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econd Coming of Shinken RAW novel - Chapter 66
“너무 긴장할 필요는 없어.”
카타레나는 굳어 있는 라덴의 얼굴을 보면서 그렇게 충고했다. 말은 그렇게 들었지만, 어디 그것이 마음대로 될까. 라덴은 딱딱하게 경직된 자신의 뺨을 어루만졌다.
카타레나와 라덴이 서있는 곳은 자그마한 집의 앞이었다. 알제른 도심지의 외곽, 플레이어를 위한 시설이 없는 NPC들이 살아가는 곳이다. 라덴은 짧은 한숨을 내뱉으면서 카타레나를 보았다.
“..보자마자 날 죽이려고 하면 어떡하죠?”
“그건 내가 어쩔 수 있는 일이 아니잖아. 하지만 아마 그런 일은 없을 거야. 대모님은 상냥하신 분이거든.”
상냥함은 무슨. 라덴은 작은 목소리로 투덜거리면서 닫힌 집의 문을 바라보았다. 발레르 패밀리의 대모. 다섯 괴물 중 하나인 흑성 아라포니아.
이곳은 그 아라포니아가 살고 있는 집이었다. 아라포니아에게서 라덴을 데리고 와도 좋다는 허락을 받은 카타레나가, 라덴을 이 집으로 데리고 온 것이다.
“그런데 생각보다 너무 허름한데..”
“그 분은 떠들썩한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아. 눈에 띄는 것도 안 좋아하고.”
그렇다고는 하지만, 흑성이라는 이름에 걸린 가치를 생각하면 허름해도 너무 허름하다. 근처에 있는 다른 집들과 큰 차이가 없을 정도로, 아라포니아의 집은 허름했다. 대충 만든 울타리 안쪽 마당에는 잡초가 무성했고, 닭 몇 마리가 아무렇지 않게 마당을 쏘다니고 있었다.
“그럼, 나는 돌아가 볼게.”
“같이 들어가는 것 아니었어요?”
“대모님이 보고 싶어 하는 것은 너잖아. 나는 이미 인사를 드렸어.”
“어제 인사했으니 오늘도 와서 인사해도 되는 것 아닙니까?”
“내가 싫어.”
카타레나는 단칼에 그렇게 거절하고서 몸을 돌렸다. 그녀는 대로에 멈춰 서 있는, 듀란이 마부로 있는 마차로 돌아갔다.
결국 혼자 남은 라덴은 한숨을 푹푹 내쉬며 닫힌 문을 향해 손을 들었다. 마당의 닭 한 마리가 라덴의 발치로 다가와 부리로 라덴의 발등을 쪼았고, 라덴은 닭을 발끝으로 밀어내면서 문을 두드렸다.
두드림과 동시에 문이 열렸다. 라덴은 흠칫 놀라 턱 끝을 당겼다. 하지만 문의 안쪽에는 아무도 없었다. 엉거주춤 서서 어쩔 줄 모르는 라덴의 귓가로,
[안 쪽으로 들어 오거라.]그런 목소리가 들렸다. 마치 시스템의 음성처럼, 머릿속에 대고 직접 말하는 소리였다. 라덴은 꿀꺽 침을 삼키고서 안쪽으로 발을 뻗었다.
목소리는 여자의 것이었다. ‘대모님.’ 카타레나가 그렇게 불렀을 때부터 눈치 챘지만, 흑성 아라포니아는 여자인 모양이다.
‘착하면 좋겠다.’
노골적으로 라덴은 그것을 바라였다. 지금 그의 실력으로는, 만에 하나라도 흑성과 싸우게 될 때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흑성은 최상위 랭커 공격대를 몰살시킨 염화와 동급인 괴물이다.
설마 흑성이 보자마자 라덴을 죽이려 들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래도 만약이라는 것이 있다. 라덴은 가슴 속에서 꿈틀거리는 불안을 삭히면서 문 안 쪽으로 이어지는 짧은 복도를 걸었다.
