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erminally Ill Young Master of the Baek Clan RAW novel - chapter (162)
162화 망혼 (1)
청안광마는 계속 설명했다. 남궁신이 죽어 가는 이유는 요력이 부족해서이며, 살리려면 그녀의 요력을 소모해서 중단전을 고쳐야 한다고.
하지만 스스로는 할 수 없으니 이강에게 요력을 넘겨주겠다고.
남궁신을 살리고 남은 요력은 이강이 전부 가져도 된다고도 말했다.
그러고 나면, 아마 자신은 곧 영멸하리란 것도.
이강은 목구멍에 치미는 열기를 꿀꺽 삼켰다.
그리고, 애써 담담하게 물었다.
‘요괴가 되고 싶다며.’
「그래, 그랬지.」
‘그런데 왜.’
「내 삶을 이어 가는 것보다. 이 애를 살리고 싶은 게 더 커서.」
단순하고 명확한 이유였다.
이강은 싫다고 말하고 싶었다. 남궁신보다는 청안광마가 그에게 더 중요하니까.
‘…….’
하지만 구창왕을 만났기 때문일까.
이강은 청안광마의 결심을 막을 수 없었다.
자신의 욕심 때문에 그녀의 뜻을 꺾어도 되는 것일지, 알 수 없었다.
‘애초에 곤륜산에 가면 요괴가 될 수 있는 건 맞아?’
그래서 그런 것을 물어봤다.
‘너 없이 청안석만 가져간다고 그자들이 내 몸을 고쳐 주긴 할 거고?’
「그래, 확신해. 그렇게 말했거든.」
‘말했다니, 천뢰백미호가?’
「내 꿈에 찾아온 적이 있었어.」
그녀가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아주 먼 옛날, 내 조상과 혼인한 분이셨지. 내 꿈에 들어오셔서 말해 주시더라. 남궁세가에, 자기 자식에게 빌려주었던 힘을 돌려받고 싶다고.」
꿈에서의 현현(顯現)은 도가 공부에서 허투루 치부할 수 없는 일이다.
천뢰백미호가 정말 대요괴라면 꿈을 통해 말을 전하는 것도 가능하리라.
「찾아오기만 한다면 나를 요괴로 만들어 줄 수도 있댔어. 청림의 림주를 통해서도 확인받았고. 분명 네 몸을 고칠 수도 있을 거야.」
다른 무엇보다 림주의 말을 떠올리면, 이강의 몸을 고칠 수 있다는 것도 사실이리라.
이강은 잠시 침묵했다.
청안광마는 그것을 거절이라고 생각한 듯했다.
「제발…….」
이강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하지만 자리를 박차고 떠나는 대신, 그는 질문부터 했다.
‘만약 네 요력을 전부 넘겨받으면, 네게 시간은 얼마나 있지?’
「얼마나 있냐니. 아마 곧바로…….」
‘최소한의 요력을 남긴다면 말이야.’
여태까지 그녀는 이강의 진원진기를 나눠 받으며 버텨 왔다. 하지만 요력을 전부 넘겨준다면 그것조차 소용없으리라.
그녀는 이강이 보이는 단호한 기백에 더듬거리며 답했다.
「보름은…….」
‘그걸로는 안 돼. 더.’
「더라고 해도…… 아무리 길게 버텨도 한 달. 그 이상은 어려워.」
청안광마는 드물게 약한 모습을 보였다.
이강은 두 손을 모아서 제 미간에 대었다. 깊게 고민하는 듯했다.
한참을 침묵하고 있던 이강이 입을 열었다.
“좋아. 어떻게 하면 되지?”
「어, 그, 천뢰령을 쓸 때랑 비슷한데. 일단 내가 네 곁에서…….」
이강은 그녀의 지시에 따라 여우 인형을 품에 넣었다. 그 안에 청안석이 하나 있었고, 나머지 하나의 청안석은 이강의 품속에 있었다.
그는 남궁신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시커멓게 변색된 남궁신의 명치께에 왼손을 올리고, 오른손은 품에 넣어 청안석을 쥐었다.
「고마워! 부탁을 안 들어줄 것 같기도 했는데.」
‘별말씀을.’
