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spicious little prince is a world's top ten masters RAW novel - Chapter (207)
◈ 207화. 폭풍전야
화명이 깜짝 놀라 물었다.
“태산표국과 회남표국이 무너졌다는 말인가!”
“개봉 곳곳에 표국의 감시자들이 도사리고 있지. 이유가 뭐일 거 같아?”
“설마 그 소문을 막기 위해서?”
육군명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머릿속이 더욱 복잡해진다.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
그렇지 않아도 개봉에 은밀한 감시의 눈이 깔려있다는 것은 진대천을 통해 들은 바 있었다.
화명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자네는 역시 상천의 무인인가?”
대화의 흐름에서 정체를 짐작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육군명이 말했다.
“그래. 하지만 종령문을 멸문시킨 것은 우리가 아니야.”
“음모가 있다는 말인가?”
“지금까지 상천의 행보를 보면 뭔가 이상하지 않나?”
상천이 무림 방파를 공격한 적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정해진 규율에 따라 행동했으며 지난 삼 년간 단 한 번도 선제공격을 한 적이 없다.
종령문이 멸문했다면 그에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 할 텐데 이번에는 그런 것이 없었다.
유대하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궁금한 게 많겠지만 우리에겐 길게 이야기할 시간이 없습니다. 결정이 어렵다면 돌아가 다른 방도를 찾겠습니다.”
“잠시 기다려주십시오.”
화명은 일어나는 그를 붙잡았다.
상천은 표국과 대척점에 있는 집단.
‘상천이 표국을 무너뜨린다면 우리에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결과다. 그러나 금성표국주는…….’
몇 해 전, 개봉을 찾았던 숙부 화윤은 잠시 운화결과 마주친 적이 있었다.
그때 그는 화무신검 운화결이 자신조차 끝을 볼 수 없는 무인이라며 높게 평가했었다.
그때 그는 화무신검 운화결이 자신조차 끝을 볼 수 없는 무인이라며 높게 평가했었다.
‘숙부님은 중원맹주와 함께 천하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고수다. 무면산왕이 과연 운화결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
명성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은 안다.
당장 운화결만 해도 아직 무림 칠군에 머물고 있지 않은가?
행여 무면산왕이 패하고 운화결이 중원의 패자가 된다면, 상천에 협조한 홍월루뿐만아니라 천하상단까지 위태로워진다.
‘오대표국이 호시탐탐 우리 상단의 이권을 노린다는 것은 비밀도 아니야. 걸어야 할 때가 왔는가.’
지금까지 화령을 제외한 어떤 방파와도 손을 잡지 않았던 천하상단이다.
이공자인 자신에게 상단의 명운이 걸린 결정을 내릴 권한은 없다.
그러나 화명 역시 상인의 자식.
격변하는 무림의 중심에서, 천하상단도 선택을 해야 할 때가 왔음을 직감했다.
‘걸어보자.’
머지않아 들통날 거짓말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최악의 경우 자신의 일탈로 치부하고 천하상단과의 관계를 부인하면 화령이 도와줄 때까지 시간은 벌 수 있을 것이다.
결단을 내린 화명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방을 내어드리겠습니다.”
유대하를 쳐다본 육군명이 씩 웃으며 다시 앉았다.
“방값은?”
“돈 대신 다른 것으로 받아도 되겠나?”
“상인은 상인이군. 원하는 게 뭐야?”
“상천이 오대표국을 물리치고 중원의 패권을 거머쥐었을 때, 지금까지 우리 상단이 지켜온 이권을 그대로 보장해주길 바라네.”
육군명이 고개를 흔들자 순간 화명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어렵다는 말인가?”
“그런 게 아니고.”
유대하가 육군명의 말을 이어받았다.
“상천의 이상은 천하와의 상생. 우린 그저 세상의 일부가 되길 바랄 뿐, 패권은 노리지 않습니다.”
생각지 못한 말에 화명은 의외라는 듯 말했다.
“지금도 무림의 일부로 자리 잡지 않았습니까?”
육군명이 히죽 웃는다.
“자세한 건 나중에 알게 될 거야. 그럼 우선 방을 좀 보러 갈까?”
* * *
두 사람이 화명과 협상을 진행하고 있을 때, 은무대원들과 성벽을 넘은 진무립은 악계화를 만나고 있었다.
멀리 개봉이 보이는 나직한 구릉.
앙상한 나무와 수풀이 우거진 가운데 진무립이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이런 곳에 숨어있었나?”
조금만 수색하면 발각되기 딱 좋은 지형이다.
악계화도 그 사실을 아는지 찌푸린 얼굴로 말했다.
“인근 촌락에도 놈들의 눈이 있다. 성에 들어가려 했더니 지붕마루에서 지켜보고 있더군. 놈들 중엔 우리와 면식 있는 자들이 있어 섣불리 움직일 수 없었다.”
