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erminally Ill Young Master of the Baek Clan RAW novel - chapter (219)
219화 호수에서 대양으로, 대양에서 하늘로 (4)
두두두두-
말 네 마리가 달릴 때 나는 소리는 마치 콩을 튀기듯 요란했다.
능지평에게는 무림맹의 사절 자격으로 소지한 각패(角牌)가 있었다.
일종의 보증이었는데, 그것을 제시한다면 대부분의 상단과 마방에서는 즉시 가장 좋은 말들을 빌려주었다.
일행은 준마를 타고 출발했다
능지평이 선두였고, 후미에는 이강이 있었다.
그들은 눈 덮인 관도를 거침없이 달렸다.
살을 찢을 듯한 칼바람을 막기 위해 얼굴에는 천을 둘러서 바깥으로는 눈만 나와 있었다.
그래도 그 긴 속눈썹과 차가운 눈빛 덕에 이강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그의 허리춤에는 신마반 역시 꼭 매여 있었는데, 그 덕에 장삼봉은 기이한 장면을 연출할 수 있었다.
허공에 유령처럼 뜬 상태로 말의 속도를 따라잡은 것이다.
자세를 낮춰 바람을 피하고 고삐를 쥐고 있는 이강과 달리, 장삼봉의 자세는 무척이나 편해 보였다.
이 침묵 속에서 이강과 장삼봉은 생각의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등선이란 신선이 되는 것 아닙니까.’
「그렇다고 할 수 있겠구려.」
‘절대지경을 뛰어넘으면 신선이 되는 겁니까?’
「그럴 수도 있지.」
적어도 검제가 지향하는 목표는 그러했다. 그는 장삼봉과 같은 신선이 되고자 했으니.
하지만 이강은 궁금했다.
‘그러면 소림은요?’
「글쎄, 부처가 되려나.」
‘아니면, 세속의 무인이 절대지경을 뛰어넘으면 어찌 되는 것입니까?’
「허허…….」
등선지경(登仙之境)이니 하는 말을 썼지만, 분명 이상하다.
소림의 무승이 절대지경을 뛰어넘으면 신선이 될까. 그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불사신검은? 절대지경을 뛰어넘었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 그가 신선이 되지는 못하였다.
‘마인은 어떻습니까.’
「…….」
‘천마는 절대지경을 뛰어넘지 않았습니까?’
천마와 장삼봉은 분명 호각이었다.
무당파와 백도무림은 장삼봉의 우위를 주장했지만 이강은 내심 다르게 추정했다.
최소한 동수이거나 천마의 우위 아니었을까.
첫 번째 비무에서는 장삼봉이 이겼다지만, 두 번째 비무에서는 승부가 나지 않았다.
세 번째 비무가 정말 일어났다면 승리는 천마에게 돌아갔을지도 모른다.
「차나무에선 찻잎이 자라고, 살구나무에는 살구가 열리는 법이오. 도장.」
‘모두 다르겠군요.’
「그렇소이다. 다만 공통점은…….」
장삼봉은 작게 말했다.
절대지경을 뛰어넘으면 어떤 것이 기다리고 있는지에 대해.
「……아마, 인간으로서의 굴레를 어느 정도 벗어나리라는 것이지.」
무인이 초절정고수가 된 다음부터는 초인(超人)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사람이 몇 장 높이를 뛰어넘고 쇳덩이를 무처럼 자르는데, 양민의 눈에 사람처럼 보일 리 없었다.
그리하여 비로소 절대지경에 든다면, 기적에 가까운 일을 해낸다. 검제가 그랬듯이.
그다음은 정말 인간이 아니게 되는 것이다.
도인이 신선이 되어 천계에 오르듯, 다른 무인들도 그에 준하는 무언가가 될지도 몰랐다.
이강은 생각에 잠겨 말을 몰았다.
그러던 와중, 마음 한구석이 얼어붙은 듯 서늘해졌다.
마치 차가운 물 속에 빠진 것처럼 화들짝 놀란 이강은 장삼봉을 바라봤다.
‘방금, 못 느끼셨습니까?’
