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hortstop hits a home run too well RAW novel - Chapter 20
20. 멸치의 꿈
1회 초.
강민하가 안타를 치며 흐름을 이어가려 했지만, 다음 타자가 땅볼을 치며 이닝이 종료되었다.
현재 점수는 0:2.
경원상고가 유행운의 홈런으로 두 점을 앞서가고 있다. 하지만 사실 조금 더 점수가 필요했다.
그 이유는.
“볼넷.”
오늘은 타격전이 될 확률이 높기 때문이었다.
첫 타자부터 박찬형은 제구가 잡히지 않았다. 그나마 최태혁의 혼신의 프레이밍으로 볼이 될 공 하나를 스트라이크로 만들어 주었지만, 그럼에도 볼넷으로 주자를 내보냈다.
“찬형아, 괜찮아!”
마스크를 벗고 최태혁이 멘탈 잡으라며 기운을 불어 넣어주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는 유행운은 초반부터 수비 시간이 길어질 거라는 직감이 들었다.
‘아직 2학년이긴 하니까.’
확실히 경원상고의 투수 뎁스가 종잇장처럼 얇디 얇았다.
타자는 그래도 중심을 잡아 줄 타자가 있는 반면, 투수는 백유진 외에는 불안했다.
실제로 어제 경기도 백유진이 7이닝 가까이 먹어줬음에도 불펜이 야금야금 점수를 토해줬다.
“후우.”
박찬형이 멘탈을 가다듬고 자세를 잡는다.
유행운도 자세를 낮추며 집중했다.
딱!
초구부터 배트를 돌린다.
유행운이 타구를 따라 고개를 돌렸다.
“드럽게 느리다.”
1루수 이장현이 뒤뚱대며 공을 쫒았지만, 잡기에는 너무나 느렸다.
만약 이장현이 살이 좀 덜 쪘거나, 조금이라도 민첩했더라면 충분히 커버할 수 있는 타구였다.
“쯧.”
순식간에 무사 1,2루가 되었다.
강수현이 커버하기에는 1루에 가까웠고 이장현은 느려서 구멍이나 다름 없었다.
“괜찮아!”
중견수 강민하가 주장답게 크게 소리쳤다.
후배가 마운드에 올랐고 시작부터 얻어 터지고 있는지라, 멘탈이 터질까 우려해서 하는 소리였다.
“찬형아, 보낼 거면 유격수로.”
그나마 믿을 곳이 유격수다.
그 곳으로 보낸다면 아웃카운트를 잡을 확률이 급속도로 높아졌다.
따악!
신우고 타선이 박찬형을 공략한다.
지금 박찬형은 자신의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마이 볼!”
불나방처럼 공을 보고 달려드는 민현웅을 향해 유행운이 소리쳤다.
보통이라면 삼유간으로 빠지는 타구.
유행운은 이 타구를 어떻게든 잡아야 했다. 여기서 점수를 내주면 긴장에 벌벌 떨고 있는 귀한 후배의 멘탈이 펑! 터질게 분명했다.
‘좋아.’
수비 위치를 뒤로 물러서길 잘했다.
박찬형 제구 날리는 것과 별개로 지금 타자들이 자신감을 갖고 덤벼들고 있었다.
타구 속도가 빨랐음에도 유행운은 슬라이딩 캐치로 공을 낚아챘다.
공을 빼며 2루 주자를 확인한다.
안타라 생각했던 주자가 허겁지겁 귀루를 하고 있었다.
“어?”
그 순간, 유행운은 의아했다.
지금 1루 주자가 2루로 뛰고 있는데, 귀루라고?
‘멍청인가?’
유행운이 바로 강수현에게 송구했다.
“태그 해!”
주자가 겹쳤다.
2루를 향해 달리던 주자가 어리둥절해 베이스를 코앞에 둔 채 그대로 서 있었고, 삼유간 타구를 날렸던 타자는 어느새 1루 베이스를 밟았다.
그 상황에서 강수현은 귀루한 2루 주자를 태그해 잡았고, 바로 그 앞에 우두커니 선 1루 주자까지 글러브를 가져다 대었다.
“?”
공교롭게도 강수현은 유행운의 말대로 태그를 했지만, 갑작스러운 상황이라 이해를 잘 못하는 듯했다.
“둘 다 아웃이죠?”
