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trongest He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152
◈ 하늘에서
이지아를 포함, 신교의 모든 사람이 비슷한 걸 경험했다.
모두 자신의 욕망으로 대변되는 유혹을 경험한 것이다.
하지만 넘어간 이는 없었다.
흔들림은 있었지만, 그것뿐이었다.
단순한 유혹에 넘어가기에는 보고 경험한 것이 컸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유혹을 극복했다.
“죄송합니다, 문주님. 사전에 알았음에도 적을 저지하지 못하다니.”
“괜찮다. 그깟 책 따위에 연연할 필요는 없다.”
“허나, 무명잔본은 보통의 책이 아니지 않습니까.”
“남의 것을 보고 배우되, 결국에는 자신의 것을 만들어야 한다. 천부의 획은 모두 보았으니 더는 필요 없다.”
천마는 무명잔본에 연연하지 않았다.
심득이 담긴 천고의 보물임은 맞지만, 결국 타인이 쓴 물건에 불과하다.
탐닉하면 그것에 함몰될 뿐.
속뜻을 읽었다면 그다음부터는 자신의 것을 다듬어 가면 된다.
지금의 천마는 굳이 길잡이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보다 흑아야. 넌 그 안에서 무엇을 보았느냐?”
“아……저는 산 위에 올라선 한 자루의 창과, 창 위에 올라선 하나의 산을 보았습니다.”
“어느 것이 무겁더냐?”
“어느 것도 무겁지 않았습니다.”
“그래. 네 깨달음이 적지 않으니, 부단히 수습하거라. 온전히 금정을 수습하면 그 안에서 다른 것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명심하겠습니다.”
깨달음을 얻은 안기남에게 충고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고분의 진기를 얻은 자 중 이를 완전히 지배한 건 안기남이 유일했다.
얻은 건 가장 늦었으나 성취는 가장 빨랐다.
“축하해. 좋은 일.”
“축하드립니다, 사형!”
“축하해요, 기남 오라버니.”
뒤늦게 쏟아진 축하에 안기남이 멋쩍게 웃었다.
힘에 대한 초조함을 느끼던 것이 얼마 전인데, 지금은 누구보다 앞서 나가고 있다.
마치 손바닥 뒤집는 것 같아 얼떨떨하기까지 했다.
“무언가를 얻고 잃고. 탐하고 버리고. 결국, 모든 건 마음가짐에 달려 있다. 세상 바람에 흔들리지 말고, 네 바람으로 세상을 흔들거라.”
“반드시 그런 사람이 되겠습니다.”
“좋구나. 책을 잃었으나, 깨달음을 얻었으니 이 어찌 득이 아닐까. 감사의 의미로 술이나 한잔 올리자꾸나.”
천마가 호리병을 들어 술을 쏟았다.
술은 살아있는 뱀처럼 입구로 스며 나와 허공에 똬리를 틀고 앉았다.
이는 천마의 손짓에 천천히 상승하여 하늘 너머로 사라졌다.
잠시나마 구름 너머로 태양 빛이 반짝였다.
후두두둑……
그러자 삽시간에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비에서 술맛이 났다.
“운치는 아는구나.”
천마가 이를 빈 잔에 담아 벌컥벌컥 마셨다.
어딘가 그리운 맛이 났다.
어리둥절해하는 이들 사이에서 그만이 파안대소했다.
비는 한참이나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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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후후. 역시 재미있구나, 천마.”
비가 쏟아지는 천마도의 맞은편.
한 남자가 빗물을 잎사귀에 담아 홀짝이고 있다.
망산에 나타나 선자들을 제압한, 그리고 고본의 망령들을 처리한 바로 그 인물이었다.
“빗물에 술을 담아내다니. 만상의 경지가 더욱 깊어졌군요, 큰 오라버니.”
“그저 잔재주일 뿐이다.”
그 옆으로 이매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어딘가 지친 듯한 기색이었다.
“둘째는 아직도 그러고 있는 거냐?”
“네. 아주 지랄발광이네요. 인형이 벌써 몇이나 부서진 것인지 모를 노릇이에요.”
“화가 풀릴 때까지는 그냥 내버려 두어라. 나름대로 고집이 센 아이 아니더냐.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았으니 화가 날수밖에.”
“큰 오라버니는, 그에게 너무 무릅니다.”
“어찌 그에게만 무를까. 본래대로라면 너나 삼아도 벌을 받아야 한다. 아버지의 명은 어디까지나 잔본의 회수.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다.”
“죄송해요……”
남자의 목소리가 조금 가라앉자 이매가 움찔했다.
한없이 부드러운 사람이지만, 화낼 때는 그 누구보다 무서웠다.
“그 일로 구검이 한쪽 팔이 잘렸다고 하니, 네가 가서 치료해 주도록 해라.”
“팔 정도는 비약으로 치료가 되잖아요.”
“천마가 만상의 힘으로 자른 팔이다. 그냥 두면 영원히 그 팔은 회복이 안 되겠지.”
