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pporting characters in horror novels want to live as human beings RAW novel - Chapter 65
(64)
“마지막 날인데도 다들 재미있어 보이네.”
“공작님과 왕세자 전하의 내기 때문이겠죠. 게다가 사냥제 이후로도 많은 행사가 이어지니까요.”
참가자들이 숲속으로 들어가자 나는 할 게 없어졌다.
다른 사람들이야 삼삼오오 모여서 대화도 즐기고 카드 게임도 한다지만.
지금 나는 사교계에서 왕따에 가까웠다.
친한 귀족이라고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니 나에게 다가오는 귀족이 있을 리가 없었다.
아른트는 대기석 근처를 둘러보다가 나에게만 들리도록 조용히 말했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저기 아놀드 남작가도 있군요.”
“뭐? 진짜?”
“예. 공작님이 계시는 쪽에서 오른쪽을 보시면 남색 드레스를 입은 아놀드 영애가 있습니다.”
아멜리아가?
귀족이 사냥제에 참석하는 건 별로 특이한 일이 아니었다.
아놀드 남작가도 마찬가지였고.
하지만 아멜리아가 여기 왔다니.
마지막으로 볼 때까지만 해도 혼자서 걷지도 못할 만큼 건강이 안 좋았었는데.
“지금 공작님을 보고 있는데요……. 앗, 눈 마주칠 것 같아요.”
“너도 고개 돌려. 지금은 우리랑 상관없는 사람이야.”
그녀에게서 호각 조각은 회수했고, 지난 삶에서 어떻게 유릭의 손에 놀아났는지도 알아냈다.
그러니 이번 회차의 그녀에게 다시 접근할 필요는 없었다.
게다가 남작가에 심어져 있던 거미 마수 하인을 보고 깨달은 건데, 그녀 같은 평범한 사람에게는 내가 접근하지 않는 게 더 좋을지도 몰랐다.
‘애초에 이쪽은 위험을 몰고 다니는 편이니까.’
정상적으로 살고 싶은 인물에게는 공작가가 독이 되는 편이지.
죽어있던 아멜리아를 떠올리지 않으려 노력하며 빈 잔을 아른트에게 건넸다.
“아른트.”
“네, 공작님. 차가운 음료로 가져오겠습니다.”
“이번에는 홍차 말고 혹시 다른……”
다른 음료가 있을까, 하고 말하려던 순간이었다.
갑자기 숲의 입구에서 누군가가 헐레벌떡 뛰쳐나왔다.
오찬과 만찬을 하면서 익숙하게 본 얼굴이었다.
어느 가문의 영식이었지, 하고 생각하던 차에 그가 외쳤다.
“다들 피하세요, 지금 숲에서!”
-콰드득.
숲에서, 하는 소리가 멎었다.
그의 무릎이 힘없이 꺾이고, 곧 풀밭 위로 쓰러졌다.
그의 목 위에는 머리 대신 다른 것이 있었다.
희고 둥그런, 머리를 대체하고 있는 무언가가.
그 하얀 물체가 툭 떨어져나오자, 그 자리에는 끔찍한 광경이 그려졌다.
잠시간의 정적.
“아, 아.”
그리고 이어지는 높은 비명과 소란.
풀밭에서 바둥거리는 것 말고도, 숲에서 무차별적으로 허연 생물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숲 가까이에 서 있던 사람들을 노리고 달려든 것들은 잔인하고 역겨운 소리를 내며 포식을 시작했다.
그 밖의 것들은 높게 뛰어서 더 멀리 있는 사람들을 노리기 시작했다.
아비규환.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머리가 뜯겨나간 사람들과, 그런 이들을 보며 패닉에 빠져 도망가는 사람들.
시종과 귀족은 너나 할 것 없이 전부 하나같이 소리를 지르며 도망가기 시작했다.
“공작님!”
“잠시만, 숲에 레안드로스와 루셀은?”
“경들은 어딜 던져놔도 살아남는다고요!”
아른트가 억센 손으로 나를 잡아끌었다.
사냥터의 경비와 호위를 담당하던 병사들은 허둥지둥거리며 대응하려 했지만, 그들은 마수에 대한 이해력이 부족했다.
우리는 소란을 등진 채 무작정 뛰었다.
대부분의 사람이 향하는 곳은 왕성의 사냥 별장이었다.
사냥제 때 주로 귀족의 숙박과 만찬을 위해 사용되는 장소로, 여러 채의 건물과 가장 큰 연회장 및 식당 건물로 구성되어 있었다.
실내로 몸을 숨기려는 시도는 좋았다.
하지만 그렇게 크지 않은 문에 많은 사람이 몰리자 이야기는 달라졌다.
“비켜, 비키라고! 내가 누군지 알아!”
“영애들을 먼저 들여보내시오!”
“저기 밖에 내 아들이 있어요! 전 나가야겠어요!”