유행운이 2루로 다가오며 심판에게 묻자, 2루심이 주먹을 쥐고 흔들며 고개를 끄덕였다.
“쟤네 바본가 봐.”
대량 실점을 걱정했던 유행운이라, 상대의 실수가 너무나 반가웠다.
그러나 강수현은 대답이 없었다.
“너 설마 이해 못했냐?”
여전히 강수현은 고라파덕같은 멍청한 얼굴이었다.
그 모습을 보던 유행운이 혀를 찼다.
“깝수야.”
“어, 어?”
“너 그렇게 멍청하게 굴면 뺏긴다.”
“무, 뭘?”
“임영원. 아무리 빠따가 구려도 유격수잖아. 정신 바짝 차리라고.”
유행운은 진심으로 걱정해서 하는 말이었다.
강수현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는다. 실력은 없는 주제에 주전은 먹고 싶어하는 욕심 많은 녀석이라, 유행운이 하는 말의 의미를 알았을 것이다.
“네 자리는 네가 지키는 거다.”
툭, 글러브로 강수현의 엉덩이를 두드리고 수비 위치로 돌아갔다.
“형님!”
형님?
지금까지 긴장으로 딱딱하게 얼어붙었던 박찬형의 얼굴은 어느새 사르륵 녹고 있었다.
“형니이이임!”
왜 이래.
유행운은 뚱한 눈으로 박찬형을 보았다.
“누가 네 형님이야?”
난 똥볼 던지는 아우 둔 적 없다.
* * *
무사 1,2루에서 상대의 본헤드 플레이로 위기를 극복한 박찬형은 비록 단타를 또 맞았지만, 쥐어 터지면서도 기적의 무실점을 보여주었다.
문제는 고작 1이닝을 소화했다는 것.
“우리 팀에 행운이가 없었으면 벌써 역전이었겠지?”
이형호 감독은 심장이 철렁했다.
지금 박찬형이 조기 퇴장 당하면 승리는 물 건너 간다. 사실상 경원상고에는 백유진 외에는 박찬형보다 나은 투수가 없었다.
“네, 그 타구 보통 안타니까요.”
차마 수비코치는 ‘영원이었으면 멋지게 슬라이딩만 했을 겁니다.’라고 말할 수 없었다.
구석에 앉아 암울한 분위기를 풍기는 임영원이 있는데 어찌 그 이야기를 하겠는가.
“모여 봐.”
강민하가 야수들을 소집한다.
“오늘 아무래도 우리가 일을 열심히 해야 할 것 같아.”
주장 강민하는 위험천만했던 1회를 겪고 오늘은 필시 타격전으로 이어질 거라는 판단을 내렸다.
“하위 타순이지만, 끈질기게 승부하자. 다들 어제 북성고 상대해 봐서 알잖아. 오늘 공은 칠만 하다.”
그리고.
그 말과 동시에 민현웅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물론 고라파덕 같은 강수현까지도.
“다들 오승윤이 결정구가 포크볼인 거 알지?”
유행운이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쟤는 딱 두 가지 상황에서 포크볼을 들어.”
타자들이 유행운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특히 이번 공격을 시작해야 하는 하위타순에서 더더욱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첫 번째는 투 스트라이크를 잡았을 때.”
아주 간단했다.
유행운은 비큐가 없는 고라파덕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아주 쉽게 설명했다.
“두 번째는 카운트 싸움에서 밀렸을 때.”
포크볼이 투수의 선수 생명을 갉아먹을지도 모를 만큼, 부상 위험이 있는 구종이라는 걸 모르는 야구선수는 없을 것이다.
그건 아직 어린 오승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오승윤은 경기에서 포크볼을 자주 꺼내지 않는다. 아주 결정적인 상황에서만 쓰는데, 그 사실만 알고 있어도 대처가 가능했다.
“특히 주자가 없는 상황이면 포크볼은 더더욱 아껴. 즉, 선두타자는 포크볼 걱정하지 마.”
7번 타자 김준휘가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역시 유행운, 우리 팀의 브레인.”
오늘 첫 안타를 신고한 류진운이 박수를 뻑뻑 치기 시작했다.
그런 류진운이 부담스러운 유행운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파이팅 하자.”
강민하가 손을 내밀었다.
그 손등 위로 하나 둘 손을 겹친다.
“우리가!”
