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pporting characters in horror novels want to live as human beings RAW novel - Chapter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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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에 여러 자잘한 문제가 있기는 했지만, 다행스럽게 아이든도 나도 성격이 급한 편이라 곧 해결되었다.
게다가 이본느를 비롯한 명장과 실력 좋은 용병들까지 동원했으니 순조롭지 못한 게 더 이상했다.
에이슬링 상단이 산맥 인근에 전초기지를 내세운 지 두 달이 지났을 무렵.
마수 무구 브랜드 ‘디켄팅’의 첫 결과가 하르트만 성에 도착했다.
“공작님, 제 눈이 고장 난 건 아니겠죠.”
“안 고장 났어.”
“이 숫자가 진짜인가요?”
“에이슬링에서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면 진짜겠지.”
톡, 톡.
얄팍한 종이 위에서 내 손톱이 계속 부딪혔다.
아른트는 연신 종이를 들여다봤다가 다른 곳을 보고 다시 종이를 봤다.
하지만 그런다고 종이 위에 적힌 수치가 달라지는 건 아니었다.
“금화 1천 9백 37닢 적자…….”
신음 같은 소리가 아른트에게서 흘러나왔다.
나는 그냥 눈을 질끈 감았다.
소설의 한 장면같이 돈벼락이 쏟아지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 소설 속의 이야기다.
실제로 마주한 현실은 훨씬 더 잔혹하고 쩨쩨했다.
잘될 거라고 기대를 조금 한 감은 없지 않지만, 그래도 이 정도는 너무 심한 거 아닌가.
보고서에 따르면 적자를 기록한 이유는 대충 한 가지로 좁혀졌다.
뛰어난 무기라고 해도 살 사람은 한정되어 있다는 것.
왕실에서 병사를 위한 대량 주문이라도 하지 않는다면 무기가 필요한 사람은 한정적이다.
귀족가, 그리고 평민 용병들.
귀족가는 사병을 위해 무기를 주문하는 경우가 흔했다.
하지만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굳이 비싼 마수 무기를 쓸 필요가 없지.
평민 용병들은 무기의 질이 생사를 가르니만큼 마수 무기를 선호하리라 생각했는데.
가격을 애매하게 책정해서 개런티가 없는 상황이 되었다.
동부에서 사업했다면 왕실에서도 대량 구매를 지원해주고, 다른 상단들도 엮여 있을 테니 양품 염가가 가능했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 에이슬링은 동부를 벗어났다.
황금으로 지불하는 위약금만 있는 게 아니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페널티가 따로 있는 것이었다.
“역시 왕성을 메워야만.”
“네? 공작님,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아무것도 아냐.”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되돌릴 수는 없다.
시작한 사업을 관두면 이쪽도 손해가 극심했다.
언제까지 레안드로스를 도박장에서 굴릴 수는 없다고.
“에이슬링에서 한다는 연구는 어떻게 될 것 같아?”
“이제 막 시작했으니 시간이 다소 걸릴 것 같습니다.”
“품질을 좀 낮춰서 생산 단가를 절감하자고 해도 이본느가 반발하겠지.”
“그 여자는 성격이 장난 아니니까요.”
좋은 퀄리티의 물건은 비싼 가격이 붙는다.
그건 이쪽 세상이고 저쪽 세상이고 간에 엄연한 진실이었다.
퀄리티를 타협할 수 없다면 가격을 납득시켜야한다.
그럼 당연히 귀족 시장을 노려야 하는데, 대체 어떻게 하면 귀족들을 설득시킬 수 있을까.
좋은 방법이 없나 생각하며 책상 위에 난잡하게 어질러진 서류들을 뒤지던 중이었다.
서류 사이에 아슬아슬하게 꽂힌 작은 편지 봉투가 눈에 띄었다.
“이건 뭐야?”
“아, 어젯밤에 드린 초대장이네요. 이맘때면 날이 더 더워지기 전에 수도에서 사냥제를 하니까요.”
“사냥제……. 아.”
지난 회차에서 수도에 들렀을 때 아른트가 쏟아내던 이야기가 어렴풋이 떠올랐다.
슈첸페스트, 여름 전 사냥제이자 명사수를 기리는 대회.
