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pporting characters in horror novels want to live as human beings RAW novel - Chapter 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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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안드로스가 가장 먼저 떠올린 사람은 아렌하이트 공작이었다.
쥐에게 붙들려 찾아온 눈사람의 말에 의하면, 이제는 거의 레안드로스의 구심점이나 다름이 없게 된 그 공작은 지금 마을 어딘가에 갇혀 있는 모양이었다.
그게 어디인지 모르면서도 무작정 인면쥐를 따라 마을 중심부로 돌아온 그는 생각했다.
‘이 마을 전체가 한통속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 말은 길을 가던 사람 중 아무나 하나를 잡아서 족쳐도 아렌하이트와 그 일행들이 향한 곳을 알 수 있다는 뜻이었다.
레안드로스는 결론을 도출하자마자 바로 눈에 보이는 건물로 들어갔다.
처음에는 눈에 보이는 대로 잡아다가 캐물을 작정이었지만,
우연히도 그가 들어간 건물은 언젠가 한 번 가본 적이 있던 여관이었다.
막스와 그 아들, 요나스.
레안드로스는 그 사실을 깨닫자마자 갈등했다.
지금 가장 급한 건 공작님의 안전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공작님의 목숨을 구하는 데 큰 역할을 해준 막스와 요나스를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결국 일부러 시간을 허비하면서까지 그들을 방문해 경고해준 결과,
해가 완전히 지기 전에 여관의 손님 일부는 불온한 공기와 미심쩍은 소문을 탓하며 갤로를 떠났다.
그리고 레안드로스가 간신히 아렌하이트와 아멜리아가 갇혀 있다던 탑을 찾아갔을 때.
탑은 이미 텅 비어 있었다.
활짝 열린 문 앞에 서 있는 그의 품속에서 눈사람이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신자, 갔다. 움직인다,”
“무사하신가?”
“그렇다. 변화 없다. 하지만 마력만. 체력? 모른다? 신자, 내구도가 낮다. 잘 봐야 한다.”
“공작님께서는 어디로 가고 계시지?”
“저기로.”
눈사람이 팔로 가리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분명 레안드로스가 나왔던 곳이었는데, 지금은 본 적 없던 녹색 지붕 집으로 막혀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레안드로스가 한쪽 눈썹을 치켜올리는 사이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녹색 지붕 집이 천천히 옆으로 움직이고, 갈색 지붕 집이 그 자리를 대체했다.
그 옆으로 여행자용 간이 마구간이 들어섰다가 뒤로 빠졌다.
거대한 진동과 소음만 빼면 건물끼리 우아한 춤을 추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레안드로스가 서 있는 너른 빈터를 제외하고, 광장을 둘러싼 모든 건물이 술렁거리며 자리를 옮겼다.
기막힌 장면에 눈사람마저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이윽고 그르릉, 하는 거대한 땅울림을 마지막으로 건물끼리의 움직임이 멈췄다.
눈사람이 레안드로스를 올려다봤다.
“저 너머로 자식들 있다. 이긴다? 한 해만 지난 자식, 인간보다 강하다.”
“이기는 것 외에 다른 선택지는 없다.”
레안드로스가 한 손을 뻗었다.
그의 팔뚝을 타고 서리가 뻗어 내렸다.
손안에서 하얀 얼음의 검이 형상을 이루었다.
* * *
“조심해요, 뭔가 바뀌고 있어. 느낌이 이상해!”
“저, 저도 느, 느껴져요!”
바닥이 흔들리거나, 공기의 흐름이 바뀌는 것뿐만이 아니었다.
달리고 있는 길이 조금씩 휘어지고 굴곡이 생긴다거나.
저 앞에 뻔히 보이던 건물이 슬금슬금 옆으로 들어가고 전혀 엉뚱한 집이 튀어나오기 시작한다던가.
이 마을 전체가 자아를 가지고 스스로 재구축을 시작하는 것 같았다.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재구축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지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길을 잃어버리거나 건물에 깔려 죽거나 둘 중 하나였다.
뒤에서 따라 달리던 베르데가 헉헉거리면서 악을 썼다.
“느껴지는 게 문제냐고요! 헉, 안 죽는 게 문제, 헉, 거든요! 헉, 지금 어디로 가는 건데요!”
“우리가 있던 여관! 거기로 가야 해!”
“대체, 헉, 왜요!”
“내 마도서가 거기 있으니까!”
바닥이 줄어드느라 깔려 있던 돌이 우르르 튀어나왔다.
멀리서 종탑이 움직이며 거대한 종이 댕댕 울리기 시작했다.
무언가가 무너지는 소리, 안 맞는 틀에 억지로 더 큰 건물을 끼워 넣는 소리.
사방에서 먼지와 흙먼지가 휘날렸다.
부옇게 일어나는 공기 너머로 어둠 속에서 희미한 인영이 나타났다.
그게 뭔지 제대로 확인하기도 전에, 아멜리아가 우리 둘을 때마침 드러난 샛길로 밀어 넣었다.
