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pporting characters in horror novels want to live as human beings RAW novel - Chapter 63
(62)
첫날.
‘도니는 자’의 날.
슈첸페스트는 수도를 둘러싼 숲에서 출몰할 수 있는 산짐승을 미리 잡아 민가에 내려가지 못하도록 예방하는 역할을 했다.
“그거 아십니까? 먼 옛날에는 이 숲에도 마수가 살고 있었다고 합니다. 슈첸페스트도 단순히 위험한 들짐승을 잡기 위한 게 아니었다고 하는군요.”
“그것도 마수 사냥의 일환이었구나.”
왕국 제일의 사냥꾼을 위한 행사라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귀족이 직접 사냥에 나서는 것은 아니었다.
혈기왕성한 영식이나 기사가 아니라면 대부분은 안전한 휴식처에 머무르는 편이었다.
그리고 나 역시도 그중 하나였다.
“둘러보시겠습니까?”
“아냐, 됐어. 어차피 아는 사람도 없고.”
저 멀리에서는 척 봐도 나 귀족이요 하는 젊은이들이 무기를 고른다, 갑옷을 입는다 수선을 떨었다.
기사들은 비교적 묵묵히 사냥 준비를 하고 있기는 했지만 눈에 띄는 건 마찬가지였다.
우리만 너무 준비성이 없는 거 아닌가.
내가 불안하게 루셀과 레안드로스를 흘긋거리자, 내 앞에 차가운 홍차를 내려놓는 아른트가 속삭였다.
“걱정 마세요, 공작님.”
“내가 뭘 걱정하는 줄 알고.”
“척하면 알죠.”
행사가 곧 시작됨을 알리는 나팔소리가 들렸다.
이제 숲으로 들어가는 인원은 전부 앞으로 나가야 했다.
“레안드로스, 루셀.”
“네, 공작님.”
“하명하십시오.”
“처음으로 잡아보는 무기지? 마음껏 시험하고 와.”
마차에 싣고 왔던 무기 말고도, 두 사람은 내게 처음으로 하사받은 검을 가지고 왔다.
이제껏 제대로 써본 적이 없어 검의 그립마저 깨끗할 지경이었다.
겸사겸사 주변에 자랑도 좀 해주면 좋고. 그렇게 덧붙이자 루셀이 제 가슴을 주먹으로 쿵쿵 내리치며 듬직하게 말했다.
“저만 믿으세요, 공작님!”
희미하게 웃으며 그들의 뒤로 손을 흔들어줬다.
가느다란 수렵용 창부터 화살, 검까지 각종 용품을 갖춘 참가자들이 모이자 왕성의 시종이 작은 단상 위에 올라갔다.
“용맹한 자들에게는 명예를, 망설이는 자에게는 나아갈 수 있는 의지를!”
슈첸페스트의 개최를 알리는 시종의 말과 함께, 뒤이어 슈첸페스트의 룰이 소개되었다.
사냥감의 크기에 따라 점수를 매기고, 사흘간 열리는 사냥제의 마지막 날에 모든 점수를 합산한다.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이가 우승자로 큰 영광을 얻으며, 그가 소속된 가문도 마찬가지다.
모든 설명을 마친 시종이 마무리를 지었다.
“그럼 행운이 있기를 빕니다!”
나팔이 울렸다.
참가자들은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하나뿐인 숲의 입구로 달려갔다.
* * *
레안드로스는 사냥에 대해선 별생각이 없었다.
애초에 사냥을 즐기지도 않거니와, 자신이 기사가 된 이유는 사냥 따위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레안드로스가 발소리를 죽이고 흔적을 지우며 걷는 동안 옆에 있던 루셀이 슬쩍 말했다.
“선배님, 레안드로스 경. 사냥은 자주 하시는 편이십니까?”
“해야 한다면.”
“지금도 해야 하긴 하잖아요?”
“그러니 하고 있겠지.”
“심심한데 이렇게 된 거 저희끼리도 내기할까요? 더 점수를 얻는 사람이 이기는 걸로 말입니다.”
레안드로스는 루셀의 제안을 단박에 쓸모없는 이야기로 분류했다.
그럴 시간 있으면 다람쥐라도 찾아보는 게 어떻겠냐고 말하려던 차에 누군가가 끼어들었다.
“레안드로스 경. 오랜만일세. 여기서 다 보는군.”
“……왕국의 작은 태양, 왕세자 전하를 뵙습니다.”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수풀 사이에서 걸어나오는 사람은 흐릿한 백금발을 높게 묶고 있었다.
검고 넉넉한 옷은 움직이기 편하게 보였다. 팔뚝과 손에는 얇은 가죽으로 만든 완갑과 장갑을 끼고 있었다.
보석을 박아넣어 번쩍거리는 뭇 영식들의 차림과는 전혀 다른 소박한 모습이었다.
가지고 있는 것 중에서 유일하게 선명한 붉은색 눈이 빛나고 있었다.
