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trongest brother ever RAW novel - Chapter 250
사상 최강의 오빠 252화
언젠가는, 하지만 지금은 아닌
스크린을 보고 있던 랭커들이 약속 이라도 한 듯, 일시에 입을 닫았다.
호홈이 답답할 만치 지독한 침묵, 소리 없는 경악. 그리고, 그 사이를 파고드는 적의.
라플레시아의 시민 계급에는 두 가 지 종류가 있다.
하늘제를 겪고 넘어온 난민과 라플 레시아 태생의 귀인이다.
“아, 정말이지… 오랜만에… 더러 운 기억이 떠올라버렸는걸.”
상위 랭커 마리아 또한, 난민 출신 이었다. 어찌 보면 당연했다. 강하게 큰 잡초가 질긴 법인지라, 상위 랭 커 중 태반은 하늘제를 겪고 넘어온 난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김세훈이 보여준 ‘창의력’은 마리아의 향수를 자극해 버렸다.
그것도, 후각이 마비될 정도로 악 취가 진동하는 과거의 향수를.
마리아가 마른세수를 하며 역류하 려는 감정을 인내하기 위해 애썼다.
잠시 후, 겨우 감정을 정돈한 그녀 가 입을 열었다.
“…이그드라실에게 전해. 저 개 X 같은 거울 술사인지 뭔지 하는 클래 스… 시험의 숲에서 빼버리자고.”
마리아의 목소리에서 배어 나오는 살의가 피부를 따갑게 찌르자 잔뜩 긴장한 르망이 조심스럽게 답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그럼 김세 훈은 어찌….”
“어쩌긴 뭘 어째? 당연히 통과지. 뭐, 거울 술사를 저렇게 활용하는 창의력… 인정 그리고, 엿 같은 인 성도 인정. 적어도 같은 하늘제 출 신이라면, 적어도 같은 사람이라 면… 저런 X 같은 수단… 절대 써 선 안 되는 거니까.”
김세훈의 행위에 순수하게 분노하 는 마리아와 달리, 그의 수단에 의 문을 갖는 랭커도 있었다.
“그런데 마리아 님. 저 아이는… 레이몬드의 아내에 대해 어떻게 알 고 있었을까요? 거울 술사의 어빌리 티. 미러는 대상을 알고 있어야 쓸 수 있는데요… 즉, 눈으로 직접 보 고, 목소리도 들은 적이 있어야 한 다는 소리인데… 제가 알기로 김세 훈은 레이몬드를 오늘 처음 만났거 든요.”
안 그래도 마리아 또한 그 부분을 의심하고 있던 참이었다.
“맞아. 그래서 말인데 저놈… 우리 가 모르는 특수한 어빌리티를 가지 고 있는 것 같아. 아마도… 상대방 의 기억을 읽는 종류 같은? 레이몬 드의 기억 속에 있는 아내의 목소리 와 얼굴을 읽었다면 저 모든 게 설 명이 되거든.”
“기억을 읽는다라… 그런 어빌리티 도 있습니까?”
“나야 모르지. 나도 대충 상상으로 끼워 맞췄을 뿐이거든… 음, 하지만 아직 오픈되지 않은 히든 어빌리티 가 이 세계에는 아직 많고, 오픈됐 는데 우리가 모르는 어빌리티도 많 지. 그러니… 이런 괴상한 어빌리티 하나쯤 있어도 이상한 일은 아니 지.”
“그런 어빌을 소유하고 있다…? 이 런, 거울 술사가 어빌리티와 스텟을 흉내 낼 수 없다는 게 천만다행이군 요. 안 그랬다면… 김세훈은 끔찍한 존재가 됐을 테니까요.”
“맞아. 다행이지. 야, 방금 저놈 자 살 유도하는 거 봤지? 저거 완전 생 또라이라고. 하… 그런데 저런 놈이 저런 클래스를 가진 데다… 대 처법도 없다? 그럼 x바, 규정이고 나발이고 당장 쳐 죽여야 해. 미친, 난 저런 놈이 활보하는 사회에서 살 생각은 1도 없다고.”
