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pporting characters in horror novels want to live as human beings RAW novel - Chapter 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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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이 생채기투성이가 된 여자가 불도 하나 없이 밤중의 산길을 뛰어가고 있었다.
머리는 헝클어지고, 옷은 찢어져서 볼품없는 꼴인데다가, 몇 년간 제대로 된 운동이라곤 해보지 못한 몸은 한계치에 다다랐지만.
여자의 눈만은 죽지 않고 새파랗게 타오르고 있었다.
‘속였어!’
마녀니 뭐니 하는 건 결국 전설일 뿐이었다.
가장 중요한 건 그들이 그런 이야기로 이제까지 몇 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낙사시켰는지 모른다는 것.
게다가, 그 피해자 목록에 아렌하이트나 자신의 이름까지 함께 들어갈지도 모른다는 것.
돌부리에 걸려 비틀거리던 여자는 나뒹굴었다가 낮게 신음을 흘렸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여기로 돌아올 줄 알았더라면 좀 더.’
좀 더 해볼 수 있는 게 있었을 것이다.
하르트만 성을 떠나면서, 두 번 다시 여기로 올 수 없을 거라 생각하며 스스로를 죽여버렸다.
미래도, 꿈도, 희망도, 조금이나마 용서를 받고 싶다는 속죄의 마음까지도.
전부 한 번은 죽었던 그녀였기에 지금만큼은 포기할 수 없었다.
지금 포기하는 것이야말로 정말로 비겁한 짓이다.
그런 일을 저지른 건 일생에 단 한 번으로 족했다.
아멜리아는 벌떡 일어나서, 산길에서 굴러떨어지는 바람에 빠진 어깨를 부여잡고 다시 뛰어가기 시작했다.
레안드로스가 갔던 길의 방향은 어렴풋이 알고 있다.
가다 보면 분명 어디선가 젠과 레안드로스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악물고 한참을 달리던 그녀의 눈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낙엽 더미에 처박힌 둥근 돌인지, 뭔지.
밤중인데도 희끄무레한 색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어쩐지 알 수 없는 기시감이 들어서 머뭇머뭇하면서도 다가갔다.
아멜리아가 손가락으로 그것을 쿡, 찌르자 둥근 돌은 펄쩍 뛰어올랐다.
“무엄하다!”
“누, 눈사람! 수, 숙소에 있었던 게 아, 아니었나요? 그, 그보다 그, 몸은 어떻게 된 건가요!”
데굴데굴 굴러 나오는 건 아렌하이트가 데리고 왔던 눈사람이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눈사람의 머리뿐이었지만.
“인간 여자. 나 봤다. 드디어 살았다. 몸이 사라졌다. 무도한 인간이 밟고 갔다. 나, 탈출한다. 하지만 실패했다. 길 미끄럽다.”
“무도한 이, 인간?”
“내 신자. 여관의 인간 남자랑 같이 갔다. 산 올랐다. 인간 남자, 내 신자의 말 있다고 했다. 내 신자 속았다. 여기 근처까지 왔다. 인간 남자, 내 신자 때렸다!”
“여관의 이, 인간 남자라면 제, 젠을 말하는 거죠?”
짐작이 맞아들어갔다.
젠이 아렌하이트를 데리고 여기까지 왔었구나.
그녀는 입술을 질끈 물었다.
“그, 그럼 함께 계셨잖아요. 왜, 여, 여기까지 떨어지셨어요?”
“내 신자 끌려간다. 내 신자 살아야 한다. 이 몸, 극적 탈출 감행. 여관으로 간다. 하지만 마력 없다. 소모된다. 내 신자 멀리 있다. 머리보다 몸 희생한다. 머리로 구르는 거 어렵다.”
비록 눈사람의 말을 다 알아들을 순 없었지만, 이 눈덩이가 아렌하이트를 돕고자 했다는 건 전해졌다.
아멜리아가 눈사람을 주워 들고, 흙과 풀을 털어주며 물었다.
“호, 혹시, 그 사람들이, 그런 짓을 한 이유를, 드, 들었나요?”
“모른다. 여관 인간 남자, 열세 번째 돼지 말했다. 그리고 내 신자 쓰러졌다. 이 근처, 마녀의 집 있다. 마녀의 집으로 데려갔다. 그리고 사람들, 또 왔다.”
