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econd Coming of Shinken RAW novel - Chapter 88
알케나가 계승한 이름은 ‘블랙 스완.’ 그 이름에 붙은 고유 특성은, 다른 플레이어들의 고유 특성과 비교하자면 상당히 이례적이다.
보통의 고유 특성은 스킬 하우스에서 익힐 수 없는 자신만의 고유한 스킬이다. 하지만 알케나가 계승한 고유 특성은, 스킬이라기보다는
‘무기’다.
알케나는 양 손에 쥐어진 세피아와 하라펠을 내려 보았다. 지금의 경우에서 이 검들을 사용하는 것이 정답일까. 그에 대해서 알케나는 정답이라는 확신은 가질 수 없었다. 그녀가 꺼낼 수 있는 검은 다섯 개. 제각각 능력이 다른 다섯 개의 검 중에서, 전투 때마다 상황에 맞게 검의 종류를 바꾸는 것이 알케나가 계승한 블랙 스완이라는 이름의 전투 스타일이다.
세피아는 검을 쥐고 있는 경우에 한해서 모든 스탯을 일정량 상승 시킨다. 역으로 세피아에게 베어진 상대는 모든 스탯이 일시적으로 일정량 감소하게 된다. 공격으로 감소시키는 스탯량은 현재 알케나의 레벨로는 2.
세피아의 진짜 위력은 공격으로 인한 스탯의 감소를 ‘중첩’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공격을 두 번 성공시킨다면 모든 스탯을 4 감소시킨다. 10번 성공시킨다면 총 스탯을 20 감소시킨다. 연속 공격의 경우에는 3초 안에 공격을 연결해야 한다는 제약이 있긴 했지만, 세피아를 쥐고 있을 때 폭딜을 쏟아 부을 여건이 된다면.. 알케나는 보통의 흑마법사보다 더한 디버프를 상대에게 꽂아 넣을 수 있게 된다.
세피아가 디버프와 자기 버프용 검이라면, 하라펠은 방어용 검이다. 이 검은 쥐고 있을 때에 한해서, 받는 피해량의 절반을 체력이 아닌 마력으로 받아 내게 만든다. 알케나는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면서 악희를 노려 보았다.
공포.
게임 속임에도 악희가 발하는 공포는 너무 강렬해서, 다리가 떨리고 있었다. 알케나는 그 공포를 억지로 눌러 삼켰다. 그녀는 라덴이 한 말에 공감했다. 이대로 악희가 하라는 대로 했다가는, 뭔가가 단단히 잘못 될 것이라는 강한 예감을 느꼈다.
그러니까 할 수 밖에 없었다. 세피아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간다. 알케나는 세피아와 연결된 고유 특성을 발현시켰다.
세피아의 고유특성, 사이키델리아가 발현되었다. 알케나의 심장이 두근거리며 크게 뛰었다. 사이키델리아는 일정 시간 동안 모든 스탯을 폭발적으로 상승시킨다. 지속시간은 1분. 그 뒤 5분 동안 스탯이 절반 가까이 하락하기는 하지만, 알케나는 망설임없이 사이키델리아를 펼쳤다.
어떻게 해서든 시간을 끌어야 한다. 타이밍을 알릴 틈도 없었다. 알케나가 가진 전력 이상으로 싸울 수 있는 것은 1분 뿐. 알케나가 앞으로 뛰어나갔다. 알케나가 뛰어나간 즉시, 라덴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했다.
라덴은 아직 손에 들고 있던 손전등을 천장으로 집어 던졌다. 빙글빙글 회전하며 올라 간 손전등이 공동 안의 어둠을 비춘다. 거기서 그림자가 만들어졌다.
그림자 뛰기. 셰도 케이프의 스킬이 발동되었다. 라덴은 10m 거리에서 입구 쪽으로 가장 가까운 그림자로 이동했다.
라덴이 이동을 마쳤을 때, 알케나는 세피아를 자신이 낼 수 있는 최고속도로 악희에게 휘두르고 있었다. 보아 하니 몸뚱이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고, 제 스스로 동굴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것 같았다. 봉인은 느슨해 졌지만 완전히 풀린 것이 아니다. 알케나는 그렇게 생각했고, 상대가 다섯 괴물 중 하나인 악희라고 해도 시간 끌기 정도는 충분히 가능하리라고 믿었다.