“그게 거울 술사가 천대받는 이유 기도 하지요. 비록 대처법은 있다지 만, 그 수단 자체가 너무 역겨우니 까요.”
“맞아, 저 개 같은 클래스는… 인 외종들을 떠올리게 하거든. 그리고, 그럴 때마다 나는 내가 이 라플레시 아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 비록 살기 팍팍한 곳이긴 해도, 적 어도 내 가족의 껍데기를 뒤집어쓰
고 날 잡아먹으려 드는 괴물 놈들은 없으니까.” 문득, 마리아는 김세정을 바라보았 다. 하늘제를 겪은 지 벌써 오십 년 이 돼가는 자신과 달리, 그런 악몽 을 겪은 지 이제 고작 십 년밖에 안 된 김세정의 상태가 궁금했던 것 이다.
하지만, 마리아가 볼 수 있었던 건 알맹이를 숨겨주는 껍데기처럼, 그 녀의 얼굴을 가리고 있는 낡은 하키 가면뿐이었다.
마리아가 알게 모르게 김세정의 눈 치를 살피고 있을 무렵, 자말이 입 을 열었다.
“허허… 글쎄요. 저는 마리아 님과 생각이 좀 다릅니다. 저는 오히려… 안쓰럽거든요.”
“뭐? 야, 자말. 네 마음은 이해해. 뭐, 이제 곧 혈족이 될 애를 내가 좀 욕했으니까 기분 나쁠 수도 있겠 지. 하지만, 너도 눈깔이 달려있으면 똑똑히 봤을 거 아냐. 김세훈이 레 이몬드를 어떻게 이겼는지… 그런데 안쓰럽다는 소리가 나오냐? 응?”
“그러면? 저 방법 말고 저 아이가 살아날 방도가 있었습니까? 그것도 스텟 90대의 생존자를 상대로?”
“응? 어… 그건….”
“살기 위해선 누구나 발버둥 치는 법이지요. 그러다 가끔 선을 넘는 경우도 있는 법이고요.”
“…야, 그건 너무 편드는 것 같 은….”
그때, 김세정이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스승님은 김세훈이 마음 에 안 드니 픽 안 하시겠다는 거 죠?”
김세정의 날벼락 같은 질문에 마리 아가 말문이 막혔는지 어버버 거렸 다.
“으, 응? 아, 아니 그렇게 말하면 좀… 내가 말한 건 어디까지나 윤리 와 도의적인 측면에서….”
“어찌 됐든, 스승님 의견은 잘 들 었어요. 감사하게도 필요 없으시다 니, 이 제자가 불경을 저지를 일은 없겠군요. 스승님이 쓸모없다며 버 린 물건, 제가 기꺼이 주워갈 생각 이니까요.”
“아니이〜 말을 그렇게 하면 섭하 지. 그 뭣이냐, 내가 포기하겠다는 게 아니고오… 그냥 좀 무섭고 소름 끼친다 이거지….”
자말이 난감하다는 듯한 투로 김세 정에게 말했다.
“허허… 김세정 님. 죄송합니다만, 1픽은 저인 거로 알고 있습니다 만?” 김세정이 자말을 똑바로 바라봤다. 하키 가면의 어두운 눈구덩이에서 그녀의 눈빛이 타오르는 불길처럼 이글거렸다.
“탑주님께 거래는 무효라고 전하세 요. 그러니 1픽도… 김세훈도 제가 가져가겠다고.”
“죄송합니다만, 그럴 수 없겠습니 다.”
자말의 단호한 거절에 김세정이 짐 짓 엄한 투로 말했다.
“자말. 지금 감히 하위 랭커 따위 가… 상위 랭커인 내 말을 어기겠다 는 건가요?”
