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econd Coming of Shinken RAW novel - Chapter 296
제베른 숲의 용언결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있었다. 용언 결계를 둘렀던 환룡이 교주에게 봉인당한 탓이었다.
용언결계가 사라지기는 했지만, 제베른 숲에서 살아가는 몬스터들은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몇 백 년 동안 유지되던 결계다. 그것이 사라졌다고 해서, 바로 결계가 사라졌다는 것을 눈치채고서 숲 밖으로 튀어나가진은 않는다.
하지만.
콰드드득!
수십 그루의 나무가 무너졌다. 제베른 숲과 머지않은 곳에서 얻어 맞아 날아 온 악희는, 자신의 몸뚱이로 숲의 나무를 무더기로 무너트리고서야 땅을 뒹굴었다. 그녀는 몸을 비틀면서 신음을 흘렸고, 악희의 어둠에 붙잡혀 숲 안으로 함께 날아 온 라덴도 그녀와 함께 땅에 처박혔다. 몸에 두른 용린 덕에 데미지는 거의 없다시피 했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몇 km나 되는 거리를 순식간에 날아 온 것이다. 정신이 쏙 빠질만도 하다.
그만큼 악희를 때린 주먹의 위력이 강했다는 말이다.
“아… 으으으…!”
라덴은 신음을 흘리면서 몸을 일으켰다. 라덴의 허리는 악희의 어둠이 단단히 붙잡고 있었다. 라덴은 얼굴을 일그러트리면서 허리를 잡고 있던 어둠을 끊어냈다.
‘어디까지 날아 온 거야…?’
라덴은 급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가장 먼저 보인 것은 무더기로 쓰러진 나무들이었다. 숲이다. 머지 않은 곳에 악희가 쓰러져 있었다.
죽었나? 아니, 악희는 죽지 않는다. 불사의 괴물이기 때문이다. 아마 충격이 너무 커서 정신을 잃은 모양이었다.
“아아악!”
대뜸 터진 비명과 함께 악희가 벌떡 일어섰다. 그녀는 핏발이 선 눈을 하고서 라덴을 홱 돌아보았다. 악희의 몰골은 엉망이었다. 입었던 드레스는 엉망으로 찢겨져 있어서, 옷으로 가린 부분보다 맨 살이 드러난 곳이 더 많았다. 찰랑거리던 검은 머리카락도 난발이었고 얼굴은 피와 흙이 들러붙어 지저분했다.
“너, 너, 너어!”
악희가 라덴을 노려 보면서 악을 썼다. 이 무슨 치욕이란 말인가. 몇 백 년을 살아 왔지만 이런 치욕을 받아 본 적은 없다. 고작해야 한 명의 인간, 그것도 몇 년도 묵지 않은 플레이어에게 이런 치욕을 당하다니! 악희는 라덴을 향한 살의를 날카롭게 세우면서 달려들었다.
“아, 제길.”
라덴은 투덜거리면서 주먹을 들었다. 적어도 라덴은 악희보다 상황이 나았다. 데미지도 거의 입지 않았고, 체력적으로도 우위에 있었다. 불사라고는 해도 재생에는 힘이 소모 된다. 악희의 상황은 라덴과 비교해서 결코 좋지 않았다.
꽈드드득. 베헤모스의 주먹이 쥐어졌다. 베헤모스의 지속시간은 아직 조금 남아 있다. 언 리미티드. 라덴의 몸이 바르르 떨렸다. 스탯을 증가시키고서 전신에 어둠을 휘두른다.
그리고 주먹을 던졌다. 꽈아아앙! 끔찍한 소리가 숲을 뒤흔들었다. 달려들던 악희는 베헤모스에 정면으로 얻어맞았다. 닿은 즉시 악희의 상반신이 사라졌다. 악희의 다리가 허우적거리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피하지 못했다. 그리고 피하지 않았다. 피하려 드는 것보다는 그냥 깔끔하게 맞아 주자. 그것이 악희가 선택한 것이었다. 끔찍한 치욕이기는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악희는 자신의 불사성을 믿었다. 악희의 상반신이 빠르게 재생된다. 악희는 아무 것도 입지 않은 알몸이 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수치심을 느끼지 않았다. 그것보다는 라덴을 죽이겠다는 살의와 증오가 더욱 컸다.
“미친 년!”
라덴은 욕설을 내뱉으면서 다시 한 번 베헤모스를 준비했다. 하지만 타임 오버였다. 오른 팔이 원래대로 돌아온다. 라덴은 멈칫 굳으면서 발을 뒤로 끌었다. 악희의 표정이 확하고 다가왔다.
콰콰콰! 악희가 내리 꽂은 손을 따라 어둠이 내리 꽂힌다. 라덴은 양 팔을 들어 악희의 공격을 받아 내면서 호신강기와 용린을 사용했다. 무게가 내리 꽂히기는 했지만 데미지는 적다.
“크흑!”
