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econd Coming of Shinken RAW novel - Chapter 8
008/ 튜토리얼-3
아이템이라도 드랍하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따로 드랍되는 아이템은 없었다. 라덴은 뻐근한 다리를 두드리면서 오크의 시체를 노려보았다. 라덴이 보는 앞에서 오크의 신체가 흐물거리며 녹아 사라졌다.
‘이펙트 참 더럽네.’
이펙트 부분은 시스템 설정에서 변경할 수 있다. 너무 잔혹하다 싶을 묘사는 아예 불가하고, 상처 부위에 모자이크를 입히거나 검은 김딱지를 붙이거나. 아니면 피 대신 꽃잎이 쏟아지게 만들거나. 라덴은 투덜거리면서 시스템 설정에서 이펙트 부분을 주물렀다. 출혈 묘사 같은 것은 그대로 두고, 시체가 녹아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가루로 변해 사라지는 것으로 변경한다. 이쪽이 판타지아 쪽 이펙트랑 흡사하기 때문이다.
‘아직 슬라임을 더 잡아야 하는데.’
슬라임 대신에 오크가 튀어나온 것은 시스템 오류인 것 같았다. 역시 GM에게 신고를 넣어야 하나? 어찌어찌 잡기는 했지만, 튜토리얼에서 잡아야 할 슬라임을 잡은 것이 아니라 오크를 잡은 것이니까. 어느 정도의 보상은 해 줄 것 같은데.
“괜찮으세요?”
시스템 창을 열고서 GM호출 기능을 찾던 도중, 라덴의 등 뒤에서 누가 말을 걸었다. 라덴은 흠칫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앨리스가 서있었다. 그녀는 몸에 착 달라붙는 드레스를 입고서 라덴을 향해 방긋 웃었다. 라덴은 크게 당황하지 않고서 앨리스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당황할 이유는 없었다. 튜토리얼 도중에 오류가 발생했고, 그것을 운영진 측에서 파악했다면 대처를 하기 위해 나오는 것이 당연하다. 다만, 그래도 조금 놀란 것은.
“GM이었나요?”
영업부 쪽의 사람인 줄 알았는데. 라덴의 질문에 앨리스는 배시시 웃으며 머리를 끄덕거렸다.
“저는 라덴님이 생각하는 것보다 굉장히 유능한 사람이랍니다. 나쁘게 말하자면 할 줄 아는 것이 많은 노예지만요.”
“..뭐, 그건 나름대로 인정을 받고 있다는 말 아닐까요?”
“인정은 받고 있죠. 그래서 제가 직접 온 것이고.”
앨리스는 상의에 비해 풍성하게 내려온 치맛자락을 양 손으로 들어 올리며 라덴을 향해 머리를 살짝 숙였다.
“튜토리얼 도중에 작은 에러가 발생했습니다. 우선, 그에 대해서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역시 에러가 맞았다. 라덴은 뚱한 얼굴로 앨리스를 바라보았다. 단순 말뿐인 사과를 바라고 있지는 않았다. 어느 정도 손해를 입긴 하였으니, 그에 대한 보상을 받을 수 있다면 최대한 받아낼 생각이었다.
‘애도 아니고 말이야.’
22살이면 보는 관점에 따라 충분히 어린 나이기는 했지만, 라덴이 한창 중이병에 걸려 있던 15살~17살 때와는 비할 수 없다.
“뭔가 보상은 없나요?”
뻔뻔하다 싶을 정도로 노골적인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앨리스는 표정 한 점 흩트리지 않고서 미소로 응수했다.
“당연히 보상을 해 드려야죠.”
사실 라덴이 한 말은 정말로 뻔뻔한 것이었다. 라덴은 발할라를 시작하면서 앨리스에게, 정확히 말하자면 히어로 사에게 과하다 싶을 정도로 많은 지원을 받았다. 최신형 V-캡슐에 사천만원. 이 정도 조건을 제시하면서 게임을 하지 않겠냐고 묻는다면, 백이면 백 제발 게임을 하게 해 달라고 무릎을 꿇을 것이다.
‘그건 저쪽이 나한테 해달라고 부탁한 거잖아.’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라덴은 확실하게 선을 그었다. 게다가 앨리스의 반응을 보니 별 불쾌한 기색도 없어 보이고. 라덴은 슬며시 들었던 민망함을 꾹 삼켰다.
그는 기본적으로, 조금은 소심했다.
“어떤 보상을 원하시나요?”
앨리스가 웃으며 물었다. 선 제시해 주세요. 그런 말을 들은 기분이라, 라덴의 말문이 막혔다.
“..그렇게 말을 하셔도, 제가 아는 것이 원체 없다 보니까. 그냥 적당히 주시는 것이..”
