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pporting characters in horror novels want to live as human beings RAW novel - Chapter 13
(12)
“동부로 가는 발길이 아주 뚝 끊겼어. 이거 참, 한동안 계속 손님이 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쩔 수 없지 않은가? 거기 황무지가 위험하다는 사실을 이제야 연구원에서 발표했으니.”
“거기 갔던 사람들은 다 돌아온 건가?”
“투입한 상단이니 뭐니 하는 사람들은 전부 강제 귀환하게 되었다더군. 그런데 또 이상한 소문도 있어.”
“그건 뭔가?”
“용병이나 잡부들은 아직 동부 황무지에 있다던데.”
“그게 어떻게 가능하나? 상단도 황무지에서 내쫓겼다면서.”
“나야 모르지. 하지만 돌아오지 않았으니 거기에 아직 있는 게 맞는 거겠지. 아직 소문이 남부나 서부같이 멀리까지는 못 간 모양이야.”
“평소에는 돈 될 만한 이야기라면 빨리 퍼져나가더니, 황무지에 투자한 걸 회수할 수 없게 되니까 소문이 굼뜨는구만.”
“뭐, 아직 확정은 아니잖나. 그래서 이번에 왕실에서 직접 감찰을 나간다고 하더라고.”
“왕실에서도 적잖이 투자했을 거야. 마수가 우글거리는 땅이잖나! 다들 속이 아픈 게지.”
“뭐, 우리가 상관할 일은 아니지. 그래도 자네 여관이 쫄딱 망한 건 아니잖나. 그러니까 술이나 한 잔 하고 잊어버리세.”
“아이고. 그러니까 또 생각나네. 이번에 산 침구는 다 처분해야겠네…….”
* * *
눈을 떴을 때는 온몸이 다 축축했다.
축축하다 못해 아예 물속에 잠겨 있는 기분이었다.
물과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이 물은 몹시 점성이 높다는 것 정도.
반쯤은 가라앉고 반쯤은 부유한 채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다.
저 위로 뭔가 보이는 것 같은데 정확하진 않았다.
저기가 그 거대한 구덩이의 입구라고 치면…… 대체 바닥은 얼마나 깊은 거지.
구덩이 내부는 어둡고 습했다. 그리고 더웠다.
쌀쌀했던 밖과는 완전히 딴 판이었다.
나는 어떻게든 팔다리를 휘저어 몸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불가능했다. 온 몸이 꽉 붙들린 채로 움직이지 않았다.
젠장.
여기서 어떻게 나가지.
어쩐지 고약한 악취의 가운데에서 철벅철벅 소리가 불규칙하게 들렸다.
그게 무슨 소리인지 애써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나가는 것만, 나갈 방법만 생각해. 여기가 어디인지 생각해. 절망하지 마. 분명 방법이 있을 거야.
그렇게 되뇌던 차에 누군가가 속삭였다.
[……들려…….]누구?
입이 달싹였다. 답을 하지도 않았는데 목소리는 계속해서 들렸다.
[네 기억이 들려…… 보여…….]목소리는 남자 같기도 하고, 여자 같기도 했다. 귓가인지 머릿속에서 웅웅 메아리치는 것 같기도 했고, 또 반대로 바로 옆에서 말을 거는 것 같았다.
[신선하고…… 새로운…….]“누구야?”
중얼거리는 소리가 멀어졌다. 침묵이 이어졌다.
그러나 두서없이 떠드는 소리가 대신 찾아왔다. 수천 명이 우울한 목소리로 합창을 하는 것 같았다.
분명히 더운데도 등골을 따라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 속에서 몇 개의 단어만이 날카롭게 새겨졌다.
별. 추수꾼. 목자와 늑대. ‘너’가 아닌 ‘너희’라는 복수 명사.
목소리는 나를 나 혼자가 아닌 ‘사람’이라는 카테고리 안에 포함시키고 있었다.
나라는 개인이나 다른 사람이나 전부 똑같은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이런 화법은, 동등하지 않은 집단을 이야기 할 때 쓰인다.
마치 사람이 수천의 개미떼를 이르는 것처럼.
이 목소리는 한낱 마수가 아니었다.
별 사이를 걸어 다니는 자. 별걸음쟁이라 불리며 한없이 신화에 가까운 존재.
그 이름을 한 번 떠올리자 숨이 턱 막혔다.
몇 가지 의문이 손쉽게 풀렸다.
왜 사람들이 진흙을 헤치고 여기까지 올라오는지.
왜 그들이 스스로 몸을 던지는 행동을 하는지.