“조금.”
악희의 입이 열렸다. 알케나가 휘두른 검이 악희의 바로 근처로 왔을 때였다. 일렁거리던 안개가 들끓었다. 콰아앙! 그런 소리가 났다.
뭐지? 공중에서 알케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휘둘렀던 세피아가 산산조각 나있었고, 오른팔도 넝마가 되어 채찍처럼 낭창거리고 있었다. 콰당탕! 땅을 뒹군 알케나는 속에서 끓어 오른 핏물을 토해냈다.
“아.. 윽..!”
타악! 라덴이 던졌던 손전등이 아래로 떨어졌다. 그림자 뛰기에 성공한 라덴은 등 뒤에서 들리는 폭음에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뒤를 돌아 봐서는 안 돼. 라덴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다리에 힘을 주었다. 양자택일로 힘을 민첩으로, 거기에 질주 스킬을 펼친다.
엿같은 공동은 너무 넓었다. 계단까지 달려 나갔지만,
라덴의 걸음이 멈추었다. 라덴의 앞에 선 악희는 여전히 검은 안개를 제 몸으로 삼고 있었다. 괴물은 안개 속에 떠오른 한쌍의 눈을 가늘게 뜨고서 라덴을 보았다.
“얕잡아 보였나 봐. 그렇지?”
10년 동안 봉인 당했다고 해도 괴물은 여전히 괴물이었다. 라덴은 헛웃음을 흘리면서 주먹을 쥐었다.
“아, 젠장.”
“라덴.. 님..!”
쓰러진 알케나가 헐떡거리며 라덴을 불렀다. 시간 끌기조차 실패했다. 얼마나 붙잡고 있었지? 3초? 알케나는 약해 빠진 자신을 자책하면서 눈을 질끈 감았다.
사실 알케나의 잘못은 아니었다. 상대가 안 좋았을 뿐이다. 라덴은 이를 악물고서 자세를 잡았다. 어떻게 공격해야 할까. 안개인데.. 주먹으로 때리면 맞을까?
“아직은 기분이 좋아.”
악희가 소곤거렸다. 하지만 라덴은 기분이 그리 좋지 않았다. 빌어먹을 퀘스트. 라덴은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주먹을 내질렀다. 전신을 던져서 뻗은 철산포였다.
결과는 알케나와 똑같았다. 콰드득! 내질렀던 라덴의 오른 팔이 박살났다. 라덴은 사라진 오른 팔의 감각에 이를 악물고서 허리를 비틀었다. 질풍연각. 그 첫 번째 타격은 들어가지도 않았다. 똑같은 결과였다. 라덴의 오른 다리가 박살났다.
“기분이 좋다니까.”
라덴은 제대로 서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차이가 너무 컸다. 이 정도로 극심한 무력감은 느껴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까, 죽이지는 않을게.”
드래곤 하트의 파편을 잡고 있는 라덴의 왼 팔이 삐걱거리며 올라갔다. 라덴은 얼굴을 일그러트리면서 버티려 들었지만, 팔을 들어 올리는 무형의 힘은 너무 강해서 라덴이 감히 저항할 수가 없었다.
팔이 끝까지 들렸다. 손이 펼쳐지고, 드래곤 하트의 파편이 라덴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왔다. 악희는 즐거운 웃음을 흘리면서 자신의 몸뚱이로 드래곤 하트의 파편을 끌어 당겼다.
[악희의 봉인 퀘스트를 실패하였습니다!] [악희의 봉인 퀘스트가 소멸하였습니다!] [히든 스토리, ‘검은 날개’가 해금되었습니다!]악희가 들뜬 신음을 흘렸다. 몸뚱이를 이루고 있는 안개가 일렁거린다. 히든 스토리, 검은 날개. 그 이름에 걸맞게 시커먼 날개가 위로 솟구쳤다.
‘진짜 히든 스토리 맞았네.’
애초에 봉인이 풀리는 것을 전제로 두고서 있던 퀘스트인가. 은둔자 퀘스트, 악희의 봉인. 이 두 개의 퀘스트는 단순히 페이크였고, 플레이어가 카작에게서 퀘스트를 받고서 유성을 만나고, 알라베스 산에 있는 악희의 봉인지로 들어간다.
