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spicious little prince is a world's top ten masters RAW novel - Chapter (109)
◈ 109화. 진무립의 이름
초평천은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그것이 천주의 의지라고 보면 되겠소이까?”
“물론입니다.”
자타공인 무림 최강의 방파인 화령은 비공식적으로 돕겠다고 한다.
반면 현 무림에서 가장 비밀스럽기로 유명한 상천은 공식적으로 돕겠다며 손을 내민다.
하지만 초평천은 선뜻 그의 손을 잡을 수 없었다.
상천은 근본적으로 산적의 무리.
지금까지 상천이 천하에 해악을 끼친 일은 없으나 표국에서 시작된 좋지 않은 소문은 여전히 뜬구름처럼 떠돌고 있었다.
이들과 손을 잡을 경우, 자칫 공위맹의 진심을 곡해하는 이들이 나올까 우려하는 것이다.
수문화 역시 그의 생각을 모르지 않았다.
“저희는 오늘 저녁 떠날 것이니 충분히 생각해보고 답을 주시지요.”
“고맙소.”
수문화들이 예를 갖추고 나가자 초평천은 진무립과 적모개를 바라보며 말했다.
“어찌 생각하는가?”
진무립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이번 일은 맹주님의 선택에 따르겠습니다.”
다른 일도 아니고 상천의 문제만큼은 자신이 개입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거절을 하건, 수락을 하건 그것은 이들이 스스로 선택하게 해야 한다.
초평천의 미간이 좁아졌다.
“마음은 고마우나……. 저들이 우리를 돕고자 하는 저의가 궁금하군.”
적모개가 조심스럽게 답했다.
“비록 상천이 무림에 큰 해악을 끼친 것은 아니나 기본적으로 산적을 일통한 집단입니다. 그간의 행적을 보았을 때, 사천을 도와 세간의 좋지 않은 인식을 바꾸고자 하는 듯합니다.”
그의 추측은 틀리지 않았다.
진무립이 상천을 끌어들인 이유는 공위맹의 피해를 줄이고자 함도 있었으나 이 기회에 무림의 구성원으로 인정받고자 하는 것도 있었기 때문이다.
‘역시 예리하군.’
적모개를 비사각의 각주로 데려온 보람이 있다.
진무립이 속으로 미소를 감출 때, 적모개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당면한 위기는 결코 작은 것이 아닙니다. 약간의 오명을 감수하더라도, 피해를 줄일 수만 있다면 저들과 손을 잡아야 한다고 봅니다.”
사익을 추구하고자 손을 잡는 것이 아니다.
적모개는 공위맹을 믿고 합류한 방파의 피해를 줄이자면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잠시 생각하던 초평천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명은 내가 감수하지. 각주들을 소집하게.”
대전에서 이어진 회의에서 초평천은 조금 전 있었던 일을 숨김없이 말해주었다.
사천맹에선 회의에 참석조차 하지 못했던 그들이었기에 초평천이 대담 내용을 공유한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화령과 개방의 제안을 듣고 내심 기뻐한 그들은 이어서 나온 상천의 제안에 약간의 고민에 빠졌다.
상천과 손을 잡는 것은 여러 가지 부담이 따르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애당초 마도림을 믿고 여기까지 온 이상 초평천의 뜻에 반대하는 이는 없었다.
결국 대전에서 열린 회의는 의견을 통일하며 마무리됐다.
* * *
대전을 나선 진무립은 회의 결과를 알리고자 상천의 부하들이 머무는 숙소에 도착했다.
“맹에서는 우리의 손을 잡기로 했다.”
수문화가 빙그레 웃었다.
“꽉 막힌 사람들은 아니로군요.”
“그게 싫어서 사천맹을 떠난 이들 아니냐? 검산채와 부곡채에서 백 명씩 차출해서 데려오고 화룡채와 주산채에서 오십 명씩 지원을 받아 공백을 채워라.”
화룡채는 섬서성에, 주산채는 호광성에 위치한 상천의 대산채(大山砦)였다.
먼저 일어난 대중경이 예를 갖췄다.
“다녀오겠습니다. 천주님.”
진무립은 그를 따라 일어나는 백채륜을 불렀다.
“부곡채는 이곳에서 가까우니 서두를 필요 없다. 너는 사람을 보낼 때까지 광룡대를 직접 챙겨라.”
“그러지요.”
묘한 미소를 지은 백채륜이 밖으로 나가자 실내에는 진무립과 수문화만이 남았다.
“천주님.”
“그래.”
“단소룡의 여식을 곁에 두시는 이유는…… 혹시 훗날을 위함입니까?”
점차 자리를 잡아가는 상천이었지만 아직도 곳곳에서 시기하고 음해하는 자들이 적지 않았다.
상천이 완벽한 무림의 구성원이 되고자 한다면, 현 무림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화령의 인정을 받는 것만큼 빠른 길은 없다.
의미를 짐작한 진무립이 물었다.
“그걸 원하냐?”