왜 여기까지 오려고 했을 때 멀쩡한 길을 빙글빙글 돌아다녔는지.
별걸음쟁이는 사람의 정신을 먹고 자란다.
정신, 기력이라고 불리는 건 한 번 먹힌다고 끝이 아니다.
푹 쉬고 충분히 시간을 가지면 나아지니까.
그렇기에 별걸음쟁이는 인간을 좋아한다.
한 번 인간을 맛보고 나면, 그렇게 얻은 힘으로 사람이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게 한다.
그러면서 계속 무의식적으로 자신이 있는 곳을 찾아오게 하는 것이다.
별걸음쟁이는 이런 식으로 끊임없이 솟아나는 정신력이라는 황금샘에 주둥이를 담글 수 있었다.
거의 완벽한 사냥이었다.
별걸음쟁이의 한 가지 특성만 제외하자면.
별걸음쟁이는 걸어 다니는 정신적 무저갱이나
모든 것이 공허하고, 허무하고, 비관적이며 끔찍하다. 타고 남은 잿더미도 별걸음쟁이의 정신세계보다는 의미가 있을 정도다.
그들이야 본디 그렇게 태어났다지만 인간은 아니었다.
별걸음쟁이와 장시간 접촉한 이들은 전부 목숨을 잃었다.
그것도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끔찍하게 음울한 소리가 계속해서 웅얼거렸다.
[별로 여행. 별과 별 사이로. 그 너머로. 저 너머, 꿈을 꾸며 달리는 아득한 별빛 속으로. 메마른 땅에서 벗어나. 환상 속에서 유영하는 곳으로. 아, 얼마나 오래 기다려야……. 시간이 의미가 없어질 만큼 먼 곳에서부터 여기까지…… 그가 여기에 오면 바로 먹어 버릴 거야. 너는 새롭고 좋은 기억에…….]목소리를 듣기만 했는데도 차라리 다시 기절하고 싶었다.
별걸음쟁이의 목소리는 조용한 심해의 끝자락과 비슷했다.
살아있는 내내 끝없이 푸른 어둠을 봐야만 하는 감옥에 갇힌 기분이 들게 했으니까.
스스로 머리를 쥐어뜯고 온 몸을 손톱으로 벅벅 긁어내리고 싶었다.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그만두라고 소리를 지르고 싶은데 입을 움직일 수 없어서 대신 혀를 깨물었다.
목소리 하나하나가 죽고 싶은 충동을 불러일으킨다.
온갖 나쁜 기억이 쉴 새 없이 떠올라서 내 삶, 나의 존재 자체가 진창이 된 기분으로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철벅, 철벅, 철벅.
쉴 새 없이 내리는 살아있는 빗방울이 쏟아졌다.
내 옆으로, 위로, 아래로.
얼굴이 축축한 내게 별걸음쟁이가 속삭였다.
[일어나면 모든 게 달라져…… 우리는 함께 먼 여행을 떠나…… 너는 유일하게……우리들과 함께…….]철퍽.
그 후로 모든 게 까맣게 변했다.
* * *
어릴 때 가장 싫어했던 건 허기였다.
허기, 읽는 것만으로도 사람의 기운을 빠지게 하는 단어.
하지만 아무리 읽어도 직접 겪는 것만 못한 게 바로 허기였다.
-형, 배고파.
-배고파?
한 평 남짓한 작은 방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 있다 보면 이제 네 살이 된 동생은 꼭 한 번씩 칭얼거렸다.
그 당시의 나는 어떤 의무감을 가지고 있었다.
동생을 챙겨야한다고 누누이 말하면 엄마 때문이었을까.
-잠깐만 기다려봐.
엄마는 안 왔고, 아빠는 밖에서 자고 있고.
겉의 매끈한 면이 거의 다 떨어진 문짝 너머에서 시끄럽게 코를 고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조심조심 일어나 이불을 걷었다. 때가 탄 이불은 엄마가 신혼 때 해왔다던, 우리 집에 있는 유일한 겨울 이불이었다.
-조용히 하고 있어. 소리 내면 안 돼. 지금부터 문 열거야.
동생은 조그만 손으로 제 입을 합 막았다.
나는 삐걱이는 소리가 나지 않도록 문을 조심조심 열었다.
거실에 죽치고 늘어져서 코를 고는 남자에게서 술냄새가 풍겼다.
까치발로 도착한 부엌.
겉보기에는 아무것도 없어 보이지만 엄마는 꼭 싱크대 하부장 아래에 뭔가를 숨겨두곤 했다.
