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erminally Ill Young Master of the Baek Clan RAW novel - chapter (220)
220화 호수에서 대양으로, 대양에서 하늘로 (5)
한 명의 절대고수를 만드는 데는 어마어마한 비용이 필요하다.
금전(金錢)의 이야기가 아니다.
첫 번째로,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간.
또한 천재성이라는, 실제로 무학에 온몸을 던져야만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재능 역시 필요하다.
그 하늘이 내린 기재를 올바른 길로 인도할 스승이 필요한 것도 마찬가지다.
영약 등이 있으면 더욱 좋다.
그러나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실전의 경험이다.
자신의 목숨을 백척간두(百尺竿頭) 위에 몇 번은 올려놓아야 한다.
빙한지옥에 떨어졌다가 목숨을 건져 살아나는 경험, 그러한 담금질이 필요하다.
역사상 모든 절대고수들은 당대인의 경외를 살 만한 업적을 남겼다.
그가 행한 것이 악행이든, 협행으로 평가되든 간에 수없이 많은 상대와 생사결을 벌이고 이겨 낸 뒤에야 고수라 불리게 되었다.
그렇기에, 강호에서는 흑암이 불가해(不可解)의 존재일 수밖에 없다.
어디서 이런 절대고수가 나타났단 말인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 듯 갑자기 나타난 흑암이 백도제일검인 검제를 일방적으로 몰아쳤다.
하지만 흑암 본인은 전혀 놀라지 않았다.
그는 분명 무의 끝에 가까운 사내였다. 아마 중원과 새외무림을 통틀어서도 그보다 무의 끝에 가까운 자는 없을 것이다.
또한 그는 결코 하늘에서 뚝 떨어진 사람이 아니었다.
누구보다도 강한 만큼, 누구보다도 큰 대가를 지불했다.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무(武)라는 것이 자신만의 산을 오르는 것이라면, 그는 만년설이 덮인 최고봉을 오르고 있었다.
동서남북을 바라보아도 그보다 높은 산을 오르는 자는 보이지 않았다.
하다못해 비슷한 높이까지 따라잡은 자도 없었다.
과거의 고수들이라면 흑암보다 강한 자가 없지 않을 테지만, 그들은 신선이 되거나 사라지지 않았던가.
“실망스럽군, 실망스러워!”
흑암은 혹한과도 같은 고독을 느끼고 있었다.
모든 것을 끌어올려 함께 싸울 수 있는 대적자가 있다는 건 얼마나 큰 축복일까.
하지만 정작 누군가가 같은 높이로 오르려고 하니 발로 밀어 떨어뜨려야 하는 신세이다.
그것이 몹시 분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흑암은 검제에게 외쳤다.
“겨우 그게 보여 줄 것의 전부이냐!”
시간을 멈추는 듯한 검제의 초극절기는 흑암의 초극절기에 의해 파훼되었다.
검제는 무당을 지키기 위해 싸운다.
하지만 흑암의 초극절기는 그와 달랐다.
그는 이 순간 신기루와 같았다.
설산을 오르다 보면, 정상이 코앞에 보이는 듯 착각할 때가 있다. 그것에 현혹되어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고 나아갔다는 필히 죽는다.
꿰뚫을 수 있다고 검을 내질러 봤자. 흑암에게는 닿지 않는 것이다.
그리하여, 천정미답(天頂未踏)이라 한다.
그것은 흑암이 이룬 여러 초극절기 중 하나였다.
쐐액-
태극혜검이 또 한 번 흑암의 머리 옆을 스쳤다.
흑암의 손에 깃든 어둠이 더욱 크기를 키웠다.
밀종대수인(密宗大手印, 천축국 밀교의 무공)으로 착각할 만한 장법이었지만, 실상은 달랐다.
참사교의 흑암 일맥만이 익히는 흑운대천장(黑雲戴天掌)이 그 장법의 정체였다.
먹구름이 스쳐 지나가면 남는 것은 없었다.
비로소 검제의 머리를 터뜨려 버릴 생각으로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았다.
휘익-
하지만 검제는 기어코 피해 냈다.
닿았다 싶었는데, 고개를 스윽 돌리더니 장법을 흘려낸 것이다.
“흐으.”
흑암이 실소를 흘렸다.
흑운대천장의 검은 강기는 마치 구름과 같은 성질을 지녔다.