“으아악! 뭡니까! 드디어 본색을 드러내는 거냐고요, 이 미친 여자가!”
“조, 조용히 하세요!”
아멜리아가 제정신이 아닌 베르데의 입을 막았다.
베르데가 읍읍하는 소리를 내며 아멜리아의 팔을 퍽퍽 때리고 있을 때, 우리가 숨어 있는 샛길 바로 옆을 거대한 그림자가 지나갔다.
그것을 본 순간 우리는 전부 숨을 멈췄다.
거대한 촉수 괴물이었다.
땅을 딛고 있는 촉수와 근육 한 줄기 한 줄기가 통나무만큼 굵고 번들거렸다.
힘없이 이리저리 흔들리는 것처럼 보이는 머리는 2층에 닿을 것 같은 높이였다.
머리에 난 뻥 뚫린 입에서는 타액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온몸에는 어린아이의 머리통만 한 붉고 노란 눈이 번갈아 가면서 사방을 주시하고 있었다.
각기 제멋대로 움직이는 것 같은 근육은 서로 뒤엉키지 않게 정교한 메커니즘으로 육중한 몸을 옮겼다.
우리는 미약한 땅울림을 고스란히 느끼면서 커다란 괴물이 완전히 모습을 감출 때까지 입을 열지 못했다.
한참 후에야 베르데가 겨우 얼빠져서 말했다.
“너, 너무 큰데. 사람이 아닌데.”
베르데의 말이 맞았다.
저건 인간이 변한 괴물 따위가 아니다.
엄연한 마수, 그것도 중대형종 이상의 자리를 차지하는 마수종이었다.
갓 부화한 놈과는 전혀 다른 크기의 괴물.
아멜리아가 충격에 빠져서 속삭였다.
“이, 이게, 아마 외곽과 중심부를, 가, 갈라놓는 아티팩트가, 주, 중지하고, 워,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맞습니다. 영애. 저쪽과 이어지지 않았다면 저런 놈이 여기 중심부까지 나올 수는 없었을 테죠.”
저것이 적대적인지 아닌지,
공격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
공격한다면 어떤 식으로 하는지.
서둘러 파악해서 파훼법을 찾아내야만 했다.
우리는 점점 닫히기 시작하는 샛길을 빠져나가 여관으로 향했다.
얼마 가지 않아서 보이는 여관은 움직이는 길과 건물 사이에서 간신히 제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 앞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몇몇 얼굴은 눈에 익었다.
가령 여관 주인이라던가, 혹은 잔뜩 성이 난 촌장이라던가.
여관 앞에는 램프에 보충하는 기름뿐만 아니라 땔감으로 쓸 수 있는 거라곤 전부 나와 있었다.
옷, 장작, 잔가지, 짚단.
그리고 그사이에 섞여 있는 붉은 표지의 책 한 권.
그 광경을 보자마자 기함했다.
저 미친놈들이 내 객실을 털어서 마도서 프나코틱을 장작으로 쓰려고 내놓은 것이다!
* * *
어둠을 틈타 여러 개의 그림자가 은밀하게 움직였다.
발소리도 최대한 죽인 이들은 몇 년 전, 갤로가 아직 평범한 마을이었던 때를 기억하는 자들이었다.
갤로의 뒷길을 구석구석 알고 있던 이들은 그때의 추억이 이런 일에 쓰인다는 사실에 마음이 심란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건 그들에게 있어서 성전이나 다름없는 전쟁이었고,
상대는 인간이길 포기한 괴물들이었다.
이 좁은 중심부에서만 전전긍긍하며 살아가는 것도 이제는 한계였다.
그들은 더 넓은 땅과, 더 많은 자유를 원했다.
좁은 골목골목을 생쥐처럼 잽싸게 빠져나간 그들은 마을 외곽 초입의 한 뒷길에서 잠복했다.
그들의 허리에는 저마다 기름이 가득 든 작은 램프가 달려 있었다.
한 사람이 작게 속삭였다.
“이제 여기서 갈라져야겠군. 세 명은 남쪽으로, 두 명은 동쪽으로 간다. 나는 서쪽으로 갈 테니까 무슨 일이 있다면 와.”
“무슨 일이야 있겠어? 괴물을 마주칠 것도 아닌데. 그 썩을 놈들.”
“깨끗하게 청소하는 거로 생각해.”
농담과 함께 킬킬거리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들은 약속한 대로 갈라져서 제 임무를 위해 걸음을 재촉했다.
남쪽으로 간 세 명은 이 중에서 가장 나이가 어린 축에 속했다.
그들은 이렇게 중차대한 일을 맡게 되었다는 사실에 앞뒤 없이 들떠 있었다.
그 때문에 이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혹은 얼마나 잔인한 일인지 스스로도 분간하지 못하고 있었다.
세 명이 인적이 드문 길만을 골라서 도착한 곳은 창고처럼 보이는 장소였다.
수레 위에는 정체 모를 부대 자루가 여러 개 올라가 있었다.
살짝 열린 창고에도 비슷한 자루가 가득 쌓여 있었다.
