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pporting characters in horror novels want to live as human beings RAW novel - Chapter 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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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관들의 존경심 어린 눈빛.
그리고 나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신실한 호위 기사.
이 모든 광경을 광인들의 집단 봉기 같이 보는 필립 경.
서둘러 하인들에게 신관님들께 좋은 대접을 해드리라 이르고, 가엾은 필립 경과 이 광기를 주도하고 있는 루셀 경만은 따로 집무실로 불렀다.
“루셀, 내가 명령한 건 신전을 방문해서 기부금을 전달하고 북부에 대해서 귀띔을 하라는 거였지, 신관님들을 전부 모시고 오라고 하진 않았던 것 같은데.”
“하지만 형제님들이 기꺼이 오시겠다고 하시는데 제가 어떻게 막겠습니까? 형제님들은 분명 북부에 도움이 되실 겁니다.”
루셀의 초롱초롱한 눈동자에 할 말을 잃었다.
예순다섯이나 되는 신관들을 먹이고 재우는 건 둘째치고.
“그러면 좋겠는데, 일이 좀 곤란하게 됐어. 원래는 북부 신전을 바로 재건하려 했거든. 그런데…….”
“네? 무슨 일이라도 생겼습니까?”
“쉽게 설명하자면 북부에서 본 그 괴물 나비 있지. 나비보다 강한 개체가 있어.”
신들은 기본적으로 제 영역 안에 틀어박혀서 움직이지 않는다.
신격화된 변경백, 겨울 나비가 성안에서 틀어박혀 있던 것과 비슷하다.
극권의 군주도 그럴 거고, 다른 신들도 그러겠지.
하지만 내가 가장 걱정하는 건 ‘걸어 다니는 두 쌍의 별’이었다.
그 신은 어디부터 어디까지 돌아다니는지 알 수 없었다.
하물며 그 신의 정체도 아직 모른다.
그런 게 버젓이 활보하고 다니고 있는데, 무력이라곤 전혀 없는 신관들을 데리고 갈 순 없었다.
“그래서 북부에 있는 용병단과 네 도움이 필요할 것 같아.”
“레안드로스 경은 어디 계신가요?”
“레안드로스는.”
젠장. 버림받았다는 생각이 다시 고개를 치켜들었다.
“……잠시 자리를 비웠어. 지금은 너밖에 없는데, 괜찮아?”
“예, 신을 위한 성전(聖戰)일진대 무엇이 괜찮지 않겠습니까? 따르겠습니다.”
루셀 경은 북부를 벗어난 지 꽤 되었는데도 정신이 영 이상한 것 같다.
설마 심각한 건 아니겠지?
나는 필립 경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경의 노고를 알고 있네. 하지만 조금만 더 고생해주지 않겠나? 우리는 협력자니까.”
“아닙니다, 공작님께서 몸이 두 개라도 바쁘신 시기이니 저라도 이렇게 보탬이 될 수 있다면 지극히 기쁘겠습니다.”
필립 경의 세 치 혀는 여전히 노련하구나.
나는 짧은 메시지를 담은 종이를 묶어서 그에게 건넸다.
“수도에는 분수대가 있지 않나? 정오가 되면 분수대에 앉아있는 여자한테 이걸 주게. 돌아와도 좋다고도 전해줘.”
“그게 전부입니까?”
“그래. 번거로운 일을 시켜서 안 됐지만.”
문 옆에 서 있던 하인에게 손짓하자 하인이 슬쩍 다가와 필립 경에게 무언가를 내밀었다.
은밀하게 빛나는 보석 하나가 그의 손에 쥐어졌다.
“이 일이 끝나면 수도의 타운하우스에서 차나 마실까? 성체 축제일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그렇습니까. 공작님께서는 전야제 연회에 참가하실 예정이십니까?”
“그래. 그대만 괜찮다면 함께 입장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그, 그 말씀은.”
필립 경의 콧구멍이 벌름거렸다.
타 고위 귀족이나 가문의 수장과 함께 입장할 수 있는 경우는 몇 되지 않는다.
첫째, 약혼녀나 약혼자거나.
둘째. 호위 기사이거나 가정교사이거나.
셋째. 신분을 뛰어넘은 친분을 쌓았다거나.
필립은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돌변해서 연신 넙죽거렸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수도에서 뵐 수 있는 것만으로도 큰 영광입니다. 그럼 저는 더 늦기 전에 수도로 가보겠습니다, 공작님.”