「내가 사라져도 너무 마음 쓰지 마. 그런 말도 있잖아. 죽어도 마음속에 영원히 살아 있으면 된다고. 그러니까 날 기억해 주기만 하면…….」
‘그럴 일은 없을 거야.’
「……뭐 그러면 안 기억해 줘도 되긴 하는데.」
이강은 고개를 저어서, 목소리를 냈다.
“그 말이 아니야. 넌 요괴가 될 거다.”
「여태까지 잘 설명했는데 무슨 말이야!」
“최대한 빨리 가면 되는 거잖아, 곤륜산으로.”
「거기가 얼마나 먼데…….」
요력을 양도하면 청안광마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영멸할 것이다.
곤륜산은 머나먼 곳이다. 천뢰백미호가 사는 곳은 곤륜산맥에서도 깊은 험지에 있었고.
말을 타고 달려가도 결코 한 달 만에 갈 만한 곳은 아니다.
지리가 얼마나 험하고 검문은 얼마나 심한가.
서북방은 여전히 북원의 잔당들이 설치는 곳이고, 무림인보다 관의 입김이 강한 곳이었다.
이강이 백씨세가 소공자이며 청림의 제자라고 해도 그곳에서는 어떤 도움도 받지 못할 게 뻔했다.
그러나 이강은 단호하게 말했다.
“얼른 시작해. 다 방법이 있으니까.”
눈앞에 사경을 헤매고 있는 남궁신이 있다.
살아난다면 장차 남궁세가의 주인이 될 것이다. 남궁이 아예 멸문하지만 않는다면 분명.
이강은 그런 그를 살리기로 결심했다.
“시작하라고!”
「어, 어어…….」
청안광마는 자신의 요력을 이강에게 넘기기 시작했다.
뜨거운 고통을 느끼며, 이강은 눈을 부릅떴다.
빙의도 없이 천뢰령을 6성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것과 같은 충격이 몸을 휩쓸었다.
장지문 너머로 푸른빛이 번뜩이자, 바깥에서 이강을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크게 놀랐다.
초조해하던 남궁여상은 당장이라도 뛰어들려는 듯 몸을 움찔했다.
그녀가 뛰어들기 직전, 문이 열리고 이강이 걸어 나왔다.
그와 함께 매캐한 향이 밀려 나왔다. 모용진은 이강의 소매 끝이 검게 탄 것을 보고 흠칫 놀랐다.
“형…….”
“담현 사형이 있는 곳으로 가야겠다.”
이강은 힘이 빠진 듯 휘적휘적 걸어갔다.
모용진이 얼른 그를 부축했다.
그리고.
“어, 어. 신아!”
이강이 나왔던 곳으로 들어간 남궁여상이 비명과도 같은 소리를 질렀다.
모용진은 궁금해서 고개를 돌렸지만, 이강의 재촉에 얼른 걸음을 빨리했다.
* * *
서천성은 중원의 서북방에서 가장 강한 방파다.
무림맹의 권위에도 고개 숙이지 않는 자들이지만 정파무림은 그들을 적대하지 않았다.
곤륜산 너머, 신강의 마교가 만약 발호할 경우 그들이 훌륭한 방패가 되어 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무장은 명의 정예군에 비해서도 부족함이 없었다.
관과 황실이 그들을 묵인하는 것도, 어쩌면 그들이 대명제국의 방패 역할을 하기 바라는 것일지도 몰랐다.
검문이 철저한 국경지방에서도 서천성의 무인들을 막는 자들은 없었다.
그렇기에, 이강은 구창왕을 찾아갔다.
“이리도 빨리 결정을 내렸을 줄은 몰랐군.”
구창왕 소진굉은 갑주를 벗고 있었다.
때마침 그는 제 말의 털을 빗어 주고 있었다.
손길에 애정이 깃들어 있다. 한혈마를 자식 다음으로 아낀다는 게 사실이었던 듯했다.
“급히 도움을 받아야 할 일이 생겼습니다. 곤륜산으로 가게 해 주십시오.”
“음.”
구창왕은 속내를 알 수 없는 표정이었다.
