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pporting characters in horror novels want to live as human beings RAW novel - Chapter 14
(13)
친척. 이름도 모르는 친척. 얼굴도 모르는 친척. 나이도 알 수 없는 친척.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동안 나와 동생은 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우리의 최종 목적지가 보육원이 되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보육원에서는 꽤 괜찮았던 것 같다.
동생의 영 진도가 나가지 않는 심리상담 치료와 우리의 험난한 학교생활을 제외하면.
피구 시간에 공에 머리를 맞는 것과 아빠에게 양은 냄비로 맞는 것 중 어느 게 더 아플까 궁금했던 것 같은데.
그런데, 왜 지금 그런 게 생각나지?
지금 내가 몇 살이지?
얼룩진 운동화의 뒤로 진흙이 질척하게 달라붙었다.
진흙은 내 인생의 일부로 자리 잡은 지 오래였다.
* * *
진흙은 시도 때도 없이 흘러내렸다.
추운 겨울 날, 훈훈한 원장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이제 나이 때문에 더 이상 여기에 있기 어렵게 되거든. 하지만 어차피 대학 붙은 것 때문이라도 나가야 하니까, 좋게 생각해보자.”
“그럼 제 동생은…….”
“동생은 아직 있을 수 있어. 하지만 문제라면 심리상담 결과인데.”
“…….”
“너랑 떨어져 있을 때 어떤 식으로 행동할지 나도 잘 모르겠구나. 이미 여기에서 여러 번 사고를…….”
“제가 데리고 갈게요.”
“네가? 괜찮겠어?”
“네. 제가 데리고 갈게요. 원장님이 말씀 해주신 것처럼 동생이 없으면 저도 좀 불안하고요. 동생도 별로 안 좋아할 것 같아서.”
“학교 근처로 가게?”
“3월까지 시간이 남으니까 아르바이트라도 하려고요.”
“자취하려면 방값이 필요하지. 보증금도.”
원장님은 안경을 벗고 한숨을 쉬었다.
그렇게 창밖을 보던 원장님이 뭔가 생각난 것처럼 일어났다.
책상 옆에 있던 낡은 철제 서랍을 뒤적이던 주름진 손이 흰 봉투를 꺼냈다.
“원래는 이러면 안 되는데,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고.”
“원장님.”
매끈한 봉투.
학교에서 무료 급식을 지원받을 때도 떳떳하게만 느껴졌는데.
다정한 원장 선생님이 건네는 봉투에 갑자기 얼굴이 화끈거렸다.
이런 연민에 비참함을 느끼는 건 잘못된 걸까?
“……감사합니다. 꼭 갚을게요.”
“그래. 잘 할 수 있을 거야. 힘들겠지만 꼭 이겨내거라.”
의자가 드르륵 밀렸다.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야 했지만, 이미 다리까지 진흙에 잠긴 의자는 고요하기만 했다.
웃어야 할까, 울어야 할까.
그런데 나한테 자존심이 남아있다는 것부터 이상하지 않나.
그럼 이런 기분을 느낄 필요도 없지 않나.
* * *
“형, 나 대학은 못 갈 것 같아.”
그 말에 넥타이를 풀던 손이 멈칫했다.
“대학은 안 가려고? 성적 때문이야? 아니면 등록비?”
“그냥 여러 가지 생각하다보니까…… 그래도 아르바이트 할게. 생활비에 보탤 거야.”
순간 ‘네가 어떻게?’ 라는 말이 혀끝까지 치솟았다가 내려갔다.
사람을 대하는 게 힘들다며.
그럼 어떻게 아르바이트를 할 건데?
카페나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해도 손님을 대해야 할 텐데.
“형이 그냥 생활비 때문에 이러는 거 같아? 대학은 가야지.”
“내 성적으로 서울에 못 가.”
“그럼 지방대라도 가.”
“자취하면 또 돈 들잖아.”