“목적을 이루고자 정략혼 같은 걸 하실 분이 아니니까 묻는 겁니다. 그럴 목적이 아니라면 천주님께 그 여인은 그저 짐 덩어리가 아닙니까?”
다소 냉정한 말처럼 들리겠지만 진무립을 보필하는 수문화의 입장에선 어디로 튈지 모르는 작은 불씨를 이대로 간과할 수 없었다.
진무립이 말했다.
“지금까지 그녀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 서장의 임무도, 어제 혈교의 세작을 색출한 것도 그녀가 없었더라면 결코 쉽게 해내지 못했을 일이다. 도움을 받는 쪽은 나다.”
“혹시 그녀를 마음에 두셨습니까?”
진무립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시끄럽다.”
수문화의 입가에 짓궂은 미소가 번졌다.
“맞구나?”
자리에서 일어난 진무립이 몸을 돌리며 말했다.
“오늘부터 사흘간 굶어라.”
“…….”
수문화는 나가려는 진무립의 등에 다급하게 말을 던졌다.
“언제 돌아오실 겁니까?”
최근 들어 자신이 모든 일을 처리하고 있었지만 상천의 중심은 어디까지나 진무립이다.
더불어 최근 중원에도 묘한 기류가 감돌기 시작한 만큼 서둘러 진무립이 돌아왔으면 했다.
진무립은 고개를 슬쩍 돌렸다.
“이번 전쟁이 계획대로 끝난다면 마도림은 과거의 위상을 되찾게 될 거다. 내가 돌아가는 것은 그 후의 일이 되겠지. 간다.”
말을 마친 진무립이 밖으로 나갔다.
“과거의 위상이라.”
애당초 그것을 위해 이곳 사천까지 온 진무립이다.
모친이 죽는 순간까지 마음에 얹고 있던 무거운 돌을 치워내기 위해.
진무립은 마도림에게 사천제일세의 영광을 되찾아준 뒤 돌아갈 생각이었다.
잠시 생각하던 수문화는 싱긋 웃으며 일어났다.
‘당분간 혼자서라도 준비하는 수밖에 없군.’
처소로 돌아온 진무립은 자신을 찾아온 의외의 인물과 맞닥뜨렸다.
“나를 기다렸나?”
단자룡은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떠나기 전에, 잠시 이야기 좀 나눌까 해서 말이네.”
“신룡의 딸에 이어 아들까지. 이것 참 묘한 인연이로군.”
고개를 끄덕인 진무립은 처소 문을 열었다.
“차는 없지만 물 한잔 정도는 대접할 수 있지. 들어와라.”
“그거면 충분하다.”
폭이 일 장 남짓한 처소는 사람 한 명 누울 만한 작은 침상과 탁자가 전부였다.
그와 마주 앉은 진무립은 눈앞에 커다란 호랑이 한 마리가 앉아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붙어보지 않아도, 느낌만으로 알 수 있다.
단자룡은 분명 자신이 싸웠던, 무면산왕 이전의 십대고수였던 황하용왕보다 윗줄의 고수다.
‘세상이 잘못 보고 있었군.’
빈 잔에 물을 채운 진무립이 물었다.
“무슨 일로 찾아왔나?”
“자네와 나는 한 번쯤 만날 때가 됐다 싶어서 말일세. 묘한 인연이지 않은가?”
진무립은 웃었다.
“그건 우리 둘이 아니라 나와 자네 부친의 이야기겠지.”
물을 한 모금 마신 단자룡도 마주 웃었다.
“역시 알고 있었군. 동생은 모르는 눈치던데.”
천하대전이 벌어지기 직전의 겨울.
신룡 단소룡이 아직 천하제일에 오르기 전의 일이다.
오대산을 지나다 절벽에서 떨어진 단소룡의 목숨을 만삭의 초이린이 구했고, 단소룡은 그 보답으로 천음지체로 태어난 아이에게 천양신단을 내주었다.
진무립(進武立).
굳세게 우뚝 서라는 의미의 이름은 다름 아닌 신룡 단소룡이 지어준 것이었다.
단려화조차 모르는 사실을 단자룡이 알고 있는 건, 당시 부친을 따랐던 신의에게 우연히 옛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진무립이 말했다.
“묻지 않는데 굳이 말해줄 필요도 없잖아.”
“아버지께서 오대산을 떠나기 전에 자네의 양친에게 말씀하셨다더군. 언젠가 화령도로 찾아오라고 말이야. 어째서 한 번도 오지 않았나?”
“화령도라…….”
단소룡이 천양신단을 내준 것은 구명지은의 보답.
그것으로 서로에게 진 빚은 정리되었다.
비록 저항하지 않는 이들을 공격하지는 않았다곤 하나 화령 역시 은곡을 공격한 이들 중 하나다.
원망하는 것은 아니다.
당시 화령의 입장에선 어쩔 수 없는 판단이었고 그것 또한 무림이니까.
그렇기에 은곡의 수장으로, 수천의 목숨을 책임진 진무립의 입장에서 화령도는 쉽게 찾아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진무립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번졌다.
