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econd Coming of Shinken RAW novel - Chapter 293
교주가 환룡과 격돌하였을 때. 혼망은 마론드에 도착했다. 그리 오랜 시간은 걸리지 않았다. 황혼의 본거지가 마론드 바로 근처였기 때문이다.
혼망의 대원들을 이끄는 대주는 활짝 열린 성문으로 들어갔다. 누구 하나 대주와 혼망의 대원들을 가로막지 않았다. 마론드는 이미 황혼의 수중에 떨어진 도시였다. 마론드 뿐만이 아니다. 키아미르, 베로니카, 데나비스, 록산, 부슈뢰트, 마론드. 이렇게 여섯 개의 도시는 황혼의 지배를 받고 있다. 지금까지 황혼은 전면으로 나서지 않고 도시를 암중에서 주무르는 것에 그쳤지만, 이제부터는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
제약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플레이어를 찾아라.”
대주가 명령했다. 그 명령을 듣는 것은 혼망의 대원들 뿐 만이 아니었다. 마론드의 영주는 황혼의 신도다. 영주뿐만이 아니라 영주의 기사, 도시의 경비병, 그리고 도시의 모든 NPC가 황혼의 말에 복종한다.
사람들이 앞 다투어 달려 나갔다. 플레이어를 찾기 위함이다. 이곳에 있는 플레이어의 숫자에 대해서는 파악해 두었다. 오늘 영지 감찰관의 자격으로 도착한 제페르 백작. 그가 데리고 온 백 명의 기사가 모두 플레이어다.
그들뿐만이 아니다. 제페르 백작과는 상관없는… 다른 플레이어들도 숨어 있다. 멜슨 자작의 뒤를 쫒아 온 놈들이었다.
“뭐, 뭐야?!”
제페르 백작은 갑작스러운 습격을 받았다. 마론드의 영주가 제공해 준 저택에서 묵던 도중 습격을 받은 것이다. 닫힌 문을 뜯어내고서 들어온 것은 혼망의 대주였다. 그는 싸늘하게 식은 눈으로 침대 위에서 몸을 일으키는 제페르 백작을 바라보았다.
대주의 손이 들렸다. 그는 제페르 백작의 처우에 대한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마론드로 가서 귀찮은 문제를 처리하라는 이야기만 들었을 뿐. 제페르 백작은 감찰관으로 오기는 하였지만, 이곳에 벌어지는 정확한 일들에 대해서는 알고 있지 못한다. 제페르 백작은 플레이어가 아니다.
만약 이곳에 온 것이 혼망이 아닌 적야였다면, 제페르 백작을 세뇌한다는 방법을 선택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안타깝게도 이곳에 온 것은 적야가 아닌 혼망이었다. 그는 망설임없이 손을 휘둘렀다. 쓰걱! 제페르 백작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수도 명문 제페르 가문의 가주. 그런 거물의 죽음이었지만 비명 소리 하나 터져나오지 않았다. 대주의 출수는 제페르 백작이 반응하여 비명을 지르기에는 너무나도 빨랐다. 제페르 백작의 머리가 침대 위로 떨어져 데굴 구르고, 뒤늦게 터져 나온 피가 침대보를 시뻘겋게 물들였다.
제페르 백작을 죽이고 나서 대주는 몸을 돌렸다. 다른 플레이어들을 처리하기 위함이었다. 그들은 혼망의 대주가 이곳까지 침입해 있었음에도 나오지 않고 있었다. 무능해서… 라기 보다는, 자신들이 모시고 있는 제페르 백작에 대해 큰 충성심을 갖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루카스는 자신의 방에 얌전히 앉아 있었다. 그의 감각은 짐승처럼 예민하다. 바로 옆에 있는 제페르 백작의 방에 누군가가 침입했음은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나서지 않았다. 짐승다운 감각이었다. 상대는 자신보다 강하다. 루카스는 그에 대해서 확신을 끝냈다. 자신이 나선다고 해서 제페르 백작을 구할 수는 없을 것이다. 구하고 싶지도 않았다.
문이 열렸다.
루카스는 말없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 방문자를 바라보았다. 혼망의 대주는 동요하지 않고 있는 루카스의 얼굴을 보고서 두 눈에 이채를 띄었다.
“왜 도망치지 않나?”
“도망쳐봐야 의미가 없을 것 같아서.”
상황이 좋지 않았다. 대부분의 연합 플레이어들은 로그아웃한 상태다. 사실, 루카스도 로그아웃을 하려고 했었다. 만약 대주가 이곳을 찾아오는 것이 조금만 더 늦었어도, 루카스는 대주와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포기가 빠르군.”
