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econd Coming of Shinken RAW novel - Chapter 67
닿았다는, 확실한 타격감. 라덴은 손이 짓눌리는 것을 느끼면서 발을 앞으로 전진시켰다. 공격에 닿으면 안 된다. 방어 없이, 회피 위주로. 반격 정도는 괜찮겠지. 일단은 맞으면 안 된다. 그것만 확실하게 두고서,
그렇다고 소극적으로 나갈 생각은 없다. 왜, 공격은 최선의 방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라덴의 상체가 옆으로 크게 꺾였다. 데스 나이트가 휘두른 검이 라덴의 몸을 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갔다.
위빙으로 인한 회피, 거기서 바로 꽂은 반격의 공격력이 오른다. 짧게 끊어 친 주먹이 다시 한 번 데스나이트의 흉갑을 두드렸다. 놈의 몸이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검을 쥐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검만 경계해서는 안 된다. 검을 쥐고 있어도 공격은 다른 손이나 발, 심지어 투구로도 할 수 있는 법이니까. 라덴은 데스 나이트의 움직임을 확실히 경계하면서 놈의 틈을 파고 들었다.
한 호흡을 뱉는 시간에 공격은 연거푸 꽂힌다. 가만히 앉아서 그를 보고 있던 아라포니아가 즐거운 탄성을 내질렀다.
“몸놀림이 좋구나.”
그녀는 순수하게 감탄하며 그렇게 칭찬해 주었다. 하지만 당장의 칭찬은 라덴에게 있어서 별 의미를 갖지 못했다. 일단은 데스 나이트를 쓰러트리는 것이 먼저다.
전투가 가속되었다. 데스 나이트는 휘청거리며 뒤로 물러서기 일쑤였고, 라덴은 데스 나이트가 물러서는 만큼 거리를 좁히면서 놈을 압박했다. 물론, 데스 나이트는 녹록치 않았다. 놈은 계속해서 검을 휘둘렀고, 때로는 폼멜을 둔기 삼아 라덴의 머리를 내리 찍거나, 손이나 발을 쓰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라덴을 공격했다.
하지만 닿지 않는다. 소극적이지 않게, 공격 위주로 나가면서도 라덴은 무모한 행동은 하지 않았다. 어떤 경우든 자신이 몸을 뺄 틈은 만들어 두었고, 시간이 흐를수록 데스 나이트의 갑옷은 볼썽사납게 찌그러져갔다.
“더 볼 것도 없군.”
10분 정도 흘렀을까. 아라포니아가 그렇게 중얼거리며 손을 휘저었다. 데스 나이트의 몸이 시커먼 연기가 되어 무너졌다. 그녀는 동그랗게 뜬 눈을 반짝 빛내면서 라덴을 보았다.
“자신할 정도의 실력은 되는 모양이구나.”
“아직 안 쓰러트렸는데..”
“몸놀림은 레벨 대로 맞춰두었지만, 맷집까지 맞춰둔 것은 아니야. 네가 그 데스 나이트를 쓰러트리려면 몇 시간은 그렇게 두들겨 패야 한단다.”
아라포니아는 그렇게 말하고서 라덴을 향해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라덴은 아라포니아가 부르는 대로 그녀의 앞으로 다가갔다. 라덴의 얼굴을 빤히 올려 보던 아라포니아의 얼굴에서 가느다란 미소가 그려졌다.
“왕릉.”
“예?”
아라포니아가 뱉은 말에 라덴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세하라의 왕릉으로 가거라. 왕릉의 4층, 비밀의 방을 찾아서.. 그 안에 있는 수정 구슬을 나에게 가지고 오거라.”
아라포니아의 말이 끝나기도 전부터 라덴의 얼굴은 일그러져 있었다. 세하라의 왕릉. 라덴이 어찌 그 던전을 모를까? 세하라의 왕릉은 이번 시즌에 들어서 공개 된 던전이다. 당장 한국에서도 세하라의 왕릉 공략은, 많은 발할라 플레이어의 관심을 끌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세하라의 왕릉 공략을 맡은 길드는 흑접과, 흑접과 동맹을 맺은 불칸이다. 랭킹 2위인 루카스가 이끄는 공격대가 루아노스와 함께 공략 중이란 말이다.
“..세하라의 왕릉.. 이라고요?”
“왜 그러느냐? 표정이 좋지 않구나. 아까 전에는 그토록 당차더니, 막상 내용을 들으니 자신이 없는 것이냐?”
“아니 거기는.. 그러니까.. 최신 던전인데요. 최상위 랭커들이 비비고 있는 던전..”
“내가 너에게 세하라의 목을 가져오라고 했느냐?”
아라포니아가 물었다.
“아니면 세하라의 왕릉에 출현하는 다른 보스 몬스터를 죽이고, 그 증거를 가지고 오라고 했느냐? 무엇이 문제란 말이냐. 너는 그냥, 세하라의 왕릉으로 가서.. 4층에 있는 비밀의 방을 탐색하고, 그 안에 숨겨진 수정 구슬을 가지고 오면 되는 것이다.”