자말이 늙은 너구리처럼 여유로운 미소를 입가에 띤 채 말했다.
“그 말. 그대로 돌려드리지요. 김세 정 님. 지금 감히… 테오 님의 의견 을 묻지도 않고 거래를 파하시겠다 는 겁니까? 그 후환… 감당하실 수 있을는지?”
“충분히. 땅에 떨어진 별을 무서워 할 내가 아니거든요.”
좌천됐을지라도 엄연히 현역 챔피 언인 테오를 물로 보는 김세정의 발 언에 자말이 살짝 경직된 얼굴로 말 했다.
“과연, 김세정 님… 곧 챔피언에 이를거라는 세간의 소문… 허황된 것만은 아닌 모양이군요. 그런데 알 아두시길. 땅에 떨어졌을지라도, 별 은 별이라는 걸. 식은 줄 알고 가까 이 오다간… 자칫 잿더미가 돼 버릴 수도 있는….”
김세정과 자말의 시선이 불똥이 튈 것처럼 거칠게 뒤엉켰다. 그리고, 그 중간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던 마리아가 소심하게 말했다.
“아니이… 저기이… 나도 껴줄래? 웅? 저기, 나도 또라이라서 찝찝하 긴 한데 말이야. 그래도오… 외면하 기엔 애가 너무 유능해요. 그러니까 나도 조심스레 한 표를 던져볼….”
분위기 파악 못 하고 수업 종 치 기 전에 손을 드는 친구를 보는 것 같은 눈빛으로 마리아를 보면서, 김 세정이 말했다.
“문득, 스승님이 저에게 가르쳐주 셨던 격언이 생각나는걸요?”
“으응…? 겨. 격언? 내, 내가 그렇 게 고상한 말을 가르쳐준 적이 있던 가…?”
“있어요. 낄끼빠빠라고.”
“…야이씨, 스승한테 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지라니… 이 제자 년이 진짜! 아오, 이거 커도 너무 커서 확 때릴 수도 없고… 미쳐불겠네.”
“홀홀, 죄송합니다만, 김세정 님의 의견에 저도 동의하는 바입니다. 1 순위와 2순위 사이에 3순위가 끼는 건 좀… 모양 팔리잖습니까”
“…나 갈래. 너희랑 안 놀아.”
뒷방 늙은이와 새파란 제자 녀석에 게 타박을 받은 사실이 울컥했는지, 마리아가 오리입을 한 채 구석 테이 블에 가서 머리를 박고 있자, 하위 랭커 르망이 힘내라며 마리아의 어 깨를 두드려주었다.
그런 마리아를 웃음기로 물든 눈매 로 바라보던 자말이 입을 열었다.
“이래서야, 말로는 끝이 안 날 것 같은데… 김세정 님. 이렇게 하시는 게 어떠실는지?”
“어떻게요?”
“이왕 이렇게 된 거… 김세훈 본인 한테 결정을 맡겨보는 게…?”
“픽이랑 싱관없이… 본인이 가고 싶은 곳으로?”
“그렇지요.”
김세정과 자말. 그 둘의 각기 다른 생각을 품은 시선이 교차했다. 둘 다, 모종의 확신을 가진듯한 눈 빛이었다.
김세정이 답했다.
“좋아요. 그렇게 하죠.”
김세훈이 레이몬드를 먹어치우고 난 후에는 시시한 과정만 남아 있었 다. 애초에 레이몬드가 생존자들 대 부분을 정리한 데다, LV 9가 된 김 세훈을 막을 수 있는 이는 존재치 않았기 때문이다.
여유롭게 점수를 모으고도 시간이 남아, 선심 써서 일행의 전직까지 거들어주던 김세훈이 잔뜩 뿔이 나 있는 이사오에게 말했다.