대주는 그렇게 말하면서 루카스에게 다가갔다. 루카스는 다가오는 대주를 보면서 입 꼬리를 씰룩거리며 올렸다.
“투항하고 싶은데.”
“…투항?”
대뜸 루카스가 뱉은 말에 대주가 미간을 찡그렸다.
“너는 내가 누구인지 아는 거냐?”
대주가 물었다. 그는 루카스가 누구인지는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냥, 플레이어라는 것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대뜸 투항이라니. 대주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헛웃음을 흘렸다.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투항하고 싶다고?”
“괜히 싸울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뿐이야. 마침 내가 모시는 귀족 나으리도 뒈지셨고… 주인을 새로 고르기에 딱 좋은 때라고 생각하는데.”
물어라. 루카스는 혼망의 대주를 보면서 생각했다. 제페르 백작이 죽었다. 제페르 백작과의 의리를 따질 생각은 없다. 저들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제국의 백작을 거리낌 없이 죽여 대는 것을 보면, 그만한 힘을 갖춘 세력일 것이다.
“우리는 황혼이다.”
망혼의 대주가 입을 열었다. 그 말에 루카스의 입 꼬리가 움찔하고 떨렸다. 황혼. 스토리 퀘스트에서 등장하는 ‘적.’
“상관없어.”
루카스는 히죽 웃으면서 대답했다. 루카스는 대주의 얼굴을 물끄러미 보았다. 루카스는 플레이어다. 황혼의 적은 플레이어다. 죽여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였을 때, 대주는 머리를 가로 저었다.
투항하는 상대를 어찌해야 할 지에 대해서는 교주에게 듣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주는 마음 속으로 교주를 찾았다.
“플레이어?”
교주는 망혼 대주의 부름에 대답해 주었다. 그는 조금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머리를 갸웃거렸다. 마론드에 가있는 플레이어의 투항에 대해서는 듣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쁜 일은 아니로군.’
플레이어를 완전히 배척해서는 안 된다. 알라베스 산 너머로 보낸 암검과 적야에게는 보이는 플레이어를 모두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기는 했지만, 그런 짓을 한다고 해서 플레이어가 말살되는 것은 아니다. 죽인다고 해도 사흘이 지나면 플레이어는 부활한다.
그렇다면 그 후에도 계속 플레이어를 죽이는 것을 반복해야 하는가? 그것을 반복하다 보면 틀림없이 제재가 들어온다. GM들이 그런 일을 묵과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플레이어를 끌어 들인다. 플레이어의 투항을 받아주고, 놈들을 아래로 둔다. 즉, 황혼의 발호를 하나의 스토리 이벤트로 만드는 것이다. 황혼의 적이 될 것인가, 황혼의 아래로 들어 올 것인가. 플레이어를 깊이 연관시키게 되면 GM도 과격한 제재를 가할 수는 없을 것이다. 롤백에는 큰 위험이 따른다.
‘지켜 볼 여지를 주는 것이 중요해.’
너무 과하게 나간다면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롤백하려 들겠지. 교주의 입장에서는 그것도 나쁜 일은 아니지만… 피할 수 있다면 피하는 것이 좋다.
“데리고 와라.”
교주가 말했다. 투항한 플레이어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는 모른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상관없다. 써먹을 수 있다면 써먹으면 되는 것이다.
“아, 미안.”
망혼의 대주에게 명령을 내리고 나서, 교주는 머리를 들었다. 그는 쓰게 웃으면서 뒤통수를 긁적거렸다.
“부하 중 하나가 연락을 해 와서 말이야.”
드루고라 공작은 숨을 헐떡거리면서 주저 앉아 있었다. 견고한 용린은 대부분이 뜯겨졌고, 그곳에서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사실 상처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환룡은 불사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뜯겨진 용린도 휴식을 취한다면 원래대로 돌아 온다.
하지만 이 무력감은. 불사의 존재인 환룡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환룡은 아랫입술을 잘근 씹으면서 교주를 노려 보았다.
격이 다르다. 이 힘을 얻은 후로, 그것을 느낀 적은 처음이었다. 자신과 같은 처지인 불사의 괴물들을 만나 본 적은 있었지만, 이런 무력감을 느껴 본 적은 없었다.
“계속 할 텐가?”
교주가 웃으면서 물었다. 환룡은 어떻게든 몸을 일으켰다. 일어서고는 있었지만, 더 이상 해 봐야 무의미하다는 것은 환룡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교주는 격이 다른 존재였다. 강해도… 너무 강하다. 아까 전부터 전력으로 힘을 쏟아내고 있는데, 교주의 몸에 닿지도 못했다. 반대로 교주는 여유로운 태도로 공격을 하면서도 환룡의 용언결계를 뚫고 그의 용린을 찢었다.