마녀, 열세 번째 돼지.
아멜리아는 자연스럽게 마녀의 전설을 떠올렸다.
마녀의 이야기.
가축이 되어버린 반인반수의 사람들.
그것들이 만일 아주 허황된 이야기가 아니라고 한다면.
“저, 저는 지금 레안드로스 경을 찾아가는 주, 중이에요. 저희 전부 습격을 받아서, 아, 아마 그 돼지와 연관이 있을지도.”
“나도 간다. 내 신자, 마력 필요하다. 느껴진다. 마력, 거의 사라져간다.”
“마, 마력이라면.”
“인간과 동식물 마력 있다. 내 신자, 마력 많다. 나는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약해진다. 사람과 동식물, 죽는다. 사라진다.”
사람에게는 마력이 있는데, 이 눈사람은 아렌하이트의 마력을 느낄 수 있고, 그런데 그게 점점 약해져 간다는 말은…….
아멜리아는 작게 비명을 질렀다.
그녀는 정신없이 뛰어다녔다.
산에 사는 모든 짐승을 깨울 듯이 레안드로스의 이름을 소리 질러대며 헤매던 중.
드디어 건너편에서 그녀의 부름에 응답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영애!”
빼곡한 나무 사이를 헤치고 온 얼굴을 보자 어찌나 반가운지.
아멜리아는 단걸음에 그에게로 달려갔다.
“경, 제가, 제가 공작님의 누, 눈사람을, 그런데, 그들이 돼지를…….”
“알고 있습니다. 영애. 공작님이 계신 곳도 알아냈습니다.”
“대체 어떻게?”
아멜리아는 레안드로스의 양손에 피가 묻어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젠이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도.
하지만 굳이 그것에 대해 묻지 않았고, 레안드로스도 아멜리아의 어깨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이, 이 눈사람이, 고, 공작님이 위험하시다고.”
“서둘러야겠습니다.”
레안드로스는 먼저 내려가려다가 발걸음을 멈췄다.
“영애께서는 오지 않으셔도 됩니다.”
“무, 무슨, 어째서.”
“성이라면 모르겠지만 지금부터는 한 번 엮이면 돌이키기 어려울 겁니다. 저희 공작님께서 하르트만이라는 걸 밝히든, 영애께서 아놀드 남작 영애라는 게 드러나든.”
“그, 그래도.”
“부상을 입으셨으니, 이 마을의 사람들에게 응당 그 죄를 묻고 싶으시겠습니다만. 괜찮으시겠습니까? 나쁜 소문이 생긴대도.”
레안드로스는 명백히 아멜리아를 배려해주고 있었다.
아멜리아도 잘 이해하고 있었다.
밤중이라 그의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의 몸짓 하나하나에서부터 살기가 진득이 배어 나왔다.
마을로 내려가서 무슨 짓을 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굳이 함께 내려가야 할까?
하르트만 성으로 요양을 온 남작 영애로 남아야 하는 그녀가,
하르트만의 기사인 그와 동행해서 좋을 일은 없었다.
적어도 지금부터는 없을 가능성이 컸다.
여기서 따로 행동하는 게 더 낫다는 걸 알고 있는데도.
“부, 분명히 생기겠죠. 고, 공작님께서는, 수, 숨기려고 하시지도 않았으니까.”
“그렇다면 영애께서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마저 도, 도망가고 싶진 않아요.”
“영애.”
“이, 이미 비, 비겁한 짓은, 마, 많이 했어요. 더, 더 이상 공작가에 실례를, 저지를 수는 없, 없다는 걸 알아요. 그래도, 설령 그렇다고 해도.”
도망치고 싶다.
다시 침대에 누워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하루를 보내고 싶다.
이런 일에 휘말리고 싶지 않다.
아멜리아는 더 이상 소란스러운 일에 연루되지 않고 싶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자신이 죽인 거나 다름없는 공작부인께 용서를 빌고 싶었다.
공작부인을 닮았지만, 결코 비슷하지는 않은 아렌하이트에게 죄를 갚고 계속해서 자신을 옭아맨 마음의 가책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더 이상 도망갈 수는 없어요.”
도망가도 언젠가는 내 죄가 나를 찾아올 테니.
