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erminally Ill Young Master of the Baek Clan RAW novel - chapter (2)
2화 불사신검 (2)
검이 춤을 췄다.
아니, 이강의 손에 붙은 검은 마치 용이 꿈틀대듯 움직였다.
그뿐만이 아니다. 온몸에서 휘몰아치는 기의 폭풍. 말라붙었던 기혈을 따라 진기가 온몸으로 퍼지고, 감각이 한없이 늘어졌다.
눈앞에서 불꽃놀이가 펼쳐지는 듯했다.
녹슨 검이 빛살처럼 움직였다.
적표는 용케 그 움직임을 눈으로 따라잡은 듯했다. 제 검을 들어 황망히 공격을 막은 것이다.
카강-!
허나 녹슨 검은 적표의 강검을 산산조각 냈다.
검의 파편이 유리 조각처럼 부서져 튀었다.
첫 번째 검격에 이어서 이강의 검이 또 한 번 기세를 바꾸었다. 그의 몸이 그렇게 유연하지는 않을진대, 팔이 뱀처럼 움직였다.
일개 자객이 피할 수 있는 검이 아니다.
“어엇, 크아아악!”
순식간에 적표의 가슴이 쩌억 갈라졌다.
이강은 뜨거운 피를 얼굴에 흠뻑 뒤집어썼다.
“흐음.”
조금 전까지만 해도 오만하게 굴던 자객 적표.
그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싸늘한 시체가 되었다.
“너희들이 몇 명이더냐.”
이강, 아니 그 몸을 빌린 불사신검이 물었다.
조금 전까지 기세등등하던 자객들은 감히 몸을 움찔하지도 못했다.
“여기 있는 녀석들이 전부는 아닐 테고, 열? 아니면 스물?”
“…….”
“대답하지 않아도 좋다. 내가 직접 확인하면 될 테니.”
그 말에 자객들이 눈빛을 교환했다.
그리고 약속한 듯 동시에 무기를 뽑아 달려들었다.
하지만 이강은 동요하지 않았으니. 또다시 검광이 비산하고 핏줄기가 솟았다.
통로로 쫓아왔던 다섯 명의 자객들이 몰살당하는 데는 차 한잔 마실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그 모든 과정에서, 이강은 감각을 공유했다.
‘어떻게 이런…….’
불사신검이 직접 몸을 움직인다고 하나 그 본질은 자신의 허약한 몸이다.
헌데 덩치가 두 배는 될 자객들을 너무도 쉽게 가지고 놀았다.
“시간이 없구나, 자손이여. 빨리 끝내도록 하마.”
불사신검이 그렇게 말하는 동시에, 발바닥의 용천혈에서 진기가 뿜어져 나왔다.
몸이 쑤욱 앞으로 솟구쳤다.
조금 전 소화에게 뜀박질이 느렸다고 말했건만, 취소해야 하지 않나 싶었다.
불사신검은 통로의 비밀 문을 부수며 뛰쳐나갔다.
따다당-
그리고 곧바로 날아온 비수들을 예상했다는 듯 쳐 냈다.
어두운 창고 안에 수십 개의 눈이 빛나고 있다.
대충 세어 봐도 십수 명의 자객들이 이곳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허허, 모여 있다니 다행이구나.”
이강은 등골이 섬찟했다.
불사신검의 목소리에 깃들어 있는 숨길 수 없는 기쁨을 느꼈기 때문이다.
“오너라……!”
그렇다. 무인이란, 본디 살인에 도가 튼 자들.
뛰어난 무인일수록 더 능숙하게 사람을 죽일 수 있다. 무(武)란 결국 타인을 죽이는 기술이며, 이 강호는 서로 죽고 죽이는 뱀굴과 같으니.
그런 면에서, 생전에 최강의 검호라 불렸던 불사신검은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을 베었을까.
이강은 괴로웠다.
사람을 죽여서 그런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저, 저들은 분명 이강이 베어야 할 자들일진대. 그에게 검을 들이대고 소화를 죽인 놈들인데.
‘큭…….’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건 육신을 죽은 자에게 위임하는 것뿐이라는 게 괴로웠다.
“정신상태가 나쁘지 않구나.”
불사신검이 이강의 마음을 읽은 듯했다.
자객들에게는 이해가 되지 않을 그 말이 전투의 도화선에 불을 붙였다.
“미, 미친놈! 죽어라-!”