그의 옆에서 안장을 들고 있던 소운은 어쩔 줄 몰라 했으며, 구창왕의 충신으로 보이는 무인들은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곤륜산맥에는 아무것도 없어. 곤륜파의 도사들이라도 만날 생각인가. 그것이 아니면 신강으로 가서 마교도라도 만날 생각인가?”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허허.”
이강이 딱 잘라 말하자, 구창왕의 수하들은 더욱 언짢은 표정이 되었다.
“나는 강호의 어른으로서 자네를 막아야겠지. 황제 폐하의 신하로서도 그렇고.”
“…….”
“이 아이가 한혈마라고 불리지만, 내 이름을 따로 지어 줬다. 수련이라고, 연꽃이라는 뜻이지. 암놈이거든.”
말에 그런 애칭을 붙여 줄 정도로, 구창왕은 제 말을 사랑한다.
“전장에서 내 목숨을 몇 번이고 구해 준 귀여운 녀석이야. 남을 태운 적은 없지. 성격도 거세서 내 수하 한 놈은 뒷발에 걷어차여 한쪽 눈을 잃었어.”
“예.”
“그래도 어쩌겠나, 이만한 아이가 없으니. ……헌데 이 아이를 내놓으라고?”
말이 끝날 때쯤에는, 분명 목소리에 분노가 깃들어 있었다.
이강의 요구 때문이었다.
“저는 가장 빠른 수단을 부탁드렸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내 수련이를 타고 가겠다는 말이지. 그게 아니라면 내가 널 속이는 것이 될 것이고.”
곤륜산, 천뢰백미호가 사는 곳으로 가야 했다.
구창왕에게 찾아온 이강은 가장 빠른 말과 안내자를 부탁했다.
그것을 제 애마를 달라고 말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는지, 소진굉과 그 수하들은 당황했다.
“여정의 이유도 말해 줄 수 없고, 정확한 목적지도 말할 수 없다. 언제 말을 돌려줄지도 모른다. 그런 것이냐?”
“예.”
“으하하하!”
구창왕은 소운으로부터 안장을 받아 말 위에 올렸다.
그러곤 수하 한 명을 불렀다.
“파한, 네가 안내해 주어라. 너와 네 말이라면 수련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 있겠지.”
“예!”
파한은 애꾸눈의 사내였다.
이강은 말에게 걷어차여서 한쪽 눈을 잃었다는 사내가 그일지 궁금해졌다.
이강은 구창왕의 손짓에 따라 말 위에 올랐다.
거대한 군마 위에 오르자 키가 확 커진 느낌이었다.
성격이 더럽다는 한혈마는 의외로 얌전하게 이강을 받아들였다.
“……이유를 듣지 않으셔도 괜찮겠습니까?”
“이유를 물어야 말을 빌려주겠다고 하면, 그럴 것이냐?”
“죄송합니다.”
“그럼 되었다. 나중에 알게 되겠지.”
구창왕은 말을 끌고 걸었다.
파한이라는 무인이 따라붙고, 담현 역시 말을 얻어타서 붙었다.
담현은 이강이 찾아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짐을 쌌다. 진리연은 담현의 부탁을 듣고 곧바로 청림으로 떠났다. 그녀는 금침의괴에게 곤륜으로 향해야 한다는 소식을 전할 것이다.
“파한이 너를 안내하겠지만 쉬운 길은 아니다.”
“예.”
“곤륜산맥은 험하다. 그곳을 돌아다니는 인간들도, 인간이 아닌 자들도.”
“명심하지요.”
이강이 당장이라도 출발하려는 그때.
구경하던 주변인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이강!”
백류산이 나타난 것이다.
이강은 굳은 표정으로 제 아비를 바라봤다. 얼마 전, 쓰러진 이강을 백류산이 구해 준 것이 근 5년 만의 만남이었다.
“다시 만난 지 얼마나 되었다고 곧바로 떠나느냐.”
“……죄송합니다, 아버지.”
백류산에게 아직 모든 사정을 말하지 못했다.
떠날 준비를 하기도 바빴으니까.
“곤륜으로 떠난다고 들었다. 청림의 일 때문이냐?”
“예.”
이강을 막으러 온 것인가 싶었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그래, 장성한 자식이 하는 일을 막을 수야 없겠지.”
백류산은 다행히도 이강을 막지 않았다.