강민하가 우렁차게 선창을 하고.
“이긴다!”
나머지 부원들이 힘차게 소리쳤다.
“점수를!”
강민하는 꼭 2절까지 한다.
그러나, 주장의 말을 누가 거역하겠는가.
“내자!”
후창해야지.
“경원상고!”
야.
“그만해.”
결국, 3절은 오글거리는 유행운이 강민하를 막았다.
* * *
‘난 혹시 타격코치가 체질인 걸까?’
유행운은 보호대를 착용하며 생각했다.
공격 직전에 오승윤 공략법 강의를 했던 유행운은 하위 타선에서 출루를 연달아 성공하자, 자신의 진로가 혹시 지도자가 맞는 건 아닐지 짧게 생각했다.
현재 1사 1,2루를 채웠다.
선두타자 김준휘가 안타를 치고 출루에 성공했고 뒤이어 8번타자 최태혁이 볼넷을 골라냈다.
그리고.
9번타자가 아웃을 당하며 아웃카운트를 적립.
“깝수가 안타를 다 치네.”
그 상황에서 강수현은 고라파덕 오명을 벗고 1루 키를 넘어가는 페어 타구를 만들어낸다. 타구는 깊숙히 굴러갔고 외야수가 허겁지겁 공을 잡으러 달려갔다.
“외쳐, 유행운!”
“쪽집게 강사, 유행운!”
적시타를 때린 건 강수현이었는데, 칭찬은 유행운이 받는다.
1사 2,3루에서 직전 타석, 안타를 만든 류진운이 타석에 섰다.
지금 타선의 집중력이 가득 찼다.
이미 긴 수비를 경험하며 오늘은 점수는 따낼 때 따야 한다는 걸 다들 느끼고 있었다.
부웅!
하지만 류진운은 류진운이다.
초구부터 방망이를 돌린 류진운이 비틀거리며 넘어질 뻔 했다.
하체 부실이 그 사이에 자신의 약점을 까먹고 하체가 흔들린 덕분이었다.
“나는 하체부실.”
다시 주문이 시작되었다.
“나는야, 하체부실.”
힐끔.
포수가 타자를 곁눈질로 본다.
“하체부실은 다리에 딱 힘을 줘야지.”
중얼거리던 류진운이 배트를 짧게 쥐었다.
1루가 비어 있기 때문에 병살타 위험은 한결 줄었다.
투수가 공을 뿌렸다.
류진운이 배트를 내려다 멈춘다.
“볼!”
1-1.
오승윤은 손에 땀이 차는지, 로진백을 자주 주물렀다. 그만큼 지금 이 상황에 긴장을 하는 듯했다.
“후욱!”
공을 던진다.
류진운은 배트를 돌렸지만, 아쉽게도 빗맞으며 뒷 그물망이 출렁였다.
‘포크볼 타이밍!’
그 순간, 유행운의 강의가 빛을 보았다.
지금 추가 실점을 했고 유리한 카운트에서 오승윤은 가장 자신있는 공을 선택한다.
그게 바로.
“볼!”
뚝 떨어지는 포크볼이었다.
“하체 부실도 안 속는 포크볼!”
류진운이 낄낄 웃으며 소리쳤다.
유행운의 강의가 통한 것도 기분이 좋았고 더불어 투수가 기분 나빠하는 얼굴을 보는 것도 좋았다.
“개새끼.”
오승윤이 탁탁 로진백을 두드리고 허벅지에 손을 문지르며 중얼거렸다.
포수가 사인을 보낸다.
잠시 뜸을 들이고 오승윤이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세트 포지션.
투수가 발을 차 올린다.
“후욱!”
공이 투수의 손에서 빠져 나오고.
타이밍을 재던 류진운이 배트가 헛돌았다.
“앗?”
류진운의 눈이 커진다.
깃털처럼 가벼운 류진운은 투수가 연달아 던진 포크볼에 배트를 내고 말았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유행운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혀를 찼다.
“저 바보.”
오늘 류진운은 첫 안타를 신고했지만, 두 번째에는 삼진을 먹었다.
유행운은 개의치 않았다.
돌아오는 류진운의 엉덩이를 가볍게 치고 타석에 들어갔다.
배트를 든 채로 발로 흙을 짓이긴다. 열심히 다지고 파고 열심히 땅강아지처럼 발을 움직이고 있는데.
