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econd Coming of Shinken RAW novel - Chapter 65
졸코트가 죽으면서 했던 말은 솔직히 무시하고 싶었지만, 흑성 아라포니아라는 이름은 무시하게는 너무 큰 거물이었다. 발할라 최강으로 꼽히는 다섯 NPC 중에서 뚜렷하게 행적을 보였던 것은 염화 뿐.
염화는 세 달 전에 랭킹 7위인 자카이드가 이끄는 20인 공격대를 홀로 몰살시킨 전적이 있었다. 염화가 당시 보여주었던 압도적인 화력을 생각하면, 세 달이 지나 당시 염화에게 당했던 랭커들의 레벨이 아무리 높아졌어도 염화를 상대로 버틸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염화를 제외한 다른 괴물들의 행적은 아직까지 드러나지 않았다. 검왕은 서량제일검인 청성을 인정했다는 일화만 존재하고, 흑성이나 악희, 환룡은 이름만 존재할 뿐 아직까지 그 실체를 확인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쩌면 퀘스트로 이어질 지도 몰라.’
흑성. 아라포니아라는 이름. 이것은 발할라에서 현재 라덴만이 알고 있는 정보였다. 설마 알제른의 밤을 지배하는 발레르 패밀리와 흑성이 연결되어 있을 줄이야.
“아버지가 어지간히 죽기 싫었나 봐.”
카타레나가 웃음을 흘렸다.
“설마 대모님에 대한 이야기를 할 줄이야.”
“대.. 대모?”
“그 분은 자신을 그렇게 부르는 것을 싫어하지만 말이야. 흑성 아라포니아, 그 분은 발레르 패밀리의 후원자이면서.. 발레르 패밀리 모두의 대모님이지. 나와도 피가 이어져 있어. 별로 가족같은 느낌은 들지 않지만.”
“..위험한 것 아닙니까?”
“위험? 뭐가?”
카타레나가 물었다. 라덴은 머뭇거리면서 말을 이었다.
“만약 내가 졸코트를 죽였다고 흑성이 나를 추궁하면..”
“대모님은 그런 것을 신경 쓰지 않아. 그녀가 바라는 것은 오직 마법의 완성이고, 마법의 끝을 보는 것 뿐이니까. 대모님이 발레르 패밀리를 후원하며, 소속 마피아들의 인체를 개조하는 것은.. 그녀가 하고 있는 마법 연구의 실험의 일환이기도 하고, 피가 옅게나마 이어진 발레르 패밀리에 대한 작은 보살핌일 뿐이야.”
“그렇다면 더더욱..”
“말했잖아. 신경 쓰지 않는다고. 내 아버지가 뒈지든 말든, 대모님이 보기에는 그냥 발레르 패밀리의 주인이 바뀌었을 뿐이니까. 그래, 이건 어때? 차라리 내가 정식으로 대모님에게 널 소개시켜 주지.”
“진심으로 하는 말입니까?”
라덴은 놀란 얼굴을 하고서 물었고, 카타레나는 대수롭지 않다는 얼굴을 하고서 머리를 끄덕거렸다.
“마침 나도 대모님에게 인사를 드리러 가야 하거든. 새로 발레르 패밀리의 주인이 되었으니.. 앞으로도 잘 보살펴 달라고 문안인사를 드려야지. 그때 내가 여쭤 볼 테니, 수요일에 이 저택으로 오도록 해.”
“..카타레나 아가씨가 그렇게 말해준다면야..”
“아까도 말했을 텐데? 나는 너와 좋은 관계를 이어나가고 싶다고. 비즈니스 적으로 말이야.”
카타레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의 잔에 와인을 부었다. 그녀는 아직 반쯤 남은 라덴의 잔을 향해 와인 잔을 뻗었다.
“앞으로도 잘 부탁해.”
“..내용에 따라서.”
잔과 잔이 부딪혔다.
*
발레르 패밀리의 저택으로 나와서, 라덴은 자신의 상태를 점검했다.
Name: 라덴
LV. 55
Title: 짐승의 마왕
백호의 호랑이
무도가
고독한 사냥꾼
아카이드 숲의 고독한 정복자
뱀파이어 헌터
신출내기 영웅
솔플러
히트맨
Race: 인간
Sex: 남성
힘 177(+117) 민첩 83(+126) 지력 10(+41) 체력 85(+56) 마력 10(+58).
