뒤통수 맞고 싶지도 않은데.”
차라리 여기서 깔끔하게 다 죽이고 가는 편이 나을까. 아올은 바뀐 라덴의 얼굴을 보고서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죠. 저희는 반대쪽으로 갈게요.”
“뭐? 왜?”
곁에 있던 로일이 놀란 소리를 냈다. 그 말에 아올은 발을 들어다가 로일의 발등을 내리 찍었다. 로일이 꺅하는 비명을 질렀다.
“그럼 저야 좋죠. 괜히 서로 얼굴 붉히지 맙시다.”
라덴은 그렇게 말하고서 보란 듯이 몸을 돌렸다. 그리고는 갈림길의 오른쪽으로 들어갔다.
“왜 반대쪽으로 가겠다고 한 거야? 저 아저씨한테 쩔 받으려는 것 아니었어?”
“너 진짜 눈치없다.”
씨근거리는 로일의 말에 아올이 혀를 차면서 말했다. 아올은 멀어지는 라덴의 등을 힐긋 보았다.
“거기서 더 버텼다면, 저 아저씨가 우리 다 죽이려고 했을 걸.”
“뭐? 우리를 왜 죽여?”
“당연하잖아. 보니까 레벨도 높고, 보스 솔킬냈다는 업적을 따려고 온 것 같은데.. 우리가 괜히 방해했다가는 업적도 못 따고 시간만 버리잖아. 그걸 왜 두고보겠어? 차라리 우리 다 죽이고 가는게 훨씬 편하지.”
“..우리는 네명이잖아.”
페페로가 슬쩍 목소리를 높였다. 그 말에 아올은 머리를 가로저었다.
“쪽수가 문제가 아니야. 우리 네명이서 덤볐어도 몇 분도 못 버텼을 걸. 내가 보기에, 저 아저씨는 못해도 레벨이 50이 넘어. 어쩌면 60일 지도 모르고. 그 정도 레벨이면 탱커인 나 빼고, 너희는 다 스킬 한 번에 죽어버릴 걸?”
아올의 말은 대체로 맞았지만, 결정적으로 하나가 틀렸다.
라덴의 레벨은 50이 아닌 20이었다.
‘따라오는 것 같지는 않고.’
라덴은 뒤를 쓱 돌아보았다. 무게 잡고 한 협박이 먹힌 것일까. 여자 네 명은 더 이상 따라오지 않았다.
사실 죽일 용의는 충분히 있었다. PK에 대한 거부감도 없고, 상대가 여자라고 해도 주저할 마음도 없다. 방해가 된다면 죽인다. 애초에 게임이니까 죽인다는 것이 큰 의미를 갖지도 않는다.
그냥 기분이 더러울 뿐이지.
던전에 입장했을 때 라덴의 레벨은 19였지만, 송곳부리를 잡으면서 레벨이 올라 20이 되었다. 라덴은 상태창을 확인하면서 씩 웃었다. 스탯의 분배는 이미 끝냈다. 라덴은 레벨이 오를 때마다, 항상 스탯은 힘에 3을 주었고 민첩과 체력에는 1씩 투자했다.
호령환의 장비 레벨은 아직 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 대신,
폭혈暴血
공격한 횟수에 따라 ‘광란狂亂’ 수치를 얻습니다. 광란 수치는 5까지 중첩되며, 각 중첩 당 추가 공격력을 얻습니다. 광란 수치가 5중첩이 되었을 때 광란 중첩과 체력의 절반을 소모하여 특수 스킬 ‘광폭狂暴’을 발현할 수 있습니다.
라덴의 입 꼬리가 쭉 찢어졌다. 드디어 고유특성 중 하나가 더 개방되었다. 폭혈. 설명만으로는 뭔지 감이 잘 잡히지 않았지만, 이것 하나는 확실했다.
‘이것도 중첩형이네.’
라덴이 가지고 있는 공격 스킬 중에서 중첩형 스킬은 두 가지다. 질풍연각과 맹호박투.
중첩형 스킬이란, 말 그대로 공격을 중첩시키면서 위력을 강화하는 스킬이다. 질풍연각과 맹호박투는 첫 타격부터 해서 공격을 거듭할수록 속도와 위력이 증가한다.
