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spicious little prince is a world's top ten masters RAW novel - Chapter (208)
◈ 208화. 집결
무운전을 나선 진무립이 중원무림맹의 목책을 넘을 때였다.
목책 너머의 그림자에 스며드는 순간, 고작 일 장 떨어진 곳으로 누군가가 내려서고 있었다.
‘음혼귀영공?’
동시에 음혼귀영공을 펼친 상태라 나란히 움직이면서도 서로의 존재를 감지하지 못했던 것이다.
명가홍을 만나고 온 설지량은 아직 진무립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무면산왕이 소문대로 범상치 않은 머리를 가졌다면 분명 사흘 안에 승부를 걸어오겠지. 여기에서 모두 정리해야겠어.’
설지량이 숲속의 어둠 속으로 몸을 날리는 순간 진무립은 빠르게 그의 뒤를 추격했다.
‘최소한 진환 이상의 음혼귀영공이다.’
바로 뒤에서 쫓고 있음에도 상대의 기척이 희미하게 느껴진다.
일 장 밖으로 멀어지면 상대를 놓칠 것만 같다.
진무립이 조금 더 접근하는 순간이었다.
‘미행!’
설지량의 어깨가 미세하게 떨린다.
음혼귀영공을 펼친 상태에서, 자신에게 들키지 않고 이 간격까지 접근할 수 있는 이는 그리 많지 않았다.
순간 등골이 서늘해지며 온몸에 전율이 인다.
‘무면산왕인가? 아니면 상천팔기?’
설지량은 머리를 차갑게 식히며 나무 위로 훌쩍 뛰어올랐다.
‘고작 팔기가 이런 수준이라면 이 싸움은 하나 마나지. 분명 무면산왕일 거다.’
싸우면 필패다.
품에 들어갔던 설지량의 손이 어둠 속으로 시꺼먼 가루를 흩뿌리기 시작했다.
순간 멈칫한 진무립이 소매로 코와 입을 가렸다.
‘독!’
그사이 설지량의 신형이 완전히 종적을 감춰버렸다.
잠시 후, 바람에 실린 나직한 목소리가 진무립의 귓속을 파고들었다.
[조만간 정식으로 인사드리지요. 무면산왕.]멈춰 선 진무립이 피식 웃으며 읊조렸다.
“그때가 마지막 만남이 될 거다.”
* * *
휴식을 마친 집행부가 다시 무운전으로 향했다.
선두에 선 금도문주 염창도가 미간을 좁힌다.
“이대로는 방법이 없소.”
대화라도 오고 가야 진척이 있을 텐데 입조차 열지 않고 있으니 속이 터질 지경이다.
양척방주 목충이 작게 끄덕이며 속삭였다.
“차라리 맹주께 사형을 진행하라 말하는 것은 어떻겠소? 생각해보면 전쟁에서 전부 죽일 자들 아니오?”
“음.”
염창도가 턱을 매만지며 걸음을 늦췄다.
적모개야 사형시킨다 한들 명분만 확실하다면 개방에서 크게 문제 삼지 않을 것이다.
그가 정말 중요한 인물이었다면 오랜 세월 사천의 한직에 처박아두지 않았을 테니까.
개방에서 그의 입지는 그 정도일 뿐이다.
그러나 제갈문은 다르다.
그의 사형이 집행된다면 최악의 경우 제갈세가가 전쟁에서 빠질 수도 있었다.
제갈세가가 빠진다면 다른 중원삼가 또한 연쇄적으로 이탈할지 모른다.
그것이 문제였다.
‘마음 같아선 전부 뒤집어버리고 싶다만…….’
상천과의 전쟁이 벌어지면 반드시 그들을 선두에 내세워야 한다는 게 명가홍의 생각이었다.
‘전쟁에서 중원삼가와 오대표국의 힘을 철저하게 빼놔야 우리가 반등할 수 있다.’
오랜 전통을 가진 중원삼가다.
현실적으로 자신들이 삼가를 뛰어넘는 것은 불가능한 일, 그렇다면 그들을 밑으로 끌어내려야 한다.
염창도는 고개를 저었다.
“한 번만 더 시도해보고 안 될 경우…….”
그때 멀리서 익숙한 얼굴이 달려와 두 사람에게 예를 갖췄다.
“명문주께서 보내셨는가?”
“예.”
이어진 사내의 말은 염창도의 귓속을 선명하게 파고들었다.
[오늘 안에 입을 열지 않을 경우 그대로 사형을 건의하라고 하십니다. 구실은 문주께서 만들기로 하셨습니다.]염창도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게 정말인가?] [예. 계획이 변경되었습니다. 자정이 지난 뒤 처소에서 뵙길 바라십니다.] [알겠네.]사내가 사라지자 염창도의 눈빛이 짙어졌다.
‘설마 이대로 중원삼가를 버리는가?’
머릿속이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을 때 반대편에서 중천대주 선우빈과 부대주 황보춘이 나타났다.
