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spicious little prince is a world's top ten masters RAW novel - Chapter (36)
◈ 36화. 사천맹에 들어가야 합니다
중경 성내는 진무립 일행이 떠나기 전과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곳곳에서 느껴지는 은밀한 시선에 유대하가 말했다.
“못 보던 무인이 상당히 늘었습니다. 아마도 마도림이 중경을 장악했다는 소문이 제법 멀리까지 퍼진 모양입니다.”
대검문이 무너진 것도 두 달 가까이 지난 일이다.
유대하의 생각처럼 소식을 접한 사천 각지의 방파에서 상황을 파악하고자 무인을 파견한 것이다.
과거를 기억하는 그들에게 마도림은 절대 방심할 수 없는 상대였다.
‘나란 놈이 궁금하겠군.’
피식 웃은 진무립의 귀로 수군거리는 목소리가 들어왔다.
“저들이 광룡대인가?”
“엊그제 듣기론 이번에 혈천수라를 제거했다고 하던데.”
“혈천수라가 뉘 집 개 이름인가? 그건 헛소문이야.”
벌써 정가장의 일까지 소문이 난 모양이었다.
“선두에 선 자가 소문의 소공자인가.”
“대검문을 무너뜨린 자가 바로 저자였군. 더럽게 잘 생겼네.
“잘생기긴, 재수 없게 생긴 거지.”
잠시 멈춘 진무립이 마지막에 말한 사내를 쳐다보며 인상을 썼다.
“극찬 고맙다. 이 새끼야. 너 어디에서 왔냐?”
차마 들릴 줄 몰랐는지 눈이 맞은 사내는 찔끔한 얼굴로 몸을 돌렸다.
단려화는 애써 웃음을 참았다.
‘정말 묘한 사람이야.’
금정무문에서 보여준 정중한 태도를 보면 귀태 나는 무가의 공자인데 이럴 땐 저잣거리 왈패를 방불케 한다.
피식 웃은 진무립은 멈췄던 행보를 재개했다.
광룡대가 사라지자 몸을 숨겼던 무인들이 하나둘 거리로 나왔다.
“생각보다 광폭하군.”
“참을성도 없어 보이는데······. 대체 무슨 수로 대검문을 무너뜨린 거지?”
“잘못된 정보인가?”
“음.”
그들은 한순간 진무립이 보여준 모습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
중경 북림의 총단.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친 광룡대가 복귀했다.
두 달 넘게 해결하지 못했던 정가장의 실종사건.
그것을 무려 사흘 만에 해결한 진무립과 광룡대에게 선망의 시선이 쏟아졌다.
이따금 마주치는 무인들이 예를 갖추며 지나가자 풍연이 멋쩍게 웃었다.
“이제야 한 식구가 된 것 같습니다.”
마도림의 흡수된 대검문의 무인들.
이곳을 떠나기 전엔 마주칠 때마다 어색하기 그지없었는데 그때보다는 한결 마음이 가벼웠다.
임무를 성공하고 돌아온 만큼 스스로 마도림의 무인이라는 자각이 생긴 거다.
단려화와 연소정은 죽림으로 가득한 총단을 둘러보며 내심 감탄했다.
연소정의 말에 단려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주치는 무인들도 제법 절제된 기도를 감추고 있어. 환경에 영향을 받은 걸까?]곰곰이 생각하던 단려화는 본의 아니게 마도림을 염탐하는 거 같아 얼굴이 뜨거워졌다.
[소정아. 그만 두리번거려.]면사 아래로 붉어진 피부를 확인한 연소정은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그러십니까? 돌아가서 보고하려면 아가씨께서 어떤 곳에서 생활하는지 알아두어야 합니다.]두 여인을 힐끔 쳐다본 진무립은 묘한 미소를 보였다.
안림원에 도착한 광룡대.
전각 앞뜰에 도열한 그들은 초무강이 나오는 순간 일제히 예를 갖췄다.
“림주님을 뵙습니다.”
우렁찬 외침에 초무강은 흐뭇한 미소로 화답했다.
“다들 오랜만이구나.”
진무립이 한 걸음 나섰다.
“정가장의 무인 여섯이 죽었으나 장주님과 그 일가는 무사합니다. 대부인과 소공녀는 며칠 뒤에 복귀하실 겁니다. 흉수는 뒤탈 없이 제거했습니다.”
“정가장에서 보낸 전서를 받았다. 흉수가 혈천수라였다는 말이 있더구나.”
“예. 여기 있는 두 소저의 도움으로 큰 어려움 없이 제거할 수 있었습니다.”
면사 너머로 초무강을 바라보던 단려화는 눈이 마주치는 순간 고개를 숙였다.
‘저 사람이 마도림의 림주.’
다부진 체구에 관록이 엿보이는 눈매는 상상 이상으로 날카로웠다.
초무강의 눈에 예를 갖추는 두 여인이 담겼다.