어떤 유검으로 흘려 낸다고 해도, 미세한 강기의 구름은 상대의 육신을 파괴시킨다.
검제는 그것을 파악하고 흘려 낸 것이다.
“좋다!”
흑암은 다시금 흑운대천장을 쓰려는 듯하다가 번개같이 발을 올려 찼다.
그 발에는 단단한 성문이라도 일격에 박살 낼 법한 괴력이 깃들어 있었다.
검제는 한 자루의 검을 세우고 그 뒤에 몸을 숨겼다.
흑암의 발끝이 검제의 검을 강타했다.
투웅-
맥없는 소리가 울리며 검제가 하늘로 튕겨 나갔다.
검날을 걷어찼으면서도 흑암의 신발에는 생채기조차 나지 않았다.
하지만 무사한 것은 검제 역시 마찬가지. 충격을 흡수하여 튕겨 나갔지만 타격은 없었다.
흑암은 땅을 쿵, 구르며 뛰쳐 올랐다.
그 진각이 어찌나 파괴적이었는지, 그 자리에 쌓여 있던 눈이 사라져 둥근 흙 자국만 남았다.
전설 속의 비무처럼, 공중전(空中戰)이 시작되었다.
흑암은 놀랍도록 유연한 움직임으로 몸을 비틀었다. 그리고 손등으로 검제의 골통을 깨부수려는 듯 후려쳤다.
검제의 몸이 휘익 늘어난 듯 보였다.
흑암의 손등은 이번에도 검제의 몸을 스쳐 지나갔다. 흑암의 눈이 번쩍 빛났다.
‘천축의 유가공……?’
전 무림의 무공을 거의 알고 있는 흑암은 순간 검제의 움직임을 그렇게 착각했다.
무당의 검제가 천축의 무공을 익혔을 리는 없을 텐데, 검제는 더욱 놀라운 짓을 했다.
손에 들린 검을 놓은 것이다.
그러곤 흑암의 팔을 잡아채 부드럽게 당겼다.
위에 있던 흑암의 몸과 검제의 위치가 순식간에 반전되었다.
검제는 그리고 흑암의 팔, 어깨, 목을 연속적으로 툭툭 두드렸다.
부드러운 타격 속에서 밀려오는 강력한 경력이 흑암의 몸에 침투했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이 한 수로 몸의 내부가 파괴되어 죽었으리라. 무당의 장법인 면장(綿掌)이 틀림없었다.
“한심한 짓을…….”
그러나 흑암은 비웃다 못해 분노를 표했다.
“검을 놓으면 살아날 수 있을 줄 알았나?”
검을 놓은 뒤 의외의 공격으로 상황을 반전시키려는 얕은수, 그리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흑암의 몸은 면장의 경력으로도 파괴할 수 없을 정도로 강인했다.
그는 검제의 팔을 역으로 잡아 휘둘렀다.
강인한 팔이 부풀더니, 마치 투석기가 발사되는 듯한 소리가 울렸다.
후우웅!
검제는 화살이 쏘아지듯 땅으로 추락했다.
그리고 흑암 역시 천근추의 수법을 활용해 빠르게 낙하했다.
검제의 전신을 터뜨려버릴 생각으로.
조금 전 검제가 태극혜검으로 막아 내지 못한 흑운대천장의 태산대수(太山大手)가 펼쳐졌다.
콰아아앙!
궂은 날씨도 숨길 수 없는 굉음이 울렸다.
하지만 흑암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이미 하강의 순간부터 낌새를 알아챘다.
검제가 추락하면서 나야 할 충돌음이 나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태산대수가 뭉개 놓은 곳에는 핏자국조차 없었다.
“…….”
그리고 그 옆에 검제가 서 있었다.
흑암은 처음으로 놀란 표정을 짓고, 그다음에는 웃었다.
조금의 머뭇거림 없이 그는 검제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검제는.
흑암의 공격을 종이 한 장 차이로 계속 피해 내던 그는 떠올렸다.
죽음과 삶의 경계에서 분투하던 과거를. 생사경(生死境)을.
휘익-
흑암의 장력은 검제의 몸을 스치지도 못했다.
심지어 옷자락이 찢어지거나 하지도 않았다.
그것이 검제의 유리함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단 한 번의 격돌만 있더라도 검제의 목숨은 끝날 것이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어느 때보다도 자유로웠다.