“공작가로 들어간 이후로 처음이지. 그간 잘 지냈나?”
“왕세자 전하께서도 무탈하신 것 같아 다행입니다.”
“그대 덕에 무탈하진 않았어. 경도 알고 있겠지만 늘 경의 생각을 했다네.”
“과분한 호의를 베푸십니다. 지금 움직이시지 않으면 사냥감을 다 놓치실 텐데요.”
“고작 몇 분이잖나. 새로운 공작은 잘해주나?”
“과분할 정도로 잘해주십니다.”
“나도 공작보다 더 잘해줄 수 있어.”
“이미 공작가에 속했으니 저의 처분은 아렌하이트 하르트만 공작님께 달려있습니다.”
한 치의 늘어짐도 없이 휙휙 던지는 대답을 듣던 루셀은 눈을 굴렸다.
왕세자와 자신의 선배격인 레안드로스 경의 사이에는 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같이 기사 작위를 위한 합숙 시험도 치른 사이에 여전히 냉정하군. 그 면을 높게 평가하고 있지만.”
“그러십니까.”
“왕성으로 돌아올 생각은 없나?”
“저보다 월등한 기재들의 장래를 살펴봐 주십시오.”
“그대가 아닌 이들은 전부 어중이떠중이에 불과하지. 개인적으로 경을 높게 사고 있는 만큼 경의 이름이 널리 알려져야 한다고 생각해. 어째서 공작가에 은거하며 스스로를 숨기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건 완전히 일방적인 구애가 아닌가.
루셀은 점점 어두워지는 레안드로스의 표정을 살피며 한 발짝 떨어졌다.
레안드로스는 유릭 왕세자에게 답했다.
“제가 선택한 길입니다. 충분히 만족스러우니 과분한 칭찬은 거두어주십시오.”
“……뭐, 그렇다고 하니 믿는 수밖에. 하지만 나라면 그대 같은 인재에게 분명 더 명예로운 임무를 내렸을 거야. 고작 슈첸페스트라니. 그대가 사냥하는 모든 것은 하르트만 공작의 것이 되겠군?”
“그렇습니다.”
“어린 공작을 위해 헌신하고 있는 모습이 감동적이야. 그렇다면 나도 공작에게 지지 않도록 힘내볼까? 이따 저녁 만찬에서 보지.”
유릭은 상쾌한 미소를 남긴 채 그 자리를 떠났다.
남은 루셀과 레안드로스 사이에는 어색한 침묵만 남았다.
루셀은 레안드로스가 쥐고 있던 사냥감 자루를 흘긋 쳐다봤다.
루셀의 눈이 잘못된 게 아니라면 레안드로스는 자루를 교살시키고 있었다.
저렇게 자루 목을 꽉 쥐고 있는 게 교살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자루가 살아있었다면 벌써 죽었겠다.
“루셀 나빌로프.”
“에, 예?”
“오늘 내로 20점 이상 획득하도록.”
“네? 자,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20점이면 뭘 얼마나 잡아야 하지?
루셀이 손가락을 꼽으며 허둥지둥하는 사이에 레안드로스는 저벅저벅 가던 길을 나아갔다.
잔뜩 힘이 들어간 그 등에는 ‘질 수 없다’라는 오오라가 가득 풍기고 있었다.
루셀은 그 뒷모습을 보다가 하늘을 우러러봤다.
공작님, 지금 제 생각이 들리신다면 레안드로스 선배님이 왜 열받았는지 정답을 알려주세요…….
* * *
해가 머리 위에서 좀 기운 이른 오후.
참가자들이 하나둘씩 돌아오기 시작했다.
대부분은 토끼나 새 종류를 적어도 두 마리씩은 들고 있었다.
드물게 여우를 가지고 돌아오는 이는 어깨가 잔뜩 으쓱해져서 주변에게 자랑하고 있었다.
사냥감을 가지고 온 이들을 보자 조금 궁금해졌다.
“아른트, 사냥은 실패할 가능성이 높지?”
“쉬운 일은 아니죠. 하지만 레안드로스 경과 루셀 경에게 어려운 일은 아닐 겁니다.”
“토끼라도 한 마리 잡아 오겠지?”
“그럼요. 공작님의 호위 기사니까요. 아무리 첫날이라지만 이름값은 해야죠.”
하지만 기왕이면 여우를 잡아 와 주면 좋겠다.
토끼는 1점이지만 여우는 3점짜리니까.
털이 반지르르한 여우를 둘러싼 영애와 귀부인을 구경하던 중 숲 입구에서 웅성거리는 소란이 들렸다.
잠시 아른트에게 가서 무슨 일인지 보고 오라고 할까 고민했지만 그럴 필요는 없었다.
그 웅성거리는 소란의 원인이 나에게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공작님!”
걸어오는 원인은 루셀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루셀은 누구보다 환하게 웃고 있었다.