“두 분 소저에게 마도림을 대표해 고맙다는 인사를 전해야겠군.”
“아닙니다.”
단려화의 겸양에 부드럽게 웃은 초무강이 광룡대를 치하했다.
“본 림에서의 첫 임무. 모두 고생이 많았다. 오늘 저녁 광평장으로 술과 고기를 보낼 것이니 돌아가서 푹 쉬도록 하라.”
“감사합니다.”
진무립을 필두로 광룡대가 일제히 포권을 취했다.
“대주는 바쁘지 않으면 차나 한잔하자꾸나.”
“예.”
광룡대를 돌려보낸 진무립은 초무강을 따라 그의 집무실에 들어갔다.
창밖으로 죽림이 보이는 조용한 집무실.
차에서 우러나는 은은한 다향이 먹 냄새를 밀어내는 가운데 진무립이 말했다.
“사실 이번 정가장의 일에는 음야살귀도 엮여 있었습니다.”
초무강의 눈이 살짝 커졌다.
정가장에서 보내온 서신에 음야살귀의 이름은 없었다. 진무립이 굳이 정체를 말하지 않은 까닭이다.
언제나 홀로 움직이던 그들이 손을 잡았다는 소식에 초무강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음야살귀? 천하삼흉의 두 사람이 손을 잡았단 말이냐?”
“예. 운이 좋게도 음야살귀가 살수를 전개하기 전에 처리할 수 있었습니다.”
“너는 대체······.”
“정말 운이 좋았습니다.”
싱긋 웃은 진무립은 초무강의 눈에 떠오른 의문을 품에서 꺼낸 전표로 덮었다.
“알고 보니 정가장만 당한 게 아니었습니다. 혈천수라는 정가장에, 음야살귀는 북천도문을 맡아 같은 짓을 벌였더군요. 이건 음야살귀의 품에서 나온 전표입니다.”
전표를 확인한 초무강의 눈이 부릅떠졌다.
“이백만? 북천도문에 이런 돈이 있었단 말이냐?”
“아마 대들보가 휘청거리고 있을 겁니다. 선택은 숙부님께 맡기겠지만 이 돈을 북천도문에 돌려준다면 그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마음이라.”
나직이 읊조리던 초무강은 싱긋 웃었다.
“또 다른 계획이 있는 모양이로구나.”
“예.”
눈을 빛낸 진무립은 품에서 금정무문주 신환의 서신을 꺼냈다.
“이건?”
“아까는 말씀드리지 못했으나 오는 길에 작은 일이 있었습니다.”
“무슨 일이냐?”
진무립은 평창현에서 벌어진 일과 진행과정, 자신이 꾸민 계략을 숨김없이 털어놓았다.
조용히 경청하던 초무강은 모든 이야기가 끝나자 한바탕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당가의 막내라면 들어본 적이 있지. 그 철딱서니 없는 놈이 상대를 잘못 만났구나.”
진무립이 물었다.
“그래도 당가주의 아들입니다. 뒤탈이 걱정되지 않으십니까?”
“먼저 모욕을 준 것은 그놈인데 걱정할 게 무엇이냐? 이 숙부는 그렇게 나약하지 않다.”
마도림의 수장답게 초무강은 당가라는 이름 앞에서도 전혀 위축됨이 없었다.
숙부의 당당한 모습이 진무립은 반가웠다.
“서신을 읽어보십시오.”
가늘게 뜬 눈으로 서신을 확인한 초무강은 부드럽게 웃었다.
“금정무문은 마도림이 필요로 한다면 언제든 달려오겠다고 하는구나. 당가의 아들놈도 응징하고 든든한 아군까지 만들어왔으니 이번 임무에서는 얻은 것이 크다. 네가 정말 고생이 많았다.”
초무강의 치하에 미소로 답한 진무립은 오면서 머릿속으로 정리한 다음 계획을 꺼내놓기로 했다.
“당우와 금정무문의 일을 보면 사천맹은 생각만큼 견고한 조직이 아닌 것 같습니다. 본 림이 과거의 위상을 되찾기 위해선 그들의 허점을 이용해야 합니다.”
초무강은 고개를 끄덕였다.
“중소방파들은 그들의 눈치를 보느라 입맹하긴 했으나 일부 거파를 위주로 돌아가는 행태에 내심 불만이 클 거다.”
초무강은 마도림이 부활의 날개를 펼치기 위해선 반드시 중소방파의 마음부터 얻어야 한다는 생각에 동의했다.
“혹시 숙부님께서도 염두에 둔 방도가 있으십니까?”
“힘으로 사천맹을 무너뜨리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우리와 함께 위험을 감수할 중소방파도 드물겠지. 나는 우리가 사천맹에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를 견제하는 그들이 과연 받아줄지 모르겠다만.”
진무립은 빙그레 웃었다.
자신의 생각과 일치했기 때문이다.