검제는 마침내 자신이 버리지 못한 한 가지를 깨달았다.
‘검을 버렸다 생각했지만, 그러지 못했구나.’
흑암의 착각과 달리, 검제는 기습을 하고자 검을 놓은 것이 아니었다.
그저 필요 없다고 떠올렸기 때문이었다.
저 겨울 하늘 위에서 검을 놓음으로써, 그는 비로소 모든 것을 버렸다.
휘익-
검제는 흑암에게 반격하기조차 멈췄다.
계속 한 끗 차이로 장법을 피할 뿐이었다.
천 일 동안 홀로 수련하는 것보다, 백 일 동안 좋은 스승 밑에서 수련하는 것이 낫다.
그보다도 열흘 동안 비무를 하는 것이 좋고, 그것보다도 단 한 번의 생사결(生死決)을 하는 것이 낫다.
검제의 승천을 막기 위해 온 흑암이었지만, 오히려 그는 검제의 마지막 깨달음을 돕고 있었다.
흑암의 손을 피하면서, 검제는 자신의 가슴팍에 손을 얹었다.
툭.
그 한 수로 몸속의 그릇이 깨졌다.
바다를, 드넓은 대양을 담았다고 생각했던 몸의 모든 망집을 흩어놓았다.
진기가 파도처럼 흘러나왔다.
검제와 흑암의 주변을 막강한 기파가 가득 채웠다.
흑암 역시 이변을 깨달았다.
“무슨 짓을 하는 것이냐!”
검제는 대답하지 않았다.
금침의괴와 장삼봉에 의해 새로이 얻은 육신을, 지금 그는 버렸다.
흑암은 분노한 맹수처럼 덤벼들었지만 검제를 곧바로 해치지는 못했다.
세상의 법칙을 일그러뜨릴 만큼 농밀한 기파가 흑암의 흑운강기(黑雲罡氣)마저 흩어놓은 것이다.
그리고 검제는 텅 빈 몸속에 무언가가 차오름이 느꼈다.
기도 아니고 원정(元情) 또한 아니었다.
그것은 마음이었다.
검제는 마음이 빚어 낸 검 한 자루를 가슴에서 뽑아 내었다.
그것은 형태를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그렇기에 무적이었다.
심검(心劍).
마음의 칼 한 자루는 능히 신선조차 벨 수 있다.
흑암의 얼굴에 비로소 위기의식이 떠올랐다.
그의 초극절기인 천정미답(天頂未踏)을 활용해도 심검을 막을 수 없음을 깨달아서만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조금 인간적이고, 또 유아적인 감정이었다.
질투, 아쉬움, 분노.
한창 합을 맞추고 있는 상대가 모든 것에 관심을 잃은 채 어딘가로 떠나려는 것 앞에서 느끼는 허망함.
“어디로 가느냐!”
흑암은 결코 꺼낼 일 없으리라 여겼던 자신의 모든 것을 선보이려 했다.
그러나 흑암은 검제에게 모든 것을 보여 주려 했어도, 검제는 흑암을 생각하지 않았으니.
그저 뽑아 든 심검을 휘둘렀다.
흑암이 그 심검에 베였다면 어떤 결과가 일어났을지 알 수 없었다.
다만 검제는 흑암을 베지 않았다.
그는 손을 위로 휘둘렀다.
“……!”
검제는 마음의 검으로 하늘을 베었다.
그를 지상에 묶어 두었던 운명의 끈을.
천계의 문에 굳게 걸린 빗장을.
자신의 인간성을 잘라냈다.
흑암의 눈으로 보기에, 그것은 마치 하늘을 손가락질하는 듯했다.
그러자, 비로소 검제는 인간을 벗어났다.
희끄무레한 무언가가 검제의 머리 위에서 빠져나와 상승했다.
승천이었고, 우화등선이었다.
흑암은 희롱당한 분노에 포효하여 손을 내질렀다.
“으아아!”
그러나, 그 손은 검제의 골통을 부수기 전에 우뚝 멈추었다.
부들부들 떨리던 손이 결국 내려갔다.
검제의 몸에는 상처의 흔적조차 없었다.
사체를 부숴서 화풀이하면, 그것도 좋겠으나. 검제의 육신은 이미 사체로서의 의미도 없었다.
그것은 그저 껍데기였다.
한 명의 위대한 인간이 우화하고 남긴, 번데기의 껍질과 같은 것.
“…….”