“아니 그게 말이 쉽지.”
라덴은 울상을 지으며 투덜거렸다. 실력에 자신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세하라의 왕릉은, 라덴이 비비기에는 스케일이 너무 큰 던전이다. 당장 세하라의 왕릉을 나돌아다니는 랭커들은 모두가 레벨이 아무리 낮게 잡아도 80.. 아니, 던전 공략을 목표로 하고 있으니 못해도 레벨 90이 넘을 것이다.
그들이 착용한 아이템과 타이틀의 추가 효과를 생각한다면, 그 레벨은 못해도 라덴보다 두 배는 높을 터.
“으으음..”
라덴은 앓는 소리를 내면서 머리를 감싸쥐었다. 패기롭게 아라포니아와 부딪혀서 퀘스트를 따낸 것은 좋지만, 그 내용이 문제다.
“..언제까지?”
“세하라가 토벌된다면 수정구슬은 사라진단다.”
결국 세하라가 공략되기 전에, 4층에 있는 비밀의 방을 찾아서 수정 구슬을 찾아오라는 말이다.
‘세하라의 왕릉이 어디까지 공략되었었지?’
던전의 공략 정보는 비교적 빠르게 갱신된다. 불칸과 흑접이 파악한 바로는, 세하라의 왕릉은 총 6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불칸과 흑접은 현재 3층을 공략하고 있었다.
하지만 생각처럼 빠르게는 되지 않고 있는 모양이다. 세하라의 왕릉에 출현하는 몬스터들도 까다롭고, 결정적으로 3층을 가로막고 있는 수문장- 티토스의 존재 때문이었다.
불칸의 길드장인 루카스가 이끌던 공격대는, 티토스를 공략하던 도중에 한 번 후퇴했었다.
‘아직 공략되지도 않은 4층.. 거기에 잠입해야 돼. 다른 플레이어들과 마주치는 일 없이, 4층의 비밀의 방을 찾고, 그 뒤에 탈출해야 하는 거야.’
난이도는 최상이다. 여태까지 라덴이 받았던 퀘스트 중에서 이만한 난이도를 가진 퀘스트는 없었다. 벨코브 공략? 그것은 시간 여유가 충분히 있었다. 하지만 세하라의 왕릉은 다르다.
던전 공략이라는 것은 온갖 변수가 일어나는 곳이다. 던전을 완전히 파악하지 못했기에, 길을 잃거나 던전 내의 트랩에 발이 묶이는 일도 많다. 그 반대로, 시간이 꽤 걸릴 것이라고 생각했어도 그보다 빠르게 던전 공략에 성공하는 일도 많다.
현재 불칸과 흑접은 티토스에게 가로 막혀 3층에 발이 묶여있지만, 3층의 문턱을 넘으면 생각했던 것보다 빠른 속도로 세하라에게 도달하는 것도 충분히 있을 법 하다는 말이다.
“..만약 내가 실패한다면?”
“왜, 두려운 것이냐?”
아라포니아가 두개골을 두드리면서 말했다.
“걱정하지 말거라. 작은 강아지를 핍박할 정도로 그릇이 작은 몸이 아니니. 네가 실패한다고 하여, 내가 너를 죽이거나.. 너에게 뭔가 나쁜 일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 대신.”
아라포니아의 눈이 가늘어졌다.
“너는 다시는 나와 마주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카타레나 발레르, 그 꼬마의 부탁이 있어도 말이다. 나는 다시는 너를 보지 않을 것이고, 너에게 어떤 부탁도 하지 않을 것이다. 너 역시 나에게 그것을 기대하지 말거라.”
빌어먹을. 완전히 코너에 몰렸다. 라덴은 머리를 벅벅 긁었다. 간신히 다크 세인트, 아라포니아와 연결되었는데.. 이번 퀘스트를 실패한다면 기껏 만든 아라포니아와의 연결점이 사라지게 된다.
‘다크 세인트같은 거물과의 연결점을 놓치면 안 돼. 이건 무슨 수를 쓰더라도 잡고 있어야 한다.’
“반대로, 내가 당신의 퀘스트를 성공한다면, 나는 무엇을 얻습니까?”
“내 신뢰.”
아라포니아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그녀가 뱉은 말에는 라덴이 감히 의심할 수 없는 힘이 실려 있었다.
“나, 다크 세인트가 너를 신뢰하는 것이 이 퀘스트의 보상이다. 왜, 부족하다고 느끼느냐?”
“..물질적인 것은?”
“속물 같으니. 때로는 물질적인 것보다 이런 정신적인 보상이 더 가치 있을 때도 있는 법이란다. 그 누구도 아닌 다크 세인트의 신뢰라면, 그 어떤 물질보다 가치가 높지. 내가 우둔한 네가 알기 쉽게 설명을 해 주랴?”
