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pporting characters in horror novels want to live as human beings RAW novel - Chapter 21
(20)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여기서 만날 줄은 생각도 못했다.
나만 떨어진 거라고 생각했는데, 다른 사람이 갑자기 튀어나와?
사실 한국이 여기 빨려 들어온 거 아냐?
원장님과 레안드로스, 아른트는 셋 다 당황한 표정이었다.
“공작, 아니, 도련님. 도련님. 저 사람을 아세요? 만나 뵌 적도 없는 사람이잖습니까. 진정하세요.”
“아냐, 원장님이라고. 저 사람 알아!”
반쯤 공황상태에 빠져 언성이 높아지자 아른트가 내 어깨를 잡고 뒤로 빼냈다.
원장님이 이 세상에 있다.
다른 사람도 여기 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생각하면 어떻게 진정할 수 있는데!
“원장님, 저 아시잖아요! 저 예성이에요, 유예성! 기억 안 나세요? 저 보육원에서 계속 원장 선생님께 상담 받고!”
“도련님!”
“잠시.”
원장님이 손을 들자 아른트는 잠시 멈췄다.
“잠시만 기다려보시오.”
다들 쭈뼛거리며 당혹스러워하는 가운데, 원장님은 천천히 내 앞으로 걸어왔다.
“청년이 기억하는 사람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살아온 내내 한 조직의 장을 맡은 적은 한 번도 없구려.”
“하지만, 정말로 원장님께서!”
“어인학자는 별로 유망한 직업이 아니거든. 학술원에서도 이쪽을 선택하는 학생은 없었다네. 내 이름은 에리히요.”
“……에리히?”
그제야 그를 천천히 살펴봤다.
모든 것이 보육원 원장님과 닮아있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었다.
묘하게 이목구비가 잘 정렬되어 있다거나.
고단함이 담기지 않은 온후한 목소리라거나.
백발 사이로 보이는 희끗희끗한 진갈색 머리카락이라거나…….
닮았지만 묘하게 닮지 않았다.
원장님의 서양인 쌍둥이를 보는 기분.
그는 잘 만들어진 등장인물이었다.
그제야 얼굴이 뜨끈해지며 열이 올라왔다.
“…….”
“다시 보시오. 내가 청년이 알던 사람인가?”
“……아뇨, 아닙니다. 제가 실수를 한 것 같습니다. 미안합니다. 너무 닮아서 순간 착각을 한 것 같습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 괜찮네. 그래도 원수가 아닌 게 어딘가? 다짜고짜 한 대 치는 건 아니었으니까.”
에리히라는 이름의 남자는 크게 웃었다.
이렇게 보니 정말로 다른 사람이었다.
동생이 쓴 소설이니 원장님을 모티브로 만든 캐릭터가 있을 수도 있지.
아, 쪽팔려 죽겠네.
“죄송합니다.”
“나 말고 저 친구들에게도 해야지. 청년을 말리려주었으니.”
아른트는 그 말에 펄쩍 뛰었다.
“아니, 제가 감히. 아닙니다. 정말로 아닙니다.”
“사과 안 해도 돼?”
“당연하죠! 공……도련님, 저한테 사과하시면 안 됩니다. 절대로요. 기강이 무너지거든요.”
그게 무슨 기강이야.
그 다음으로 레안드로스를 보자, 그 역시 마찬가지로 고개를 저었다.
“괜찮으시다면 다행입니다.”
민망해 죽겠다.
후드를 푹 눌러쓰자 에리히는 스스럼없이 내 어깨에 손을 얹고 안으로 안내했다.
“자, 젊은이들. 다들 들어오시오. 어지간한 일로는 여기까지 오지 않을 텐데, 워낙 중한 모양이지.”
* * *
인어학자 에리히. 성은 없다.
평민 출신 학자로, 귀족들의 전유물이나 다름없는 학술원에서 장학금을 받고 다녔다고 한다.
방년 58세로 꽤 나이가 있으신 편이었다.
원래는 수도 외곽에서 지내고 있었다고 한다.
고향이 남부라 잠시 휴양 겸 내려온 사이에 불가사의한 떼죽음이 일어났다고 한다.