묘한 냄새가 났다. 알 수 없는 냄새. 라덴은 코를 찡긋거리면서 냄새가 진하게 풍기는 복도를 둘러 보았다. 이렇다 할 장식품 하나 없는 복도는 삭막하기 짝이 없었고, 걸을 때마다 낡은 바닥이 삐걱거리는 소리를 발했다.
그것은 이 집이 흑마법사의 집이라는 사실과 어울러져, 라덴으로 하여금 불안을 느끼게 만들었다.
흑성 아라포니아는 흑마법사다. 그녀는 발레르 패밀리의 대모이자, 발레르 패밀리 소속 마피아들의 인체를 개조하여, 그들이 알제른의 밤을 장악하도록 만들었다. 사실 마피아인 발레르 패밀리가 알제른의 밤을 장악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뒤에 있는 흑성의 이름이 크기 때문이리라.
“..계시나요?”
복도의 끝에 있는 것은 굳게 닫힌 방. 라덴은 그 문을 보면서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라덴이 물은 즉시, 문이 열렸다.
문 안의 광경을 보고서, 라덴은 잠깐 동안 할 말을 잃고서 입을 반쯤 벌렸다. 흑마법사. 여자. 흑성 아라포니아. 라덴이 그 이름을 듣고서 자연스럽게 떠올린 것은, 칙칙한 로브를 뒤집어 쓴 음침한 여자 마법사.. 쉽게 말하자면 동화 속에 나오는 마녀의 이미지였다.
그런 라덴의 이미지는 보기 좋게 박살났다. 넓은 방. 뭔지 알 수 없는 다양한 책들이 가득 찬 책장이 벽이 되어 그녀의 등 뒤에 서있었고, 은은한 촛불이 방을 비추는 유일한 밝음이었다.
그녀는 그런 방 한 가운데에 앉아 있었다. 그녀의 옆에 놓인 항아리 안에서는 뭔지 모를 걸쭉한 액체가 가득 차 있었고, 자그마한 손바닥 아래에는 두개골이 장난감처럼 쥐어 져 있었다. 라덴은 꿀꺽 침을 삼켰다.
“..누구세요?”
흑성 아라포니아. 그 이름의 주인이 바로 그녀일 테지만, 라덴은 일단 그렇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라덴이 상상했던 아라포니아의 이미지와.. 바로 앞에 있는 아라포니아의 실물이 달라도 너무 달랐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커다란 챙 모자를 썼다. 모자는 칙칙한 보라색이었고, 그녀가 앉은 푹신한 소파도 그런 색이었다. 그녀는 작았다. 많이 쳐줘 봐야 열댓 살 정도일까. 머리는 회색에 가까운 은색이었고, 두 눈은 투명하게 반짝이는 은색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결정적으로, 반라였다.
반라. 거의 헐벗은 상태. 어깨를 감싼 짧은 케이프가 자그마한 가슴을 아슬아슬하게 가리고 있었고, 그 아래는 그냥 알몸이었다. 아니, 그나마 얇은 무릎 담요가 허벅지와 사타구니를 아슬아슬하게 가리고 있기는 했다.
“다크 세인트.”
라덴은 차마 눈을 둘 곳을 찾지 못하고 그녀의 얼굴만 뚫어져라 보았고, 그녀는 근엄한 미소를 지으며 제 자신을 그렇게 칭했다. 다크 세인트. 그것은 조금 낯선 이명이었으나, 결국은 흑성黑聖 영어로 그럴 듯하게 바꾸었을 뿐이다.
“..흑성?”
“다크 세인트.”
라덴이 확인차 물었고, 그녀는 고집스레 그를 밀어 붙였다. 결국 지금 라덴의 눈앞에 있는, 반 나체의 어린 여자가 발할라 내에서 가장 강하다는 다섯 괴물 중 하나라는 말이다.
“맙소사..”
라덴은 자신도 모르게 그런 탄식을 흘렸다. 위압감은 조금도 없다. 아라포니아의 파격적인 의상은 라덴으로 하여금 당혹감만 강하게 주었다.
“네가 졸코트를 죽인 아이구나?”