“유용한 정보와 직접적인 보상. 어느 쪽을 원하시나요?”
앨리스의 눈이 반짝거리며 빛났다. 라덴은 어둠 속에서 은은한 빛을 발하는 앨리스의 금색 눈동자를 보면서 턱을 어루만졌다. 사실, 어느쪽이든 구미가 당긴다. GM이 유용하다고 말할 정도면 정말로 유용한 정보일 테니까.
“..직접적인 보상이라면.. 어떤?”
“100만 골드 정도면 어떨까요?”
발할라의 화폐단위인 골드는 원화와 1:1로 거래된다. 즉, 100만 골드는 한화로 치면 100만원이다. 라덴의 입술이 반쯤 벌어졌다.
“..너무 많이 주는 것 아닌가요?”
“튜토리얼에서 오류가 생긴 적은 처음이에요. 알려진다면 제법 이슈가 될 걸요? 발할라는 적이 많으니까. 별 문제없이 해결되었다고 해도, 안정성이 어쩌고 하면서 물어뜯으려는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죠. 매스컴에서 떠들다 보면 SNS에서도 떠들 것이고, 주식도 하락할 걸요.”
차근차근 설명하는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그 말을 듣고서 라덴은 살짝 머리를 끄덕거렸다.
‘입막음 비용이라는 거네.’
그 정도면 백만 골드도 싸게 먹히겠지. 그렇다고 여기서 더 요구하는 것은 그런데. 아무래도 받은 것이 많다 보니까. 라덴은 머리를 옆으로 삐딱하게 기울이면서 물었다.
“둘 다는 안 됩니까?”
“..욕심이 많으시네요?”
대답에 살짝 텀이 있기는 했지만, 앨리스는 그리 불쾌한 기색을 내비치지는 않았다. 오히려 기다렸다는 듯이 마주 웃으면서 냉큼 머리를 끄덕거렸다.
“좋아요. 둘 다 해드리죠. 유용한 정보와 백만 골드. 백만 골드면 레벨 15까지는 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거에요.”
발할라에서 골드를 버는 것은 어렵지 않다. 사냥존에서 돌아다니는 몬스터 하나만 잡아도 골드가 떨어지고, 별 것 아닌 심부름 퀘스트 하나만 수행해도 골드를 벌 수 있다.
하지만 골드벌이가 쉬운 만큼 나가는 골드도 많다. 레벨이 높아져서 레이드를 뛴다면 또 모를까, 저렙 때에는 벌어들인 골드를 바로바로 소모해도 부족하다.
“인벤토리를 확인해 보시죠.”
그 말에 라덴은 인벤토리를 열어 보았다. 정확하게 백만 골드가 라덴의 인벤토리 안에 입금되어 있었다.
“그리고 정보.”
듣는 사람도 없는데, 앨리스는 목소리를 낮추었다. 앨리스의 걸음이 가까워졌다. 라덴의 코앞으로 다가 온 앨리스는 라덴의 얼굴을 보고서 빙그레 웃었다. 라덴은 바로 앞에 있는 앨리스의 얼굴을 보고서 꿀꺽 침을 삼켰다.
앨리스의 머리가 다가왔다. 그녀는 라덴의 어깨에 살짝 턱을 걸치고서, 바로 곁에 있는 라덴의 귓가에 소곤거렸다.
“베이직 클래스로 무투가를 선택하실 예정이죠?”
“..네.”
라덴은 귓가를 간질이는 앨리스의 뜨거운 숨결에 어깨를 움찔 떨었다. 키득거리는 앨리스의 웃음소리가 울렸다.
“보통은 튜토리얼을 종료하고, 시작 도시로 이동하자마자 베이직 클래스를 선택할 수 있지만.. 서량으로 이동하게 된다면, 무투가 직업 전직소에 가지 말고 백호 무술관으로 가세요.”
“..백호 무술관?”
“네. 서량은 NPC가 강세를 보이는 도시고, 무술이 발전한 도시입니다. 백호무술관은 유명하지는 않지만 실력이 확실한 곳이죠. 라덴님의 능력이라면, 백호무술관에 충분히 입단하실 수 있을 겁니다.”
거기까지. 앨리스는 몇 걸음 뒤로 물러서면서 라덴과의 거리를 벌렸다. 그녀는 조금 붉게 달아오른 라덴의 얼굴을 보면서 피식 웃었다.
“그러면 다음에 뵙도록 하죠.”
“..만날 일이 있다면요.”
“아마 있을 거에요.”
