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pporting characters in horror novels want to live as human beings RAW novel - Chapter 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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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가 좋은 루셀마저 막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니 이건 요나스에게만 들리는 목소리일 것이다.
‘눈보라를 헤매는 거인’의 탄생으로 이끄는 우화가 요나스를 현혹시키고 있었다.
불안해하는 요나스를 진정시키고 루셀과 나는 잠시 비상 회의를 열었다.
“정말 따라가실 겁니까?
“가서 막스를 구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어.”
“그렇게 되리라는 보장도 없지 않나요?”
“하고 실패한 것과, 해보지도 않고 실패할 거라고 단정 짓는 건 달라.”
“위험에 빠질 수도 있는데요!”
“이제 와 새삼스럽게? 나는 태어날 때부터 매일 위험 속에서 살았어.”
루셀을 보다가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잠시 심호흡을 한 후 루셀에게 조목조목 짚어줬다.
“생각해봐, 내가 북부 대신전을 건설하기 위해서 아이의 아버지조차 찾으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으면 대신전에 의미가 있을까? 신전은 물론 중요하지. 하지만 가끔 신은…….”
“예, 신은 사랑과 자비를 이웃에게 베풀라 하시죠. 공작님이 옳으십니다. 제가 물체에 마음이 팔려 진정한 이웃사랑을 실천하지 못했군요.”
루셀이 제 가슴 앞으로 손을 모아 기도를 올렸다.
이놈이 아직도 편집증에 걸려 있어서 다행이다.
그런데 편집증은 언제 낫는 거지?
“그래, 그래. 이웃사랑 나라사랑. 이제 불만 없는 거지? 혹시 모르니 가져온 무기도 챙기자.”
“예!”
루셀이 든든하게 말했다.
루셀을 정리하고 나서 먼 곳을 바라보는 요나스에게 가서 말을 걸었다.
“요나스, 어떡할래. 가고 싶어?”
요나스는 잠시 고개를 돌리고 있다가 내 손을 잡아당겨 글씨를 적어주었다.
-갈 수 있다면 가고 싶어요. 하지만 위험할까요? 아빠가 정말 저기 계신 걸까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 이 산은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은 게 많아.”
-이 목소리가 아빠가 아니라면 어떡하죠?
“그럴 때는 빠르게 도망치면 되지. 그러기 위해 두 다리가 있는 게 아닐까.”
-같이 가주실 건가요?
“그럼.”
한국에서 고작 초등학교 고학년밖에 되지 않았을 아이가 묻는 질문은 하나같이 조심스러웠다.
내가 답하자마자 요나스는 썰매에서 뛰어내려 방향을 잡았다.
우리는 어서 오라는 듯 손을 흔들다가 빠르게 걸어가는 요나스를 쫓아갔다.
이제까지 완만했던 길은 점점 가팔라졌다.
요나스의 걸음은 지치기는커녕 점점 빨라지기만 했고, 자칫하면 오히려 내가 낙오될 수도 있는 판이었다.
저 앞에서 눈 쌓인 오르막길을 거뜬히 걸어 올라가는 요나스는 마치 귀신에 홀린 사람 같았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도록 걸으니 겨우 쉴만한 곳이 나왔다.
산 중턱에 쉼터로 있을 법한 작고 평평한 땅.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는,
“……막스!”
요나스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사람이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었다.
루셀은 그가 쓰러진 모습을 보자마자 달려가 의식이 있는지 확인했다.
눈을 까뒤집어보고, 숨을 확인하더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정신만 잃은 것 같습니다. 다행이에요.”
“다른 건 괜찮은 것 같아?”
“맥박도 정상으로 뜁니다. 추운 날씨에 기절했는데 동사하지 않은 게 어딘가요. 신이 보살폈나 봅니다.”
요나스는 루셀의 확언을 듣자마자 다시 눈물을 펑펑 쏟으며 기절한 막스에게 매달렸다.
제 얼굴이 축축하게 젖어 들어가자 막스의 입에서 희미한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으으…….”
“정신이 듭니까, 막스 형제님? 제가 누군지 알아보시나요?”
“아, 호위 기사님……. 그리고…… 제가 대체 어디 있는 겁니까…….”
“괜찮습니다. 이제 안전하세요. 일어나실 수 있으시겠어요?”
막스는 여기저기에 눈이 묻은 것 외에는 멀쩡해 보였다.