「으음……?」
하지만 장삼봉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것처럼 이강을 돌아볼 뿐이었다.
이강은 잠시 침묵하다가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았다.
저 멀리 보였던 무당산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멀어졌기 때문일까, 여전히 흩날리는 눈발 때문일까. 혹은 둘 다일까.
이강은 다시 앞을 보고 달렸다.
* * *
“흑암.”
검제는 우묵한 눈으로 흑암을 바라보았다.
“본명을 밝히지 않겠다는 것인가.”
흑암은 거대한 사나이였다. 기골이 장대했는데, 그렇다고 둔해 보이지는 않았다.
다듬지 않은 머리카락은 흑사자의 갈기처럼 치렁댔으며 역시 거친 수염은 마치 바늘과도 같았다.
좋게 본다면 사람이 아니라 하늘이 내린 신장(神將) 같았고, 나쁘게 본다면 인간이 아닌 짐승 같았다.
확실하게 평범하지 않은 것은 또 있었으니 그 눈빛이었다.
“어둡고도 불길한 눈이로다.”
짙은 눈썹 아래에 우묵히 패인 눈빛은 어두웠다. 밤의 우물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그 속이 보이지 않는다.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수많은 마인을 베어 봤던 검제로서도 파악하기 힘든 눈빛이었다.
그렇다면 눈앞의 이자는 마인(魔人)인가?
검제는 그조차도 확신할 수 없었다. 마인이라면 최소한 그 마를 탈각한 탈마(脫魔)의 수준 이상일 것이다.
허나, 초옥에서부터 그 존재감을 느꼈다는 것을 감안하면 최소한 검제의 하수는 아니리라.
“통성명을 하자는 것인가?”
“짐승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대개 그리하지.”
“후후후…….”
흑암은 낮게 웃었다.
가당찮은 소리를 들은 듯한 비웃음이었다.
“내 이름은 그저 흑암이다. 날 때 붙여진 이름은 버렸건만, 버린 이름이 궁금하다는 것인가? 그리 하찮은 것에 집착할 줄은 몰랐군.”
“…….”
검제는 눈앞 사내의 정체가 궁금했다.
가늠해 보았지만, 도무지 짐작 가는 것이 없었다. 천하십대고수 중의 누구도 아니지만, 그가 아는 누구보다도 고수였다.
검제가 계속 초옥에 머물고 있었다면 그는 초옥으로 찾아왔을 것이고, 그렇다면 수많은 제자들이 죽었을 것이다.
검제가 막으려 했어도, 아마 그랬을 것이다.
상대는 코앞에서 터지는 뇌가진천뢰보다 위험했다.
“참사교인가.”
“그러하다.”
“……교주?”
마교가 아니면 참사교라고 생각했다.
흑암이 참사교의 인물이라면 교주 본인일 수밖에 없다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흑암은 부정했다.
“아니다.”
검제는 충격을 느꼈다.
참사교의 정점조차 아닌 자가 이렇게 강대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 수하가 저리 강하다면 교주는 어떠할까.
대체 불사신검은 어찌 참사교주를 죽였던 것일까.
“교주는 아니나, 내 위에는 교주밖에 없지.”
“……그렇군.”
교주님도 아니고 교주라고 부른다. 상명하복이 엄격한 사교의 성질을 가진 조직에서 저렇게 격의 없이 부른다는 것은 흑암의 지위가 단순한 교주의 수족은 아님을 의미했다.
그것에 조금은 안도했으나, 흑암은 안도하는 검제를 비웃었다.
“그것이 그리 중요한가.”
“…….”
“비로소 우화하는 듯하여 찾아왔지만, 아직도 미망에 매여 있구나.”
“불승 같은 소리를 하는군.”
검제는 투기를 느꼈다.
흑암이 내뿜는 투기에 온몸이 저릿저릿할 정도였다. 상대의 목적은 말하지 않아도 확실했다.
흑암은 검제와 겨루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다.
“운이 나쁘다 여겨라. 그저 그 상태로 죽었으면 평온히 떠났을 것이고, 내가 너를 기다리고 있지 않았다면 원하는 바를 이뤘을 테니.”