수도에 귀족들이 모이는 정기적인 축제이자, 또 무엇보다 다양한 무기를 쓰는 대회.
그게 이맘때였던가.
이 시기에 수도로 향해도 그렇게 플래그를 크게 밟을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가면 유릭을 만날 가능성이 컸다.
유릭의 입장에서 내가 수도로 나오는 건 그렇게 크게 달가운 일이 아니었다.
어딘가에 처박아둔 채 때가 오면 꺼내서 사용하는 물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또 생각해보면 그걸 신경 써야 하나 싶기도 했다.
이번에는 어차피 가능한 얼굴을 드러내며 살기로 했으니까.
나를 봐서 상대방 배알이 꼴린다면 그건 그거대로 개이득이다.
그러면 남은 문제는 하나뿐인데.
“아른트, 네가 생각하기에 레안드로스가 사람 많은 곳을 잘 갈 것 같아? 가서 막 이야기도 나누고 잘 어울리면서 다닐까?”
“그걸 정말 몰라서 제게 물어봐 주시는 건 아니시죠?”
“역시 그렇지.”
지금 와서 레안드로스의 커뮤니케이션 스킬에 대해 뭐라고 해 봤자지.
젠장.
그냥 콱 한 번 더 죽고 회귀할까.
깊은 고민에 빠져있는 사이에 경쾌한 노크 소리가 집무실을 울렸다.
“공작님, 나빌로프입니다. 잠시 괜찮으실까요?”
“들어와.”
문이 열리자 침침한 공간이 관념적으로 환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생글거리는 얼굴. 화사하고 다정한 미소를 지닌 루셀이 성큼성큼 입장했다.
“커튼을 좀 걷을까요? 밖에 햇볕이 정말 좋습니다, 공작님.”
“아냐. 됐어. 그냥 둬. 그것보다 지금 들고 있는 건 뭐지?”
“교대하려고 오다가 하녀들에게 받았습니다. 매번 챙겨주시니까 감사하기만 하네요.”
멋쩍은 듯 웃는 루셀의 품 안에는 과일이며 꽃이며 빵 같은 것들이 가득했다.
여전히 성안에서 인기가 폭발 중인가 보다.
“사이가 좋나 보네.”
“다들 친절하셔서 좋아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면 교대 시간에 늦을 것 같아서 늘 뛰어오기는 하지만요.”
그는 내 책상 위에 뭔가를 조심스럽게 내려두었다.
하얀색 작은 곰 조각이었다.
“그리고 이건 공작님 선물이에요. 보르미 이빨이 남아돈대서 깎아봤습니다!”
“와, 귀엽다. 고마워.”
“아니, 공작님, 그걸 귀엽다고 하시면…….”
“그런데 진짜 귀엽잖아. 이거 봐, 아른트. 진짜 잘 깎았어. 이 정도면 장인 아냐?”
“제 취향은 아닙니다, 공작님. 약간 소름끼쳐요.”
하지만 귀여운데.
내 검지만한 곰 조각을 이리저리 돌려보다가 루셀에게 물었다.
“루셀, 슈첸페스트에 가본 적 있어?”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가본 적은 없습니다. 신성기사단 입단을 희망한다면 먼저 세속적인 것과 연을 끊어야 했었어요.”
“그래? 그럼 이참에 한번 가볼래?”
“와, 정말입니까? 저도 가도 괜찮을까요? 저는 당연히 좋습니다.”
어린애처럼 좋아하는 루셀의 허리에는 내가 친히 하사한 검이 매달려있었다.
뭐가 좋다고 웃어,
너 지금 이용당하는 거야.
* * *
슈첸페스트에 참가하기로 결정한 후로 성은 조금 더 바빠졌다.
공작 정도 되는 자가 수도의 여관을 이용할 수도 없으니 타운하우스로 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본성만큼은 아니더라도 꽤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던 타운하우스가 멀쩡할 리가 없었다.
아른트는 먼저 수도로 올라가 직접 타운하우스의 하인을 고용하고 저택을 손보기로 했다.
그 전에 본인이 직접 고른 측근을 내게 인사시키고, 성의 여름 준비도 하면서 재정 절약에 힘쓴 아른트는 하얗게 탈진해서 성을 떠났다.
그 모습을 보자니 빨리 집사장을 뽑아야겠단 생각이 들더라.
