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econd Coming of Shinken RAW novel - Chapter 9
009/ 백호무술관-1
시발새끼.
개새끼, 호로새끼, 쓰레기.
그 외에도 ‘그’를 칭하는 욕은 몇 십 가지가 된다. 인간이 다른 누군가를 지칭하는 욕설 중 대부분이 그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그 많고 많은 욕설 중에서, 백호무술관의 관주인 ‘백설’을 칭할 때 가장 많이 쓰이는 말은 이것이었다.
망나니.
“오늘은 기분이 엿 같아.”
텅 빈 연무장 한 가운데에 벌러덩 누운 백설은 그렇게 중얼거렸다. 바닥에는 얇은 돗자리 하나만 깔았고, 옷은 속옷 하나만 입었다. 대뜸 피부를 태우고 싶다는 생각에 벌이고 있는 기행이었다. 그런 백설을 내려 보면서 백호무술관의 제 4제자인 호량은 혀를 차면서 머리를 흔들었다.
“관주님 기분이 엿같지 않을 때도 있었슴까?”
“그건 아닌데. 오늘은 평소보다 조금 더 엿 같아. 미묘하게 느껴질 정도로 말이지. 야, 그것보다 내 피부 어때. 좀 타고 있냐?”
“음.. 별로.. 잘 모르겠는데요. 거 보니까, 피부 태울 때는 기름 발라야 된다는데. 참기름이라도 바르는 것이 어떠심까?”
“그건 좀 아닌 것 같은데. 멀쩡한 몸에 참기름을 왜 발라? 야, 그것보다. 계속해서 이러고 있는 것도 심심한데.. 뭐 재밌는 것 좀 해 봐라.”
“..재밌는 것이요?”
“그래. 춤이라도 한 번 춰봐.”
백설의 말에 호량은 허허 웃었다. 호량의 얼굴은 길거리에서 어깨를 부딪히면 그 자리에서 오줌을 지리며 머리 숙여 사과할 정도로 험악하다. 어깨는 쩍 벌어졌고 가슴 근육도 크게 부풀었다. 솥뚜껑처럼 커다란 주먹은 흉터투성이다. 그런 모습의 호량이 춤을 추는 모습은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추할 뿐이다.
“뭔, 개나리 쌈 싸먹는 소리를. 더위 먹으셨슴까?”
“관주한테 못하는 말이 없어. 야, 그보다 다른 애들은 어디로 간 거야?”
“청아 사형과 유의 사형은 오늘 저녁거리 사러 갔고, 무풍 사형은 꽃밭 가꾸고 있슴다.”
“새끼 이거, 너 혼자 꿀빨고 있네. 너는 왜 아무 것도 안 해?”
“옆에서 관주님 말동무 하고 있잖슴까.”
호량이 킬킬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 말에 백설은 쩝 입맛을 다시면서 허리를 튕겨 몸을 일으켰다. 백설은 뜨겁게 달아오른 몸을 손으로 두들기면서 인상을 썼다.
“별로 타지도 않은 것 같은데.”
“그러니까, 기름 발라야 된다니까요. 돼지기름이라도 바르면 되려나?”
“네 비계 짜서 기름 내면 되겠네. 해 볼까?”
“킁, 제 몸에 비계가 어딨다고..”
“그 쓸데없이 부푼 근육 덩어리 짜면 뭐라도 나올 것 같은데. 안 그러냐?”
백설의 이죽거림에 호량은 인상에 어울리지 않게 입술을 삐죽거렸다. 백설은 복근이 단단하게 잡힌 배를 벅벅 긁으면서 투덜거렸다.
“도박판에라도 가고 싶은데 돈이 없네.”
“저도 없습니다.”
“꽁쳐 놓은 돈 없어?”
“제가 그런 돈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청아가 야무져서 저금은 참 잘하는데. 청아 방을 뒤져서..”
“그러다가 관주님 불알이 뽑힐 텐데요.”
호량은 진심으로 백설의 행동을 만류했다. 그 말에 백설은 포기하고서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그라고 해서 한가해서 연무장 한 가운데에 벌러덩 누워 있는 것은 아니다. 밖에 나가서 뭐라도 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한데, 백설에게는 그 중요한 돈이 없었다.
쿵쿵.
굳게 닫혀있던 백호무술관의 대문을 누군가가 두드렸다. 백설은 움찔 굳은 얼굴로 작게 흔들리는 대문쪽을 바라보았다.