하부장에 팔만 쑥 넣고 헤집다보면 손끝에 바스락거리는 비닐이 닿았다.
나는 그것을 집게손으로 집어 들고, 다시 소리 없이 방으로 돌아와 문을 닫았다.
-이불에 이거 넣어봐.
두툼한 이불 속에 라면을 넣으면 비닐 소리도 안 나고 부수는 소리도 안 난다.
나랑 동생은 신나게 그걸 부수고, 이불 속에 들어가서 부서진 라면 조각을 먹었다.
오독거리는 소리도 안 나게 입 안에서 한참을 굴리다 먹는 게 방법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뽀시락거리며 허기를 달래고, 그러다보면 자연히 먹고 싶은 게 생각이 난다.
-짜장면.
-치킨.
-솜사탕.
-엄마가 해준 계란찜.
-난 그럼 계란 장조림.
-계란 겹치잖아, 반칙이야.
-그게 뭐가 반칙이야. 형도 어제 추파춥스랑 신호등 사탕 말했잖아.
-그건 둘 다 다른 거야. 반칙 아냐.
속닥거리던 게 다투느라 목소리가 커진다. 거실에서 나던 소리가 멈춘 것도 모른 채.
그러고 있는데 갑자기 벌컥 열리면서 험한 말이 들렸다.
이 새끼들이 아빠 자는데 쳐 시끄럽게 한다고.
이불 속에 그건 뭐냐고. 아빠 먹으라고 안 하고 지들 배나 채운다고.
아주 싸가지가 없다고.
동생이 울기 시작하자 툭하면 운다고, 질질 짜지 말라는 고함과 함께 라면 국물이 말라붙은 양은냄비가 나한테 날아왔다.
깡.
눈앞에 별이 떠다녔다. 동생은 울음을 그치고 나를 바라봤다.
아빠가 ‘애새끼’를 멋대로 싸질렀다고 엄마를 욕하며 거실로 나가면 동생은 미안하다고 다시 훌쩍이고, 나는 엄마가 오길 기다리며 누워 있고는 했다.
어린 시절의 평범한 나날이었다.
그런데, 평범한 날이 한 번 일그러진 날이 있었다.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언젠가 엄마와 아빠가 밤에 크게 싸운 이후로 아빠가 돌아오지 않았다.
엄마가 일을 나가면 거실은 나와 동생의 차지가 되었다.
엄마가 밥을 만드는 방법을 알려줘서, 우리는 밥과 김치를 먹을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아빠가 돌아왔다.
옆에는 못 보던 여자가 있었다.
잠시 후 엄마가 왔고, 우리를 방 안으로 들여보냈다.
밖에서는 싸우는 소리가 났지만 우리는 차라리 자는 편을 선택했다.
그게 불똥이 덜 튈 거라고 예상했기 때문이었다.
가끔 ‘입양’ ‘친권’ ‘자격’ ‘돈’ ‘술’ ‘여자’ 같은 소리가 들리긴 했지만, 그래도 자는 데에는 문제가 없었다.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 날 어스름 새벽.
엄마가 우리를 거칠게 흔들어 깨웠다.
그리고는 손에 만 원짜리를 몇 장 쥐여 주면서 밖에 나가 밥을 먹고 오라고 했다.
우리가 살던 달동네 아래, 버스정거장 앞에 새벽에도 하는 밥집이 있다고.
-배 안 고파.
-그래도 가, 가서 밥 먹어. 맛있는 거 달라 그래, 알겠지? 엄마가 다 이야기 해놨어. 동생이랑 가서 먹고, 해 뜨면 슈퍼에서 맛있는 거 사먹어. 그리고 와.
엄마의 목소리가 떨린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불이 꺼진데다가 아직 새벽이라 분간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졸려서 투정을 부리는 동생을 데리고 집 밖에 나갔다.
꾸역꾸역 밥을 먹고, 엄마가 시킨 대로 뻥튀기랑 과자를 사서 먹었다.
정거장에서 차가 다니는 것과 버스가 다니는 모습을 구경하다가 집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막상 돌아온 집은 더 이상 예전같지 않았다.
빨갛고 파란 조명이 번쩍거렸다. 사람들도 많았다.
유독 선명하게 기억에 남은 장면은 하나뿐이다.
조그만 보일러실에서 흘러내리던 검은 진흙과 삐죽 튀어나와있던 손 하나.
엄마를 부르려고 했지만 입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그게 누구의 것이었는지,
나는 아직도 알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