악희의 입에서 피가 뿜어졌다. 맞닿은 순간 라덴의 반격이 악희의 몸을 꿰뚫은 것이다. 등 뒤의 어둠이 악희의 배를 찢는다. 악희는 피를 철철 쏟으면서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가진 무식한 불사력을 믿었다. 악희는 다루는 힘이 다른 다섯 괴물에 비해 월등히 무식한 만큼, 불사력도 다른 괴물들보다 우월했다.
‘뭐 이리 무식해…?!’
공격을 피하지 않는다. 통째로 몸으로 받아 내면서 다가 온다. 그러면서도 악희의 공격은 매서웠다. 용린이 없었다면 진즉에 체력이 바닥을 보였을 것이다.
‘베헤모스가 없으니 공격의 결정력이 부족해.’
라덴은 오른 발을 들었다. 리바이어던이 펼쳐졌다. 콰드드득! 라덴이 발을 휘두른 궤적에 따라 악희의 몸이 사라졌다. 쩍 벌어진 리바이어던의 입이 악희의 몸을 통째로 삼켜버린 것이다. 악희 뿐만이 아니었다. 반경 몇 십 미터 안에 있던 나무들이 통째로 사라졌다. 뭣 모르고 이쪽을 보고 있던 몬스터들도 마찬가지였다.
“아아악!”
악희는 비명을 지르면서 리바이어던의 턱을 찢고 튀어나왔다. 그녀는 전신이 피투성이였지만 두 눈에서 살벌한 빛을 내뿜었다. 설마 리바이어던을 찢고 나올 줄이야! 라덴은 악희의 무식함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대체 나랑 무슨 원한이 있다고 이렇게 덤비는 거야?!”
“닥쳐!”
이유따위는 이제 중요하지 않았다. 악희는 악을 쓰면서 라덴을 죽이려고 들었다. 하지만 라덴은 악희에게 잡히지 않았다. 그는 다시 한 번 리바이어던을 휘둘렀고, 악희의 하반신이 완전히 먹혀서 사라졌다. 악희가 팔을 허둥거리면서 땅을 뒹굴었다.
본래 악희가 교주에게 받은 명령은, 제베른 숲으로 가서 과거 그녀가 이끌었던 이종족들을 규합하는 것이었다. 거부한다면 죽이고.
하지만 지금의 악희의 머릿속에는 그런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이것이 악희의 문제점이었다. 한 번 열이 오르면 앞 뒤 일은 모조리 제쳐둔다. 너무 감정적인 것이다. 악희는 숨을 헐떡거리면서 몸을 일으켰다. 지금의 그녀는 아무 것도 입지 않은 알몸이었다.
“아, 좀! 뭐라도 입고 덤비던가!”
라덴은 눈을 둘 곳이 없어서 당황하였다. 하지만 악희는 라덴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녀는 숨을 헐떡거리면서 라덴에게 다가왔다.
“죽여 버리겠어…!”
라덴은 억울하기 짝이 없었다. 그가 악희에게 뭔가 나쁜 짓을 한 것도 아니다. 대뜸 나타나서 싸움을 건 것도, 먼저 공격을 한 것도 악희였다. 대놓고 죽이려 드는데 얌전히 죽어 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래서 맞서 싸웠는데, 그것에 무슨 원한이 있단 말인가?
“죽…”
악희가 다시 한 번 저주를 쏟아냈지만, 라덴은 듣지 않았다. 그는 다리를 들어 다시 한 번 리바이어던을 휘둘렀다. 써걱! 악희의 머리가 사라졌다. 머리를 잃은 몸뚱이가 휘청거리면서 무너진다. 잘린 부위를 어둠이 휘감는다. 다시 재생이 시작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속도는 확실히 느려져 있었다. 악희가 받은 데미지가 많다는 뜻이었다.
‘적당히 하고 튀어야겠어.’
라덴은 혀를 차면서 슬며시 뒤로 물러섰다. 이곳에서 악희와 티격거려보았자, 라덴은 악희를 죽일 수 없다. 마찬가지로 악희 역시 라덴을 죽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녀는 계속해서 약해지고 있으니까.
하지만 이곳에서 끄는 시간이 아까웠다. 몇 번 더 악희를 몰아붙인 뒤에, 텔레포트 링을 사용해서 이곳에서 이탈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우선 보가르도로 이동하자. 그곳의 상황을 본 뒤에…
잠깐.
라덴의 표정이 굳었다. 그는 뒤늦게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를 깨달았다. 제베른 숲. 라덴은 급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곳은 제베른 숲이다.
어떻게 들어 온 거지? 환룡의 휘장이 있어서? 악희는? 악희가 어떻게 제베른 숲의 용언결계를 뚫은 것일까.
“…죽여 버리겠어…!”
악희가 몸을 일으켰다. 재생을 끝낸 것이다. 제베른 숲의 용언결계가 사라졌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죽여…”
저주를 퍼부으면서 라덴에게 다가오던 악희의 말이 멈췄다. 콰득! 멀리서 날아 온 거대한 도끼가 악희의 머리를 반으로 쪼개었다. 악희의 몸이 휘청거리더니 다시 앞으로 쓰러졌다. 라덴은 화들짝 놀라 도끼가 날아 온 방향을 바라보았다.
