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econd Coming of Shinken RAW novel - Chapter 295
츠츠츠… 라덴의 피부에 돋아 난 용린이 사라진다. 용린에는 딱히 감각은 느껴지지 않았다. 몸을 움직이는 것에도 아무런 저항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마치 몸에 착 달라붙은 얇은 옷을 입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런 비유에 어울리지 않게, 용린의 방어력은 굉장히 높다. 대부분의 마법 공격은 무시하고,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공격력은 무시한다. 거기에 판테온의 패시브 스킬인 성스러운 보호. 착용자의 레벨보다 낮은 마법 공격을 디스펠하고, 레벨이 높은 마법 공격의 위력을 아바타의 스탯 수치에 비례하여 감소시킨다. 그리고 다른 패시브 스킬인 가호. 체력과 마력의 재생력을 증가시키면서 상태 이상의 지속 시간을 절반으로 감소시킨다.
그 상태에서 마갑 데모니스의 패시브 스킬인 투기가 발동된다. 악희는 라덴보다 레벨이 높은 상대였다. 라덴의 스탯은 20% 증가하였고, 그 스탯 수치가 성스러운 보호의 위력을 증가시킨다.
ㅡ거기에 만신전의 효과를 받은, 마신 무르시엘라고의 특수 스킬. 사역마의 보호. 지금의 다크 크리처는 모든 공격을 자동으로 방어한다. 신성력은 방어할 수 없다지만… 악희는 신성력과 거리가 먼 존재였다. 거기에 액티브 스킬인 동화. 레벨솨 스탯의 두 배에 비례하는 물리력을 발휘하는 망토 변환 스킬.
그 외에도 라덴이 쓸 수 있는 패는 많다. 전투 지속력을 높이면서 체력 회복 속도를 높이는 유혈 특성. 용린의 압도적인 방어력을 뚫고 공격한다고 해도, 라덴에게 치명상을 입히는 것은 굉장히 힘들다. 일격에 죽이지 못한다면 라덴은 어지간해서는 죽지 않는다.
“…멋져.”
악희의 두 눈이 흥분으로 떨렸다. 그녀는 마주 선 라덴에 대한 평가를 대폭 수정했다. 왜 저 플레이어가 환룡의 용린을 가지고 있는 것이고, 흑성의 힘을 지니고 있는 것인지는 모른다.
다르다. 악희는 라덴과의 첫만남을 기억했다. 기억할 수밖에 없었다. 몇 십 년 동안 그녀를 시커먼 어둠 속에 처박았던 알라베스 산의 봉인. 그 봉인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었던 존재가 바로 라덴 아닌가. 비록 라덴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지만, 악희에게 있어서 그것은 크게 중요한 사실은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악희가 라덴을 기억한다는 것이다.
그때 보았던 라덴은… 하찮은 존재였다. 바닥을 기는 개미와 비교해서 크게 다를 것이 없는 존재였다. 언제든지 심심풀이삼아 짓밟아 죽일 수 있는 존재였단 말이다. 그런데 고작 일 년 만에 이 정도로 성장하다니! 아무리 환룡과 흑성의 힘이 보태어졌다고는 하여도, 지금의 라덴은 악희가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성장하였다.
“널 죽이고 싶어졌어.”
악희가 진심을 담아 말했다. 그녀는 자신과 마주한 존재를 대부분 죽인다. 하지만 그녀가 진정으로 ‘죽이고 싶다’라고 느낀 대상은 많지 않다. 굳이 말하자면 검왕이나 흑성, 환룡처럼 그녀와 같은 괴물로 분류되는 이들 정도다. 나머지는 죽이고 싶다는 생각으로 죽이는 것이 아니다.
그냥 거슬리니까 치워버리는 것이다. 죽이고 싶다. 그것은 악희가 라덴을 은연 중에 검왕과 흑성, 환룡과 같은 위치에 두는 말이기도 했다.