피의 복수 퀘스트를 완료하고, 졸코트를 포함한 마피아들을 죽이면서 레벨이 3 올랐다. 드디어 레벨 55부터 시작되는 마의 장벽에 닿은 것이다.
‘타이틀이 엄청 많아졌군.’
대부분이 특수 타이틀이다. 라덴은 이번에 얻은 타이틀인 ‘히트맨’에 주목했다. 히트맨의 특수 스킬은 ‘킬러.’ 플레이어나 NPC를 살해할 때에 10%의 추가 경험치를 얻는 스킬이다.
“..솔플러 타이틀과 연계되는 걸.”
라덴의 눈이 반짝 뜨였다. 솔플러의 특수 스킬인 고독함은 파티에 소속되지 않았을 때 5%의 추가 경험치를 준다. 그리고 히트맨의 특수 스킬인 킬러. 플레이어나 NPC를 살해할 때에 10%의 추가 경험치를 주는 스킬.
즉, 라덴은 파티에 소속되지 않고서 플레이어나 NPC를 살해한다면, 15%의 추가 경험치를 얻을 수 있다는 말이다. 그것은 레벨 55부터 시작되는 마의 장벽을 돌파하기 위한 큰 힘이 될 것이다.
‘문제는 플레이어와 NPC를 살해하는 것인데..’
PK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게임이지만, 그것도 정도가 있는 법이다. 사냥터 하나를 잡고 주구장창 PK만 하다 보면 표적이 될 수밖에 없다. 괜히 길드 소속을 잘못 건드렸다가는 척살의 대상이 될 지도 모른다.
이럴 때에 이용하는 것은.
“투기장.”
발할라에도 투기장은 존재한다. 라덴은 복잡한 기분을 느끼면서 머리를 벅벅 긁었다. 발할라 내에서의 PVP는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깃발을 꽂아서 하는 정식 PVP. 그리고 무조건 상대를 죽이려 드는 PK.
투기장은 정식 PVP다. 승리하면 승리 포인트와 경험치를 얻는다. 상대를 제압할지, 죽일 지는 자유. 투기장에서의 사망은 필드에서 사망했을 때처럼 사흘 간의 접속 불가가 아닌, 한시간 접속 불가 패널티밖에 주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아이템은 드랍하지 않는다.
조건은 충분하다. 파티에 소속되지 않고, 혼자서 투기장에서 PVP를 하며 상대 플레이어를 살해하며 경험치를 벌어들인다.
‘..발할라에서는 투기장을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해도 나중에 하려고 했다. 판타지아에서는 투기장에 처박혀 있느라 레이드도 뛰지 않았고 아이템 파밍도 하지 못했기에, 발할라에서는 투기장 보다는 레이드나 PVE, 퀘스트에 주력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당장은 어쩔 수 없다.
‘적당히 조율하면서 해야겠어. 퀘스트도 진행해야 하니까.’
라덴은 알제른의 좌표를 텔레포트 링에 저장했다. 앞으로 저장할 수 있는 좌표는 둘. 라덴은 검지 손가락에 끼운 텔레포트 링을 어루만지면서 씩 웃었다.
다음에 가야 할 도시는 이미 정해 놓았다. 대 도시 보하미르. 황혼의 추적자 퀘스트와 은둔자 퀘스트를 수행할 수 있는 도시다.
해야 할 일이 많았다. 라덴은 알제른의 은행으로 가서 카타레나가 주었던 오천 만 골드 수표를 골드로 환전, 인벤토리에 저장했다. 그리곤 바로 경매장으로 가서 그간 모아 두었던 아이템들을 모조리 올려 놓았다.
‘영상 공유는 안 돼.’
벨코브의 검은 저택의 영상을 촬영하기는 했지만, 이 영상을 아스가르드에 풀 수는 없었다. 에픽 스토리인 ‘황혼’이 공개되는 것도 그렇고, 괜히 영상을 올렸다가 검은 저택에서 PK했던 파티원들이 영상을 문제로 삼는다면 라덴이 곤란해지기 때문이었다. 괜히 꼬리가 밟히는 것은 사양이었기에, 라덴은 벨코브의 검은 저택에서 명예의 전당에 자신을 등록하지도 않았다.
‘피의 복수 퀘스트도 숨긴다.’
퀘스트 진행 영상을 아스가르드에 개재하면 큰 이슈가 될 것이다. 발레르 패밀리와 흑성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도 그렇고, 퀘스트 보상으로 받은 것이 너무 막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루카스는 알겠지.’