악희의 봉인이 풀리는 것으로 히든 스토리가 해금된다. 그 뒤에는 무엇이 바뀌는 거지? 블랙벨트는? 라덴의 그런 의문 속에서 악희는 굽히고 있던 몸을 꼿꼿이 세웠다.
“길었어.”
악희가 중얼거렸다. 날개가 더 위로 솟는다. 공동의 천장이 검은 날개에 닿아 가루로 변해 사라져갔다.
“아주 길었어.”
그 중얼거림을 남기고서 악희의 몸이 위로 솟구쳤다. 뻥 뚫린 공동 천장에서 빛이 쏟아졌다. 라덴은 그 위로 사라진 악희를 눈으로 올려 보면서 헛웃음을 흘렸다.
“..어떡하죠?”
라덴은 알케나 쪽을 보면서 물었다. 질문하기는 했지만, 알케나가 그에 대답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일단 저희도 나가죠.”
라덴은 인벤토리에서 포션을 꺼내면서 중얼거렸다. 상처에 포션을 붓고, 입으로 마셨다. 부상을 회복한 라덴은 비틀거리면서 알케나 쪽으로 다가갔다. 알케나에게 남은 포션을 건네주고서, 라덴은 그녀의 몸을 부축해서 일으켰다.
*
유성은 창을 내려놓았다. 황혼 처형대 소속의 마법사들. 그들은 뛰어난 마법사였지만 안타깝게도 상대가 너무 좋지 않았다.
루이포드는 뜯겨져 나간 옆구리를 손으로 부여잡고서 주저앉았다. 호흡할 때마다, 루이포드는 자신의 숨결에 섞인 비린한 피 냄새를 맡았다. 루이포드는 얼굴을 일그러트리면서 치유 마법을 외었다.
무의미한 짓이라는 것은 루이포드도 알았다. 유성은 자비를 베풀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치유 마법을 외어 상처를 치료해봤자 잠깐일 뿐이다. 그나마 고통을 덜어내기 위해 쓰는 것일 뿐. 루이포드는 갈라진 목소리로 웃음을 토했다.
“실수했군. 당신이 유성이라는 것을 먼저 알았더라면, 미행을 하지 않았을 텐데..”
“후회는 언제나 늦지요.”
유성은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창을 들어 올렸다. 그의 얼굴은 우울하게 젖어 있었다. 본래 엘프는 살인을 그리 즐기지 않는다. 물론 모든 엘프가 그런 것은 아니다. 유성은 몇 십 년 전부터 대륙을 떠돌면서 많은 죽음을 보았고, 많은 죽임을 행해 왔다. 이제 와서 유성이 살인에 대해 감상적이 될 이유는 없다.
하지만.. 10년 만이라서 그런 것일까. 그리 유쾌하지는 않았다. 보하미르에 은거하면서 평화로운 삶을 살았다. 그것이 가슴 깊은 곳에 구겨 넣어 두었던 엘프의 감성을 깨운 것일까. 유성은 쓴웃음을 지으면서 피에 젖은 창을 털었다.
“나를 원망하십시오.”
“저주 마법을 익히지 않은 것이 원통하군.”
루이포드는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이를 꽉 물었다. 유성은 그런 루이포드를 향해 창을 들어 올렸다.
유성의 창이 루이포드의 머리를 박살냈다. 그 바로 뒤에, 콰아앙! 땅 밑에서 터진 폭발이 유성의 몸을 흔들었다. 유성은 당황한 얼굴로 뒤를 돌아 보았다. 악희를 봉인했던 동굴이 폭발하고, 암석 파편이 위로 솟구치고 있었다.
“이게 무슨..?”
유성의 경악 속에서 검은 날개가 크게 펼쳐졌다. 10년 만에 지상으로 나온 악희는 여전히 검은 안개로 몸을 두르고 있었다. 유성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하늘에 떠있는 악희를 보았다.
“으음.”
날개를 펼친 악희는 몸을 쭉 펼치고서 기지개를 켰다. 햇빛을 받아 악희 몸을 이룬 안개가 천천히 흩어졌다. 유성은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재림한 괴물을 보고서 눈을 부릅 떴다.
괴물은 조금도 변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먹물을 푼 것 같은 시커먼 머리카락도, 너무 희어 창백한 피부도, 피처럼 붉은 눈도. 그것은 요악스레 아름다웠고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가슴 깊은 곳에서 공포를 끄집어 꺼낼 정도로 두려웠다.