그는 정신이 온전치 못한 듯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제 위에서 울고 있는 요나스를 보고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남자는 우는 게 아니라고 몇 번이나 말했는데. 아직도 우는 게냐? 뚝 해, 뚝.”
하지만 요나스는 울음을 그칠 기세가 없었다.
결국 막스는 루셀에게 부축을 받으며 일어났다.
막스가 요나스를 끌어안자, 요나스의 훌쩍거림이 더 커졌다.
“이 녀석, 그만 울어라. 두 분께서 일부러 제 아들을 데리고 여기까지 와주신 건가요?”
“요나스가 그쪽을 찾아냈다네. 눈에 잔뜩 덮여서 잘 보이지 않았는데 바로 발견해냈지.”
“감사합니다. 제가 그런데 왜 여기에 있는지……. 으윽!”
막스가 일순 짧은 신음을 뱉으며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이 비틀거렸다.
루셀이 막스를 재빠르게 잡았다.
“조심하세요, 형제님. 머리를 부딪히셨을지도 모릅니다. 뭔가 기억나시는 게 있으신가요?”
“기사님이 땔감을 주우러 가신다고 하셔서, 저도 정찰을 돌 겸 나뭇가지를 찾으러 갔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너무 걸린 것 같아서 빨리 오려고 했더니.”
막스의 흐리멍텅한 눈이 깜빡였다.
“요나스가…… 제 아들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 앞에는…… 뭔가, 잘 기억나진 않지만…… 요나스를 구해야겠다고 생각해서 뛰어들었는데…….”
뭔가를 조우했다는 사실 외에는 기억이 분명치 않은 모양이었다.
정신력의 문제일 수도 있고, 정말로 머리를 부딪혀서 그런 걸 수도 있고.
하지만 일단 구했으니 이 산을 벗어나는 게 가장 급했다.
“나중에 천천히 이야기해 보지. 우선 산을 내려가야겠어. 썰매를 타고 산 아래를 빙 돌아 우회해야 할 것 같아.”
“네? 아, 네…….”
갑자기 산을 내려간다는 말에 의아하게 답한 막스는 루셀에 의지해서 천천히 일어났다.
하지만 몇 걸음을 걷기도 전에 막스가 중얼거렸다.
“깨어나 보니 추워서 온통 기력이 없네요.”
“썰매까지만 가면 뭔가 배를 채울 게 있을 거야.”
“머리가 어지러운 것 같은데, 제가 어딘가 다쳤나요?”
“그것도 몰라. 뇌진탕일 수도 있겠지만.”
“그런가요……. 혹시 제가 배고프다고, 방금 말씀드렸나요?”
“그건 방금 말 했-”
내가 막스를 돌아볼 때였다.
그는 비틀거리다가 옆에 있던 요나스를 꽉 안았다.
마치 한동안 못 본 자식을 안아보려는 것 같았지만, 뭔가 이상했다.
질척거리는 소리.
부드득하고 질긴 것이 뜯겨나가는 소리.
경악과 고통에 가득 찬 요나스의 두 눈.
하얀 눈 위에 기어이 몇 방울 떨어지고 마는 붉은 자국.
온통 피범벅이 된 막스의 얼굴.
내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루셀이 막스를 밀쳐내고 요나스를 뺏었다.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아, 아니, 이게 아닌데, 이게.”
막스가 더듬거렸다.
그래도 그의 붉은 양손이 다시 하얘질 리가 없었다.
요나스는 루셀에게 안겨있었지만, 아이의 뜯겨나간 목에서 끔찍한 꼬로록 소리가 들렸다.
막스는 양손을 루셀에게 간청하듯 뻗었다.
“아닙니다, 정말 아니에요! 제가 일부러 그러려던 게 아닙니다. 제 아이를 돌려주세요. 제발, 제발.”
“당신은 누굽니까!”
“저는 막스입니다, 막스라고요! 그 애의 애비입니다. 전부 오해입니다, 제가 그러지 않았어요. 저는 그저, 너무 배가 고파서, 단지 배가 고팠을 뿐인데!”
루셀이 나와 요나스를 지키며 뒤로 물러났다.
막스는 움직이지도 못한 채 그 자리에서 우리를 볼 수밖에 없었다.
그의 얼굴에 흐르는 눈물은 얼음이 되어 떨어졌다.