루카스가 흑성과 발레르 패밀리의 연결까지 알고 있을 것 같지는 않았지만, 발레르 패밀리의 주인이 바뀌었다는 소문이 나기라도 한다면. 루카스는 누군가가 카타레나의 의뢰를 성공시켰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당분간은 조용히 지내야겠군.”
괜히 나대다가 주목받아서 좋을 것이 없으니까.
*
“아직 있느냐?”
청성이 물었다. 텅 빈 본당 안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던 알케나는, 등 뒤에서 들리는 질문에 머리를 들어올렸다. 하지만 그녀는 뒤를 돌아보지는 않았다.
“아직 망설이는 구나.”
청성은 허허 웃었다. 쓰디 쓴 웃음이었고, 알케나는 그런 청성의 웃음에 섞인 자조를 알았다. 그래서, 그녀는 입술을 잘근 씹었다.
청성은 천천히 걸었다. 고즈넉한 본당 안에서 청성의 발소리만이 울렸다. 무릎을 꿇고 앉은 알케나의 등 뒤에 선 청성은, 두 눈에 안타까움을 담고서 알케나의 어개 위에 손을 얹었다.
“누구에게나 아픈 과거는 있는 법이란다.”
청성의 말에 알케나의 시선이 아래로 떨어졌다. 무릎 위에 얹어진 손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떨림이 전염되어 어깨가 흔들린다. 청성은 긴 한숨을 내쉬면서 알케나의 어깨를 상냥하게 어루만졌다.
말년에 거두어들인 수제자는, 서량제일검이라 불렸던 청성이 타고났던 재능을 우습게 만들 정도로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 재능은 알케나가 부여받은 고유 특성과 어울려 화려하게 꽃을 피워냈다. 청성은 확실하게 장담할 수 있었다. 자신의 제자가 새로운 서량제일검이 될 것이라고. 그리고 언젠가는 검왕의 검과 견주게 될 것이라고.
“주저앉아 있어서는 상처에 먹힐 뿐이야.”
그 재능이 이곳에 주저앉아 있었다. 언젠가의 서량제일검이, 미래의 검왕이. 청성의 목소리에 진한 안타까움이 어렸다.
청성은 알케나의 이야기를 알고 있었다. 그녀가 근 몇 년 동안 얼마나 힘든 일을 겪었는지.
5년 전, 판타지아에서 투왕이라고 불리던 라덴이 사라졌을 때. ‘코맷’의 길드 마스터였던 알케나, 정하란은 한국의 젊은 랭커 중에서 가장 높은 주가를 달리고 있었다.
18살이라는 어린 나이. 빼어난 외모. 능숙했던 루아노스와는 달리 알케나가 보여주었던 수줍은 모습은, 그녀가 게임 내에서 보여주었던 플레이와 갭을 일으키며 한국을 넘어 세계까지 주목하게 만드는 스타성을 만들어냈었다.
가상현실의 세계가 열리면서 누구나 스타 플레이어를 꿈꾸게 되었다. 하지만 알케나, 정하란에게 있어서는 그 스타성은 바라지 않던 독으로 작용했다.
그녀가 벌었던 많은 돈은 부모에게로 흘러들어갔고, 부모는 속물이 되었다. 불화가 폭발했다. 이혼까지는 가지 않았지만, 정하란이 가진 스타성은 이미 그녀의 단란했던 가정을 박살내 놓았다.
불행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정하란이 스트레스에 이기지 못해 방송 생활을 벗어나려 할 때마다 소속사는 그녀를 압박했고, 그녀에게 가혹한 스케줄을 강요했다. 간신히 그를 탈출하고 난 후에는 그녀가 만들었던 코맷 길드는 내분해서 박살났고, 결국 정하란에게는 아무 것도 남지 않았다.
한창 예민하던 18살이라는 나이에 겪기에는 과한 불행이었다. 안타깝게도 정하란에게는 그 상황에 대처할 만한 처세술이 없었고, 결국 그녀가 갖게 된 마음의 상처는 썩어 곪았다. 최후에 정하란이 택한 것은 판타지아의 계정을 스스로 삭제하고, 완전히 잠적하는 것이었다.
“이 세계에서 다시 시작하고 싶다고 바라였던 것은 너였잖느냐.”
청성이 말했다. 그 말에 알케나는 머리를 돌려 청성을 바라보았다. 청성은 알케나의 눈에 담긴 원망을 읽고서 한숨을 삼켰다.