“야, 이게 대체 다 뭐냐? 괴물이 되면 식사도 안 해도 되고 잠도 안 자도 된다며? 이게 먹을 건 아닐 거 아냐?”
“낸들 아나. 그보다 빨리 와서 여기 좀 봐, 나무 부스러기 쌓인 곳에다가 불을 붙이면 잘 붙을 것 같지 않냐?”
“그렇겠네. 여기 불 좀 비춰봐.”
두 사람이 구석에서 작업을 시작할 때, 나머지 한 사람은 호기심을 못 이기고 부대 자루를 살짝 열었다.
그 안에는 고운 회색 가루가 가득했다.
“……모래? 아니, 재?”
그는 중얼거리며 손을 집어넣어 부드러운 가루를 만졌다.
이따금 까끌까끌한 조각이 만져졌다. 손가락에 묻어나는 가루를 보아하니, 뭔가를 잘게 빻아 으깬 모양이었다.
손가락을 서로 문지르다가 냄새까지 맡아본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뭔가 묘한 냄새가 나기는 하는데, 뭔지 알 것 같으면서도 자세히 기억이 안 났기 때문이었다.
등 뒤에서 성난 목소리가 다시 터졌다.
“아니, 거기 서서 뭐 해? 여기 좀 도와달라니까! 어두워서 안 보이니까 램프 좀 켜봐!”
“알겠어, 알겠다고.”
그냥 내버려 두질 않네.
그는 속으로 불평을 늘어놓으며 오래된 램프에 불을 댕겼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는 순간, 그는 그 자리에서 굳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기다리던 불빛이 다시 오지 않자 짜증스러운 목소리가 매몰차게 날아왔다.
“뭐 하냐고, 정신 빠졌어? 망하면 네가 책임질 거냐고!”
“……어…….”
“이 새끼야! 대체 거기서 뭔-”
뭔 짓을 하는 거야, 라고 이어졌어야 할 질타는 숨을 들이켜는 소리로 끝났다.
멈춰버린 손에 들린 램프가 맥없이 흔들렸다.
삐걱, 삐걱.
얼굴 위를 더듬는 것은 힘이 풀려 축축하고 유연한 근육 덩어리였다.
하지만 힘을 주는 즉시 두개골 정도는 가볍게 으깨버릴 정도로 강해질 것이 틀림없었다.
그것은 마치 소중한 것을 만지는 듯 그의 얼굴을 만지고 있었다.
램프의 불빛 속에서, 오직 일부분만이 드러난 괴물의 모습은 더욱 공포스러웠다.
근육질 촉수는 얼굴을 거쳐 내려가 목, 가슴, 배, 다리를 훑었다.
세심한 확인이 끝나고, 촉수는 땅을 더듬어 다음 검사자를 찾았다.
구석에서 작업을 하고 있던 두 사람이었다.
두 사람 역시 촉수가 스멀스멀 다가오는 걸 겁에 질려서 꼼짝하지 못하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두 명의 얼굴 위에 촉수가 얹히는 순간.
촉수는 전혀 다른 반응을 보였다.
창백한 근육 덩어리는 뭔가를 감지한 것처럼 사납게 꿈틀거렸다.
순간 불길함이 그들을 덮쳤다.
“아, 아니, 안, 아,”
제대로 말이 나오기도 전.
촉수가 동그란 머리통을 휘어잡더니 그대로 부수었다.
끔찍하게 역겨운 소리와 함께, 옆에 서 있던 사람이 입을 네모꼴로 벌렸다.
비명이 나와야 할 순간이었지만 촉수가 한 발 더 빨랐다.
순식간에 두 사람을 주검으로 만든 괴물은 붉게 변한 촉수로 머리가 없는 시신을 끌고 갔다.
깨진 램프 두 개가 바닥에 기름을 흘리며 나뒹굴었다.
어둠 속에서 소리가 들렸다.
-우둑, 우두둑, 오도독.
램프의 노란 불빛이 위태롭게 흔들렸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멀쩡히 움직이던 두 사람은 핏빛 두 줄기 길만 남긴 채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램프를 쥔 이의 손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한 걸음 물러서려고 하는 순간, 그는 자신이 램프를 쥐느라 들어 올린 손등에서 무언가를 발견했다.
옅은 회색의 혹이 부풀고 있었다.
반대쪽 손도 마찬가지였다.
몸 여기저기서 회색 혹이 부풀어 오르거나, 혹은 이미 부풀어 올라 달걀만 한 크기로 자리 잡았다.
그는 소리를 지르며 램프를 집어던지고 제 얼굴과 팔, 살을 닥치는 대로 긁었다.
“아아, 아아, 아아악!”
바닥에 흥건한 기름 위로 화르륵 불이 붙었다.
수레가, 창고가, 주변의 모든 것이 불타오르고, 그것이 근처에 들어선 집으로 옮겨붙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불길 사이에서 끔찍한 비명과 오도독, 하는 소리가 함께 어우러져 연기와 함께 밤하늘로 퍼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