뒤에서 밀고, 앞에서 밀치고.
그러는 사이에 나와 아른트는 서로 잡고 있던 손을 놓쳤다.
“공작님!”
아른트는 문 안으로 거의 빨려 들어가면서 소리를 질렀다.
나는 반대로 사람들에게 밖으로 밀려나면서 휘청거리기만 했다.
아른트에게 다른 곳으로 가겠다고 해야 하는데. 그의 얼굴을 확인하기도 전에 문이 닫히고 말았다.
-철컥, 쾅!
“이봐! 이게 무슨 짓이야! 열어!”
“내가 아직 안 들어갔잖아!”
사람들은 갑자기 닫힌 문을 두드리고 고함을 쳤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등 뒤에서 하얀 괴물들이 튀어나와 몇몇의 등에 매달렸다.
사방으로 비산하는 피와 혐오스러운 장면에 다들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아악!”
아른트도, 레안드로스도 없는 상황에서 죽을 수는 없었다.
나는 무작정 다른 건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뿔뿔이 흩어져 숙소로 쓰이는 별동을 찾기 시작했다.
내가 고른 건물은 가장 작아서 하급 귀족들의 숙소로 배정된 곳이었다.
건물의 문은 닫혀 있었지만 잠기진 않았다.
그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나는 문을 닫고 출입구 옆에 난 창문에 커튼을 쳐 안이 보이지 않도록 했다.
불은 켜지 않고, 최대한 조용히.
이 숙소는 1층에 작은 응접실 겸 살롱이 있었고, 2층으로 올라가면 각자의 방이 있는 식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실내를 둘러보던 차에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경첩이 끼익거리는 것 같은 소리는 벽난로 근처의 커다란 의자 뒤에서 나고 있었다.
누구지?
조심조심 의자 뒤로 돌아가자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레이디 아멜리아.”
남색 원피스를 입고, 양손으로 제 입을 틀어막은 채 눈물만 줄줄 흘리고 있는 아멜리아.
그녀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려서 얼굴은 다 젖었는데도 용케 소리만은 나지 않았다.
아멜리아는 나를 보자마자 겨우 떨리는 손을 얼굴에서 뗐다.
“고, 공작님.”
“쉿. 여기까지 어떻게 온 겁니까?”
“홀이 막힌 것 같, 아서, 도, 망을 쳐, 쳤는데, 다, 가까운 곳은, 잠겨서.”
아멜리아도 그 혼란을 다 목격했다는 소리다.
연회홀이 잠긴 것처럼, 다른 별채로 피신한 사람들도 다 문을 걸어 잠근 모양이었다.
열어달라고 애원하다가 겨우 찾아낸 곳이 여긴가.
이걸 운이 좋다고 해야 할까.
“잘했습니다. 여기가 옳은 선택이었으니까요.”
“그, 그게 무슨 말씀…….”
-쿵, 쨍그랑!
-꺄아아아아악!
-으아, 아아아악!
바로 근처에서 나는 소리였다.
아멜리아가 놀라서 입을 벌렸지만 내가 급히 틀어막아 비명은 새어 나오지 않았다.
“조용히. 마수는 소리에 민감해요. 눈이 심각하게 퇴화한 결과입니다.”
“……흡.”
“방금 들린 소리를 보면 아마 창문으로 들어왔을 겁니다. 날진 못하지만, 높이 뛸 수 있거든요.”
여기는 하급 귀족들이 머무는 별채.
고위 귀족이 머무르는 건물에 비해 시설이 상대적으로 열악하다.
특히 창문.
고위 귀족들의 호화스러운 별채는 창문도 크고 넓게 내서 채광이 잘 들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내가 받은 숙소도 그런 식으로 널찍한 창문이 달려 있고.
하지만 하급 귀족들의 숙소는 아니었다.
좁고 높은 창문으로 채광은 챙겼지만 개방감이 덜하고 화려하진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창문을 통해 쳐들어오는 마수에 대해서 효용성이 커진다.
“그, 그걸 어떻게.”
“나중에 설명해드릴게요. 우선 목소리나 발소리는 최대한 낮춰야 합니다. 저는 다른 창문에 커튼을 치고 올게요.”
그렇게 말하며 일어나는 순간 아멜리아가 내 손을 잡아당겼다.
“지, 지금 창가에 있다가 공, 격을 받을지도 모르, 모르잖아요!”
“다른 곳이 공격당했으니 그쪽으로 주의가 쏠린 지금이 기회예요.”
내가 한 말처럼 어디선가 끊임없이 비명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지금이라면 발소리 정도는 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아멜리아는 한창 갈등하다가 부들부들 떨면서도 천천히 일어났다.
“저, 저도 같이 도, 도울게요.”
그렇게 떨면서 왜?
의아하게 생각했지만 우선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힘을 합쳐 2층 객실의 커튼을 모조리 치고 다시 1층으로 돌아왔다.