하지만 청성의 말이 옳았다. 결국 알케나는 5년 간의 공백을 깨고서 발할라를 다시 시작했다. 물론 그녀가 발할라를 다시 시작하는 것에 어떠한 접촉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결국 발할라의 계정을 만들고서 이 세계에 접속한 것은 그 누구도 아닌 정하란의 의지였다.
“..스승님.”
“네 하기에 달렸단다.”
청성은 알케나의 어깨에 얹었던 손을 들어 올렸다.
“나는 너에게 내 모든 검을 가르쳤다. 그것을 어떻게 휘두를지, 그것은 너에게 달려 있지. 네가 서량을 나가, 이 세계를 어떻게 여행할 지도 너에게 달린 일이다. 하지만 이것은 알거라. 나는 네가 즐거움을 느꼈으면 좋겠구나.”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건 모르는 일이지. 이 세계는 아주 넓단다. 많은 사람들.. NPC와 플레이어가 있지.”
“그들과 맺는 인연이 즐거울 것 같지도 않은 걸요.”
“하지만 무조건 불행할 것이라고도 생각하면 안 돼.”
청성이 힘을 주어 말했다.
“너는 5년 전과 다르지 않으냐.”
“똑같아요.”
스스로가 한심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알케나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결국 겁쟁이에, 뭐 하나 제대로 결정하지도 못하고.. 그렇게 어물쩍거리다가 다 잃어버리고..”
알케나의 중얼거림에 청성은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쉬었다. 제자와 맺었던 인연이 너무 짧았는가. 청성은 제자의 미혹을 걷어내지 못하는 자신의 무력함에 우울함을 느꼈다. 대부분의 것을 베어낼 수 있는 검술을 가졌음에도, 제자의 미혹 하나 베어내지 못해서야 어찌 서량제일검이라 할까.
“..그렇다면 네 스승으로서 명령하마.”
청성은 몇 걸음 뒤로 물러서고서 몸을 돌렸다. 그는 품 안에 넣어 두었던 서찰을 꺼내 들었다.
“보하미르로 가거라. 그곳에 내 오랜 벗이 있단다. 그에게 이 서찰을 전하고, 그 후에는.. 네가 진심으로 믿을 수 있는, 너를 이해해 주는. 그런 누군가를 찾아 나에게 데려오도록 해라.”
“스승님..?”
“하지 않겠다면 나는 널 파문할 것이다.”
청성의 목소리가 싸늘하게 식었다. 알케나는 멍한 얼굴로 청성의 등을 보았다. 늙은 등은 알케나에게 대답을 강요하고 있었다.
“그런.. 무의미한..”
“스승의 명령이고, 부탁이다. 무의미하다 생각하느냐.”
“하지만..”
“나는 너의 망설임이 우습구나.”
청성의 고개가 들렸다. 그는 높은 천장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결국은 게임 속의 인연일 뿐. 네게 이런 말을 하는 나는, 결국 발할라라는 게임 안에 존재하는 NPC일 뿐이란다. 그리고 너는 현실에서 살아가는 인간이지. ..왜 너는 고작해야 NPC의 말에 그리 동요하는 것이냐?”
“하지만.. 청성님은..”
5년 전의 일 이후로 알케나는 자신의 부모를 부모라 여길 수 없게 되었다. 긴 고독이었다. 5년은 그녀에게 영원과도 같았다. 구입한 원룸에 틀어박혔고, 모든 지인과의 연락을 끊었다.
그런 정하란이 발할라에서 알케나가 되고, 우연히 인연을 맺은 청성은 알케나의 유일한 이해자가 되어 주었다. 청성은 NPC였지만, 알케나에게는 부모와 똑같았다. 아니, 어쩌면 친할아버지나 외할아버지같은 존재였다.
“..정말 안 되겠느냐?”
청성은 머리를 살짝 돌리고서 알케나를 보았다. 청성의 눈을 보고서, 알케나는 힘겨운 표정을 지으며 몸을 일으켰다.
“..알겠습니다. 스승님.”
그녀는 입술을 잘근 씹으면서 올렸던 면사를 아래로 내렸다. 알케나의 얼굴이 면사에 가려졌다.
“보하미르로 가겠습니다.”
라덴이 서량을 떠나고서 두 달이 채 되지 않은, 어떤 날에 일어난 일이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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