폭혈 역시 마찬가지다. 공격 횟수에 따라 광란 수치를 얻는다는 말이 조금 애매했고, 5중첩에서 중첩과 체력을 소모하면서 펼치는 특수 스킬 광폭이 무엇인지 잘 감이 오지 않았지만. 꼭 광폭을 사용할 필요 없이, 중첩만 잘 끌고 가도 늘어난 데미지를 유지할 수 있다.
‘중첩 뿐만이 아니지. 공격력 버프 스킬도 가지고 있잖아.’
허허실실에 기공술. 기공술을 펼치고, 허허실실을 펼치고, 질풍연각과 맹호박투를 중첩시킨다. 그때의 라덴의 공격력은 송곳부리를 일격에 절명시킬 정도로 크게 부풀어진다.
‘여기에 광란 중첩까지 가면.. 오우야.’
라덴의 어깨가 부르르 떨렸다. 광란 중첩이 공격력을 얼마나 뻥튀기시켜 줄지는 모르겠지만, 고유 특성으로 얻은 자신만의 스킬인 만큼 많은 기대가 되었다.
‘허허실실은 상당히 좋은 스킬이고, 유혈도 그래. 포식감지도 좋고.’
그리고 섭식.
힘 72(+27) 민첩 48(+21) 지력 10(+10) 체력 47(+17) 마력 10(+10)
섭식은 쓰러트린 몬스터의 힘을 일부 빼앗는다는 특성이다. 15에서 레벨을 5 올리면서, 라덴은 섭식 특성으로 힘 스탯을 2 더 올리고 민첩 스탯을 1, 체력 스탯을 2 더 올렸다.
‘섭식으로 얻은 추가 스탯만 해도 레벨이 1 올린 것이랑 똑같아.’
라덴은 자신이 계승한 ‘짐승의 마왕’이라는 이름의 컨셉이 어떤 것인지 확실히 감을 잡았다.
이 캐릭터는 기본적으로 딜탱이다. 하지만 특정 상황이 된다면 폭발적으로 딜을 넣는 누커가 되기도 한다. 유혈 특성은 특정 상황에서 미친 듯이 체력 회복 속도가 오르고, 허허실실에 광폭 특성까지 붙어 있으면 데미지도 꿀리지 않는다.
‘게다가 섭식으로 인한 스탯 수급. 이게 대박이지.’
레벨을 올리지 않고, 아이템을 착용하지 않고도 스탯을 올릴 방법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대박이다. 레벨이 높아질수록 레벨을 올리기 힘들고, 추가 스탯이 붙은 아이템은 입이 벌어지도록 비싸니까. 그런데 고유특성이 스탯 성장이라니! 라덴은 히죽이죽 웃으면서 앞으로 걸어갔다.
‘나한테 잘 맞는 캐릭터야. 과연. 오딘이 뇌파를 스캔해서 적합한 이름을 계승시킨다더니.. 내 성향이랑 딱 맞는 캐릭터가 나왔군.’
이런 스킬이라면 아이템과 레벨의 차이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공격력 버프를 걸고 중첩시키면서 부풀린 공격력에, 성장시킨 스탯. 늘어난 체력 회복. 솔로 플레이 성향이 짙은 라덴에게는 더할나위 없는 스킬들이다.
‘여기에 좋은 아이템까지 낀다면 완벽하지.’
라덴의 걸음이 멈추었다. 구불구불한 길이 끝나고, 널찍한 공동이 라덴의 앞에 펼쳐져 있었다. 라덴은 바닥에 수북하게 쌓인 잔가지들을 보았고,
공동 한 가운데에 웅크리고 있는 거대한 괴물을 보았다.
게리안은 두 개의 머리를 가진 거대한 새다. 저 괴물은 이 둥지에 득실거리는 송곳부리의 어머니이자 아버지이고, 그들이 받드는 여왕이자 왕이었다.
‘머리 두 개 달린 새인데, 왜 새끼는 새 대가리 달린 사람인거야?’
라덴은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하면서 게리안에게 다가갔다. 게리안은 두 쌍의 눈을 모두 감고서 작은 숨소리를 내고 있었다. 라덴은 발 소리를 최대한 죽이고 게리안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간신히 주먹이 닿는 거리에서. 라덴은 움켜 쥔 주먹을 뒤로 젖혔다. 허허실실과 기공술을 썼다. 그렇게 최대한 공격력을 부풀린 뒤에,
대호격타가 게리안의 몸뚱이를 때렸다.
게리안의 눈들이 번떡 뜨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