놈들이 일제히 덤벼들었다.
불사신검은 마치 들개 떼에 뛰어든 호랑이처럼 날뛰었다.
그날, 좁은 창고에 피가 흘러 내를 이루었다.
* * *
「보았느냐.」
“허억, 헉…….”
모든 자객을 죽이고, 이강의 몸에 빙의했던 불사신검의 영혼이 빠져나왔다.
이강은 그대로 픽 쓰러졌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세상을 부술 수 있을 듯한 기분이었는데, 마치 짧은 꿈을 꾼 듯했다.
그의 곁에는 소화의 시신이 있었다. 조금 전, 창고의 지하 공간에서 끌어낸 것이다.
비밀공간으로 통하는 문에서는 불길이 솟고 있었다.
「보았느냐 물었다.」
“보긴, 뭘 봅니까…….”
「천영검. 불사천영검 말이니라.」
“……보았습니다.”
무공에 대한 조예가 낮은 이강이었지만, 순간 가슴이 뛰었다.
그것은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욕망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럼 되었다. 목숨이 다한 자손에게 베푸는 내 마지막 호의이니.」
혹시나 하고 걱정했던 일이었지만.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전 죽습니까?”
「절맥증으로 상한 몸에 빙의해 무리해서 기혈을 이었으니, 어쩔 수 없었노라.」
“…….”
과연 정신이 흩어지듯 혼미해졌다.
조금 전까지는 온몸이 불타듯 아팠는데 이제는 고통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몸 상태가 정말 맛이 갔을 때 이렇다는 것을 이강은 알았다.
「공청석유나 만년설삼 같은 천하의 영약을 먹지 않는 한…….」
불사신검의 영혼은 이강을 안쓰럽게 내려다보았다. 이런 상황에서 그런 귀한 영약을 구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이강의 입술이 힘겹게 달싹였다.
“저……. 작년에 먹어 둔 것도 효과 있습니까.”
「뭐라?」
“작년에 구해다 먹었는데……. 만년설삼.”
「그, 글쎄다…….」
근엄한 표정으로 자손의 죽음을 애도하던 불사신검이 당황했다.
「잘…… 모르겠구나.」
그라고 해서 알 리가 없었다.
우물쭈물하는 불사신검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이강이 정신을 잃었다.
* * *
서안(西安).
백씨세가 본가.
의원이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허어! 천운, 그저 천운이라고밖에는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백씨세가의 요청을 받고 달려왔을 때. 그가 마주친 것은 교외로 유폐되었다던 가주의 장남 백이강이었다.
기혈이 다 터져 온몸이 검게 물들었으니 시체나 다름없는 상황.
그러나 의원은 기어코 그를 살려 낸 것이다.
“그래서, 형……님은 살 수 있는 겁니까.”
“그렇지요. 당장 그제까지만 해도 얼굴이 보랏빛이었는데. 지금은 혈색이 돌지 않습니까.”
“확실히.”
‘확실히’라니. 자객들에게 습격을 당하고 홀로 살아남아 본가로 돌아온 하나뿐인 형이다.
그런데 그 동생인 백하준의 얼굴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의원이 헛기침을 하곤 물었다.
“그으, 이강 공자께서 혹시 아주 귀한 영약을 드신 적이 있으십니까.”
“절맥증의 치료를 기대하고 약방을 쓴 적은 있지만.”
“그런 것이 아니라 대환단이나, 혹은 설삼 같은 것 말입니다.”
“…….”
백하준은 의원을 조용히 응시했다. 12살의 소년이 가지기에는 너무 냉정한 눈빛이었다.
의원은 곧 자신의 질문을 후회했다.
“그, 그렇지요.”
백씨세가는 본디 장자 승계의 가칙이 있다. 원래라면 소가주 자리는 백이강에게 돌아갔을 터.
하지만 이강은 태음절맥을 타고났다. 무인으로서는 치명적인 약점인데, 그 탓인지 안하무인에 게으르게 자랐다고 들었다.
결국 교외의 장원에 유폐되기까지 했으니. 세가가 그런 이강에게 영약을 구해 주지는 않았으리라.
“형님분께서 곧 깨어나실 테니 기쁘시겠습니다.”
무안해져서 그렇게 말했지만 오히려 실수였다.
눈앞의 백하준이야말로 그 형이 유폐된 탓에 소가주가 될 예정의 동생이지 않은가.
“…….”