장을 보러 나갔던 청아와 유의, 무풍은 아니다. 항상 쪽문으로 드나들던 놈들이 새삼 대문으로 들어올 이유도 없고, 만약 대문으로 온다고 해도 문을 두드리거나 하지는 않을 테니까. 호량 역시 조금 놀란 얼굴을 하고서 대문을 바라보았다.
“계십니까?”
문 너머에서 그런 목소리가 들렸다. 어수룩한 청년의 목소리다. 백설은 미간을 찡그리고서 바닥에 대충 던져두었던 옷을 들어 올렸다.
“올 손님은 없는데.”
“..제가 열까요?”
호량이 슬쩍 백설의 눈치를 살피면서 물었다. 백설은 싸늘하게 식은 얼굴을 하고서 머리를 끄덕거렸다. 호량은 한숨을 삼키면서 대문으로 다가갔다.
‘뭔 또 미친놈이.’
호량은 그렇게 생각하며 대문을 열었다.
*
백호무술관으로 찾아오는 것은 꽤 어려웠다.
백 개에 달하는 무술관이 쭉 나열된 무로武路는 서량을 대표하는 명물 중 하나고, 커다란 간판에 웅장한 필체로 적어 놓은 무술관 이름들을 하나하나 살피면서 무로를 걸어도, 백호무술관이라는 이름은 찾아 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길가는 사람들한테 묻고 물어서 백호무술관을 찾아왔다. 라덴은 꿀꺽 침을 삼키고서 백호무술관을 올려다보았다.
백호무술관. 사대무술관 중 하나이자, 서량의 명물인 무로를 만들어 낸 종가 중 하나.
‘뭐이리 작아?’
라덴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백호무술관을 바라보았다. 위풍당당하던 무로의 다른 무술관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들어 선 곳도 으슥한 뒷골목이고, 반쯤 기울어진 간판은 당장이라도 떨어질 것 같았다. 대문과 담벼락에는 온갖 종류의 욕설이 적혀져 있었는데, 쳐다만 봐도 보는 이쪽의 기분이 더러워질 정도였다.
“..이거.. 이래도 되는 건가 모르겠네.”
라덴은 투덜거리면서 백호무술관의 문을 두드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낡은 문이 벌컥 열렸다. 라덴은 자신을 내려 보는 호량을 올려 보았다. 라덴도 키가 작은 편은 아니었지만, 호량은 라덴보다 머리 하나 반은 더 컸다.
“뉘쇼?”
우둑, 뚜둑. 호량은 보란 듯이 목을 좌우로 꺾으며 물었다. 그가 목을 움직일 때마다 묵직한 뼈소리가 섬뜩하게 울렸다. 라덴은 꿀꺽 침을 삼키고서 입을 열었다.
“..무술관에 입단하기 위해 왔는데요.”
“플레이어네.”
호량의 등 뒤에서 백설이 이죽거렸다. 그 말에 라덴은 머리를 돌려 백설 쪽을 보았다. 대충 상의를 걸친 백설은 미간을 찡그리고서 라덴을 바라보았다.
“그래도 이건 꽤 신선하구만. 한 반 년 쯤 전부터 플레이어가 이곳에 온 적은 없었는데.”
“..그런가요?”
라덴은 태연함을 가장하고서 물었다. 긴장을 삼키며 턱을 살짝 당긴다. 백설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맺혔다.
“왠지 알아?”
호량이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백설은 널찍한 소매를 흔들면서 웃음소리를 냈다.
“제자가 되고싶다고 찾아 온 플레이어 놈들. 내가 죄다 한 번씩 죽여주었거든.”
그 말에 라덴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백호무술관의 관주인 백설은 서량에 둘도 없는 망나니다. 이곳까지 찾아오기 위해 백호무술관의 위치를 묻던 도중, 라덴에게 대답해 주었던 NPC들은 모두가 입을 모아 그렇게 말했었다.
‘망나니라고 해 봐야 얼마나 망나니일까 싶었는데.’
낄낄거리며 웃는 백설의 얼굴을 보니, 아무래도 진짜 망나니인 것 같았다.
판타지아도 그랬지만, 발할라에도 사망 패널티는 존재한다. HP가 0이 된다면 죽고, 사망 패널티는 3일간 접속 불가. 그리고 가지고 있는 장비 아이템 중에 하나를 랜덤으로 드랍하게 된다.
‘..지금이야 가진 아이템이 없으니 드랍 자체는 상관없는데.’
4일 동안 게임을 못하는 것이 문제지. 라덴은 혀를 차면서 슬며시 다리를 벌렸다. 백설은 중심을 낮추는 라덴을 보면서 눈을 빛냈다.
“어쭈. 왜. 한 번 해 보게?”