“그래, 필요한 건 하인들에게 말하게. 부족함 없이 챙겨줄 테니까.”
“감사합니다. 공작님.”
필립은 몇 번이고 허리를 숙여가며 인사하고 나갔다.
루셀은 여전히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들었지? 성체 축제일 전에 돌아와야 하니까 내일모레 출발하자.”
“예!”
신관들은 당장 돌려보낼 수 없으니 당분간 공작저에 머물기로 했다.
루셀과 나는 다시 북부로 향하고, 아른트는 그대로 성의 통솔을 맡게 되었다.
아른트는 내가 자꾸 성을 떠나자 내심 싫은 눈치라 성체 축일 전에는 돌아오겠다고 약속했다.
인원은 나와 루셀.
타고 가는 말은 슬레이.
하지만 간만에 본 슬레이는 털이 푸석푸석해서 바짝 말라 있었다.
“……내 말한테 밥을 안 줬어?”
“공작님, 하지만 말이 안 먹었는걸요. 먹여보려고 온갖 애를 썼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지금 두 사람이 올라탔다가는 그대로 쓰러질 거야.”
북부로 가는 길이 머니까 단축할 겸 슬레이를 타려고 했더니.
이대로라면 성체 축일이 지나서 돌아올 수 있을지도 몰랐다.
걱정하며 다른 말을 꺼내오라고 해야 할까 고민하던 중, 슬레이가 내게 머리를 기댔다.
슬레이가 내게 뭔가를 조르고 있었다,
“……뭐라고?”
-푸르릉.
“그걸 먹겠다고? 너 지금 말이야. 말이 먹으면 안 되는 게 뭐가 있는지는 나도 알아.”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슬레이가 끙끙거리는 소리를 내며 내 주위를 왔다갔다 했다.
다들 처음 보는 광경에 당황해서 슬레이의 고삐를 잡아 진정시키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당기면 당길수록 더 날뛰어댔으니.
떠나야 할 시간에 수라장이 된 광경을 보고 있으니 피곤해졌다.
에라, 모르겠다.
“루셀 경. 내 머리카락을 베어주지 않겠어?”
“지금 말씀이십니까?”
“그래. 깨끗하게 부탁해.”
긴 것보다는 자르는 게 낫지.
루셀은 어리둥절하면서도 돌아있는 내 뒤로 검을 뽑았다.
커다란 검이 스릉, 하고 나오는 소리와 함께 내 머리가 툭 하고 가벼워졌다.
“슬레이, 고집 그만 부리고 이리 와.”
-히히힝!
내 머리카락이 건초 대용으로 쓰이는 모습은 난생 처음 본다.
슬레이는 붉은 머리카락 한 다발을 아주 맛있게 먹어 치웠고, 사람들은 그걸 아연하게 구경하고 있었다.
짧은 식사가 끝난 후 슬레이는 타라는 듯 뒷발을 구르고 듬직하게 서 있었다.
마수들은 왜 이렇게 나를 좋아하는 걸까.
작은 해프닝을 넘긴 우리는 북부로 향하는 그림자로 뛰어들었다.
* * *
북부 성의 안뜰에 무사히 도착한 우리는 바로 안으로 들어갔다.
홀로 이어진 문을 밀어젖히니, 아무도 없을 거라고 예상한 것과는 다르게 이쪽을 주목한 눈들이 끔뻑거리고 있었다.
그들의 손에는 저마다 고기나 뼈가 하나씩 쥐어져 있었다.
왜 다들 여기 있는 거지.
“그간 무사들 하셨나?”
말에서 내리자마자 용병 단장이 머쓱하게 기름기 묻은 손을 닦고 일어났다.
“아, 공작님. 이게 말입니다. 원래는 안 이러고 얌전히 방에서 잡니다. 그런데 오늘따라 좀 춥고 허한 게 좀…….”
“아냐, 아냐. 어차피 빈 성인데 맘껏 쓰게. 필요한 건 없고?”
“살펴주신 덕분에 없습니다.”
“그렇군. 아, 이쪽은 내 다른 호위 기사인 루셀 나빌로프 경이네.”
루셀은 고개를 꾸벅 숙였다.
용병단과 루셀이 마주친 적은 거의 없었지 아마.
루셀이 이참에 용병단의 얼굴을 익혀두면 좋을 것 같아서 마침 보이는 돌덩이 위에 걸터앉았다.