“제가, 정말 제가 그런 게 아니라…….”
“물러나세요. 다가오면 베겠습니다.”
루셀의 품속에서 요나스가 꿈틀거렸다.
초점이 제대로 잡히지 않는 눈이 우리 사이를 방황하다가 저편으로 옮겨갔다.
막스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에게 무언가 전할 게 있는 듯, 요나스의 입술이 움찔거렸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요나스는 무표정하게 손을 늘어뜨렸다.
목에서 넘칠 듯이 흘러나왔던 피도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그 모든 것을 막스가 보고 있었다.
“아, 아아, 아아아아아악!!”
북풍이 불었다.
이제까지 불던 것과는 다른, 온 산을 송두리째 뒤집어버릴 것 같은 맹렬한 폭풍이었다.
나는 바람에 떠밀려 눈 속을 뒹굴었다.
루셀마저 요나스의 몸을 지탱한 채로 간신히 버티고 있었지만 조금씩 밀려났다.
막스의 처절한 비명이 바람에 스며들며 얼어붙은 눈이 휘몰아쳤다.
“아냐,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아니야!”
“막스, 제발 정신 좀 차려!”
“요나스, 요나스! 내 아들이야, 내가 그런 게 아니야, 아니란 말이다!”
회백색 하늘 너머로 이글거리는 별 한 쌍이 떠올랐다.
그게 무슨 징조인지 익히 알고 있었지만, 도저히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막스의 고함, 한때 바람 사이에 섞여 들리던 고통스러운 비명.
막스의 양발이 천천히 떠오르고 있었다.
“막스! 막스!!”
“안 돼, 아니야, 이럴 리가 없어. 이게 꿈이 아니라면 차라리 죽여줘, 제발 죽여!”
스스로 가슴을 쥐어뜯는 막스의 머리 위에 뜬 별은 이 모든 광경을 굽어보고 있었다.
막스의 비명이 뚝 끊겼다.
그는 마치 제단에 바쳐진 제물처럼 허공을 부유하고 있었다.
얼음과 고드름으로 만들어진 손이 몸 위로 드리워졌다.
순간, 공기의 움직임이 달라졌다.
막스는 공포와 경외, 혼돈으로 가득 찬 얼굴로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 순간 깨달았다.
형체 없는 신성이 악령의 탈을 쓱 지상에 강림하고자 할 때 반드시 육으로 된 분신을 찾으니,
‘눈보라 사이를 헤매는 거인’은 그러한 육신을 가진 자들이 희생되는 이야기였다.
“안 돼!”
성대가 찢어질 듯한 비명이 다시 시작되었다.
커다란 뿔이 머리를 으깨며 새롭게 돋아났다.
그 아래로 눈 결정이 스스로 달라붙어 강건하고 부서지지 않는 뼈대를 이루었다.
염소와 같은 발굽이 발바닥을 뚫고 피를 튀기며 솟아났으며,
끊임없이 고통에 찬 절규를 내지르는 입 안에서는 새로운 머리가 턱을 부수며 고개를 들었다.
눈과, 얼음과, 바람이 신의 탄생을 축복하고 있었다.
비현실적이고 잔혹한 광경에서 도망칠 자는 아무도 없었다.
자신이 잉태한 신을 현현시키는 재료로 쓰인 막스.
그의 치아 하나, 세포 조직 하나마저 새롭게 구성되며 뒤틀리고 변화했다.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그의 눈이었다.
자신의 아들을 바라보고, 사랑한다고 늘 말하던 그 다정한 눈이 루셀이 안고 있는 요나스를 보고 있었다.
인간으로서 마지막 눈물이 한 방울 흘러내리며, 그 자리에서 겨우살이 나뭇가지가 새롭게 돋아났다.
거인이 웅크렸던 몸을 길게 폈다.
그것은 정말로 하늘까지 닿을 듯했다.
화성처럼 이글거리는 불이 뚝뚝 떨어지는 눈.
잔뜩 부풀어 휘달리는 밧줄 같은 긴 털.
푸른 기운이 감도는 하얀 가죽으로 덮인 몸.
한때 인간이었던 ‘눈보라 사이를 헤매는 거인’은 사랑도, 소중했던 이도 전부 잊은 채.
오직 기억나지도 않는 죄책감과 고통만을 업은 짐승이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