넥타이가 죽 늘어졌다. 천 원짜리 옷걸이에 건 푸른 넥타이가 초라해보였다.
“형이 대줄게. 그냥 대학 가. 형 지금 취직했잖아. 걱정하지 마.”
“대학에 가서 등록금 대출할 바에야 그냥 안 가는 게 나아. 형도 돈 아끼고. 어차피 요즘은 고졸 대졸 안 따지잖아.”
입이 근질거렸다.
아냐, 따져. 존나게 따진다고. 사회 나가면 안 따진다던 놈들은 다 따져. 학연이 얼마나 중요한데 지금 이런 소리를 해.
까맣게 속이 타들어갔다.
“그럼 뭐 할 건데?”
“글 쓰려고.”
“글?”
그건 또 뭐야.
동생은 낡은 노트북을 톡톡 두드렸다.
제 딴에는 제법 자신감이 차 있는 얼굴이었다.
“요즘 무료 플랫폼도 많고, 그래서 거기서 작품 연재하다가 컨택이 오는 것도 있대.”
“컨택?”
“응. 계약금도 많이 받을 수 있대. 노력할거야.”
“소설로?”
“웹소설로.”
연간 백억 씩 버는 웹소설가에 대한 뉴스는 심심찮게 있었다.
하지만 그건 그 사람들이 운이 좋은 거잖아.
네가 그렇게 운이 좋다고 장담할 수 있어?
글을 쓰는 게 좋다고 하지만 이제까지 상장 하나 없었잖아.
그냥 집에 있는 게 좋아서 아니야?
사람이 무서워서 그러는 건 아니고?
나라고 좋아서 대출 받아서 공부하고 바로 취업한 것 같아?
네가 그 계약금을 받을 때까지 얼마나 걸리는데? 일 년? 이 년?
너는 참, 팔자도 좋다…….
정장 재킷을 거는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래도 목소리는 아무렇지 않게 나왔다.
“그래. 한 번 해봐.”
“형! 고마워, 진짜 열심히 쓸게!”
“시작한 일은 끝까지 해야 해. 그건 알지?”
“당연하지.”
나는 엄마가 해준 말을 되뇌었다.
네가 형이니까, 네가 동생 잘 챙겨야해.
내가 동생을.
잘.
챙겨야.
한다고.
내가.
내가…….
양말이 축축했다.
또 진흙을 밟은 모양이었다.
이제는 눈을 뜨기조차 싫었다.
진흙이 온 몸을 덮어버려도 무슨 상관이야.
그냥, 나 좀 내버려둬.
* * *
글로 먹고 살겠다고 동생이 선언한 지 몇 주가 지났다.
동생은 나름대로 눈치가 보였는지, 글을 쓰는 것 외에도 원고를 대신 써주거나 하는 재택형 아르바이트를 병행했다.
어찌저찌 사고 싶은 작법서니 설정집이니 그런 걸 살 만큼은 되는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내 걱정이 완전히 사라지는 건 아니었지만.
“이 숫자가 조회수야?”
“아니, 그 옆에. 이건 선호작이라고, 내 글이 마음에 드는 독자가 찜해두는 거랑 비슷한 거야.”
“그럼 좋은 건가?”
“당연하지. 선호작 수를 보고 출판사가 메일을 보내기도 하거든.”
조그만 노트북 앞에서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화면을 보고 있었다.
동생이 작품을 쓴다던 사이트는 의외로 꽤 컸다.
독자도 작가도 많아서 감상평과 작품이 매일매일 업데이트 됐다.
그 중에서 내 동생의 작품은 ‘신작’ 카테고리에 자동 분류 되어 있었다.
“아직 3개월이 안 되어서 그래. 3개월 내내 꾸준히 글을 쓰거나, 연재편수가 50편이 넘어가면 여기서 나갈 수 있어.”
동생이 열심히 설명했지만 나는 반쯤 흘려듣고 있었다.
그보다 동생의 작품이 위치한 곳이 신경 쓰였다.