진무립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지 않은 판단이었다.”
태산표국의 생존자는 전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만일 여기서 악계화들이 발각된다면 다음 계획에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자영이 물었다.
“이제부터 우리가 할 일이 무엇이오?”
진무립은 언 땅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느긋하게 기다리면 된다. 곧 개봉의 감시는 풀릴 테니까.”
* * *
저물어가던 해가 종적을 감추며 개봉의 하늘에 밤이 찾아왔다.
식사를 마친 운화결과 설지량이 막사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표두 옥흥이 들어와 예를 갖추며 말했다.
“복귀한 인원이 맞지 않습니다.”
운화결이 미간을 좁혔다.
“그게 무슨 말이지?”
“스물둘이 모자랍니다. 다시 한번 확인하고 오겠습니다.”
옥흥이 나가자 설지량이 말했다.
“놈들이 움직이기 시작했군요.”
“움직임에 변화가 있다는 건, 분명 무면산왕이 도착했을 가능성이 크다.”
본진이 습격을 당했음에도 개봉의 봉쇄를 풀지 않은 것은 변화를 감지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설지량도 그에 동의했다.
“아무래도 그런 모양입니다.”
운화결의 눈빛이 차갑게 변했다.
“위치를 파악해라. 내가 잡을 것이다.”
“그의 상대는 주군이 아닙니다.”
“네가 잡겠다는 말이냐?”
고개 저은 설지량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떠올랐다.
“팔존이 있지 않습니까?”
항시 근방에서 오대표국을 지켜보는 팔존이라면 하루 안에 도착할 것이다.
순간 운화결의 눈빛이 반짝거린다.
“그렇군. 팔존이 있었어.”
복령천의 힘은 너무도 강대하다.
무림 말살의 꿈을 이루기 위해선 기회가 생길 때마다 그들의 힘을 빼 둘 필요가 있다.
묘한 미소를 보인 설지량이 이어서 말했다.
“한 시진도 채 되지 않은 시간에 국주와 대표두들을 죽이고 사라진 자들입니다. 우선 감시를 풀겠습니다.”
이대로 감시를 유지한다면 피해만 속출할 뿐이다.
감시를 풀면 소문은 걷잡을 수 없이 퍼지겠지만 이런 상황에 대비해 비각과 개방의 정보에 손을 써두었다.
이제부터는 전투를 위한 계획에 돌입해야 한다.
운화결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건 내가 지시하겠다. 너는 명가홍을 만나 다음 계획을 전해라.”
“그러지요.”
자리에서 일어난 설지량의 눈이 기대에 물들었다.
“작은 산 하나를 넘을 때가 왔습니다.”
운화결은 고개를 저었다.
“방심할 상대가 아니다.”
“그야 저도 알지요.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싱긋 웃은 설지량이 막사를 빠져나갔다.
* * *
깊어지는 밤과 함께 개봉의 감시가 완전히 풀렸다.
어둠에 스며든 악계화들은 은밀히 홍월루의 별실에 무사히 도착했다.
화명과 만난 진무립은 정중히 예를 갖췄다.
“협조에 감사하오.”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예법에 화명도 포권으로 화답했다.
“이렇게라도 도울 수 있어 다행입니다.”
“그리 오래 머물지는 않을 것이오. 그동안 저들을 잘 부탁드리겠소.”
“저분들이 편히 쉴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소.”
“예?”
빙그레 웃은 진무립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오. 이만 가봐야겠소. 모든 일이 끝나면 다시 찾아오겠소.”
홍월루를 나선 진무립은 곧장 개봉의 북문을 넘었다.
창문 하나 없는 밀실.
일렁이는 촛불이 벽에 기댄 두 사람을 밝게 비추고 있었다.
제갈문과 적모개의 함구에 지친 집행부 무인들이 잠시 자리를 비운 시간이었다.
적모개의 동공이 텅 빈 실내를 빠르게 훑었다.
‘입을 다무는 것도 슬슬 한계인데.’
마음 같아선 입을 열어 제갈문과 논의를 하고 싶었다.
그러나 분명 어딘가에서 자신들을 지켜보는 눈과 귀가 있을 것이다.
제갈문도 그와 같은 생각을 하기에 입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
‘소공자의 연락은 대체 언제 오는 거야?’
적모개의 눈앞에 그토록 그리던 얼굴이 아른거릴 때였다.
[못 보던 사이 살이 좀 올랐는데?]귓속을 파고드는 목소리에 적모개는 그만 헛웃음을 흘렸다.
‘헛것이 들리는군.’
그는 지금의 환청을 밀폐된 공간에서 너무 오래 머문 탓으로 여겼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 아니었다.