대신, 저 뒤에서 백하준이 말을 타고 달려왔다.
“다만, 네 동생도 함께 데려가거라.”
“아버지 그건…….”
이강이 거절하려는 순간, 백하준이 끼어들었다.
“형.”
“…….”
“나도 함께 갈게.”
그 표정을 보아하니 말려도 따라올 것 같았다.
구창왕에게 말을 빌려달라고 했을 때 이강의 표정이 저러했을까.
이강은 결국 막지 않았다.
“곤륜은 험하다. 늘 조심성을 잃지 말아라.”
“예……!”
출발은 늦출 수 없었다.
이강과 하준, 담현, 파한까지.
네 명의 무사는 열린 무림맹의 대문을 향해 달려나갔다.
백류산은 떠나는 아들들의 모습을 바라봤다.
그의 옆에 구창왕 소진굉이 옆에 섰다.
“……자식놈들은, 생각보다도 너무 빨리 크지 않소?”
“그렇구려.”
백류산은 문득, 자신이 너무 늙었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아주 잘 키워 내셨소.”
“감사하오.”
구창왕의 칭찬에도 씁쓸한 미소만 나왔다.
* * *
지금은 소수의 인원만이 경비를 서고 있는 대별산.
무너진 산봉우리의 잔해에서 짐승 한 마리가 땅을 헤집고 있었다.
멧돼지였다.
“퀵, 퀴익.”
무인들이 이곳 대별산에 진을 치고 있던 탓에, 겁먹은 놈은 제대로 먹이를 구하지 못했다.
잔뜩 굶주린 놈은 후각이 몹시 예민해졌다.
동물의 분변과 피가 섞인 비린내가 땅에서 나고 있었다.
코와 엄니로 파헤치다 보면 다 썩지 않은 무언가의 사체를 찾을 수 있을 듯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그런 것도 좋은 먹이였다.
결국, 축축한 코가 무언가를 건드렸다.
하지만, 멧돼지는 기뻐할 수 없었다.
“꿰에엑!”
땅에서 솟아난 것은 사람의 손이었다.
허우적거리는 손에 겁먹은 멧돼지가 도망치고, 땅에 묻혀 있던 자는 안간힘을 써서 제 몸을 끌어올렸다.
“크헉, 허억!”
시체나 다름없는 꼴의 사내가 거친 숨을 내쉬었다. 얼굴이 심하게 부어 있고, 잘려나간 한쪽 팔은 썩어들어 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분명 살아 있었다.
남궁신에게 팔을 잘렸던, 오행총을 탈출하다가 바위에 깔려 죽은 줄만 알았던 양구전이었다.
“사, 살았다. 허억.”
그가 아직까지 살아남은 것은, 게다가 탈출하기까지 한 것은 기적의 연속에 가까웠다.
바위틈에 갇혀서 죽을 날만 기다리던 그가 발견한 것은 분명 기연이었고…….
“뭐야, 살아 있잖아!”
양구전은 얼른 고개를 들었다.
무인 두 명이 그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무, 물 좀, 물 좀 주시오!”
당연히 무림맹의 무사들이라고 생각했던 양구전이 물을 구걸했다.
무인 한 명이 쪼그려 앉더니 양구전의 얼굴을 움켜잡았다.
양구전은 흠칫 놀랐다.
무인은 붕대로 얼굴을 칭칭 감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무림맹 무사의 복장도 아니다.
“기적 같은 일이군. 기적이야.”
“누, 누구…….”
“일단, 목이 마르다니 이것부터 먹지.”
붕대를 감은 자는 허리춤의 호리병을 꺼내서 양구전에게 들이댔다.
며칠 전 비가 내린 이후로 물을 마시지 못했던 양구전은 눈이 돌아가 호리병에 입을 댔다.
하지만 입에 들어온 것은 시원한 물이 아니었다.
“꺽, 끄억.”
꿈틀거리는 벌레 하나가 목구멍을 타고 쓱 들어갔다.
양구전은 황망한 얼굴로 붕대 사내를 바라봤다.
“흐흐.”
붕대가 벌어지며, 그 안으로 웃고 있는 입이 엿보였다.
소름이 주욱, 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