검제는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지만, 흑암 역시 양가적인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하나는 망혼에게 놀아났다는 불쾌감이었다.
검제는 본디 죽을 운명이었다. 그렇게 되었다면 이곳에서 무당을 감시하고 있던 흑암이 나설 일는 없었을 것이다.
그가 따르는 유일한 참사교주의 명은 죽어 가는 검제 따위를 처치하는 것이 아니었다.
참사교에 위협이 될만한 상황이 생긴다면 그것을 제거하는 것. 치매 걸린 절대고수는 위협이 아니었다.
그런데 망혼에 의해 많은 것이 바뀌었다.
검제는 재기(再起)했다. 제정신이 돌아온 정도가 아니라 찬란한 날개를 펼치려 하고 있었다.
만약 검제가 완전히 대공(大功)을 이뤘다면, 그는 분명히 참사교주의 위협이 되었으리라.
그래서 흑암은 버려진 장원을 나섰다.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 검제를 위협했다. 껍질을 벗고 나오려는 나비의 우화를 중간에 멈췄다.
그것에 분노를 느꼈다.
만약 검제가 완전히 탈각했다면, 흑암은 지고의 기쁨을 느꼈을 것이다.
목숨을 걸고 싸울 수 있는 기회를 얻었을 테니.
“설명은 끝났다.”
하지만 흑암은 그러지 못했다.
과실이 완전히 익기 전에 그것을 따러 온, 때 이른 수확자. 그것이 흑암의 역할이었다.
“이제 죽어라.”
그는 검을 뽑지 않았다.
그저 양손을 벌리고 발로 땅을 굴렀을 뿐이었다.
쿠웅-!
그것만으로도 지축이 흔들리는 소음이 울렸다.
땅에 수북이 쌓여 있던 눈이 일제히 솟구쳤다.
백설(白雪)이 만천하(滿天下)한 이곳에서, 흑암은 손을 뻗쳤다.
그의 손이 만들어 낸 궤적대로 공간이 찢겼다.
검제의 상반신이 가로로 찢어질 듯한 그 순간. 검제 역시 눈을 부릅떴다.
하얗게 가려진 시야 따위는 상관없었다.
흑암 역시 검제의 눈을 가리려는 잔재주를 부린 건 아니었으리라.
검제는 그저 느껴지는 대로 검을 내질렀다.
검강이 충만한 검이 흑암의 손을 자르려 했다.
하지만, 수강을 두르지도 않은 흑암의 손은 검제의 검강을 되려 삼켰다.
콰자작!
새로 얻은 송문검의 끝이 검강과 함께 뭉텅이로 잘려나갈 상황.
날아가던 검은 뚝 떨어지듯 흑암의 손등을 타고 흘렀다.
그대로 흑암의 심장을 꿰뚫으려 하더니, 코앞에서 검이 회수되었다.
검제는 뒤로 휘익 물러났다.
“……!”
상대를 탐색하려는 첫수에서부터 손해를 보았다.
흑암은 검제를 파악했지만 검제는 흑암의 한 수에 대해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었다.
흑암이 손에 두른 것은 수강이 아니다. 마치 어둠, 어둠 같은 것이 손을 휘감고 있었다.
흑암은 불쾌한 듯 눈을 찌푸렸다.
“영문도 모른 채 죽고 싶지 않다면 가진 모든 것을 보여라.”
설익은 과실을 수확해야 하는 운명이었지만, 그도 검제라는 과실을 아예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모든 것을 맛볼 것이다. 그러고자 왔다.
검제는 한층 어두워진 표정으로 검을 들었다.
흑암이 또 한 번 발을 굴렀다.
쿠우웅!
이번에는 지축이 흔들리며 돌조각과 눈보라가 동시에 일었다.
검제는 초극절기를 쓰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검기가 응축되어 유형화된 검강을 이루고, 검강은 압축되어 보석처럼 송문검을 감싼다.
그리고 거칠게 휘몰아치던 눈보라와 돌가루가 우뚝 멈췄다.
검제의 초극절기 또한 이전보다 진일보했다.
드넓은 분지 전체의 시간이 얼어붙었다. 그 속에서 검제는 바람처럼 빠르게 움직였다.