금발 머리가 반짝반짝 빛날 만큼 밝은 미소는 참 예뻤지만, 그의 등에 업혀 있는 것은 그렇지 못했다.
“귀환이 조금 늦었습니다. 공작님, 많이 기다리셨죠.”
“별로 안 기다렸어. 그런데 그건.”
“아, 이거요?”
-쿵!
루셀의 노획물이 바닥에 안착했다.
목에 화살이 꽂힌 회색 늑대.
몸길이로 봤을 때 어림잡아도 40kg는 거뜬히 넘을 것 같았다.
루셀은 자랑스럽게 말했다.
“멋지지 않습니까? 제가 얼마나 열심히 쫓아다녔는데요.”
“이걸 여기까지 가지고 온 거야? 무거운 건 보고만 하고 나중에 다른 사람에게 운반을 부탁해도 되잖아.”
“그렇긴 하지만 머리만 증거로 덜렁 가져오자니 멋이 나지 않잖습니까? 게다가 공작님께 빨리 보여드리고 싶었거든요.”
루셀은 히죽거리며 덧붙였다.
“공작님만 사냥감이 없어서 슬퍼하실까봐 얼마나 애를 썼는데요. 이만하면 다른 사람들 못지않죠?”
확실히, 루셀의 말마따나 회색 늑대는 눈에 잘 띄었다.
여우 열 마리를 가져온대도 늑대 한 마리는 못 이기지.
여우를 둘러싸고 있던 귀부인들이 이쪽을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잘했어. 돌아가면 뭔가 선물이라도 줘야겠다. 그런데 레안드로스는? 같이 들어가지 않았어?”
“그렇긴 한데 중간부터 헤어져서 각자 사냥을 했습니다. 지금쯤 어디 가셨을지는 잘 모르겠는데요, 사냥 종료 시간이 오니 곧 돌아오지 않을까요?”
그런가.
고개를 끄덕이며 이 늑대를 어딘가 옮겨놓자고 말하려던 차에 주변이 유난히 조용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루셀이나 그의 늑대 때문이 아니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은 숲의 입구로 향해 있었다.
-쿵, 쿵, 쿵.
듣기만 해도 묵직한 발걸음 소리.
구경꾼과 마찬가지로 숲 입구 쪽으로 고개를 돌린 나 역시 할 말을 잃은 채였다.
-쿵, 쿵, 쿵.
그건 거대한 뿔이었다.
손바닥 모양의 커다란 뿔을 가지고 있는 커다란 수사슴.
사슴을 어깨에 짊어지고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레안드로스 경이네요.”
아른트가 중얼거렸다.
시시포스의 형벌처럼 수사슴을 어깨에 진 그는 루셀과 마찬가지로 내 앞으로 직행했다.
-쿵!
“늦은 귀환에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공작님.”
“그…… 이건.”
“사슴입니다.”
털은 붉지만 등에는 하얀 점박이처럼 드문드문 흰 털이 나 있었다.
죽은 후에도 고상하고 슬픈 눈이 아름다운 사냥감이었다.
레안드로스가 말했다.
“제 주군이신 하르트만 공작님께 슈첸페스트의 첫 사냥감을 바칩니다.”
지금까지는 잡힌 것 중 가장 값지고 귀한 사슴.
그것은 레안드로스가 여기 모인 자 중에서 가장 뛰어난 사냥꾼이라는 사실을 뜻했다.
그런 그가 첫 사냥감을 바치는 대상은 바로 나였다.
주변에서 감탄과 질시가 어린 박수가 쏟아졌다.
그 사이로 저 기사가 누군지, 그리고 나는 대체 누군데 하르트만 공작이라 불리는지 물어보는 속삭임이 섞여 있었다.
이만하면 데뷔는 성공이라고 봐도 되겠지.
“경의 노고를 치하하네.”
가슴에 손을 얹고 한쪽 무릎을 꿇은 기사와 그의 충정을 받는 어린 공작.
어떤 의미로든 귀족들을 들썩이게 만들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슈첸페스트 첫날, 하르트만 공작가의 사냥 점수는 총 12점으로 종합 1위를 기록했다.
커다란 점수판을 뒤에 두고 열린 야외 오찬에서는 많은 귀족이 알은체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에이슬링과 진행하고 있는 사업도 제법 어필할 수 있었고.
나쁘지 않은 스타트였다.
쭉 이렇게만 가준다면 제법 홍보 효과가 쏠쏠하지 않을까.
그런 희망을 품고 맞이한 슈첸페스트 이틀째.
“역시 왕세자 전하께서 우승을 차지하시겠지!”
“암, 아무렴. 저 사냥감들을 보게나. 대체 누가 저렇게 사냥할 수 있겠어?”
“다른 이들은 눈에도 들어오지 않겠군. 하하!”
그날 유릭 왕세자는 늑대 두 마리, 여우 세 마리, 오소리 한 마리, 그리고 곰 한 마리를 잡고 내 희망을 산산조각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