“말씀하신 것처럼 중소방파를 아군으로 삼으려면 사천맹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 안에서 마도림을 중심으로 소외된 방파를 규합해 목소리를 키워야 합니다. 금정무문의 지지를 얻은 상태에서 북천도문의 마음까지 얻을 수 있다면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초무강이 진무립의 의도를 눈치채고 물었다.
“성도로 가려는 모양이구나.”
“이번 일에서 사천맹의 단편적인 부분을 보았다곤 하나 전체를 본 건 아닙니다. 제 눈으로 직접 보고 방도를 찾아볼까 합니다.”
“좋다. 하지만 지금은 안 된다. 적어도 보름은 쉬었다가 가거라.”
아무리 중요한 일이라곤 하나 이제 막 돌아온 조카를 쉴 틈도 주지 않고 보낼 수는 없었다.
그 마음이 느껴졌는지 진무립도 웃으며 답했다.
“예. 가기 전에 할 일도 있으니 서두르지는 않을 것입니다.”
초무강은 벽에 붙은 서랍을 뒤적여 낡은 문서를 꺼내왔다.
“성도에서 활동하려면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는 거점이 필요할 거다. 미리 챙겨주마.”
“이게 무엇입니까?”
“혈사가 벌어진 뒤 대부분의 지부를 정리했으나 차마 성도의 지부는 정리하지 못하고 남겨두었다. 오랜 세월 관리를 하지 않아 흉가가 되었겠지만 돈을 좀 들이면 쓸만하게 변하겠지. 내림원주에게 일러 돈을 좀 챙겨주마.”
“돈은 됐습니다. 사실 좀 챙겨두었습니다.”
진무립이 전낭이 든 왼쪽 가슴을 두드리자 초무강은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과거 누님도 활동비를 부풀려 보고하고 남은 돈을 숨겨두곤 했었지. 얼마나 챙겨둔 것이냐?”
씩 웃은 진무립은 은자 십만 개짜리 전표 한 장을 내밀었다.
“조카가 드리는 용돈입니다.”
초무강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시, 십만이나? 대체 얼마를 챙겼······.”
혈천수라가 정가장에 요구한 돈이 삼백만이다.
초무강은 진무립이 챙긴 액수를 눈치채고 크게 웃었다.
“하하하! 참으로 대단하구나.”
그때 밖에서 발소리와 함께 시비의 목소리가 들렸다.
“림주님. 다과를 가져왔습니다.”
“들어오너라.”
문을 열고 들어온 시비는 진무립과 눈이 마주치자 붉어진 얼굴로 다과를 내려놓았다.
시비가 나가자 초무강이 물었다.
“그런데 말이다. 이번에 데려온 두 여인.”
“예.”
초무강의 질문을 예상한 진무립은 진짜 정체를 알려도 되는 건지 고민했다.
그러나 질문은 그 예상과 전혀 다른 것이었다.
“누가 색시감이냐?”
“예?”
정가장에 있을 누군가를 떠올리게 하는 말.
짧은 정적 끝에 초무강의 눈이 부릅떠졌다.
“설마 둘 다?”
“······.”
피는 생각보다 진한 모양이다.
***
안림원을 나선 진무립은 곧장 태상림주의 처소인 태경원으로 향했다.
고즈넉한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죽림의 작은 정자.
탁자를 사이에 두고 진무립과 마주 앉은 초평천은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이게 무엇이냐?”
탁자 위에 올려진 것은 은자 십만 개짜리 전표였다.
진무립은 싱긋 웃었다.
“손자가 처음으로 드리는 용돈입니다.”
“용돈?”
전표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초평천은 웃음을 터트렸다.
“으하하하!”
한참을 웃던 초평천의 두 눈에 뿌연 습막이 어렸다.
죽은 줄만 알았던 손자.
이렇게 살아서 와준 것만 해도 고마운데 기특하게도 효도까지 하려고 한다.
“고맙다. 잘 쓰마.”
소매로 눈가를 훔친 초평천은 챙겼던 전표를 도로 밀었다.
“이건 할애비가 손자에게 주는 용돈이다.”
진무립은 망설임 없이 그것을 챙겼다.
“잘 쓰겠습니다.”
손자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초평천이 말했다.
“혹시 말이다.”
“예.”
“한 번 정도 사양할 생각은 안 해보았느냐?”
“돈은 사양하는 거 아닙니다.”
짓궂게 웃은 진무립은 전표를 다시 꺼내놓고 일어났다.
“이번에만 봐 드리는 겁니다.”
“하하하! 고맙구나.”
“저녁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진무립이 공손히 예를 갖추자 초평천은 흐뭇하게 웃으며 말했다.
“먼 길 다녀오느라 고생이 많았을 것이다. 한숨 자고 오너라. 좋은 술을 준비해서 기다리마.”
“기대 하겠습니다.”
웃으며 태경원을 나선 진무립은 광평장으로 발을 재촉했다.
다음 행보를 나서기에 앞서 잠시 쉬어가는 시간.
성도로 출발하기 전에 서둘러 해야 할 일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