[천장에 하나, 복도에서 둘이 지켜보고 있다. 손가락만 움직여 대답하도록.]움찔한 적모개는 반사적으로 눈알을 움직였다.
‘직접 왔다고?’
그와 연락만 취할 수 있어도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직접 찾아와 말을 걸고 있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내 마음이 놓인 적모개는 미소를 감추며 손가락을 움직였다.
[긍정은 검지를, 부정은 중지를 움직이는 거다.]적모개는 검지를 까딱거렸다.
[다친 곳은?]이런 상황에서도 자신의 안위부터 걱정해주는 모습에 적모개는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니 부하들이 목숨을 걸고 따르는 거지.’
적모개는 검지를 움직여 대답했다.
[맹주를 만나 담판을 지을 생각이다. 내가 시키는 대로 해라.]그의 검지가 재차 꿈틀거린다.
[이틀 뒤 저녁, 맹의 전 무인 앞에서 운화결과 명가홍의 유착을 입증하겠다고 해라.]적모개의 눈이 살짝 커진다.
‘그런 증거가 있소?’
하마터면 입을 열어 물을 뻔했다.
그는 작게 끄덕이며 검지를 움직였다.
[그동안 고생 많았다. 조금만 더 고생해라. 곧 모든 것이 끝날 거다.]더 이상 진무립의 전음은 들려오지 않았다.
무거운 긴장 속에 적모개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시키는 대로만 하면 나머지는 소공자가 알아서 하겠지.’
지금까지 그가 하고자 하는 일에 실패는 없었다.
이번에도 반드시 그렇게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밀실을 나선 진무립은 곧장 무운전의 최상층으로 스며들었다.
‘검제 위사영.’
한때 흑사칠랑의 수장인 흑랑 구중천과 함께 차기 천하제일의 자리를 노렸던 고수.
신룡의 등장으로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으나 뛰어난 무인임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집무실의 천장에 도착하는 순간, 위사영의 입이 열렸다.
“수련을 하고자 하니 너희들은 잠시 물러나 있거라.”
“예.”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인근의 기척이 썰물처럼 사라진다.
“나오거라.”
집무실에 내려선 진무립이 의외라는 듯 물었다.
“나를 기다리고 있었나?”
위사영은 서책을 덮으며 말했다.
“상천에서 다시 나를 찾아올 거란 생각은 했었지. 그대가 광룡 진무립인가?”
무면산왕과 광룡이 동일인물이라는 사실은 이미 당천에게 들은 바 있다.
“그렇다.”
위사영의 가늘어진 눈이 상대의 전신을 빠르게 훑고 지나간다.
‘과연 그런 여인을 부하로 둘 만하군.’
이하빈과 마주했을 때 뿌연 안개 속을 응시하는 것과 같았다면 이번에는 그 존재 자체가 의심될 정도로 불투명하다.
만일 진무립이 일부러 기척을 흘리지 않았더라면 도착한 사실조차 감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상천의 천주. 은곡의 후예. 무슨 일로 나를 찾아왔나?”
진무립은 은곡의 후예라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았다.
“수렁에서 벗어날 기회를 주기 위함이다.”
중원무림맹의 수장을 대하는 것치곤 눈빛과 말투가 다소 오만하다.
그러나 이미 이하빈을 겪어본 위사영은 크게 개의치 않고 물었다.
“우리가 수렁에 빠져있는 것처럼 보이는가?”
“전쟁 준비를 마치고도 움직이지 못하는 이유가 그것 때문이 아닌가?”
상대는 물끄러미 응시하던 위사영은 담담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상대의 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럼 무슨 수렁이 우리의 발목을 붙잡았는지 들어봐야겠군.”
“천하오대표국. 놈들은 복령천의 하수인에 불과하다.”
“복령천?”
“팔황문이라고도 하지. 지금 그대들이 잡은 것은 가시가 잔뜩 박힌 동아줄이라는 말이다.”
진무립은 천하대전이 끝난 뒤 둘로 나뉜 은곡에 대해 설명했다.
위사영의 미간이 자연스럽게 좁아진다.
“그러니까 놈들이 천하대전을 일으킨 황운천의 직계라는 말인가?”
“놈들은 우리를 미끼로 던지고 살아남아 은밀히 힘을 키워왔다. 두 번째 회천을 바라면서 말이다.”
위사영은 차분히 가라앉은 눈으로 상대를 바라보았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자신들은 지금 천하에 혈겁을 일으킨 자들과 손을 잡은 게 된다.
진무립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곧 적모개가 운화결과 명가홍의 유착을 입증한다고 할 것이다. 그러면 당신은 양자를 한자리에 모아라. 그날 모든 진실을 만천하에 공표하겠다. 종령문이 멸문한 이유 또한 그날 밝혀질 것이다.”
용무를 마친 진무립의 신형이 연기처럼 흩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