“구검이 비약을 써도 말인가요?”
“그는 놀라운 사람이다. 눈을 떼면 어느새 저 먼 곳에 가 있곤 하지.”
남자는 다시금 술을 홀짝이며 웃었다.
어딘가 즐거워 보이는 인상이었다.
“……큰 오라버니는 역시 천마를 알고 계신 거죠?”
“후후. 그게 궁금하더냐?”
“저와 삼아와는 다르니까요. 큰 오라버니는 아버지께서 특별히 데리고 온 사람이라고 알아요.”
“크게 다를 건 없다. 너나 나나 모두 아버지의 부름을 받고 죽음에서 돌아온 거니까. 다만, 만상이 정립된 이후에 수련을 시작한 너희와는 다르게 나는 과거에 그 힘을 마주한 적이 있을 뿐이다.”
남자는 옛일을 떠올리며 고소를 머금었다.
만상이라는 건 이름만 거창할 뿐 대수롭지 않다.
“천마에게서 말인가요?”
“글쎄. 그랬을 것 같더냐?”
“그를 언급할 때 종종 보이는 표정을 보면……그러지 않을까 싶어요. 아버지도 큰 오라버니도. 오래전부터 그를 알고 계셨던 거죠?”
“만상이라는 건 세상의 모든 걸 의미한다. 하지만 인간에게 만상은 결국 자신 눈앞에 놓인 일에 불과하지. 사랑하는 사람, 아끼는 지인, 공경하는 부모님. 혹은 애증하는 호적수.”
“천마가 큰 오라버니의 호적수였다는 건가요?”
남자는 입술을 달싹이다가 그만두었다.
이야기를 늘리기에는 찾아온 손님이 많았다.
손짓으로 떨어지는 빗물을 다시금 하늘로 되돌렸다.
먹구름이 사라지고 햇빛이 떨어졌다.
“어서 오시길. 산의 장로들이여.”
다섯 색. 다섯 노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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갸웃, 하고 누아가 고개를 들었다.
어디선가 소리가 들려온 것 같았기 때문이다.
길게 하품을 한 번 하고는 폴짝 뛰어서 일어났다.
배를 깔고 자던 해도가 한 차례 뒤척였다.
‘계속 자.’ 배를 툭툭 다독이며 누아가 밖으로 나왔다.
아직 밖은 어두웠다.
“으응. 잘못 들었나?”
딱히 눈에 띄는 건 없었다.
지나가는 바람 소리라도 잘못 들었나 싶어서 누아가 뒷머리를 긁적였다.
이럴 거면 그냥 더 자는 건데.
입술을 비죽이며 몸을 돌렸다.
“응? 거기 누아냐?”
그때, 멀지 않은 곳에서 한 사람이 누아 쪽으로 다가왔다.
“아. 링이다, 링.”
“이런 시간에 여기서 뭐 해?”
그건 링이었다.
그녀도 자다가 일어났는지 조금은 졸린 얼굴이었다.
“밖에서 소리가 들린 거 같아서 나왔어.”
“소리? 혹시 이상한 울음소리 같은 거 아니었어?”
“응. 응. 링도 들었어?”
“희미하게는. 어느 쪽에서 들렸는지 기억해?”
누아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잠시 고민했다.
소리는 분명 들렸지만, 방향은 존재하지 않았다.
마치 모든 곳에서 들려온 것처럼.
“크르릉.”
“어? 해도다. 계속 자라니까 왜 나왔어.”
때마침 해도도 머리로 문을 밀며 밖으로 나왔다.
누아가 등을 툭툭 치며 묻자, 몸을 부르르 털더니 하늘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셋이 같은 탄성을 뱉었다.
“방금?”
“응. 응. 누아도 들었다.”
“크릉.”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소리였다.
잠결에 들었던 것보다 훨씬 선명해서 착각도 아니었다.
누아가 펄쩍 뛰며 주변을 돌아봤다.
소리가 나올 만한 곳을 찾아보기 위함이었다.
“근데 이거 어디에서 들린 거야?”
하지만 어딜 봐도 소리가 나올 곳은 없었다.
저 멀리 어딘가에서 비행기라도 지나가나 싶었지만, 흔적도 없었다.
보이는 것 없는 소리는 꽤나 거슬렸다.
“……어? 링, 뒤에!”
순간.
무언가 검은 그림자 하나가 하늘에서 뚝 떨어졌다.
아무런 전조도 없는 현상이었다.
누아가 다급히 외치며 실을 뽑아서 던졌다.
그림자가 선에 엉킨 채 바닥으로 쓰러졌다.
“크아앙!!”
해도가 냉큼 달려들어서 상대를 물었다.
인간의 몸에 뱀의 머리가 달린 이상한 괴물이었다.
목이 절반가량 뜯겨 나가자 ‘쉭’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미끄러졌다.
“해도 방금 느꼈어?”
“크릉.”
그 괴이한 모습의 이면.