아라포니아가 빙그레 웃으며 물었다. 일단, 라덴은 머리를 끄덕거렸다. 이미지가 박살나기는 했지만, 다크 세인트든 흑성이든, 아라포니아는 염화에 버금가는 힘을 가진 괴물이다.
“예에..”
“흐흥, 발레르 패밀리의 보스를 죽였다기에 히트맨다운 얼굴을 상상했다만.. 생각 외로 패기없는 얼굴을 하고 있구나.”
누가 누구보고 패기없는 얼굴이라 하는 것인지. 라덴은 반박하고 싶은 마음을 꾹 눌러 삼키면서 아라포니아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빙그레 웃으면서 라덴을 향해 손을 까닥거렸다.
“이리 가까이 오거라.”
“예..”
일단, 라덴은 아라포니아의 말대로 그녀의 앞으로 다가갔다. 아라포니아는 머뭇거리는 라덴의 얼굴을 보면서 머리를 갸웃거렸다.
“왜 그러느냐? 똥 마려운 강아지 같구나.”
“아니 그게.. 왜 그런 옷차림을 하고 있는 겁니까?”
“내 집이니까. 내가 편한대로 입는 것이 당연하지 않으냐?”
어린 소녀의 모습을 한 주제에, 아라포니아의 말투는 오래 산 노인 같았다. 라덴은 거기서 찾아오는 위화감에 헛기침을 하면서 시선을 피했다.
“음.. 그래도 손님이 왔는데..”
“손님도 손님 나름이잖으냐. 이 내가, 고작 너 따위를 손님으로 대접하기 위해 내 차림을 바꾸어야 할까?”
정론이었다. 라덴은 더 이상 말하지 않고 한 걸음 물러서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아라포니아는 라덴이 발할라의 세계에서 만났던 그 누구보다 거물이었다. 서량제일검인 청성도, 백호무술관 관주인 백설도. 발레르 패밀리의 주인이었던 졸코트나, 현 발레르 패밀리의 주인인 카타레나와도 비교되지 않는다.
염화와 동등한 위치에 선 흑성, 다크 세인트는 말하자면 핵병기와 똑같다. 지금의 발할라 유저들은 그녀를 감당할 수가 없다. 당장 다크 세인트나 다른 괴물들이 마음을 먹는다면, 최상위 랭커들이 이끄는 길드 몇 개는 우습게 몰살시킬 수 있을 것이다.
비단 길드뿐만이 아니다. 플레이어들이 거점으로 삼고 있는 도시 역시, 그들이 마음을 먹는다면 발할라의 지도 안에서 지워버릴 수 있다.
자극해서 좋을 것이 없다. 관계를 맺는다면 이쪽이 철저하게 머리를 숙이고, 을인 입장으로 나가는 편이 낫다. 저들을 상대로 갑으로 행세하는 것은 불가능하니까.
“뭐.. 차림은 상관없지요. 당신께서 그런 복장이 편하다면야.”
“레벨이 몇이지?”
아라포니아의 질문은 갑작스러웠다. 그녀는 손 아래에서 굴리던 두개골을 손끝으로 두드렸고, 라덴은 그것에 시선을 주지 않으려 애쓰면서 대답했다.
“55입니다.”
“낮구나.”
라덴의 레벨은 현 발할라 유저 레벨의 평균이라고 할 수 있었다. 랭커를 제외하고서는, 발할라를 플레이하는 평균 유저 레벨은 55에서 60 정도다.
“뭐.. 그렇죠.”
“졸코트를 죽였다 길래 사소한 부탁을 할까 하였는데, 네 레벨이 그렇게 낮다면 부탁할 수가 없겠구나.”
“..우선 이거 하나 물어보죠. 아라포니아님이 하려는 부탁에 필요한 조건이 뭡니까? 레벨 말고요.”
“실력.”
“그것에 레벨은 별 상관없다고 보는데요.”
라덴의 말에 아라포니아가 낮게 웃음을 터트렸다. 한참을 웃던 아라포니아는 가늘게 뜬 눈을 빛내면서 라덴을 보았다.
“제법 자신이 있는 모양이구나.”
“뭐 그렇죠. 싸움은 꽤 잘하니까.”
“그 정도로는 부족하단다.”