악희의 전신에서 시커먼 기운이 솟구쳤다, 그것은 흑성 아라포니아가 다루는 어둠, 음차원의 마력이었다. 하지만 악희의 힘은 아라포니아의 것과는 다르다. 흑성이 음차원의 마력을 바탕으로 마법을 사용한다면
악희는 그것을 통째로 휘두른다. 악희를 중심으로 퍼져 나간 어둠이 하늘로 솟구쳤다. 주변 일대가 순식간에 시커멓게 변했다. 높이 솟구친 마력이 태양을 가린다.
다섯 괴물에게는 각각의 특징이 있다. 염화는 꺼지지 않는 불꽃을 자유자재로 다룬다. 흑성은 막대한 음차원의 마력을 바탕으로 최상위 마법을 난사한다. 검왕은 검의 극의를 보았다. 환룡은 용린과 용안, 용언을 사용한다.
그리고 악희는. 끝없는 마력을 통째로 휘두른다. 단순 마력의 출력만을 보자면 다섯 괴물 중에서 악희가 제일이다. 무식한 위력만을 따져보아도 악희가 제일이다.
그 거대한 힘이 라덴을 노렸다. 콰콰콰콰! 지면이 뒤집어 지면서 검은 힘의 덩어리가 라덴을 덮쳤다. 라덴은 자세를 낮추고서 다리에 힘을 주었다.
양자택일. 어마어마한 양의 스탯이 반전된다. 까마득한 속도, 밸런스가 통째로 뒤집어진 그 속도에 라덴은 완벽하게 대응했다. 순식간에 스쳐 지나가는 풍경, 라덴을 덮치던 힘조차 라덴을 지나친다.
콰직! 라덴이 내지른 주먹이 악희의 안면에 꽂혔다. 아니, 막혔다. 악희가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 호신강기? 아니, 그것치고는 너무 무식하다. 거대한 힘을 통째로 몸에 두르고서 방패로 쓰고 있을 뿐이다.
‘얕아.’
방어력만 따지고 본다면… 백설의 호신강기보다 높다. 공격의 속도는? 위력은? 라덴의 발이 바쁘게 움직였다. 파바박! 사방에서 쏘아진 검은 송곳이 라덴이 남긴 잔상을 꿰뚫었다.
‘전력인가?’
아니겠지. 악희에게는 상당히 여유가 있어 보인다. 공중으로 뛰어 오른 라덴은 발을 앞으로 뻗었다. 타악! 허공답보의 발판이 밟힌다. 라덴은 허공답보를 펼치는 속도를 높였다. 예전에는 열 몇 번 움직이는 것이 한계였지만
이제는 아니다. 라덴은 그때보다 더 빨라졌다. 더 날카로워 졌다. 폭주하는 것처럼 예민해지는 감각.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적응하지 못하는 감각. 라덴은 그것을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었다. 동조율이 80%를 넘어가면서 라덴은 이미 인외人外의 존재가 되어가고 있었다.
인간이 아니게 되는 감각. 라덴은 그것을 바라였다. 동조율이 100%가 되면 초월자가 된다. 라덴은 딱히 초월자가 되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그냥, 단순하게
더 빨라지고 싶었다. 더 강해지고 싶었다. 그런 감각에 중독되는 것 같았다. 아니, 이미 중독되어 있었다.
‘빨라…!’
악희의 눈이 빠르게 돌아간다. 시커먼 어둠이 악희의 주변을 빙빙 돌고 있었다. 라덴의 무르시엘라고가 미끄러지면서 만드는 어둠의 꼬리였다. 악희는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힘을 일으켰다.
공간이 일그러진다. 공간 전체에 유입 된 음차원의 마력이 요동친다. 라덴은 숨이 턱 막히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사방에서 밀려오는 힘이 압력을 만들어 라덴의 움직임을 붙잡고 있었다.
더.