아니, 틀림없이. 앨리스는 그 말을 삼키고서 몸을 돌렸다. 라덴이 보는 앞에서 앨리스의 모습이 사라졌다. 라덴은 헛기침을 하면서 붉은 뺨을 한 번 두드렸고, 그 뒤에는 아직 간질거리는 귀를 손으로 잡았다.
“..어우. 너무 자극적이라니까.”
라덴은 화끈거리는 귀를 잡아당기면서 투덜거렸다. 여자 친구 한 번 없었던 몸이니, 앨리스의 신체접촉에 괜히 몸이 바들거리며 떨렸다.
그리고 그런 떨림을 덜어냈다. 일단. 생각해야 할 것은 앨리스가 전해 준 정보다. 입막음으로 준 것이니 거짓말은 아니겠지. 괜히 말같지도 않은 소리를 했다가 라덴이 튜토리얼 오류에 대해 나불거리게 된다면, 그 손해는 다른 누구도 아닌 앨리스가 져야 할 테니까.
‘백호무술관이라.’
서량의 특징은 NPC가 강세를 보인다는 것과, 직업 전직소 외에 스킬을 배울 수 있는 무술관이 다수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사실 그것이야말로 라덴이 서량을 선택한 이유이기도 했다.
보통의 시작 도시에는 직업 전직소 외에도 스킬을 배울 수 있는 장소가 존재한다. 마법의 경우에는 ‘마탑’이 그런 장소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무술을 배울 수 있는 곳은 무술관이다.
서량은 전체적으로 동양풍의 분위기를 가진 도시다. 판타지아가 철저하게 중세풍 판타지 세계관을 사용하고 있었다면, 발할라는 중세와 동양이 모조리 뒤섞였다. 각 도시마다 내세우는 특색이 다른 식이다.
발할라에 존재하는 많은 도시들 중에서, 서량은 이제 막 발할라를 시작한 초보자가 가장 먼저 도착할 수 있는 동양풍의 도시다. 마법 쪽으로 나아가는 것을 생각하고 있다면, 서량은 반드시 피해야 하는 도시 중 하나이기도 하다.
‘백호무술관. 그래. 뭔지 알겠군.’
캡슐에 들어오기 전에 자료를 조사했다. 서량을 선택했고, 서량에서 무엇을 할 지도 조사했었다. 백호무술관. 자료를 조사하던 도중에 보았던 이름이다.
본래 서량은 네 개의 무술관이 존재했다. 각각 사신수의 이름을 따서 청룡과 주작, 현무, 백호. 청룡은 검을 비롯한 날 병기를, 주작은 표창이나 비수 같은 암기를, 현무는 해머나 곤봉 같은 타격병기를. 그리고 백호는 무기를 사용하지 않고 격투기만을 가르친다.
몇 백 년 전부터 서량은 그 네 개의 무술관이 균형을 맞춰왔고, 그곳에서 무술을 배운 제자들이 각자 유파를 만들어 새로이 무술관을 세워 독립했다. 그런 식으로 서량에 존재하는 무술관만 해도 100개는 우습게 넘는다고 한다. 세월이 흐르면서 사신수의 이름을 딴 사대 무술관은 각 무술의 종가로서 군림했지만,
백호무술관은 몰락했다.
간신히 이름만 남아 명맥만 유지한다고 들었다. 제자의 수도 열 명이 채 안된다고 들었고, 뭣보다 지금 백호무술관의 관주로 있는 자가 상상을 초월하는 망나니인데다가, 플레이어를 끔찍이도 싫어한다고 했다. 오죽하면 발할라의 서비스가 시작된 일 년 동안 백호무술관의 제자가 된 플레이어가 단 한 명도 없을 지경이었다.
“..엿 먹이는 것 아냐?”
라덴은 헛웃음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라덴이 서량에 시작해서 하려고 했던 것은, 우선 직업전직소에 가서 무투가 직업을 받는 것이었다. 그 뒤에는 격투기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무술관 중에서 가장 유명한 혈웅 무술관의 제자가 된다. 무술관에서만 배울 수 있는 스킬도 있고, 혈웅 무술관에서 가르치는 격투 스킬이 가성비가 좋다는 평이 많았기 때문이다.
‘..거짓말로 알려 준 것은 아닐 테니까.’
잠깐 고민하던 라덴은 머리를 끄덕거렸다. 우선은 앨리스가 했던 말을 믿어 본다. 일단 한 번 찾아가 보고서 결정하는 것도 늦지는 않을 테니까.
‘까이면 다른 곳으로 가면 돼.’
라덴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발을 뻗었다. 머지않은 곳에 튜토리얼을 빠져나갈 수 있는 포탈이 있었다.
일단 이 지긋지긋한 동굴을 벗어나는 것이 먼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