1페이지도 아니고, 애매하게 5-6페이지 쯤에 들어가야 겨우 볼 수 있는 소설.
메인 페이지에 왕왕 뜨는 베스트 작품과는 완전히 다른 처우였다.
이런데도 글로 돈을 벌 수 있나…….
괜히 희망 고문하는 건 아닌가.
“꾸준히 하면 독자들도 더 올 거야. 봐, 벌써 50명이 넘었잖아.”
그래,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작품 평가란에 붙은 다섯 개의 별 중 두 개가 빈 걸 외면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게 화근이었다.
아예 그 때 혼을 내서라도 말렸어야 했는데.
동생의 호언장담과 달리, 몇 개월이 지나 신작 카테고리를 벗어난 이후에도 작품은 무명이었다.
소재에 흥미를 느껴 찾아온 독자들도 난해한 설정과 적응하기 어려운 문체에 학을 떼며 돌아갔다.
‘너무 진지해서 가볍게 읽기 힘들어 하차합니다.’
‘초반 읽다가 하차함. 설정도 중구난방이고 재미도 없음.’
‘소재 관심 있어서 왔는데 넘 읽기 힘드네요.’
‘이거 뭐 정하고 쓴 건 맞음? 등장인물들부터 설정 왔다 갔다 하니까 정신착란 온줄.’
동생은 겸허한 자세로 독자의 피드백을 수용하겠다는 공지를 올렸다.
밤늦게까지 노트북을 들여다보고, 스토리를 수정하겠다며 책을 뒤졌다.
나는 그게 열의인 줄로만 알고 있었다.
누구나 가질 수 있는 향상심, 더 나아지기 위한 노력, 뭐 그런 것들.
하지만 그건 벼랑에 내몰린 사람이 치는 발버둥이었다.
“야, 너 이게 다 뭐야.”
어느 날, 잔업을 하고 좀 늦게 돌아왔더니 집이 온통 어질러져 있었다.
뭔가를 프린트한 종이가 흩어져 있었고, 어쩐지 매캐한 냄새도 났다.
불쑥 치솟는 짜증을 꾹꾹 눌러 담으며 묻자 동생은 노트북을 닫고 급하게 일어났다.
“미안, 잠시 할 게 있어서……. 빨리 치울게.”
“이 냄새는 또 뭐야? 밥은 먹은 거야?”
창문을 열면서 식탁을 보자, 접시가 덮인 그릇들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손도 대지 않은 모양이었다.
“아침에 먹은 게 얹힌 것 같아서.”
“그럼 말을 하지. 안 차려놓고 나가도 됐었잖아.”
“미안해.”
“방은 왜 이런 거야?”
“그게. 이상한 건 아니고.”
동생은 우물쭈물하다가 침대 위에 펼쳐둔 두꺼운 책을 가리켰다.
글 쓰는데 필요하다며 산 책 중 하나였던 것 같다.
“소설 쓰다가 좀 알아보고 싶은 게 있어서 직접 했더니.”
“뭐?”
이게 다 무슨 소리야.
본능적으로 얼굴이 찌푸려졌다. 원래 글은 이렇게 쓰는 건가?
유명 작가들이 직접 경험을 강조하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평범한 문학 작품이고.
너는 망상을 쓰고 있는 거잖아. 이게 정상적인 거야?
“……그, 뭐, 그래. 일단 알겠다.”
그 말에 주눅이 든 얼굴이 조금 밝아졌다.
나는 동생이 하고 있던 게 일종의 판타지 설정에 근거한 작은 장난이라고 생각했다.
사회생활도 안 해봤으니까 좀 어린애 같은 짓을 할 수도 있지.
하지만,
동생이 탐독하는 설정집에 점점 손때가 묻을수록,
동생이 쓴 작품의 평점이 낮아질수록,
하차한다는 댓글이 많아질수록,
오타나 설정 오류를 지적하는 비난이 늘어날수록,
동생이 글을 쓰는 시간이 점차 줄어갔다.