“..제자가 되고 싶을 뿐입니다. 그게 전부라고요.”
“제자로 받아줄지, 받지 않을지를 결정하는 것은 나야.”
백설은 미간을 찡그리면서 내뱉었다. 카악, 퉤. 머리를 옆으로 돌려 침을 뱉은 백설은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하여튼, 플레이어란 새끼들은 마음에 들지 않아요. 기껏 패 죽여 놓아도 사흘 지나면 다시 나타나고. 재능도 없고 노력도 없고 쥐뿔도 없으면서, 스킬이랍시고 편법만 쓰고.”
“예?”
“뭘 모르는 척하고 있어? 내가 플레이어에 대해서 모를 것 같아? 다 똑같은 새끼들이라고, 너희들은. 무기 안 들고 있는 것보니 너도 베이직 클래스는 무투가 선택했을 것이고. 거기서 뭐 하나 더 고명 얹으려고 여기 온 것 아냐? 씨발, 내가 이 나이 처먹어가면서 익혔던 것들을 대체 뭐로 보는 거야?”
백설이 내뱉는 말에 라덴의 표정이 멍해졌다. 순간, 라덴은 앨리스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전직소에서 베이직 클래스를 선택하지 말고 가라고 했던 말. 라덴의 생각이 빠르게 회전했다.
“전직 안 했습니다.”
“뭐?”
라덴은 일단 그렇게 말했다. 그 말에 백설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전직 안 했다고요. 아직 전직소도 안 갔고, 그냥 바로 여기로 왔습니다.”
“..새끼가 어디서 약을 팔아?”
“정말로 전직 안 했습니다. 뭣하면 확인해 보시던가.”
라덴은 자신의 상태창을 띄우고서 공유버튼을 눌렀다. 라덴에게만 보이던 홀로그램 창이 뚜렷해졌다. 곁에 있던 호량이 시선을 힐긋거리며 라덴의 상태창을 보았다.
“..정말인데요? 이 새끼, 아직 직업 선택 안했어요.”
“그게 뭐 어쩌라고?”
백설이 피식거리며 웃었다.
“직업 선택은 언제든지 할 수 있는 거잖아.”
맞는 말이다. 클래스 선택은 레벨과 상관없이, 원한다면 언제든지 할 수 있다. 베이직 클래스로 무투가를 선택하고, 나중에 마법사를 선택하는 것도 가능했다. 그런 식으로 서로 다른 직업을 조합해 자신만의 전투 스타일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한 번 해볼까.’
라덴은 크게 숨을 삼켰다.
“백호무술관에서 배우는 동안은 절대로 다른 직업으로 전직하지 않겠습니다.”
그 말에 백설의 표정이 멈칫 굳었다. 라덴은 눈에 힘을 주고서 백설을 바라보았다. 백호 무술관에서 언제까지 있을 지는 모르지만, 만약 재수가 없다면 시간만 버리고 얻는 것도 없게 될 것이다.
“..이거 재밌는 새끼네.”
라덴을 노려보던 백설은 피식거리는 웃음을 뱉었다.
“다른 직업으로 전직하지 않겠다고?”
“백호무술관에서 배우는 동안은.”
라덴이 그렇게 못을 박자 백설은 들으란 듯이 크게 웃었다.
“그러니까. 스킬도 없이 맨 몸으로 백호무술관에서 배우겠다고?”
“..뭐, 제가 이상한 말이라도 했습니까?”
라덴은 백설이 웃는 소리에 가슴 한 구석에서 불길한 예감이 싹트는 것을 들었다.
“테스트.”
백설의 웃음이 뚝 멈췄다. 그는 차갑게 식은 얼굴로 라덴을 노려 보았다.
“맨 몸으로 백호의 무술을 배우겠다. 좋아. 여태까지 왔던 플레이어들과는 확실히 다르군. 그러니까, 일단 테스트를 먼저 해 보지. 나는 재능없는 새끼는 가르칠 생각없으니까.”
“..제가 할까요?”
곁에서 듣고 있던 호량이 슬쩍 입을 열었다. 그 말에 백설은 크게 머리를 가로 저었다.
“아니. 청아한테 시킨다.”
“으엑.. 청아 사형한테요?”
“너랑 저 새끼 체급 차이도 있고. 테스트 시키기에는 너보다는 청아가 더 잘 맞아.”
백설은 히죽 웃었고, 호량은 안타깝다는 얼굴을 하고서 라덴을 바라보았다.
의미가 다른 둘의 시선을 받으면서, 라덴은 불안함에 어깨를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