“죽지 않는다는 것도 고달픈 일이야. 안 그런가?”
교주는 그렇게 말하면서 손을 뻗었다. 쿠르르릉! 거대한 힘이 교주의 손에 모여 들었다. 교주가 손을 가볍게 앞으로 휘둘렀을 때, 그 힘이 환룡에게 쏘아졌다. 꽈아앙! 급하게 만든 용언결계가 박살나고 교주의 힘이 환룡을 꿰뚫었다.
“커윽!”
간신히 일어섰지만, 환룡은 다시 땅을 뒹굴었다. 가슴 아래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환룡은 손으로 바닥을 짚으면서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렸다.
“그렇게 되어도 죽지 않아. 불사… 멋진 것이지. 이 세상에서 불사를 가진 존재는 너를 포함해서 다섯 뿐. 나조차도 불사력을 갖고 있지는 않아. 그것은 오딘만이 부여할 수 있는 힘이니까.”
교주는 그렇게 말하면서 환룡에게 성큼거리며 다가갔다. 그 순간에도 환룡의 상처는 들끓면서 재생하고 있었다. 불사. 이 힘은 아무리 많은 죽음을 당한다고 하여도, 환룡을 죽게 하지 않는다. 끔찍한 저주였다.
“죽지 않는 너를 제압하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을 생각해 보았지. 하나는 너에게 끝없는 고통을 주어 네 정신을 무너트리는 것. 세뇌를 쓸 수 있다면 좋겠지만… 네 정신을 제압하는 것은 불가능할 테니까. 마찬가지로 네 정신을 무너트리는 것도 힘든 일이고.”
불사의 존재를 상대하는 것은 까다로운 일이다. 죽여도죽여도 다시 부활하는 상대를 어찌 죽일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다른 방법을 생각했지. 뭔지 아나? 너를… 아주 깊은 곳에 처박아 두는 거야. 쉽게 말하면 봉인하는 것이지.”
이 방법은 불사의 존재에게도 유효하다. 실제로 환룡과 같은 불사의 존재인 악희가 몇 십 년 동안 봉인되지 않았나.
“아마 다시 볼 일은 없을 거야. 마지막으로 묻겠는데… 나를 따를 생각은 있나?”
없다. 환룡이 대답하기도 전에, 교주는 환룡의 마음을 읽었다. 교주는 피식 웃었다.
“그럴 줄 알았네.”
파바바박! 쓰러진 환룡의 주변에서 시커먼 빛이 솟구쳤다. 위로 치솟은 빛은 서로 이어지면서 정육면체를 만들었다. 환룡의 몸이 그 정육면체에 가두어졌다. 교주는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장소는 이곳으로 하면 되겠군. 공간의 틈… 좋은 봉인지야.”
결계 속에서 환룡은 교주를 노려보았다. 공작은 자신의 힘으로는 교주를 쓰러트릴 수 없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포기하지는 않았다. 설마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는 생각한 적이 없었지만,
만약의 사태를 위한 안배는 두었다. 환룡은 라덴을 떠올렸다. 제베른 숲으로 향한 플레이어. 라덴은 환룡의 휘장을 가지고 있다. 그 휘장은 환룡이 자신의 용린을 뽑아 직접 만든 것이다. 결계가 완성되기 전, 환룡은 용언을 외웠다.
용언을 넘길 수는 없다. 이 힘은 환룡이 드래곤에게 직접 받은 것. 환룡이 넘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용린은 다르다. 용언이 현상을 만든다. 환룡의 몸에 돋아 난 용린이 사라진다. 교주는 그것을 보면서 웃음을 터트렸다.
“구차한 발악을 하는 구나.”
교주는 환룡을 막지 않았다. 환룡이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는 알고 있었지만, 막을 이유를 느끼지 못했다. 환룡이 라덴에게 넘기는 것은 용언과 용안을 제외한 힘.
“너조차도 그것을 들고서 나에게 상처 하나 입히지 못하였는데, 그 플레이어가 그것을 가진다 한 들 나를 어찌 할 수 있을 듯싶으냐?”
“나보다는 낫겠지.”
교주의 목소리가 멀게 들렸다. 봉인이 완성에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상처는 이미 재생되었지만, 환룡은 봉인을 박살내려는 시도는 하지 않았다.
‘그래. 나보다는 나아.’
환룡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봉인이 완성되었다.
끝
ⓒ 목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