백하준은 말없이 의원을 쳐다보았다. 의원은 괜히 찔끔해져서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깜짝 놀랐다. 이강의 눈꺼풀이 꿈틀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어, 깨어나시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고개를 들어보니, 백하준은 냉랭하게 의약방을 나서려던 중이었다.
의원이 당황했다.
“안 기다리십니까?”
백하준은 말없이 침묵하다가 답했다.
“깨어나면 적룡전으로 들라 전하세요. 가주님께서 하문하실 것이 있다 하니.”
그 매정한 말에 의원이 얼굴을 굳혔다.
“……의식을 되찾는다 하셔도 쉬이 거동하실 수는 없을 겁니다. 당분간 절대안정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백하준은 의원을 무시하고 떠나갔다.
그가 떠나자 의원이 혀를 찼다.
“쯧, 피도 눈물도 없구나.”
죽음에서 돌아온 친형이 보름 만에 깨어났는데도 개의치 않고 떠난다. 무인들이 비정하다곤 하나 어찌 가족 간에 저리도 냉랭한지.
의원은 속으로 백하준과 백씨세가의 욕을 했다.
“……화는.”
그리고 깨어난 이강이 입을 달싹였다.
“어어, 아직 일어나시면 안 됩니다.”
의원이 기겁했다. 이강은 말리려는 의원을 뿌리치고 몸을 일으켰다.
“소화는…… 어떻게…….”
“무슨, 누우시라니까요! 아직 몸이 낫지 않았습니다.”
이강은 막무가내였다. 계속 소화는 어떻게 됐느냐는 말을 반복할 뿐이었다.
곧, 의사는 그것이 이강을 지키다 죽은 시비를 말하는 것임을 알아냈다.
“시신을 수습해 장례를 치렀을 겁니다. 보름쯤 지났을 테니까요.”
“그렇군요.”
의원은 이강의 모습에서 의아함을 느꼈다. 일어나자마자 제 아랫사람의 안위를 묻는다.
안하무인이라는 성격과는 조금 다른 모습.
“제…… 검은 어디 있습니까.”
“검이요? 아, 그 녹슨 칼 말입니까. 실려 오셨을 때부터 꼭 쥐고 있어서 제가 빼 두었는데. 가주께서 가져가셨습니다.”
그다음에 묻는 것은 제 무기의 행방. 죽음에서 돌아온 무인들은 으레 그렇게 깨어나자마자 무기를 찾곤 했다.
이 역시 반푼이라는 오명에는 맞지 않는 모습이었다.
“가주께서 저를 찾으신다고요.”
“……들으셨습니까.”
아무래도 동생 백하준의 말을 들은 듯했다.
그렇다면 그 차가운 태도도 느꼈을 터. 의원은 괜히 목구멍이 까끌까끌해졌다.
이강은 기어코 자리에서 일어섰다. 비칠거리면서도 옷을 걸친다.
의원의 입이 헤 벌어졌다. 그는 이강을 말리기를 멈췄다. 기혈이 다 터졌으니 몸의 통증이 어마어마할 터. 어차피 다시 주저앉으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강은 비칠거리면서도 옷까지 걸쳤다.
혈관 모양으로 난 피멍들이 보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럽게 느껴졌다.
“아, 안 아프십니까?”
의원은 알았다. 전신의 혈도로 칼날이 타고 흐르는 고통일 것이다.
어지간한 강골이라고 해도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무릎을 꿇을 통증이리라.
“익숙합니다.”
“익숙……?”
이강은 알 수 없는 말을 하며 심호흡을 했다.
의원의 예상대로, 이강은 끔찍한 고통을 느끼는 중이었다. 하지만 이런 고통에 익숙하다는 말 역시 진실이었다.
태음절맥을 가지고 환생한 뒤 종종 겪던 발작.
그 전으로 올라가면 전생의 죽음. 호흡이 멎는 끔찍한 답답함.
‘이 정도는.’
골수까지 전이된 암세포. 역시 전이되어 기능을 잃은 폐와 장기. 항암치료의 끔찍한 고통. 방사선의 맛.
젊은 나이에 그를 시한부로 만들었던 췌장.
지금은 겨우 열네 살인 이강이었지만, 그런 전생의 경험들이 고통을 이겨 낼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럼, 목숨을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이강이 포권을 하자 의원은 엉거주춤 마주 포권했다.
의원은 비틀거리면서 떠나는 이강을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게으르고 유약한 반푼이라고?”