라덴은 마음 속으로 바라였다. 아직까지 발끝이 무겁다. 더, 더 가벼워져야 한다. 라덴의 감각은 발 끝에 남은 가벼움을 기억하고 있었다. 알케나와 싸웠을 때. 듀랜드와 싸웠을 때. 그리고 백설과 싸웠을 때.
그때 느꼈던 감각. 인간이 아니게 되는 감각. 일그러지는 공간 속에서 라덴의 시야가 일그러진다. 판테온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런 라덴을 지켜 보았다.
라덴은 모르겠지만, 판테온은 지금 이곳에서 그 누구보다 객관적으로 상황을 보고 있었다. 상대는 괴물. 승산이 드문 상대다.
‘성장 속도가 어마어마해.’
판테온은 그렇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 라덴은… 판테온과 처음 만났을 때와 비교해서 훨씬 강해져 있었다. 지난 번에 백설이라는 사내와 싸웠을 때보다 더. 감각이 적응한 것일까? 아니면 스스로 바라는 것일까. 동조율이 미친 듯이 오르고 있었다. 어느새 동조율은 79%, 거기서 더 오른다.
그리고 80%.
쩌어엉! 어둠이 폭발했다. 라덴이 만들어 낸 경이적이 속도가 어둠을 꿰뚫는다. 악희의 얼굴에 처음으로 당황이 어렸다. 확실하게 통제하고 있던 어둠이 흩어지다니! 텅 빈 악희의 가슴을 향해 라덴의 주먹이 쏘아졌다.
백호류 전사경, 백렬. 무르시엘라고의 영향을 받은 시커먼 소용돌이가 악희의 가슴에 꽂혔다. 악희는 급히 음차원의 마력을 일으키면서 자신의 몸을 보호하려 들었다.
너무 급하게 방어를 만든 탓일까? 백렬에 닿은 순간, 어둠이 흩어진다. 악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
콰드드드득! 악희의 말은 끝나지 못했다. 라덴의 주먹이 악희의 가슴을 꿰뚫었다. 라덴은 이를 악물고서 꽂아 넣은 주먹을 끝까지 밀어 넣었다.
꽈아앙! 지면이 붕괴했다. 라덴이 악희의 몸 채로 내리 꽂은 주먹이 평평한 땅을 깊이 패어 놓았다. 그 정 중앙에 꽂힌 악희는 비명도 지르지 못했다. 끈적한 피가 뿜어졌다.
“허억! 헉!”
라덴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면서 꽂아 넣은 주먹을 뽑아냈다. 이 일격으로 악희를 죽인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상대는 불사의 괴물이다. 죽여도 죽여도 소용이 없다.
“아아아아!”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악희가 입을 크게 벌리고 비명을 터트렸다. 파아악! 악희의 몸이 시커먼 어둠이 되어 무너졌다. 흩어진 어둠이 라덴의 머리 위로 솟구쳤다. 그곳에서 악희는 상처 하나 없는 모습으로 재생했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은 이전과 비교해서 창백하게 변해 있었다. 도톰한 입술은 자신이 뿜은 피로 더욱 붉었고, 웃음기도 사라져 있었다.
“건방진!”
악희가 고함을 터트렸다. 밤이 다시 낮이 되었다. 하늘을 가렸던 어둠이 악희의 몸으로 모여 들었다. 그녀는 자신이 끌어 낼 수 있는 음차원의 마력을 있는 힘껏 끌어냈다. 이것은 더 이상 놀이가 아니었다. 악희가 놀이 상대로 삼기에는 라덴이 악희에게 너무 큰 모욕을 주었다.
“죽! 죽어!”
악희가 피를 토하면서 내뱉었다. 쿠르르릉! 그녀의 등 뒤로 모였던 검은 어둠이 수백 개의 송곳이 되었다. 악희는 아래에 있는 라덴을 노려 보면서 손을 뻗었다. 파바바박! 수백 개의 송곳이 라덴을 향해 내리 꽂혔다.