“언젠가 한번 찾아가도록 하지.”
“부친께서도 반가워하실 걸세.”
“그 이야기를 하러 온 건가?”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닐세.”
순간 단자룡의 부드럽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혈교의 침공은 반드시 막아야 하네.”
“말하지 않아도 그럴 생각이지만 왠지 다른 의미가 있는 것 같군.”
“무림을 거대한 호수에 비유한다면, 사천은 호수의 한쪽을 막은 둑이라고 볼 수 있겠지. 사천이라는 둑이 무너지면 다른 둑도 연쇄적으로 무너질 수 있네.”
화령의 수뇌들이 판단한 당금 무림은 빙판 위에 세워진 구중궁궐이었다.
진무립은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화령에선 사천이 무너진다면 천산이 움직일 거라고 보는 건가?”
단자룡은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웃었다.
한마디 말에서 대번에 자신의 생각을 읽었기 때문이다.
“혈교를 통해 무림의 수준을 가늠하기에 적절하지 않은가?”
“가능성 있는 추측이로군.”
“그 가능성에 더해서, 내부에도 적이 있다고 생각해보게.”
화령의 소영주 입에서 나온 말이라면 단순한 추측일지라도 간과할 수는 없다.
만일 단자룡의 말대로 진행된다면 천하는 다시금 전화에 휩싸일 것이다.
진무립의 미간이 좁아졌다.
“증거는?”
“지금부터 찾아볼 생각이네.”
단자룡은 흡족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동생을 잘 부탁하지.”
두 사람의 대화가 끝날 무렵, 단려화는 떠날 채비를 마친 양삼 일행을 조용히 찾았다.
“양숙부.”
갑작스러운 그녀의 방문에 양삼의 얼굴에 밝아졌다.
“이 녀석. 언제 오나 했는데 떠날 때가 되어서야 찾아오는 것이냐?”
단려화는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보는 눈이 많아서 쉽게 올 수가 없었어요. 소정이는요?”
“알아보는 눈이 있을지 모른다며 이주에 남았다. 이걸 네게 전해달라더구나.”
양삼이 내민 것은 붉은 비단으로 감싼 서신이었다.
서신을 손에 쥐며 연소정을 떠올리자 왠지 모를 그리운 감정이 가슴에 스며들었다.
“소정이에게 안부 전해주세요. 저는 잘 지내고 있다고 말이에요.”
“그러마.”
그때 양춘이 투덜거리듯 말했다.
“야. 나는 보이지도 않냐?”
“어머. 춘이도 왔니?”
그녀가 짐짓 놀란 척 쳐다보자 양춘은 슬며시 고개 돌리며 중얼거렸다.
“어머래. 어머. 가식 봐라.”
“들려.”
“그냥 못 들은 거로 해.”
그때 밖에서 단자룡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양숙부. 그만 가시지요.”
양삼이 빙그레 웃으며 그녀의 어깨를 두드렸다.
“이만 가봐야겠다. 절대 위험한 일에 나서지 말고, 건강히 잘 지내다 돌아오너라.”
단려화는 작게 끄덕이며 말했다.
“여기서 배웅할게요. 숙부께서도 조심해서 돌아가세요.”
“그래. 이만 가보마.”
짧은 만남의 아쉬움을 뒤로한 양삼은 아들과 함께 방문을 나섰다.
* * *
공위맹을 나선 단자룡 일행은 드넓은 사천평야를 목전에 두고 잠시 멈춰섰다.
연소정을 기다리기 위함이다.
고개 돌린 단자룡이 어느새 작은 점처럼 보이는 공위맹을 눈에 담을 때, 양삼이 다가와 물었다.
“어떠냐? 진무립이라는 아이는 믿을 만하더냐?”
“눈으로 보지 않으셨습니까?”
“무공을 말하는 게 아니고 말이야. 화아를 그대로 두고 와도 되겠냐는 말이지.”
그의 아들 양춘이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아버지. 걔는 지옥에 떨어뜨려 놔도 염라대왕 멱살 잡고 올라올 애예요. 세상이 그 녀석의 얼굴에 속고 있는 거라니까? 사천에서 괜히 광녀라고 하겠어요?”
“이놈은 불알친구가 타지에서 고생하고 있는데 안쓰럽지도 않으냐?”
“걔는 불알이 없는데요.”
“불알이 있어야만 불알친구냐?”
양춘의 검지가 콧구멍으로 쑥 들어간다.
“불알도 없는데 불알친굽니까?”
한마디도 지지 않는다.
양삼의 얼굴이 형편없이 일그러졌다.
‘이놈은 대체 누굴 닮아 이 모양이야?’
모두가 아는 사실을 본인만 모르고 있었다.
멀리서 죽립을 눌러쓴 여인이 빠른 속도로 다가온다.
그녀를 발견한 단자룡이 말했다.
“가시죠. 양숙부.”
“강남으로 가는 게지?”
“그 전에 좀 돌아볼 곳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