원인을 알아내기 위해 자체적으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처음에는 작은 규모였다네. 물고기 몇 마리가 떠오르는 정도였지.”
“그 때는 다들 몰랐나요?”
“그런 일은 흔했거든. 사방이 바다인데 물고기 몇 마리 죽는다고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지.”
각자의 앞에 뜨거운 차가 든 컵이 놓아졌다.
아른트는 냄새를 맡다가 예의바르게 거절했지만 나와 레안드로스는 한 모금 마셨다.
“그러다가 갑자기 많이 죽기 시작했나요?”
“그래. 어느 날 갑자기.”
아무런 전조도 없었다.
마을의 어부들은 새벽녘에 배를 띄우는데, 배를 내리려다 물고기를 목격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누군가가 해변가에 별 이상한 걸 푼 게 아니냐고 의심했다고 한다.
그 후에는 물고기가 단체로 더위를 먹고 죽은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해변가로 어인의 시체가 밀려오자, 바다 오염 가설과 더위 가설은 쏙 들어갔다.
“보통 어인들은 얕은 바다에서 살지 않거든. 수온에도 그리 민감하지 않아.”
“그럼…… 누가 바다를 오염시킨 건 아닐까요? 그래서 올라온 어인과 물고기가 죽었다던가.”
“뭐, 오염된 물을 바다에 버렸다 치자고. 하지만 그렇다고 깊은 물속에 사는 어인이 죽겠나? 독을 싣은 상선이 통째로 가라앉으면 몰라.”
“그런데도 몇 번이고 어인들이 쓸려 와서 죽는다고요? 죽을 자리를 찾은 것처럼.”
“내 말이 그 말일세.”
에리히 씨는 제 이마를 문질렀다.
“게다가 어인은 마수종일세. 인간과 마주친 적은 드물지만 틀림 없이 마수에 속해. 마수가 희석된 독을 마신다고 해서 즉사하는 경우는 잘 없단 말이지.”
마수를 죽이는 데에 다양한 방법이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수가 쉽게 죽는다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어인이 마수종으로 분류된다면 틀림없이 이상한 현상인 건 맞았다.
작은 식탁은 잠시 조용해졌다.
“……그래서, 자네들도 이 현상을 봤다고 했지?”
“저희는 위쪽에서부터 해안을 따라 내려왔습니다. 며칠 전부터요.”
“거기서도 어인을 봤나?”
“첫 번째 도시에서만요.”
그 뒤로는 해변을 관찰해도 물고기떼 외에는 보지 못했다.
아른트가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차라리 물고기에 대해서 연구를 해보는 게 낫지 않을까 싶은데요. 어인은 단순히 휘말린 걸로 보이지 않나요?”
“수가 적으니까?”
“맞습니다, 도련님. 수가 적으니까요. 그냥 우연찮게 물고기가 죽는 구역에 어인이 들어왔다던가…… 그렇게밖에 설명이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오? 일리 있는 지적이었다.
하지만 에리히 씨는 고개를 저었다.
“이 마을에서만 어인이 세 번 발견 되었네.”
“세 번이요? 하지만 저희가 본 건.”
“첫 번째 외에는 아예 없거나 말도 못 들었겠지. 하지만 자네들이 방문했던 마을이 그걸 숨겼을 수도 있어.”
“네? 그걸 뭣 하러요?”
아른트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런 것 같지 않았는데……”
“남부에서 어인은 그다지 환영받지 않아. 여러 전설이 전해지거든. 사람을 꾀어내 잡아먹는다던가, 아니면 물고기를 조종해서 그물에서 빠져나가게 한다던가.”
“진짜로 그런 겁니까?”
“사실은 분명하지 않지만, 중요한 건 이걸세. 남부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어인은 불길한 존재라는 사실.”
어인이 나타나면 좋지 않은 일이 생긴다.
남부에서 어인의 출현을 숨기는 건 관습인걸까.
“어인의 존재를 이방인에게 이야기하지 않는 것도 당연한 일인 거네요.”