아라포니아는 보란 듯이 라덴의 앞에 손을 펼쳤다. 네 개의 손가락이 접어지고, 아라포니아의 손가락 하나가 우뚝 섰다.
“네가 내 부탁을 성공적으로 이행한다면, 나는 그 내용이 무엇이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네 부탁을 하나 들어주마.”
“그 말은..”
“잘 생각해서 판단하거라. 나는 다크 세인트다. 염화, 검왕, 환룡, 악희. 이 넷과 동등한 오랜 괴물이란 것이다. 나는 알제른을 통째로 이 지도에서 지워버릴 수도 있고, 길드 몇 개도 장난삼아 몰살시킬 수 있는 사람이야.”
아라포니아가 하는 말을 들으니, 라덴은 그녀가 말한 ‘신뢰’라는 정신적인 가치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말하자면 백지 수표였다. 지금의 발할라에서 아라포니아나 다른 다섯 괴물과 신뢰를 쌓은 플레이어는 아무도 없다.
“그것 뿐만이 아니지. 나는 이 퀘스트의 보상으로, 네 부탁을 들어주는 것이 아닌.. 나의 신뢰를 걸었단다. 내 앞으로 사소한 심부름거리가 생긴다면, 혹은 사소하지 않아도 내 손으로 처리하기 귀찮은 일이 생긴다면. 그것을 너에게 맡기도록 하마.”
라덴은 눈을 감았다. 아까 전에, 아라포니아가 했던 말이 새삼 라덴의 머릿속에 떠돌았다. 아라포니아가 원하는 것은 충견이다. 자신의 말을 잘 따르는 개. 물라면 물고, 짖으라면 짖고, 던진 공을 가져오라고 하면 가져오는 그런 개.
“하겠습니다.”
결국 라덴은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마의 벽을 앞두고 있고, 당장 뚜렷한 돌파구는 없다. 그나마 희망을 갖고 있는 것은 발라코르의 여관 주인인 카작이 준 ‘은둔자’ 퀘스트와, 벨코브에서 이어진 ‘황혼의 추적자’ 퀘스트 뿐.
아라포니아의 신뢰를 얻는다면 그녀에게서 지속적으로 퀘스트를 받을 수 있다. 게다가 무조건 부탁 하나를 들어주겠다는 백지 수표까지. 이건 해야 된다. 안 돼도, 어떻게든 해야 된다.
“좋아.”
아라포니아는 라덴이 그렇게 대답할 줄 알았다는 듯이 웃었다.
“그런데.. 세하라의 왕릉이 어디에 있죠?”
“그건 네가 알아 봐야지.”
아라포니아는 당연하지 않느냔 얼굴로 물었다.
라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
아라포니아의 저택을 나오고서, 라덴은 곧바로 로그아웃했다. 원래는 차분히 시간을 들여서, 투기장에서 경험치 파밍을 하며 레벨을 올리고, 그 뒤에는 보하미르로 넘어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아라포니아의 부탁이 퀘스트로 추가되면서, 김현성의 동선은 크게 꼬이게 되었다. 우선 파악해야 할 것은 세하라의 왕릉이 어디에 있느냐.
그것부터가 문제였다. 새 시즌에 공개되는 새로운 던전은, 일단 플레이어에게 위치를 알리지 않는다. 플레이어 나름대로 발할라의 막대한 대지를 뒤져가면서 새로운 던전의 위치를 탐사해야 하는 것이다.
덕분에 시즌에 공개되는 던전 10개 중에서, 이전 시즌의 던전이 아직까지 위치가 파악되지 않아 비공략 던전으로 남아있는 경우도 몇 있다.
‘던전 공략 실황은 비교적 투명하게 알리는 법이지만, 던전의 위치는 절대로 불지 않아.’
다른 길드가 끼어들기라도 한다면 죽 쒀서 개주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던전의 위치를 공표하는 것은, 그 던전을 발견한 길드가 성공적으로 토벌에 성공하고 난 뒤가 된다.
‘세하라의 왕릉의 위치는 특정이 안 돼.’
김현성은 머리를 쥐어 뜯었다. 불칸과 흑접이 영상을 몇 개 공개하기는 했지만, 세하라의 왕릉 내부를 찍은 영상이라 그 위치가 어딘지 정확히 특정이 되지 않았다.
‘루아노스에게 물어볼까?’
방법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김현성은 루아노스와 연결 된 핫라인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루아노스도 바보가 아닌 이상, 김현성이 묻는다고 곧이곧대로 알려줄 것 같지는 않을 것이다.
‘보하미르도 가야 하는데.. 꼬인다.. 꼬여..!’
결국 앓는 소리가 나왔다. 괜히 시간을 끌었다가 보하미르에서 황혼의 추적자 퀘스트를 수행하지 못한다면 죽도 밥도 안 된다. 김현성은 한숨을 푹푹 내쉬면서 컴퓨터 앞에 앉았다.
“일단 알아볼 수 있는대로 알아볼 수밖에.”
별 희망은 없었지만 말이다.
끝
ⓒ 목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