라덴은 눈을 부릅 뜨고서 내리 꽂히는 송곳을 보았다. 방어력을 믿을까? 아니, 그럴 필요는 없다. 라덴은 숨을 삼키면서 양 손을 들어 올렸다. 파각! 호령환의 손톱이 솟구쳤다. 그것에 무르시엘라고의 어둠이 더해진다.
라덴의 손이 뻗어졌다. 파악! 가장 먼저 내리 꽂히던 송곳이 라덴의 손과 부딪혀 흩어진다. 그것이 반복되었다. 계속, 계속. 수백 개의 송곳에 맞서 라덴의 손은 수백 번 움직였다. 연달아, 아니, 동시에 떨어지는 송곳의 속도. 라덴의 손은 그것에 대응하고 있었다. 동조율은 이미 85%에 가까워져 있었다.
‘이게 뭐야?’
라덴은 스스로 의문을 느끼고 있었다. 동시에 떨어지는 수백 개의 송곳. 그것에 조금도 밀리지 않고 대응하면서 요격하다니. 두 개의 손으로 어떻게 수백 개의 송곳에 대응할 수 있는 것일까. 아. 손 뿐만이 아니었다. 무르시엘라고의 어둠이 함께 움직이고 있다. 사역마의 보호? 아니, 그 스킬에는 한계가 있다. 이 정도 속도에는 대응할 수 없다.
무의식이다. 라덴은 무의식으로 망토 변환 스킬을 펼치면서 악희의 공격에 대응하고 있었다. 악희의 공격은 끝이 없었다. 마찬가지로 라덴의 대응 역시 끝없이 이어진다.
라덴의 오른 손이 꿈틀거린다. 오른 팔이 거대하게 부풀었다. 베헤모스가 펼쳐진 것이다. 쿠구구궁! 베헤모스에 담긴 거대한 힘이 꿈틀거린다. 라덴은 베헤모스를 뒤로 젖히고서 왼 손과 망토 변환만으로 악희의 송곳에 대응했다.
그리고. 라덴이 펼칠 수 있는 모든 공격 스킬들이 베헤모스에 담겼다.
‘위험해…!’
악희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갑자기 거대해 진 오른 팔. 저 팔에 담긴 힘을 알아차린 것이다. 악희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인간, 아니, 플레이어가 어떻게 저 정도의 힘을 쓸 수 있단 말인가? 악희가 전력을 다하여 공격한다고 해도 저 정도의 힘을 담을 수는 없을 텐데!
“ㅡ아…”
라덴의 입이 크게 벌렸다. 악희가 라덴의 주먹에 담긴 힘을 알았듯, 라덴도 그것을 알았다. 여태까지 베헤모스를 내지른 적은 많았지만… 지금과 같은 기분을 느낀 것은 처음이었다. 주먹이 너무 무겁다. 무겁기는 하지만 휘두를 수는 있다.
휘둘러도 되는 것일까.
“아아아!”
생각할 것도 없었다. 라덴은 베헤모스를 앞으로 내질렀다. 그와 동시에 악희는 어떻게든 라덴을 저지하기 위해 공격에 전력을 담았다. 거대한 힘의 덩어리가 라덴을 향해 내리 찍혔다. ㅡ꽈아아앙! 베헤모스와 악희의 힘이 충돌했다. 악희는 이를 악물고서 힘을 보내었지만
역부족이었다. 어둠이 폭발했다. 산산히 비산한 어둠의 파편이 다시 한 번 주변을 검게 물들였다. 그리고 다시, 그것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며 세상을 주변을 환하게 밝혔다. 공격도, 방어도. 모든 것이 박살났다. 악희는 맨 몸으로 베헤모스의 힘을 받아낼 수밖에 없었다.
“익… 이이익!”
악희는 이를 악물고서 어떻게든 어둠을 뻗어 라덴의 몸을 붙잡았다. 마치 발악과도 같은 몸짓이었다.
제베른 숲까지 날아가는 악희의 몸을 따라서, 라덴이 함께 공중을 날았다 .
끝
ⓒ 목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