속내를 감춘 염창도가 웃는 낯으로 손을 들었다.
“시간에 철저하시군.”
“어찌 늦을 수 있겠습니까? 가시지요.”
대수롭지 않게 대꾸한 선우빈은 그대로 무운전의 정문을 넘었다.
집행부를 향해 한 차례 눈을 흘긴 황보춘이 선우빈을 뒤따랐다.
나란히 무운전의 지하로 들어간 그들이 마침내 밀실에 도착했다.
앞서 들어간 염창도의 눈에 벽에 기대앉은 두 사람이 보인다.
‘흥. 이젠 입을 열지 않아도 상관없다.’
계획이 달라졌다면 조급함을 가질 이유가 없다.
느긋하게 의자를 끌어당긴 염창도가 다리를 꼬고 앉았다.
그는 입가에 비릿한 미소를 머금은 채 두 사람을 눈 아래로 깔아보며 물었다.
“어차피 무슨 말을 해도 입을 열지 않으실 테지?”
적모개가 짧게 답했다.
“모든 것을 말하겠소.”
“그럼 그렇지.”
무심코 끄덕이던 염창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응?”
* * *
밤하늘의 어둠이 서서히 걷혀가며 새벽이 밝아온다.
개봉으로 이어지는 지평선의 끝자락.
새벽과 함께 도래한 다섯 명의 노인이 서편의 앙상한 숲을 눈에 담았다.
“지량 그 아이가 도와달라고 읍소하는 걸 보면 쉽지 않은 상대인 모양일세.”
윤건에 백의를 걸친 노인이 주름진 눈가를 매만졌다.
이어서 새까만 흑의에 눈구멍만 드러낸 인물이 그의 옆으로 다가갔다.
“속내를 알 수 없는 아이다. 조심해야 할 거다.”
설지량의 두뇌를 인정하지 않는 이는 없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의 교활함을 모르는 이도 없었다.
도존 박위문이 흰 수염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어찌 모르겠는가? 하지만 무면산왕을 감당하려면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것도 사실일세.”
이어서 등에 기다란 창을 멘 냉막한 인상의 여인이 입을 열었다.
“태산표국과 회남표국이 무너진 이상 오대표국에 거사를 도모할 힘은 없어요. 쓸모가 없다면, 이번 일의 추이를 지켜본 뒤 소거하는 것도 고려해야겠어요.”
봉을 쥔 장대한 체구의 노인, 봉존 영군천이 나직이 침음했다.
“음. 운화결 그 아이는 쉽지 않을 텐데.”
오대표국의 국주들은 대부분 실력이 비슷했으나 운화결만큼은 다르다.
솔직히 말해서 일대일의 승부로는 자신이 없다.
호리호리한 체구를 가진 궁존 안사독이 답했다.
“그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네.”
“임교영이라는 아이 말인가?”
안사독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수단과 방법을 가린다면 우린 천하대전의 실패를 반복하게 될 거다.”
살존 표설중이 차갑게 말했다.
“그건 안 될 말이지. 나서야 한다면 여인은 내가 맡지.”
박위문은 동료들을 번갈아 쳐다봤다.
“아직 소거 여부를 결정하기엔 일러. 그것은 상황을 지켜본 뒤 다시 이야기하세.”
운화결은 쉽게 버리기엔 아까운 패다.
이용가치가 완전히 사라지기 전까지는 어떻게든 써먹어야 한다.
표설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야 물론이지. 거의 다 온 듯하니 일단 가세.”
지면을 박찬 다섯 사람의 신형이 빗살처럼 늘어졌다.
* * *
같은 시각, 개봉의 서문이 보이는 나직한 구릉 위에 두 명의 사내가 나타났다.
“다시 말하지만 내가 조금 더 빨랐다.”
거구의 연길장이 눈을 부라리며 말했으나 마일관은 지지 않고 대꾸했다.
“무슨 소리. 고지를 먼저 밟은 건 나다.”
연길상이 일 장이 채 되지 않는 구릉 밑을 바라보며 말했다.
“양심도 없군. 이걸 고지라고 할 수 있는가?”
“튀어나왔으니 고지지.”
한숨을 삼킨 연길상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싸워봐야 나만 손해지.’
그때 저 멀리 남쪽에서 네 명의 동료들이 나타났다.
연길상이 의외라는 듯 그들을 눈에 담는다.
“시기 한번 절묘하군. 거의 같은 시각에 도착할 줄이야.”
“여기서 시간을 때울 필요는 없겠어.”
한달음에 달려온 네 사람이 반가운 얼굴로 인사를 건넨다.
가볍게 안부를 확인한 뒤 죽산채주 왕유가 물었다.
“오래 기다렸는가?”
연길상이 답했다.
“아닙니다. 저희도 방금 도착했습니다.”
“잠시 이곳에서 쉬고 계시게. 내가 안에 들어가서 주군의 행방을 찾아보고 오겠네.”