누아는 괴물의 모습에서 익숙함을 느꼈다.
그건 자신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는 괴이의 감각.
하지만 온전히 같은 건 아니었다.
“어딜 뱀처럼 기어 다녀!”
링이 뺨을 치듯 손을 휘둘렀다.
바닥을 기어 도망치던 괴물의 몸이 피떡이 되었다.
뱀이든 뭐든 살 수 없는 위력이었다.
징그럽다는 듯 눈을 찌푸리며 링이 혀를 찼다.
“뭐야 이거?”
하지만 상황은 괴물 하나로 끝이 아니었다.
속속들이 하늘이 열리며 괴물들이 비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그 숫자가 백, 천, 만……아니, 그 이상이었다.
천마도 전체가 괴물로 덮였다.
간 크고 겁 없는 링조차 그 숫자에는 압도되는 느낌이었다.
“가서 모두를 깨워.”
거부하는 사람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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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대부분 사람이 깨어 있었다.
느닷없는 괴이 출몰에 알람이 울리고 있었기 때문.
부리나케 무장을 챙기고 밖으로 나왔을 때는 이미 어마어마한 숫자의 괴이가 나타난 후였다.
“이,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지아야, 괴이 알람은 왜 이렇게 늦게 반응한 거야? 이 정도 숫자의 등장을 신의 눈이 모를 리가 없을 텐데?”
“그건……위험해요!”
한가하게 이야기할 시간은 없었다.
수북하게 내려앉은 괴이들이 일제히 일행을 향해서 달려들기 시작했다.
전후좌우 할 것 없이 사방에서 들이닥쳤다.
“일단 주변부터 정리한다. 지아 네가 주변을 격리하고, 나와 서나는 전방. 나머지는 후방을 막는다. 목군과 노복은 좌우측을 부탁해요.”
상황에 대한 판단은 안기남이 빨랐다.
처소 기준, 각 방위에 대한 인력을 분배하고 곧바로 창을 뽑아 들었다.
날카로운 궤적이 허공을 가르니 수십의 괴이가 일순간에 분쇄되었다.
“그리 강하지는 않군. 방심하지만 않으면 당할 이유가 없다. 침착하게 상대해.”
“3급도 되지 않는 괴이인가. 하지만 이런 숫자는 처음이에요. 예전, 막 문주님이 등장했을 때도 이 정도 숫자는 아니었는데. 아. 그러고 보니 막 문주님은 어디에 계세요?”
“막 문주님이라면 당연히 문주님과……”
술을 대작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 말하려는 찰나.
쾅, 하는 굉음과 함께 바닥에 한 사람이 처박혔다.
조금 전까지 행방을 추측하던 막하금이었다.
“끄응. 가지가지 하는군.”
“막 문주님?”
“조심해라. 그냥 어설픈 놈들만 있는 게 아니야.”
막하금이 그대로 내공을 뽑아서 구체로 휘둘렀다.
거대한 공에 얻어맞은 것처럼 수백의 괴이가 단번에 우그러졌다.
하지만 개 중 특이하게 생긴 개체는 아니었다.
손으로 기공을 막아서는 힘으로 밀어붙였다.
무려, 막하금과 비등한 수준의 힘이었다.
“……저건 대체?”
“난들 알겠냐? 저렇게 머리가 달리고 힘 좀 쓴다 싶은 놈은 주의해라. 보통 놈들과는 힘이 달라.”
머리가 둘 달린 괴물이었다.
얼굴의 절반가량이 무너져서 반대쪽으로 접합된 형태였다.
이질적인 형태는 둘째 치고, 그 강함이 대단했다.
힘으로 막하금의 기공을 튕겨내고, 빛살처럼 날아왔다.
힘으로 받기가 쉽지는 않았는지, 막하금은 축을 중심으로 적을 흘렸다.
괴물은 그대로 빗겨나, 산에 처박혔다.
돌덩이들이 우르르 떨어졌으나 죽을 정도는 아니었다.
막하금이 혀를 낮게 차며 다시금 기를 끌어 올렸다.
“막 문주님 저기에……”
“허. 마음 편히 술 마시기는 글렀구나.”
누군가의 손짓에 고개를 든 막하금이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조금 전에 날려 보낸 괴물과 비슷한.
하지만 머리가 하나둘 더 달린 괴물 여러 마리가 속속들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단순히 형태만 같다고 하기에는 풍기는 기운이 녹록지 않았다.
“문주님은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쯧. 나라고 알까. 술 마시다 말고 갑자기 훅 날아갔는데. 그놈이 그리하면 다 이유가 있을 거다. 오기 전까지 최대한 버텨.”
막하금은 술자리를 박차던 천마의 얼굴을 떠올렸다.
평소의 여유로운 표정이 아니었다.
대체 무엇이 그를 그렇게 만들 수 있단 말인가.
짙어지는 피 냄새에 막하금이 입술을 씹었다.
적은 이제 코앞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