“그렇지. 나도 여기가 고향이 아니었더라면 몰랐을 걸세. 첫 번째 도시에서는 미처 치우지 못했거나, 혹은 잠깐 사이에 어인이 밀려온 게 아닐까 싶네.”
“아직까지 그 원인은 못 찾으신 거죠?”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단서가 너무 없어. 없어도 너무 없지.”
에리히 씨는 심각하게 고민스러운 표정이었다.
금기시 되는 어인을 대놓고 관찰하러 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멀리서 보기에는 한계가 있을 터.
우리는 우리대로 일을 빨리 해결해야 하는 처지였다.
언제 유릭이 눈치를 챌지 몰랐다.
그렇게 되기 전에 반드시 외국으로 향하는 배를 타야만 했다.
물고기를 없앤다고 해도 배가 당장 들어올 수는 없겠지만, 나가는 배를 찾을 수는 있지 않을까.
나는 에리히 씨에게 슬쩍 제안했다.
“괜찮으시다면 저희가 도와드리고 싶은데요.”
“자네들이?”
“네. 저희도 사정이 있는지라. 서로 이해관계라고 하면 괜찮지 않으세요?”
“허. 나야 젊은이들이 힘내서 도와준다면 좋지. 무슨 사정이기에 이렇게 넙죽 도와준다는 겐가?”
에리히 씨는 좋으면서도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나는 그냥 웃으며 적당히 얼버무렸다.
“저희는 급히 배를 타야 하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길이 막혀버려서…… 방법을 찾다가 에리히 씨의 이야기를 들었어요. 이 문제를 함께 해결할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아요.”
“아아. 출항을 하려고. 자네들도 여간 곤란한 게 아니겠군.”
“그래서 말인데, 저희가 뭘 어떻게 도와드리면 좋을까요? 혹시 생각한 게 있으세요?”
에리히 씨는 생각에 잠겨서 스스로 혼자 팔짱을 꼈다.
저것마저 놀랍도록 보육원 원장님을 닮았군.
“하나 있기는 한데.”
“그게 뭔지 말씀해주셔야죠.”
“어인들을 만나서 물어보면 단서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
“어인을 만난다고요? 직접?”
이게 무슨 소리야.
레안드로스와 아른트가 서로 눈짓했다.
나도 이해가 안 가서 에리히 씨를 바라봤다.
“어떻게 만나요? 바다 아래로 잠수해서?”
“보통은 그러지! 어인학자들은 잠수하는 법도 다 알고 있다네.”
“네? 대체 왜요?”
“그야 인어들은 바다 속에 사니까! 하지만 걱정 말게. 자네들은 잠수하는 법을 모르잖나? 여기 다 방법이 있네.”
에리히 씨는 흥분으로 얼굴이 달아올라서 잠시 기다리라 신신당부 한 후 급하게 작은 방 쪽으로 뛰어갔다.
그걸 본 아른트는 나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학술원을 나오게 된 경위가 의심스러운데요.”
“못되게 말하지 마.”
“공작님, 마수를 만나겠다는 발상은 보통 사람에게서는 나오지 않습니다.”
“저 사람이 미쳤다는 거야?”
대화를 나눠 봐도 특별한 낌새는 없었다.
광기의 광자도 안 보이는, 그야말로 드물게 건강한 인간이었다.
하지만 아른트는 의심스럽다는 눈으로 작은 방 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사실이 그렇잖습니까.”
“……아냐, 설마. 그렇게 따지면 보르미를 사냥한 우리도 좀 이상하지.”
“저희는 궁지에 몰려 있었고요. 그리고 공작님께서 명령하신 거잖아요.”
“내가 명령하면 다 들어?”
“그럼요. 당연하신 말씀이십니다.”
거 참.
아른트가 의기양양해서 으쓱으쓱하는 걸 본 레안드로스는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그 사이에 에리히 씨는 뭔가 책이니 두루마리를 바리바리 들고 나왔다.
“자, 자. 이걸 보게나. 백 년 전 기록이지만, 어인들 중에서도 가끔 인간과 소통을 바라는 놈들이 있어.”
“백 년 전이잖습니까.”