대신 멍하니 앉아있는 시간만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졌다.
“요즘은 글 안 써?”
“그거 공지 올렸어. 좀 쉬고 온다고.”
“알아. 봤어. 그런데 갑자기 무슨 생각인가 싶어서.”
어느 날, 나는 빨래를 널고 있었다.
동생은 책상 의자에 앉아서 그런 나를 보고 있었던 것 같다.
“그냥. ……나 지금이라도 검정고시 칠까?”
“대학 가게?”
듣던 중 반색하며 돌아본 동생의 얼굴은 그늘이 져서 잘 보이지 않았다.
“형이 전에 그렇게 말했잖아. 대학은 가라고.”
“그럼, 대학은 가야지. 졸업장을 따면 뭐든 할 수 있으니까.”
“형은 좋은 학교 나왔으면서. 그런 말 하네.”
“야, 나도 피똥 싸면서 간 거야. 그래도 넌 알바 하면서 등록금 안 내도 되잖아. 나랑 비교하면 진짜 속 편한 거지.”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나는 수건 한 장을 털어서 건조대에 널었다.
“내가 글 쓴다고 너무 고집 부렸지.”
“알긴 아네. 그런데 왜 갑자기? 글이 잘 안 돼?”
“솔직히 말하자면 약간.”
“나는 작가처럼 글 쓰는 거 관심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만큼 했으면 너도 얻은 게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
동생의 발이 꿈질거렸다.
태양 아래 나간 적이 없어 하얗고 마른 발이었다.
“얻은 거?”
“뭐, 그래도 이것저것 해보기엔 충분한 시간이었잖아.”
“몇 개월 내내 했지.”
“내가 보기에, 네가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다른 걸로 갈아타도 돼. 대학이야 사이버대학도 있고. 졸업장 얻고 나면 취직도 할 수 있을 거고.”
“글 쓰는 건 별로야?”
“난 잘 모르겠다니까.”
양말 한 짝이 수건 사이에 섞여 있었다. 실수로 섞였나.
“좋은 글인지 나쁜 글인지도 몰라. 학생 때 진짜 글 잘 쓰던 놈이 있는데, 걔가 뭐라는 지 알아? 이런 건 재능이 있고 없고가 바로 티가 난다더라. 사람들이 귀신 같이 알아본다고 그래.”
동생은 말없이 웃었다.
나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런 거 보면 재능의 문제겠지. 인내심의 문제는 아닌 것 같아. 홈페이지 메인에 걸리거나 베스트 작품에 걸리는 건 운이 아닐까.”
“형 말이 맞는 것 같아.”
“어쩔 수 없을 때도 있는 거야. 글은 취미로 쓰면 되잖아. 좀 더 평범한 직장 얻고 나서.”
“응. 취미로.”
“그 정도 하면 많이 노력한 거야. 안 된 건 안타깝지만 다른 방법으로 살줄도 알아야지.”
동생은 긍정했다.
저 스스로도 해보고 영 안 될 것 같으니 생각을 바꾼 모양이었다.
나는 그게 기꺼워서, 검정고시 교재나 사이버대학을 한 번 알아보겠다고 이것저것 말을 꺼냈다.
동생은 내내 웃고 있던 것 같다.
그리고 며칠 후.
동생은 벌건 백주대낮에 달리는 차 앞으로 스스로 몸을 던졌다.
사고도, 타살도 아니었다.
동생은 나에게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고 외쳤던 것이다.
온 몸을 던져서.
‘동생을 잘 돌봐줘야 해.’
남들처럼 평범하게 지내길 바라면서 기대한 게 잘못이야?
만일 이 모든 게 나 때문이라면.
나는 구제할 수 없는 인간쓰레기가 분명하다.
정말 사라져야 했던 쪽은 나였다.
귓가에서 별 사이를 날아다니는 괴물의 음울한 웃음소리가 연신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