그 사이에 비명소리는 사라져 있었다.
소름 끼치는 정적 속에서 아멜리아와 나는 목소리를 잔뜩 낮춰 속삭였다.
“저, 저희는 여기 계속 있어야 하는 건, 가요?”
“밖에 어떻게 되고 있는지 모르겠네요. 왕성 기사단이 인근에 있을 텐데. 구조를 위해 오지 않겠습니까?”
“마, 만일 아무도 오지 않으면.”
“그러진 않을 겁니다.”
왕세자가 여기 있는데 오지 않을 리가.
단호한 답에 아멜리아는 잠시 우물거렸다.
“그, 그럼 일단 여기서 계속.”
“네. 다른 이들이 올 때까지는요.”
만일 오지 않으면 이쪽에서 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아멜리아가 여기 있는 한 그녀를 버리고 갈 수도 없으니까.
같이 데리고 가야 하나?
내가 고민에 잠긴 사이에 아멜리아가 소곤거렸다.
“저, 저 괴물들은 소리에, 민감하, 다고 하셨는데……. 그, 그거 말고 다른 건. 호, 혹시나 싶어서.”
“아마 소리만 내지 않으면 될 겁니다. 가까이서 본다면 머리를 보호하세요. 머리를 가장 좋아하거든요.”
“그, 그럼 괜찮은 건, 가요? 왜 하필 머, 머리인가요?”
“인간의 머리는 많은 걸 담고 있거든요.”
나는 아멜리아와 나의 머리를 가리켰다.
“생명 활동의 중심은 머리와 심장이잖습니까. 하지만 심장은 늑골이 보호하고 있으니까요.”
“하, 하지만 팔이랑 다리가 더 쉬, 운데요.”
“그러게요. 아무래도 취향이 아닐까요. 아니면 머리가 아니라면 안 된다는 사정이 있던가.”
아멜리아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문득 물었다.
“그, 수가 많은데, 군집인가요?”
“군집이라기엔 차라리 가정이라고 하는 게 더 맞을 것 같네요.”
“가, 가정?”
“저것들은 일종의 유체입니다. 크기가 작으니 섭취할 수 있는 양이 제한되어 있어요. 그래서 한 번에 높은 영양분을 보충하는 편이죠.”
“머, 머리가 높은 영양분.”
“비슷하지 않을까요. 성체가 되고 나서야 독립을 하죠. 그전까지는 다른 성체에게 빌붙어서…….”
잠시만.
유체인 마수는 같은 종의 성체 마수와 함께 행동한다.
그리고 유체 군단이 여기 있다는 건,
아마도…….
-쿵, 쿵, 쿵.
아멜리아가 내 입을 막았다.
뒤를 돌아보자 현관 옆의 창문을 가린 커튼에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그 그림자는 저 높이, 천장 근처에 난 작은 창문까지 이어져 있었다.
고작 사람 몸통만한 조명용 창문을 통해 보이는 것은.
얼굴이 새빨갛게 물든 거대한 마수였다.
넝마처럼 흔들리는 얼굴 하단부가 젖어있었다.
그것은 머리를 지붕에 들이박고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작은 창문에 피가 튀었다.
순식간에 공포에 압도된 우리는 그것을 그저 망연히 볼 수밖에 없었다.
내 입을 막은 아멜리아의 손이 다시 떨리고 있었다.
침착해. 한두 번도 아니잖아.
나는 아멜리아의 손을 잡아 내렸다.
이론적으로는 소리를 내지 않으면 들킬 일이 없다.
물론, 사람은 본의 아니게 여러 가지 소리를 내니 거의 불가능했지만.
여기는 집 안이니 숨소리 정도는 용인되지 않을까.
그리고 내 생각은 어느 정도 맞았다.
숨소리까지 죽이자, 집 근처를 배회하던 그것은 조금씩 이 집에 흥미를 잃는 것 같았다.
먹을 게 없다고 생각했겠지.
마수가 머리를 박는 빈도가 점점 줄어들었다.
그래, 조금만. 조금만 더.
그때 아멜리아가 떨리는 손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녀의 시선을 따라가자 벽에 삐뚜름하게 걸려 있는 액자가 보였다.
작은 크기인 탓에, 밖에서 한번 들이박을 때마다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쿵.
액자가 조금 더 기울어졌다.
-쿵.
아슬아슬하게 못에 걸린 정물화는 싱그러운 꽃과 과일을 그린 것이었다.
-쿵.
아예 달랑거리기 시작한 그림에 아멜리아의 눈에는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그 후로는 진동이 멈췄다.
끝났나?
흥미를 완전히 잃은 건가?
그렇게 생각했을 때.
-쿵!
그림이 떨어지고 액자가 부서졌다.
“뒷문으로 가!”
비명이나 다름없는 내 소리와 동시에 천장이 내려앉으면서 마수의 붉은 얼굴이 쏟아졌다.
그 얼굴은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