“이사오. 여기엔 너한테 어울리는 클래스가 없다니까? 그러니 서운해 하지 말고 밖에 나가서 찾자고. 막 말로 전직을 여기서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행님… 그치만… 시크릿 클래스를 제일 쉽게 구할 수 있는 건 시험의 숲이라고요… 저 주제에 어떻게 밖에 서 시크릿 클래스를… 우… 행님. 한 번만요. 네? 한 번만 도와주세요. 시 크릿 클래스! 너무 가지고 싶다고요!” 하지만, 그렇게 놔둘 순 없었다. 그가 미래시로 본 훗날. 이사오는 숲에서 함부로 전직한 것을 뼈저리 게 후회했었다.
생산직인 그가 숲에서 전투직으로 전직만 안 했어도, 더 발전할 수 있 었던 탓이다.
그걸 아는 김세훈은 이사오가 숲에 서 엄한 클래스를 얻는 걸 용납할 수 없었다. 그에게 최선인 직종은 밖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사오.”
자신을 부르는 김세훈의 사근사근 한 목소리에 설마 내 부탁을 들어주 려는 건가 싶었던 이사오가 반색하 며 답했다.
“넵, 행님! 전직하고 올까요?”
“전직하고 뒤질래? 안 하고 살래? 둘 중 하나만 선택해. 원하는 대로 해줄 테니까.”
이사오가 일말의 망설임 없이 즉답 했다.
“넵, 행님! 안 하고 살겠습니다!”
“혹시라도 몰래 하다가 걸리면 모 가지 분질러 버린다.”
“걱정 마십쇼! 행님 말이라면 지옥 구덩이에라도 들어가는 게 바로 저 입니다!”
“그래? 그럼 지금 당장 지옥 구덩 이 찾아서 들어가 봐.”
빈말인 게 당연한 말에 김세훈이 이리 나올진 몰랐는지 이사오가 눈 알을 데굴데굴 굴리며 말했다.
“…지, 지옥 구덩이 찾으면 말씀드 리겠습니다.”
이사오의 반응이 귀여웠던지 김세 훈이 피식 웃으며 시간을 확인했다.
“그나저나… 이제 슬슬 끝날 때가 됐는데….”
김세훈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들 의 앞에 하위 랭커 르망이 포탈과 함께 나타났다. 르망이 김세훈에게 묘한 눈길을 주며 말했다.
“이 시점부터 시험 종료를 선언한 다. 그리고, 지금부터 드리프트를 시 작할 테니 생존자들은 포탈로 들어 가도록.”
포탈로 들어간 생존자들은 각자 자 신을 픽한 랭커들과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1픽인 자말과 2픽인 김세정 에게 동시 선택을 받은 김세훈은 제 일 먼저 면담을 시작했다.
앤티크한 북유럽풍의 아담한 방. 그 중심의 티테이블에 앉아 있던 김세정이 돌연, 하키 가면을 벗었다.
그녀의 돌발 행동에 자말이 움찔했 다.
김세정이 공적인 활동을 하는 자리 에선 무슨 일이 있어도 가면을 벗지 않는다는 걸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 이다.
“김세훈 씨. 미안하지만, 드리프트 를 시작하기에 앞서 하나만 묻겠습 니다.”
김세훈의 하얀 눈동자가 머리칼 사 이로 비치는 김세정의 얼굴에 화살 처럼 꽂혔다.
얼굴의 중심을 대각선으로 가로지 르는 흉터.
그 유난히 도드라지는 상혼을 뚫어 져라 쳐다보던 김세훈이 답했다.
“네. 제가 아는 거라면 성심껏 답 하겠습니다.”
“당신은… 날 압니까? 그리고, 당 신은… 내가 아는 사람입니까?”
레이몬드와 김세훈의 대화. 그리고 행동을 보면서 김세정은 혼란스러웠 다.
이 소년의 말투, 행동. 특유의 분 위기.
그모든 것이 자신이 알고 있는 이를 빼닮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말도 안 되는 걸 알면서 도 그녀는 믿어버렸다.