멈춰 있는 흑암의 목을 단숨에 베어 낸다. 그럴 각오였다.
흑암은 우뚝 굳어 있었다.
이강의 몸에 깃든 장삼봉조차도 검제의 초극절기에 저항할 시간은 필요했다.
그때에 비해 훨씬 더 발전한 지금이다. 얼어붙은 시간 속에서 검제의 검은 막을 수 없으리라.
분명 그러했으리라.
허나 검제의 검은 흑암을 참수하지 못했다.
탁-
검은 어느 순간 흑암의 손에 잡혀 있었다.
멈춰 있던 눈보라가 다시 사방으로 흩어지면서 시야를 가렸다.
곧, 눈보라가 가라앉고 시야가 돌아왔다.
검제는 침음성을 흘렸다.
“음…….”
환상을 보았는가. 순간 생각했지만 그것이 아님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흑암 역시 자신의 초극절기를 사용한 것이다.
그 작용이 명확하게 드러나는 검제와 달리, 흑암의 초극절기는 그 정체를 짐작하기도 어려웠다.
“분명 모든 것을 보이라고 했을 텐데.”
흑암이 다시 검제의 목을 향해 손을 뻗쳤다.
검제는 또 한 번 초극절기를 발휘했다.
시간을 멈추고, 이번에는 검제의 안면에 검을 내질렀다.
휙.
다시 시간이 강제로 흐르기 시작했다.
분명 꿰뚫었을 흑암의 얼굴은, 검의 한 치 옆에 있었다.
“그래, 내가 직접 모든 것을 끌어내 주지.”
흑암의 손이 다시 검제의 검을 잡아채려 했다.
초극절기를 써서 방어하자, 또 막혔다.
그것이 세 번 정도 반복되었다.
그때부터였다.
검제는 초극절기를 사용하여 시간을 멈추고자 했지만. 더는 시간이 멈추지 않았다.
쐐애액-!
흑암의 손끝이 검제의 코앞을 스쳐 지나갔다.
시야가 화끈, 하고 점멸했다.
백척간두(百尺竿頭)다. 목숨을 잃을 뻔했다.
검제는 왜 자신이 더 이상 초극절기를 발휘하지 못하는지 깨달았다.
흑암은 시시각각 검제에게 익숙해지고 있었다. 자신의 초극절기로 검제의 초극절기를 파훼하는 일에도.
그것이 워낙 즉각적이어서 검제의 초극절기는 봉인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 한 수를 받지 못하면 죽을 것이다.”
흑암은 그리 경고하곤 손을 펼쳤다.
그러곤 쫙 펼친 손바닥을 소림의 파마장(破魔掌)처럼 정직하게 밀어낸다.
손이 거대해졌다.
아니, 착각이리라. 마치 철벽처럼 거대한 강기의 벽이 밀려왔기에 그렇게 느껴진 것이다.
“허엇……!”
검제는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가장 고절한 한 수를 사용했다.
진천뢰의 폭발조차 막았던, 유검(柔劍)의 극치.
태극혜검(太極慧劍).
무아창천경(無我蒼天境).
검제의 손에 들린 송문검에 찬란한 황금빛이 깃들었다.
그 검이 유려한 곡선을 그려 내며 태극(太極)의 형상을 이룬다.
그리고 마치 대수인(大手印)을 닮은 흑암의 장법과 격돌했다.
전부 막아 내지 못했다.
아예 흘려 내지도 못했다.
태극은 검은 손바닥에 뭉개졌고, 태극 뒤에 숨었던 검제도 마찬가지였다.
비껴내려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검과 그것을 잡은 오른손, 팔, 어깻죽지, 그리고 상반신의 절반이 강기의 벽에 짓뭉개 날아갔다.
“쿨럭.”
검제는 새빨간 피를 토했다.
오른손은 멀쩡했다. 상반신도 날아가지 않았다.
본 것은 그저 환시(幻視).
그러나 거짓이 아닌, 분명 일어날 수 있었던 현실이었다.
흑암은 명령하듯 말했다.
“모든 것을 보여라.”
검제는 죽음을 직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