맞서서 속죄해야만 하겠죠.
아멜리아가 단번에 내뱉은 말에 레안드로스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가까스로 산을 벗어나 내려갔지만, 여관은 텅 비어있었다.
마을 사람들 전부 한통속이라는 걸 증명하는 장면이었다.
그걸 본 두 사람은 기다리지도 않고 바로 마을 밖으로 향했다.
마을의 한쪽에 위치한 넓게 펼쳐진 풀밭과 경작지.
그 한가운데에 세워진 소박한 농가.
황량해 보이는 집이었지만 그 뒷문을 통해 넓은 뒷마당으로 빠져나가면.
“돌아가 주세요!”
“제발, 이번만큼은 제발!”
사람들이 간절하게 부르짖는 소리.
그들은 축사 안쪽에 모여서, 저 아래를 내려다보며 제발 돌아가달라고 빌고 있었다.
그 너머로 시끄럽게 꿀꿀대는 소음이 들렸다.
쩝쩝대는 소리까지도.
레안드로스와 아멜리아가 무릎을 꿇은 사람들을 무작정 헤치고 들어갔다.
그리고 두 사람은 저 아래에서 벌어지는 광경을 목격하고 말았다.
아멜리아는 날카롭게 비명을 질렀다.
“공작님!”
비명 소리를 듣고, 마을 사람들은 방해꾼이 왔다는 걸 깨닫고 소리를 지르며 쥐고 있던 쟁기며 낫을 집어 들었다.
레안드로스와 아멜리아는 구덩이를 뒤에 두고, 자신들을 둘러싸고 있는 주민들을 앞에 둔 채였다.
완벽한 대치 상태.
여관주인이 앞으로 한 걸음 나섰다.
“용병 나리. 저 아가씨와 도련님은 포기해요. 의뢰비가 얼마죠? 대신 우리가 더욱 두둑하게 호위 값을 쳐 줄 테니까 여기서 있던 일은 모른 척하시고.”
“……모른 척해 달라?”
“사고 같은 걸 당했다고 하면, 마을 주민들이 사고의 목격자도 되어 줄 수 있어요. 그럼 그쪽은 의뢰비도 두 배로 받고, 우리도 조용히 지나가서 좋고.”
“하나 물어보지. 이런 짓을 저질러놓고 막상 들키기는 무서운가?”
“우리라고 이런 짓을 하고 싶어서 하는 줄 압니까?”
“이런 일이 벌어진 게 당신들의 탓이 아니라고?”
레안드로스가 되묻자 여관주인의 목소리가 조금씩 높아졌다.
“원래 여긴 이렇지 않았어. 모두가 함께 사는 평화로운 마을이었다고!”
“이딴 게 평화롭다고?”
“하르트만 공작가가 멸문하고 나서 저 돼지들이 나타났지. 갑자기 땅속에서 튀어나와 축사를 습격하고, 가축들을 모조리 먹어 치운 다음에는 아이들을 저 땅속으로 데리고 갔어!”
피를 토하는 외침이었다.
레안드로스는 그걸 가만히 듣고 있었다.
“대리인은 멀리 있지, 저 괴물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간 증거를 가져와야 퇴치해주겠다고 하지……! 늘 배고프다고 울부짖으며 기어 나오는 걸 막으려고 최선을 다했어!”
“그래서?”
레안드로스가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빈정거렸다.
“최선을 다해서 사람을 던져줬나? 한낱 돼지들에게 먹이를 주려고?”
“그건, 그건 사고였어!”
여관주인이 숨을 몰아쉬었다.
그녀의 눈에는 핏발이 서 있었고, 주황색 횃불이 반사되어 광인의 그것처럼 번들거렸다.
“농가에서 지내던 사람이 발을 헛디뎌 여기로 떨어진 것뿐이야. 그런데, 그런데 너무 이상했지. 한참 조용했어.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고 아무도 죽지 않았어. 고요했지. 우리는 그게 기적이라고 생각했어…….”
여관주인의 얼굴이 일순 평화로워졌다.
그녀만 홀로 평화로운 산책길에 서 있듯이, 그녀는 눈을 감고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하지만 기적을 위해서는 제물이 필요했지. 우리는 마을을 위해 가장 현명한 선택을 한 것뿐이야.”
합리화.