비록 외모도 나이도 다르지만, 저 소년은 오빠가 확실하다고.
이것이 근거 없는 육감이라는 거?
당연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확인해야 했다.
그녀에겐 그래야 할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 가족이라는 이름의 이유가.
그녀가 한 질문의 저의를 찾기라도 하는 것일까?
잠시 침묵 속을 떠돌던 김세훈이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만, 저는 당신이 아는 사람이 아닙니다. 아무래도… 사람 을 잘못 보신 것 같습니다.”
김세정이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김세훈의 이모저모를 꼼꼼하게 살폈 다. 목소리가 경직되기라도. 그도 아 니면 손가락 하나라도 까딱해줬으면 했다.
약간의 동요. 약간의 변화라도 있 다면 낙관할 수 있을 것 같았으니 까.
하지만, 끝내 소년은 동요 하지 않 았으며, 한결같이 무덤덤했다.
정말로 타인과 타인이 마주한 것처 럼.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저는 확 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당신은… 제 오빠 김세훈이지요?”
그녀의 말에 옆에 있던 자말이 소 스라치게 놀라 그들을 쳐다보자, 김 세훈이 입가를 비틀며 자조 섞인 미 소를 지었다.
아무래도, 가족이라는 이름의 붉은 실에는 불가사의한 면이 있는 모양 이다.
구차하게 연기까지 하고 싶진 않았 기에. 그리고 구차하게 이름까지 바 꾸긴 싫었기에.
그래서 본연의 모습 그대로 행동했 고 굳이 변화를 주지 않았다.
아니지. 모르겠다. 어쩌면, 알아봐 줬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는지도.
하나, 그럼에도 모를 거라 생각했 다.
외모, 나이. 그리고, 그 날 겪었던 죽음.
그 모든 부정적인 증거 앞에서 자 신이 자신임을 알아보진 못할 거라 믿었으니까.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김세정 씨. 저는 당신을 오늘 처음 봅니다. 또한, 저는 고아입니다. 부모도, 형 제도 없는 천애 고아. 그런 저에 게… 피붙이는 없습니다.”
“…정말입니까? 당신은… 당신은….”
고마웠다. 알아봐 줘서.
하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더 이상은 안 됐다.
더는 여지를 줄 수도, 용납할 수도 없었다.
“김세정 씨. 저에겐 사람의 기억을 엿볼 수 있는 어빌리티가 있습니다.”
“…그걸로 레이몬드의?”
“네. 그리고 당신의 기억도 일부 엿봤죠. 그래서, 당신이 저를 누구라 고 생각하고 있는지. 왜 그러는지도 압니다… 그래서 말인데….”
김세훈이 무미건조한 어투로 말을 이었다.
“조언 하나 드리지요. 당신의 기억 을 너무 믿지 마시길.”
“내 기억을… 왜….”
“기억의 천적은 시간입니다. 시간 이 지날수록, 그것은 변질되기 마련 이니까요. 그래서 말인데… 확신하 십니까? 당신이 품은 오빠에 대한 기억이 한 치의 변함도 없는… 천연 그대로라고?”
김세훈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물 웅덩이에 던져진 돌멩이처럼 그녀의 마음에 파문을 남긴 것일까? 김세정 이 떨어진 석상처럼 산산이 조각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럴 리, 그럴리 없어요. 나는… 노력했어요. 그래요. 노력했다고요. 절대 잊지 않으려고… 그게 최소한 의….”
“도리였으니까? 하지만, 보세요. 당신은 생판 남인 나를 자신의 오빠 로 착각했습니다. 이 얼마나 불분명 하고 불투명한 기억입니까?”
“그만… 아니라면 됐어요. 아니라 면… 됐다고요…!”
그 말대로일까?
자신의 기억이 시간 앞에 변질된 것일까?
그래서 완전 타인인 이 소년을 오 빠로 착각해 버린 걸까?