서안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소문이었지만.
“영, 헛소리였군.”
의원은 그것이 진실이 아님을 확신했다.
* * *
이강은 곧바로 가주가 있다는 적룡전을 향했다.
가는 길에 세가의 하인들을 마주쳤다. 절반은 인사를 건넸고 절반은 그냥 지나쳤다.
이강이 유폐된 이후에 들어온 자들이거나, 혹은 알아보고도 무시하는 것이리라.
그러든 말든, 이강은 지금 기뻤다.
‘……살았다!’
아직도 선명하게 느껴지는 고통 때문에 오히려 살아 있다는 실감이 났다.
‘주마등까지 봤네.’
오랜만에 겪는 격통 때문에 환생하기 전의 과거가 떠올랐다.
그는 27살의 젊은 나이에 췌장암 말기 진단을 받았다. 그로부터 꼬박 2년 동안 병상에 누워서 끔찍한 고통을 견디다가 죽었다.
그리고 이곳 백씨세가에서 환생했는데, 하필이면 또 태음절맥이라는 희귀병을 갖고 태어났다.
고통은 늘 이강의 동반자였다.
그래서 이전까지는 자포자기로 살았을지도 모른다.
‘만년설삼 덕분이 분명해.’
불사신검의 말을 생각하면 분명 그럴 것이다. 세가 사람들도 모르는 일이지만 그는 분명 만년설삼을 먹은 적이 있으니.
비록 절맥증은 고치지 못했지만 이렇게 그를 살렸다.
꼭 살아남겠다는 소화와의 약속을 지켰다. 자연스럽게 불사신검이 떠올랐다.
그는 아직도 그 낡은 검에 붙어 있을까.
‘다시 만나야 한다.’
불사신검은 혈도가 끊어져 있던 이강의 몸으로 내공을 발휘했다. 이강으로서는 그 비밀을 반드시 알아내고 싶었다.
어느새 그는 적룡전, 가주의 거처로 도착했다.
“가주님은 계시느냐.”
문지기가 이강을 알아보고 깜짝 놀랐다.
“고, 공자님!”
“계시느냐 물었다.”
“안에 계십니다.”
“백이강이 가주님의 부름을 받고 왔다 전하여라.”
문지기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들어갔다.
“후우…….”
이강은 심호흡을 했다. 아무래도 긴장을 느꼈다.
나이 차가 많이 나는 부친도, 그를 모시는 가신들도 모두 부담스러웠다. 장원으로 떠나기 전까지는 늘 차가운 눈빛을 받고 살았으니.
곧 문지기가 대답을 가지고 돌아왔다.
“들라 하십니다.”
이강은 옥으로 포장된 길을 걸어 들어갔다.
대전으로 들어가는 이 길 곳곳에도 호위 무사들이 숨어 있을 것이다.
웅장한 대전으로 가는 동안, 이강은 머릿속으로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계산했다.
가주와 가신들이 어떤 질문을 던질지, 가주 백류산이 검에 깃든 불사신검의 영혼을 알아볼지.
적룡전 앞에서 이강이 멈춰 섰다.
“소자 이강이옵니다.”
곧, 깊게 울리는 목소리가 문 너머로 들려왔다.
“들라.”
웅혼하게 울리는 그 목소리에는 내공이 충만했다. 아버지 백류산의 목소리였다.
침을 꿀꺽 삼킨 이강이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중앙의 태사의에 철혈의 가주가 앉아 있었고, 그 옆에 가신들이 정좌해 있었다.
칼날 같은 눈빛들이 이강을 향해 쏠렸다.
“생각보다 일찍 깨었구나.”
“…….”
가주의 말에도 이강은 곧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오랜만에 엄한 아버지를 만났기 때문도, 그에게 쏟아지는 가신들의 시선이 냉랭했기 때문도 아니었다.
“……무얼 하느냐, 가만히 서서.”
“소, 소자 이강. 가주님을 뵙습니다.”
꾸벅 예를 취하는 이강의 목덜미에서 식은땀이 한 방울 흘렀다.
그가 식겁한 이유는 한 가지였다.
절대 고수의 풍모를 보이는 가주.
그가 앉아 있는 태사의 팔걸이에, 불사신검이 불량스럽게도 걸터앉아 있는 것이다.
「깨었구나. 반가우이.」
그가 밝게 웃으며 이강에게 손을 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