정상에 오르려는 자를 발로 밀어 떨어뜨리려 했지만, 그는 오히려 흑암을 지나치고 하늘 위로 올라섰다.
흑암에게 하늘로 올라갈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만, 분명 그는 여전히 지상에 남아 있었다.
그는 다시금 진각을 밟았다.
쿠웅-
절묘하게 조절된 진각이 파헤쳐졌던 땅을 고르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제의 육신은 꼿꼿이 선 채로 넘어지지 않았다.
싸움의 흔적도 지웠고, 눈은 여전히 내리고 있다.
검제는 옷자락 하나 찢어지지 않았으니, 흑암이 그와 겨뤘다는 사실은 눈 속에 묻히리라.
다시 침착함이 돌아온 얼굴로 흑암이 중얼거렸다.
“……싸움에서는 이겼지만, 승부에서는 졌나.”
패배는 처음이었다. 흑암의 이름을 통틀어 근 수백 년간 처음.
허나, 분명 참사교의 위협이 되었을 검제는 배제되었다.
그가 천계로 입장했다면 당분간은 감히 지상의 일에 개입하지 못하리라.
흑암은 터덜터덜 분지를 빠져나왔다.
아무 말도 없이, 묵묵히 버려진 장원으로 돌아갔다.
꽤 오래 지냈던 그 장원도 이제 떠나야 할 것이다. 더 이상 무당에서의 볼일은 없어졌으므로.
다만, 그곳에서 불쾌한 얼굴을 만나게 될 줄은 흑암조차 예상치 못했다.
“헤헤, 헤헤헤, 오셨습니까. 흑암 님.”
공손한 자세로 오체투지(五體投地)의 절을 하는 자가 있었다.
얼굴에 짤랑거리는 은 장신구를 꿰어 둔 것을 보면 망혼의 가까운 심복이라는 증거였다.
“천주의 명을 훌륭히 수행하신 듯합니다.”
“…….”
“검제는 배제되었습니까요?”
허리를 편 그가 손바닥을 비비며 비굴하게 묻는다.
흑암은 조용히 침묵하다가 답했다.
“그는 더 이상 교의 위협이 되지 않을 것이다.”
“아이구우…… 역시. 헤헤헤.”
흑암의 신발이라도 핥을 것처럼 넙죽거린다.
“역시 검제라고 해도 흑암 님 앞에서는 버러지 같은 존재군요…… 헤헤. 기뻐하실 겁니다. 천주께서도, 망혼께서도.”
“네 주인이 기뻐하라고 한 일이 아니다.”
“예에, 물론입지요. 흐흐, 검제의 최후는 어땠습니까요? 그놈 때문에 저희 주께서 심려를 많이 하셨지요…….”
“…….”
“버러지처럼 꿈틀거리던가요? 혹은 살려 달라고 빌던…….”
그리고 흑암이 그의 목덜미를 움켜쥐었다.
“역겨운 것.”
그는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우드드드득-
망혼의 수하는 목뼈가 부서져서 혀를 꽥 내밀고 죽었다.
눈알이 튀어나와 몹시 처참한 몰골이었다.
흑암을 모시던 일오가 그것을 보곤 몸을 떨었다.
아무리 흑암이라도 상대는 망혼의 심복이었다. 망혼은 분명 격노할 것이다.
물론 망혼이 격노하든 말든 흑암은 신경 쓰지 않을 것이고.
“이것을 치워라.”
“예, 예에.”
일오는 허겁지겁 시신을 수습했다.
흑암은 조용히 자신의 거처로 돌아갔다.
* * *
그리고 며칠 뒤.
무당에서는 경사라고 할 만한 일을 백도무림에 발표했다.
태극검제 장경진인이 우화등선(羽化登仙)했다는 이야기였다.
살아 있는 육신으로 신선이 되었으니 이는 시해선(尸解仙)도 아닌, 지선(地仙)에 올랐다는 이야기였다.
이에 장경진인의 위패를 그 먼 옛날의 삼봉진인의 바로 옆에 두었다고 한다
쉽사리 믿기 어려운 일이었지만, 무당은 문파의 명예를 걸고 사실임을 주정했다.
사람들은 강호의 별이 지상을 떠났다는 사실에 슬퍼했으며, 또한 경의를 표했다.
그러한 소식은, 한창 개봉으로 향하고 있던 이강 일행에게까지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