하지만 아른트의 눈물겨운 희생 덕분에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번듯한 저택 한 채를 마주할 수 있었다.
새로 교체한 펜스에 엉겨 흐드러진 초여름의 장미는 계산된 야성적인 매력을 한껏 뽐내고 있었다.
향기가 진한 입구를 지나면, 내부 정원에서 아기자기한 조각으로 장식된 작은 인공 개울이 졸졸 흐르는 경관이 펼쳐졌다.
늘어진 나뭇가지에는 램프를 단단히 묶어 풍취를 더했으며 돌바닥은 깨진 구석 하나 없이 말끔했다.
검은색 거대한 대문이 맞이하는 하르트만의 타운하우스는 상상 그 이상이었다.
수도의 유행에 뒤처지지 않으면서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는 디자인을 고심한 티가 났다.
채도가 낮은 붉은 카펫, 황금빛 촛대, 엄숙하게 드려진 와인색 휘장과 차분한 색상의 테피스트리.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홀에서 훤히 보였고, 높은 창문은 하늘과 넓은 정원을 함께 담아 탁 트인 개방감을 주었다.
“공작님, 먼 길 오시며 불편한 점은 없으셨습니까?”
“여행은 좋았어. 그런데 아른트, 네가 얼굴이 반쪽이 된 것 같은데.”
“잠을 조금 못 잤을 뿐입니다. 저는 괜찮습니다.”
내 망토를 벗겨주는 아른트의 눈 밑이 검었다.
그는 내 뒤로 따라 들어오는 본성의 시종들에게 짐 정리를 명령하고 내 시중을 들려고 했다.
“아냐. 가서 좀 쉬어. 표정이 정말 안 좋아 보이거든.”
“하지만 공작님. 제가 아니면 누가 공작님 침실 정리를 해드린답니까?”
“본성에 있을 때도 너 말고 다른 애가 해줬어. 나중에 네가 쓰러지면 안 되잖아.”
“하지만.”
아른트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목소리를 낮췄다.
“도련님, 아니, 공작님의 첫 사교계 행사이신데.”
슈첸페스트는 아렌하이트가 처음으로 참가하는 귀족 공식 행사였다.
하르트만이 몰락하기 전에는 과보호하느라, 그리고 하르트만이 몰락한 후에는 먹고 사느라 정신이 없었지.
그래서 아른트에게는 여러모로 의미가 깊은 것 같았다.
새 공작, 첫 사교 행사, 첫 수도 데뷔.
그간 기합이 들어간 이유도 그 때문이었나보다.
나는 아른트를 보다가 어깨를 살짝 두드렸다.
“긴장하지 마. 앞으로 이런 행사에 많이 참여할 거 아냐. 어차피 바닥까지 떨어진 명성이니 더 떨어질 것도 없지.”
“그래도…….”
“이틀은 푹 쉬어도 돼. 전야제 무도회는 가지 않을 작정이고, 사냥제만 참석하려고. 나도 그동안은 좀 쉴 거야.”
아른트는 겨우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비틀거리며 내 겉옷을 든 채로 사라지는 모습이 여간 안쓰러운 게 아니었다.
그를 위해서라도 슈첸페스트에서 좋은 결실을 거둘 수 있어야 할 텐데.
그나마 다행이라면 워낙 급하게 올라와 사냥 전야제 기간의 행사에는 불참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동안 쉬면서 우리는 앞으로 만나게 될 중앙 귀족들에 대한 소문을 조금씩 모았다.
그렇게 나흘 후.
나와 레안드로스, 루셀, 그리고 아른트는 타운하우스를 떠났다.
평소보다 큰 마차에 급하게 조달한 여러 무구를 싣고 반나절 동안 달려 도착한 곳은 넓은 산림이었다.
수도 인근에 자리 잡은 광활한 숲,
숲의 초입에서는 벌써 마차들이며 시종과 병사들이 행사 준비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평소라면 별생각 들지 않았겠지만 이번에는 어쩐지.
“어수선합니다.”
마차 창문 밖을 내다보던 레안드로스가 말했다.
이상하게 흐릿흐릿한 분위기.
구름이 살짝 낀 어두운 숲.
왕국 제일의 무예와 사수를 가리기 위한 슈첸페스트의 막이 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