“적당히 파라.”
최석윤이 말을 걸었다.
“어차피 넌 걸어서 1루 밟을 거야.”
그 말은 유행운은 민현웅 앞에서 거르겠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믿지 않는다.
그저 말로 타자를 혼란스럽게 하는 걸지도 몰랐다.
묵묵히 루틴을 한 유행운이 자세를 잡는다.
은근슬쩍 바깥쪽으로 자리를 이동한 포수가 말 없이 미트를 들었다.
퍼엉.
투수는 성의가 없었다.
마치 마지못해 던지는 느낌이었다.
‘허.’
유행운은 배트를 든 채로 칠 수도 없는 방향으로 향하는 공을 바라보았다.
생각해보면 이렇게 노골적으로 견제를 당한 적이 없었다.
지금 민현웅은 제 컨디션이 아니었고 그렇기에 신우고는 4번 타자와의 승부를 결정했다.
“현명하네.”
유행운은 미소를 지으며 배트를 내려 놓았다.
“꼬리를 말고 도망가는 게 꼭 신우고 다워.”
고의 4구로 걸어가면서도 유행운은 이죽거림을 잊지 않는다.
그 덕분에 상대 배터리의 표정이 썩었지만, 뭐 어쩌겠는가.
유행운의 말대로 타자가 무서워서 꼬리를 말고 기어 도망갔으니.
“어, 우리 선풍기 왔는가.”
최석윤이 다시 자리를 잡고 앉으며 얄밉게 이죽거렸다.
“이번에는 약풍으로 부탁한다고.”
민현웅이 무시하고 유행운이 파 놓은 흙을 다시 발로 골라 덮는다.
“와라.”
이번에는 지지 않는다.
민현웅은 그 어느 때보다 집중하고 있었다.
‘거포는 삼진이 숙명이니까.’
부웅!
민현웅의 배트가 힘차게 돈다.
“오! 강풍!”
옆에서 이죽거리든 말든 신경쓰지 않는다.
민현웅은 타석에서 한 걸음 물러서며 1루 베이스에 있는 유행운을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유행운이 배트를 드는 시늉을 하고 민현웅의 타격폼을 따라했다.
아래서 위로.
마치 골프를 치는 것처럼 강하게 퍼올리는.
“후욱!”
민현웅은 그 어느 때보다 긴장하고 있다.
그와 동시에 그 어느 때보다 집중하고 있었다.
어느새 그의 배팅장갑이 땀으로 축축하게 젖고 있다.
그만큼 민현웅은 이 순간에 몰입하고 있었다.
파앙.
이번에는 대놓고 빼는 공이다.
민현웅은 미동도 하지 않고 존을 빠져나가는 공을 뚫어져라 보았다.
“볼.”
누가 봐도 볼.
승부는 계속 된다.
파앙!
상대 배터리는 또 다시 민현웅을 상대로 유인구를 던졌다.
눈 높이에 맞춘 높은 볼.
민현웅이 어깨를 움찔하기는 했지만, 오늘 처음 오승윤을 상대했던 것처럼 과하게 반응하지는 않았다.
“끈질기네. 대형 선풍기?”
이 타이밍에 또 다시 포수가 타자를 흔든다.
민현웅은 이를 악물고 반응조차 하지 않았다. 상대할 가치도 없을뿐더러, 대응해봤자 민현웅 손해였다.
투수가 세트포지션에 들어갔다.
민현웅은 배트를 꽉 쥔다. 이윽고, 오승윤의 손에서 빠져나오는 공이 눈에 들어왔다.
‘보여.’
지금까지 오성윤 상대로 까막눈이었던 민현웅의 눈빛이 번뜩였다.
항상 민현웅은 천적에게 잡아 먹혔다.
지금까지 대처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그 공이 처음으로 칠 수 있을 거란 직감이 들었다.
그 순간.
빠아아아악!
민현웅이 골프를 치듯이 포크볼을 퍼올렸다.
“저거지.”
유행운은 민현웅의 스윙을 보는 순간 느꼈다.
이건 홈런이라는 걸.
“저게 민현웅이지.”
잠시 장외까지 넘어가는 타구를 보며 유행운이 입맛을 다셨다.
“아, 저 몸 갖고 싶다.”
멸치에게는 가질 수 없는 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