거구의 남자가 서있었다. 그는 뻣뻣하게 굳은 표정을 하고서 악희를 노려보고 있었다. 도끼에 머리가 반으로 쪼개진 악희는 바닥에 널브러져서 움찔거리고 있었다.
“크륵!”
남자가 거친 숨을 토해내면서 성큼성큼 앞으로 나아갔다. 라덴은 다가오는 남자를 보면서 놀란 표정을 지었다.
오크.
남자는 오크였다. 일반적인… 오크와는 조금 다르게 생기는 했지만, 오크인 것은 틀림없어 보였다.
오크는 인스턴트 던전이나 필드, 일반 던전 등에서 숱하게 등장하는 몬스터다. 그들은 호전적이면서 무식하다. 그러면서 숫자는 많다. 그렇기에 이래저래 써먹기 좋은 몬스터다.
하지만 이쪽으로 다가오는 오크와, 라덴이 여태까지 보았던 오크는 인상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다가오는 오크는… 컸다. 트롤만큼은 아니어도, 어지간한 사람보다는 키가 컸다. 못해도 2미터는 되어 보였다. 어깨는 쩍 벌어졌고, 거적때기를 대충 둘러 사타구니만 가린 모습이다. 드러난 상반신에는 시커먼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악희!”
오크가 고함을 질렀다. 배틀 오크. 제베른 숲에 유폐되어 있는 이종족 중 하나다. 일반적인 오크와는 격이 다르다. 저들은 지능적이고, 난폭하며, 강하다. 예전에 악희가 이종족들을 규합하고서 제국을 공격하였을 때, 그 선봉에 서있던 것이 배틀 오크다.
“…크윽…!”
악희가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녀는 머리에 박혀있던 도끼를 뽑아내고서 다가오는 오크를 돌아 보았다. 악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더러운 오크 놈이…!”
“죽여 버리겠다!”
오크가 고함을 질렀다. 라덴은 아직까지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서 엉거주춤 뒤로 물러섰다. 갑자기 튀어나온 오크가 왜 악희를 공격하는 것일까?
퍼억!
오크를 공격하려던 악희의 몸이 크게 휘청거렸다. 화살! 악희는 가륵거리는 피거품을 입에 머금고서 목에 박힌 화살을 뽑아냈다.
다크 엘프들이었다. 열 명이 넘는 다크엘프들이 악희 쪽으로 활을 겨누며 매서운 눈을 빛내고 있었다.
“…네놈들…!”
다크 엘프, 배틀 오크. 모두가 예전에 악희가 이끌었던 이종족들이다. 그들은 악희에게 선동되어 200년 전에 제국을 공격했고, 악희가 사라진 탓에 환룡에게 제압 되어 이 숲에 처박혔다. 그들이 악희에게 원한을 갖는 것은 당연했다.
“…큭…!”
악희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배틀 오크들이 몰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다크 엘프들이 활시위에 화살을 건다. 멀리서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라이칸 슬로프의 울음성이었다. 지금이 밤이 아닌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밤이었다면… 뱀파이어들도 움직였을 테니까.
배틀 오크, 다크 엘프, 라이칸슬로프, 뱀파이어. 200년 전에 악희는 그들을 이끌고서 제국을 공격했었다. 잡다한 몬스터들도 선동하기는 했지만, ‘이종족’이라고 할 만한 지능을 가졌던 것은 저 넷들이다. 평소라면 저들의 수가 몇이 되었든 크게 신경을 쓰지 않겠지만… 지금은 위험하다. 체력이 너무 떨어졌다. 힘을 모조리 소진한다면 아무리 불사의 존재라고 하여도 탈진하여 쓰러질 수밖에 없다. 거기서 봉인이라도 당한다면 최악이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촤아아악! 악희의 등 뒤로 시커먼 날개가 솟구쳤다. 그녀는 라덴을 노려보면서 도약했다. 도망치려는 것이다. 다크 엘프들이 활을 위로 들어 화살을 쏘아냈다. 악희는 몸에 박히는 화살을 무시하면서 이를 악물었다.
라덴은 날개를 퍼덕거리면서 하늘을 가로지르는 악희를 멍한 시선으로 쫒았다. 기회를 봐서 몸을 뺄 생각이었는데… 악희가 먼저 도망쳐 버렸다.
“…음.”
라덴은 짧은 신음을 흘리면서 머리를 돌렸다. 악희는 갔지만, 모여 든 이종족들은 아직 남아 있었다. 하늘을 날아 사라진 악희를 쫒던 눈들이 라덴에게 향했다.
“씨발.”
라덴은 나지막이 욕설을 내뱉었다.
용언결계가 사라졌으니, 저 이종족들을 통제할 수단은 존재하지 않았다.
끝
ⓒ 목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