우르르 몰려가면 눈에 띌 뿐이다.
여기선 음혼귀영공을 익힌 자신이 홀로 움직이는 게 편했다.
“부탁드립니다.”
왕유가 미소를 남기고 떠나자 마일관이 물었다.
“시평은 산동의 일로 바쁠 테니 못 올 것이고, 백가는?”
대별채주 송조광이 답했다.
“회남표국의 일을 처리하러 갔네. 서둘러도 하루 이틀은 지나야 도착할 걸세.”
“아, 그랬지.”
그때 지평선 끝에서 뭔가를 발견한 연길상의 눈이 가늘어졌다.
“음.”
나직한 침음성에 동료들이 그의 시선을 좇아 고개 돌렸다.
그들의 눈이 닿은 곳에는 맹렬한 속도로 거침없이 질주하는 다섯 줄기 섬광이 있었다.
대중경이 차가워진 눈동자로 나직이 말했다.
“보통이 아닌 자들이오.”
고수 아닌 자가 저런 신법을 전개할 수는 없다.
신법의 속도만 놓고 보면 자신들과 엇비슷한 수준이다.
연길상이 대중경의 어깨를 짓눌렀다.
“몸을 숨…….”
그때였다.
숲을 향해 달리던 자들이 발을 멈추며 이쪽을 돌아보았다.
연길상은 앉다 말고 일어나 실소를 흘렸다.
“이미 늦은 거 같군.”
“누가 우릴 지켜보는군.”
최대한 은밀하게 움직이려 했으나 서로가 서로를 발견한 이상 피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박위문을 따라 고개 돌린 팔존의 눈동자에 구릉 위에 선 팔기가 떠오른다.
서로 간의 거리는 백여 장.
뭔가를 느끼기엔 다소 먼 거리다.
한 걸음 내디딘 창존 구유비가 지그시 눈 감은 채 기감을 퍼트렸다.
“강한 자들이로군요.”
아슬아슬하게 걸리는 감각의 끝에서 상대의 존재감이 확실하게 느껴진다.
거구의 영군천이 봉을 바닥에 찍으며 말했다.
“화령인가?”
“그럴 리가 없잖아요. 화령의 고수는 대부분 파악하고 있어요.”
표설중이 검은 복면을 끌어 올리며 말했다.
“본 적이 있는 얼굴들이로군. 저들은 상천의 거산채주다.”
말이 끝나는 순간 안사독의 손에 철궁이 잡힌다.
“기왕 이렇게 된 거, 한번 시험해볼까.”
“관둬요. 여기서 싸울 수는 없어요.”
구유비의 만류는 한발 늦었다.
팽!
시위를 떠난 화살이 맹렬한 속도로 회전하며 다섯 사내를 향해 짓쳐 든다.
“광일천시(光一天矢).”
일점으로 날아드는 화살은 분명 백화천궁(百華天弓) 광일천시의 초식.
순식간에 앞으로 나선 송조광의 손에도 어느새 시꺼먼 철궁이 쥐여져 있었다.
지이이익.
노도와 같은 내력이 화살과 활에 쏟아지며 잔뜩 휘어진 철궁이 신음을 토해낸다.
“실력 좀 봅시다.”
같은 무공이라면 질 수 없다.
패앵!
순식간에 손을 떠난 화살이 한 줄기 섬광을 흘리며 거침없이 질주한다.
맹렬하게 서로를 향해 돌진하던 화살이 허공에서 충돌하는 순간.
콰아앙!
솟구치는 흙먼지와 함께 쩌렁쩌렁한 뇌성벽력이 들판에 퍼져 나간다.
안사독의 눈동자에 이채가 번진다.
‘광일천시?’
섬광을 흘리며 일점으로 쏘아지는 지금의 초식은 분명 자신과 같은 무공이었다.
그것도 자신과 엇비슷한 수준이다.
그때 박위문이 안사독의 팔을 낚아챘다.
“이게 무슨 짓인가? 아직 우리의 무공을 알아보는 자가 나와선 곤란하다는 걸 모르는가?”
피어오른 흙먼지를 응시하던 안사독은 이내 활을 어깨에 걸쳤다.
“미안하네. 가지.”
잠시 멈췄던 그들이 순식간에 숲속으로 사라졌다.
“음.”
활의 떨림을 멈춘 송조광은 흙먼지가 가라앉은 충돌의 현장을 바라보았다.
‘살짝 밀렸군.’
다른 이들은 모르겠으나 그 자신은 알 수 있었다.
조각난 철시 파편의 형태를 보아 상대는 분명 자신과 대등, 혹은 그 이상의 고수였다.
그들이 사라진 자리를 바라보는 송조광이 결의를 다졌다.
‘다음에는 다를 것이오.’
이번엔 조금 늦게 쏜 탓에 밀렸으나 다음에는 분명 다른 결과를 만들어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