그러면? 여지껏 자신은 무엇을 위 해 노력해 온 걸까?
대체 무엇을 위해?
김세훈이 말했다.
“기억에 잡아먹히지 마시길. 그리 고 잊으시길. 그게 본인과 그분을 위해 제일 좋은 거니까.”
그 무뚝뚝하고 아는 체하는 어투에 울컥한 김세정이 나직한 목소리로 물었다.
“당신이… 뭘 안다고? 너 따위가 대체 뭘 안다고…?”
김세정의 얼굴에서 격한 동요를 읽 은 김세훈이 급히 말을 정정했다.
“아, 제 주제넘은 말이 불쾌하셨습 니까?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제가 말실수를 한 것 같….”
김세정이 테이블을 꽝, 내리쳤다. 박살 난 테이블이 무너져내리자 김 세정이 송곳처럼 뾰족한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잊으라고…? 아무것도, 아무것도 모르면서 잘난 듯 지껄이지 마! 그 럼 나보고 어쩌라고?! 내가 할 수 있는 게 이것뿐인데! 날 두고 죽어 버린,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나한테 빚을 잔뜩 떠넘기고 가버린 그 사람 한테 해줄 수 있는 게… 고작 잊지 않는 것! 이게 전부인데 어쩌라는 건데!”
막혀있던 둑이 무너진 것처럼 흘러 넘치는 감정을 주체 못 하고 악을 지르는 김세정이 보기 싫다는 듯, 눈을 지그시 감아 외면한 김세훈이 말했다.
“떠난 사람은 남겨진 사람을 뒤돌 아보지 않습니다. 그것이… 죽은 사 람이라면 더더욱.”
“집어치워! 그렇다 해도! 설사… 날 돌아보지 않더라도! 그래선 안 된다 해도 난 계속 기억하겠어. 변 질됐다 해도, 썩어 문드러졌다 해 도… 기억하려 애쓰겠어.”
김세정이 뒤돌아서며 중얼거렸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니까. 그리고… 나마저 잊어버리면… 너무 불쌍하잖아. 미안… 하잖아.”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는 대신, 하키 가면으로 가린 김세정이 자말에게 말했다.
“자말 님. 죄송합니다. 제가 본의 아니게 주책을 부렸군요. 잊어주시 길. 그래서 말인데… 마음이 바뀌었 습니다. 저는… 이 픽. 포기하겠습니 다. 아무래도… 제가 사람을 잘못 본 것 같네요.”
“…알겠습니다.”
단호한 걸음으로 방을 떠나는 김세 정의 뒷모습을, 김세훈이 하염없이 바라봤다. 마치, 눈으로 배웅하듯이.
‘언젠가는… 하지만, 지금은… 아 냐.’ 자말이 김세훈의 눈치를 살피더니, 분위기를 환기하려는 듯 손뼉을 가 볍게 치며 말했다.
“음… 분위기가 묘해졌군요. 하지 만, 그래도 할 말은 해야겠죠. 김세 훈씨? 테오 님에게 얘기는 들었습니 다만… 어쩌실겁니까? 아시다시피 우리 그레이브스 가문은 김세훈 씨 에게 해줄 수 있는 게 많지 않습니 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오겠습니 까?”
지금은 해야 할 일이 있었고, 그중 첫째는 단연코 파편을 모으는 것이 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 김세훈 은 테오라는 방패와 그레이브스라는 가문의 이름이 필요했다.
“네, 가겠습니다.”
김세훈의 즉답에 자말의 얼굴이 환 해졌다. 시험의 숲을 지켜보면서 알 수 있었던 것이다. 김세훈이 얼마나 유능한지 말이다.
이제부터 가문의 앞날에는 꽃길뿐 이라고 생각한 것일까?
자말이 크게 기꺼운 지, 껄껄 웃으 며 김세훈을 거세게 안았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환영합니다. 우리 그레이브스 가문에 들어온 것 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