아라포니아의 미소가 진해졌다. 등 뒤의 책장에서 두꺼운 책 한 권이 뽑혀 아라포니아 쪽으로 다가왔다.
“지금 내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은, 단순한 싸움 꾼이 아닌 충견이란다. 내 명령 한 마디에 사지로 뛰어 들어가, 내가 시킨 일을 완수할 수 있는 충견.”
“물어 뜯기만 한다면, 개가 죽어도 상관없다는 것 같은데요.”
“그러니 싸움꾼이 아닌 개가 필요한 거야. 마침 잘 되지 않았느냐? 플레이어는 죽어도 다시 살아나니 말이다.”
“뭘 하면 됩니까?”
이미지가 완전히 심부름 꾼이 되었군. 라덴은 투덜거림을 삼키면서 물었고, 아라포니아는 피식 웃으면서 두개골을 손끝으로 두드렸다.
“말하지 않았느냐. 너로는 안 된다고.”
“그렇다면 시험해 보시죠.”
라덴이 알기로는, 여태까지 다섯 괴물과 연결되어 퀘스트를 받은 플레이어는 아무도 없었다. 레벨 55, 마의 벽을 앞에 둔 지금, 아라포니아가 연결해주는 퀘스트는 벽을 뚫는 돌파구가 될 것이다.
“좋구나.”
아라포니아의 얼굴에서 미소가 피었다.
“그쪽이 확인하기 쉽지. 자아, 그러면..”
마도서가 펼쳐졌다. 영창도 필요없었다. 마도서 안에서 흘러나온 뿌연 어둠이 아라포니아의 앞에서 맴돌았다. 공간의 문이 열리고, 그 안쪽에서 걸어 나온 것은 날렵한 갑옷을 입은 남자였다. 헬맷 안쪽에서 시퍼런 안광이 번뜩거렸다.
“데스나이트?”
“레벨은 60정도로 맞춰주마.”
아라포니아가 흥얼거렸다. 그 말을 듣고서 라덴은 머리를 가로 저었다.
“70으로 하시죠.”
“70?”
아라포니아의 눈이 빛났다. 라덴은 몇 걸음 물러서고서 목을 좌우로 꺾었다.
“플레이어도 아니잖습니까? 타이틀도 없고, 장비로 추가 스탯도 못 얻고. 순 스펙 70이면 할 만 해요.”
“아하하!”
라덴의 말에 아라포니아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녀는 두개골을 손끝으로 두드리면서 머리를 끄덕거렸다.
“자신감 하나는 좋구나. 그래, 70으로 맞춰주지. 한 번 해 보거라. 만약에 쓰러트린다면..”
“그냥 쓰러트리는 건 재미없으니까, 이렇게 하죠.”
라덴은 아라포니아를 향해 씩 웃었다.
“한 대도 안 맞고 잡아 보겠습니다.”
“..좋구나.”
아라포니아의 목소리에 작은 흥분이 어렸다. 그녀는 외모에 걸맞게, 신 난 아이처럼 눈을 빛냈다.
“네가 저 데스나이트를 상대로 단 한 번의 공격도 닿지 않는다면, 내 친히 너를 인정해 주도록 하마.”
“그렇다면 반드시 해야겠네요.”
라덴의 무릎이 낮아졌다. 묵묵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데스나이트가 허리에 꽂아 둔 검을 뽑았다. 할 수 있으니까 뱉은 말이다. 데스나이트. 인간형. 할 수 있다. 라덴은 스스로에게 암시를 걸었다.
먼저 움직인 것은 데스나이트였다. 안이 텅 빈 갑옷이지만, 데스나이트의 움직임에는 조금의 삐걱거림도 없었다. 단숨에 덮쳐 든 데스나이트가 라덴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닿으면 안 된다. 방어도 안 되고, 해야 할 것은 회피 뿐. 힘을 줘야 할 것은 민첩 스탯.
양자택일이 힘을 민첩으로 바꾸었다. 라덴의 몸이 가속했다. 검격 아래로 파고 든 라덴의 주먹이 데스나이트의 흉갑에 꽂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