루셀이 내 뒤로 서자 다들 조용해졌다.
“음. 그간 소식이 뜸했군. 여기서 지내는데 추위 때문에 고생한다고.”
“어, 그. 불평을 한 건 아니고요.”
“추우면 그럴 수 있지. 다음 보급품에는 방한용품을 넉넉히 넣어 보내겠네.”
“어……. 감사합니다.”
단장이 이상하게 초조해 보이는 건 내 착각인가.
침묵이 더욱 무거워지자 단장은 안절부절못하다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지금 보니 상처는 다 나으셨군요. 하도 심해서 걱정했습니다. 공작가에서 용한 의원이 있나 봅니다.”
“? 아니. 딱히 용한 의원은 없는데.”
“그, 그럼 공작님이 회복력이 뛰어나신가 봅니다. 하하하. 하하하하.”
단장의 웃음소리가 허무하게 사그라들었다.
그리고는 아무도 입을 열지 않고 묵묵히 모닥불만 바라봤다.
왠지 회사에서 회식하는데 갑자기 사장님이 불쑥 끼어든 분위기였다.
나 혹시 불청객인가.
“이전에 정리했던 지역도 한 번 돌아볼 겸 조사할 게 있어서 왔어. 지도는 어떻게 되었나?”
“지도라면 거의 다 제작했을 겁니다.”
북부에서 열일곱 번을 죽은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지도였다.
촌락에서 베낀 지도로는 북부의 지형을 전부 설명할 수 없었다.
아래쪽 지역 지도만 제작이 가능했지만, 그 정도만 해도 어디야.
열일곱 번이나 날 죽게 만든 마수와 괴물들을 생각해보면 열일곱 번의 죽음도 싸게 먹힌 거지.
그들의 습성을 알아낼 때까지 관찰할 수 없던 상황이었으니까 숏컷, 지름길을 찾아낸 건데.
생각보다 결과는 나쁘지 않았던 것 같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 위쪽으로 가보려고 해.”
“위쪽이라면 국경선 쪽으로 말이십니까?”
“그래. 하지만 그쪽은 위험해서 우르르 몰려갈 수가 없어. 그러니 지도 제작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데.”
“그거라면 저희 지도 제작가가 도움을 줄 수 있을 겁니다.”
“응, 좋아.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혹시 끔찍한 거 잘 보나?”
“예?”
단장이 되물었다.
이상한 질문이라는 건 나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만큼 중요한 일이다.
“지도를 제작할 줄 아는 것도 그렇지만, 비위가 강한 사람이면 더 좋겠는데.”
“어느 정도로 강한 사람이 필요하십니까?”
“그러네. 어느 정도로 강해야 하지.”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사람이 눈앞에서 갑자기 퍽 하고 터져도 소리를 안지를 수 있을 정도?”
용병단은 북부에 대해서 아는 게 많이 없었다.
레안드로스가 워낙 길을 잘 닦아줬기도 했지만, 내가 먼저 몸을 던져 알아낸 괴물들의 공략법을 사전에 공유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북부에 대한 경계심도 덜할 수밖에 없었다.
단장은 상당히 떨떠름한 태도로 대답했다.
“혹시나싶어 미리 여쭙는데, 아까 말씀하신 조사라는 게 정확히 어떤 것이기에 담대한 사람이 필요하다고 하십니까? 아무리 미지의 영역이라 해도 그렇게 끔찍한 일이 일어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만.”
“내가 설명을 덜 했군.”
밤도 낮도 아닌 흐린 하늘을 비추는 창문 저 너머를 가리켰다.
“북부에 살고있는 거인을 추적하려고 한다.”
내가 생각해낸 방법이었다.
거인을 쫓아서 추적하고 조사한다.
가능하다면 그것을 죽이고 싶지만, 불가능할 테니 적어도 한 자리에 봉인해놓을 수 있도록.
그렇게 되면 북부도 나름 안전해질 테고, 또 미스릴 광산 개발 건도 무리 없이 진행할 수 있겠지.
다들 말은 하지 않지만 미친 계획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단장이 간신히 답했다.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북부에 거인이 있다니, 들어본 적도 없습니다. 설령 진짜로 존재한다 해도 정말로 그 거인을 만날 수 있겠습니까?”
“내가 허투루 이런 말을 하는 줄 아나.”
나는 품 안에서 종이 한 묶음을 꺼냈다.
그 종이 묶음의 이름은,
미완성 북부 민담 전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