누군가가 사라져야 하는 상황에서 가해자들은 자기 멋대로 마음 편한 핑계를 지어낸 것뿐이었다.
그걸 들은 레안드로스는 역겨움을 금치 못했다.
여관주인은 그것도 모른 채 못을 박았다.
“그래, 맞아. 합리적인 선택을 한 것뿐이었다고!”
“그렇군. 이로써 당신들의 사정은 잘 알았다.”
“아, 정말로?”
설득이 된 건가?
여관주인의 얼굴이 약간 환해졌다.
저 아가씨는 스스로 뛰어내렸으니 돼지들에게 먹히겠지. 구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눈앞의 용병은 잘 구워삶았으니 돈을 쥐여주고 보내고, 방심하는 틈에 처리하면 진실은 영원히 묻힐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데 그게 내가 알 바인가?”
그 말에 여관주인의 기대가 산산조각났다.
그래, 이렇게 쉽게 풀릴 리가 없었다.
그녀는 등 뒤로 손을 저어서 신호를 보냈다.
마을 주민들은 레안드로스와 아멜리아를 압박하듯 천천히 에워싸 구렁텅이로 몰아갔다.
농기구의 날이 위협적으로 번쩍였다.
“겨, 경.”
아멜리아가 속삭였지만 레안드로스는 그저 묵묵히 마을 주민들을 볼 뿐이었다.
그 사이에 아래에서 꿀꿀거리는 소리는 더욱 커져만 갔다.
꿀꿀, 꾸에엑, 꾸울꿀, 꿰에에엑.
신선한 만찬으로 배를 채우던 돼지들이 위를 쳐다봤다.
늘 배가 고픈 그들에게 저 위의 구멍은 먹을 것이 떨어지는 귀중한 구멍이었다.
평소 같으면 아둔한 돼지머리가 이렇게까지 굴러갈 일은 없었겠으나, 연이은 먹이로 포식한 돼지 인간들은 바깥에서 몰려있는 묘한 냄새를 맡고 흥분했다.
저 위에 있는 건 뭘까?
음식이 떨어지는 저 바깥으로 나가보면 더 많은 음식이 있지 않을까?
마력이 풍부한 신선한 피와 살을 섭취한 돼지들은 욕망을 품었다.
그들은 일제히 가파른 구렁텅이의 벽을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꿀꿀, 꾸울, 꾸우울.
가장 먼저 구렁텅이의 가장 위까지 도달한 돼지는 볼썽사나운 코를 내밀고 킁킁거리다가,
가장 가까이 있는 아멜리아의 발목을 잡아챘다.
“꺄, 꺄아아아악!”
아멜리아가 넘어지며 끌려 들어가기 직전, 레안드로스가 돼지 인간의 손목을 힘 있게 짓밟았다.
뿌드득 하는 불길한 소리와 함께 돼지 인간은 도로 구렁텅이 너머로 떨어졌다.
그러나 기어 올라온 돼지 인간은 그것 하나만이 아니었다.
마을 사람 중 누군가가 소리를 질렀다.
“돼, 돼지, 돼지가! 아아아아악!”
불운하게도 아멜리아와 가까이 서 있던 사람이 다음 목표가 되었다.
그는 한쪽 발만 덜렁 잡혀서 구렁텅이로 끌려갔다.
농기구를 버리고, 땅바닥을 손톱으로 긁으면서 들어가지 않으려고 몸부림을 치던 그가 마지막으로 외쳤다.
“살려, 살려줘, 제발-”
그의 머리가 사라진 순간 비명이 멈췄다.
대신 이상한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으득, 우드득, 오도독.
레안드로스와 아멜리아를 포함한 모든 사람이 그쪽을 주시하고 있었다.
잠시 후 구덩이에서 돼지머리가 하나 튀어나왔다.
그것은 주둥이가 잔뜩 지저분해진 채로 웃었다. 아니, 웃는 행위를 시도하는 것처럼 보였다.
어쩐지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었지만 그걸 본 사람들은 누구도 웃지 못했다.
돼지 인간의 치아는 붉고 끈적끈적한 것으로 온통 범벅되어 있었다.
마을 주민들은 그 광경에 아우성을 치며 손에 들고 있던 것들을 내던지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돼지 인간의 식사 시간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