“어인은 인간에게 호기심을 가질 수도 있다는 중요한 증거일세. 마수가 인간에게 살육 욕구가 아니라 호기심을 느낀다니! 그야말로 멋지지 않은가?”
“저는 좀 섬뜩한데요……”
“그리고, 이걸 보면 인간과 교류하던 어인이 실제로 있었지.”
심드렁한 아른트의 반응에도 불구하고 에리히 씨는 읽기 어려운 기록을 가리켰다.
“여기 말이야. 한 인간 아이와 어인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목격한 사람의 일기가 있지. 어인은 아이에게 호의적이라지 않은가? 나이가 어린 새끼에게 어떤 보호 본능을 느끼는 건 모든 동물의 공통점이네.”
“동물이 아니라 마수지만요.”
“사나운 고양이도 새끼 고양이는 품고 핥아주지. 어인들도 외모가 흡사한 인간에게 동질감을 느낄지도 모른다는 가설을 세웠다네.”
“사람이 아니라 마수지만요!”
“자꾸 그렇게 초를 칠 겐가?”
아른트와 에리히 씨가 아웅다웅하는 사이에, 나는 그가 가리켰던 삽화와 낡은 종이를 들여다봤다.
글씨는 읽기 힘들고 여기저기 갉아 먹힌 흔적이 있어 완벽히 문맥을 파악하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그의 말대로 어인이 미소를 짓고 있는 삽화는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이건 내 꿈이었어…… 어인과 함께 소통을 하는 것. 그럴 수 있다면 분명 지금보다 훨씬 더 다양한 정보를 수집할 수 있을 걸세! 내 평생의 소망이었단 말이야.”
“그 정도에요?”
“배움의 탐구에는 끝이 없는 법! 이번에 일어나는 일을 보고 깨달았네. 지금이 바로 기회라고!”
아른트가 맞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리히의 눈이 번들거리고 있었다.
내 안에서 ‘어인학자 에리히’가 ‘어인 오타쿠 에리히’로 바뀌고 있었다.
“그래서, 선생님의 계획은 뭡니까?”
“나는 나이를 좀 먹어서 이제까지 실행하기 어려움이 있었다네. 하지만 자네라면 충분히 가능할 거라는 확신이 들었지.”
반짝거리는 회색 눈동자가 나를 향했다.
음, 아렌하이트의 나이가 몇이더라…….
갓 성인이 되었다고 했으니 그리 나이를 먹진 않았겠지.
“어리게 봐주셔서 감사하긴 한데, 저도 일단은 성인이라서.”
“그보다 훨씬 어리게 보이니 괜찮네. 문제없을 듯 하이.”
“……욕은 아니시죠?”
다시 삽화를 봤다.
웃고 있는 어인이었지만 어쩐지 기분이 묘했다.
이렇게 호의적인 마수가 있을 수 있나?
이런 인어공주와 왕자 같은 설화를 이 세계관에서 듣자니 적응이 안 되어서 그런가.
하지만 분명 에리히는 믿음직했다.
적어도 나보다는 훨씬 더 믿음직할 것이다.
“좋아요. 해보죠. 안전하기만 하다면요.”
어쩐지 일이 복잡하게 흘러가는 기분인데.
그 날 늦은 밤.
우리는 달을 등지고 암초가 잔뜩 솟은 해안가로 올라갔다.
내 손에는 반짝거리는 귀중품이 잔뜩 들려 있었다.
아른트와 레안드로스는 어두운 길을 밝힐 불을 들고 있었고, 에리히는 도무지 진정이 안 되는지 심호흡을 하고 있었다.
아른트의 도움을 받아 바로 아래에서 파도가 철썩철썩 치는 암초 위에 올라선 나는 아래를 내려다봤다.
에리히 씨는 신중하게 말했다.
“자, 이제 자네가 할 역할은 말이지.”
“이걸 어인에게 줄까요?”
“그건 부차적인 거고.”
“그럼요?”
“자네는 그 얼굴로 인어를 유혹하게.”
아른트와 레안드로스가 할 말을 잃고 에리히를 노려봤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어인을 꼬셔야 한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