악희의 눈이 아래로 내려왔다. 악희는 유성을 보았고, 유성 역시 악희를 보았다. 창을 잡은 유성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무언가가 잘못되었다. 봉인이 풀렸다. 유성은 급히 그것을 이해했다. 대체 왜? 납득할 수 없었지만 유성은 그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다.
이미 벌어진 일이고, 이제 와서 이유를 따지기에는 너무 늦었기 때문이다. 유성이 쥐고 있는 창에서 새하얀 빛이 크게 뿜어졌다. 악희는 그 빛을 보고서 낮게 웃었다.
“그래, 너로구나. 유성 프레이든. 다른 녀석들은 어디에 있지? 10년이란 세월이 흐르기는 했지만, 다 뒈지지는 않았을 텐데?”
유성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쥐고 있는 창을 전력을 다해 내질렀다. 콰아앙! 새하얀 빛이 날카로운 송곳이 되어 허공으로 쏘아졌다. 악희는 피식 웃으면서 날개를 움직였다. 가볍게 휘두른 날개와 닿은 유성의 공격이 허무하게 소멸했다.
“10년 동안 실력이 늘기라도 한 거야? 하지만 너무 오만한 걸. 너 혼자서 나를 감당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악희가 쿡쿡거리는 웃음을 흘렸다. 유성은 창백한 얼굴로 아랫입술을 씹었다. 악희의 말대로였다. 유성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그 혼자서 악희를 감당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10년 전에도 저 괴물을 봉인하기 위해 얼마나 공을 들였던가.
“유성님!”
동굴의 입구를 가로막고 있던 암석이 박살났다. 밖으로 나온 라덴과 알케나가 유성에게 다가갔다. 유성은 손을 뻗어 다가오려는 둘을 제지했다.
“오지마십시오.”
유성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말했다.
“두 분을 지키는 것은 저에게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도망치십시오.”
“하지만..”
“두 분을 탓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봉인에 문제가 생겼고.. 그게 전부입니다.”
“유, 유성님은?”
알케나가 더듬거리며 물었다. 그 말에 유성은 입술을 다물었다. 이곳에 유성이 남는다고 한들 저 괴물을 상대로 무언가를 할 수는 없다.
“책임을 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유성이 중얼거렸다. 봉인을 담당하는 것은 그의 역할이었다. 봉인에 문제가 생겼다면.. 그 역시 유성이 감당해야 할 책임이었다.
[재밌는 일이 일어났구나.]뭐라 말을 하지 못하고 유성을 보고 있는 라덴의 머릿속에서 그런 목소리가 울렸다. 라덴의 표정이 멈칫 굳었다.
[아라포니아님?] [설마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지만. 저 괴물을 눈으로 보는 것이 몇 년 만이던가?] [다 보고 있었던 겁니까?] [네가 동굴로 들어갈 때에는 보지도 듣지도 못했단다. 그 안은 나로서도 엿 볼 수 없는 곳이었거든.]개입하고 싶어도 개입할 수가 없었다. 아라포니아가 덧붙이는 말을 듣고서 라덴은 입술을 잘근 씹었다. 라덴의 침묵 속에서 아라포니아가 물었다.
[그래서, 어쩔 테냐. 저 엘프가 강하다는 것은 알지만, 저 엘프 혼자서 괴물을 상대하는 것은 불가능해.] [내가 돕는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겠습니까?] [너는 아무런 도움이 안 되겠지. 하지만.. 잊었느냐? 너는 나를 움직일 수 있지 않느냐.]아라포니아의 신뢰. 라덴은 아라포니아가 들어 줄 수 있는 한에서 그녀의 도움을 바랄 수 있었다. 쓸 기회가 없어서 가지고 있던 백지 수표다.
[뭐,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네 바람이지만 말이다.]유성이 했던 말을 떠올린다. 악희는 포악하다고.
“씨발.”
레벨 업 좀 열심히 할 걸. 아니, 지금 상황은 라덴이 랭킹 1위가 되어도 별 도움이 안 될 테지만. 라덴은 한숨을 삼켰다.
[도와주세요.] [정말로?] [네.]체념하여 한 대답에 아라포니아가 웃음을 터트렸다.
끝
ⓒ 목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