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erminally Ill Young Master of the Baek Clan RAW novel - chapter (221)
221화 초절정고수
강호에서 산을 넘어갈 때 산적패를 만나는 것은 흔한 일이다.
특히 장거리 여정을 떠날 때 산적과 단 한 번도 마주치지 않았다면 천지신명에게 감사의 마음을 가져야 옳을 것이다.
다만 무수한 산적 중에서도 녹림삼십육채 소속의 산채를 만나게 된다면 그것은 특히 운이 없다고 할 수 있다.
녹림패왕 갈사혁이라는 노괴 아래 모인 삼십육채는 나름 산적 도당들의 정예라고 할 수 있었다.
절정고수조차도 산적들의 합공에는 당할 수 없다. 그들이 어디 정정당당히 겨뤄 주겠는가.
매복해서 화살을 쏘는 것은 기본이고, 곳곳에 구덩이를 파서 함정을 만들어 두는 건 예삿일이었다.
심한 놈들은 출처도 알 수 없는 독을 바른 침을 쏘기도 한다. 해독제가 없음은 물론이다.
한데, 만일 삼십육채 중에서 가장 강한 다섯 산채인 오호채(五虎寨) 소속의 산채를 만나게 된다면 어떠할까.
불운 중의 불운일 것이다.
귀호채(鬼虎寨)의 채주 광염귀도(狂炎鬼刀) 악중량은 무려 초절정의 고수이다.
그는 총표파자 갈사혁의 명을 받고 이곳 이진곡에 매복했다.
명령은 단순했다.
무림맹의 사절이 그곳을 지나갈 테니, 사로잡으라는 이야기였다.
악중량은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쓰는 듯한 느낌이어서 심기가 불편해졌다.
상대 중 가장 강한 자라고 해 봤자 적요일검이니 뭐니 하는 백씨세가의 개이다.
초절정고수가 되었다는 소식은 못 들었으니, 수하 여럿이서 화살을 쏘고 그물을 던진다면 꼼짝없이 잡을 수 있을 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겨울날 악중량이 그의 귀두도(鬼頭刀)를 들고나온 이유는 하나뿐이다.
그게 녹림패왕의 엄명이었기 때문이다.
“카악, 퉤.”
가래침을 퉤 뱉은 악중량은 녹림패왕의 면상을 떠올렸다.
별호만 들어 보면 근육질의 산중호걸 같지만, 녹림패왕 갈사혁은 이미 수염이 새하얗게 샌 노괴에 가까웠다.
여전히 자신의 남성성을 과시하려 하지만 악중량의 눈에는 영 노인네의 발악처럼만 보였다.
하지만 그의 무공은 분명 진짜였다.
언젠가 악중량이 녹림맹의 총표파자 자리를 넘겨받기 위해서는 확고한 공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녹림패왕보다 더 윗줄 가는 악당인 사도련주의 환심을 사는 것도 필요했다.
악중량은 그 앞에 나타난 무림맹 사절들에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거어, 이곳은 우리 귀호채가 밤낮으로 갈고닦은 길로써, 이렇게 예고도 없는 침입은 본 채에 대한…… 에잇!”
이런 식으로 밀마(密嗎)를 직접 주고받은 것이 얼마나 되었을까.
어차피 목적은 저 능지평을 제외한 셋을 생포하는 것이다. 악중량은 그냥 본성을 드러냈다.
바위에 귀두도를 콱 꽂은 것이다.
콰가각!
그는 그 한 수로 자신이 초절정고수임을 드러냈다.
도가 바위를 무처럼 파고든 동시에, 도신에 발라 둔 역청 불이 붙어 활활 타올랐다.
“팔다리 하나씩 잘리기 싫으면 알아서 무릎 꿇어라.”
그의 눈앞에는 네 명의 무인들이 있었다.
여전히 차가운 표정으로 분위기를 잡고 있는 능지평이 선두.
그리고 뒤의 덩치가 팽가의 팽구인, 당문주의 금지옥엽이라는 당은설.
그리고 악중량이 무척이나 싫어하는 류의 번지르르하게 생긴 창백한 놈이 바로 무림맹 부맹주의 친아들, 백이강.
이곳에서 칠성지회라도 열린 듯 화려한 인원 구성이었다.
“안 꿇어, 이 새끼들아!”
“후회할 짓 하지 마시오.”
능지평은 싸늘하게 악중량을 노려보며 말했다.
당연히 아무도 무릎 꿇지 않았다.
“어쭈. 감히 이 귀호채 앞에서 턱을 꼬박 치켜들고…… 거기 당가 계집년!”
악중량은 번개같이 귀두도를 들어 당은설을 가리켰다.
“뱀 같은 당가 놈들이 하는 짓은 뻔하지. 용독(用毒)하려는 순간 네년 양손을 잘라서 개 먹이로 줄 것이다. 나는 허풍 같은 건 모른다. 안 그러냐 얘들아!”
산채원들이 악! 소리를 내며 답했다.
당은설은 다시 팔짱을 꼈다. 살며시 소매를 흔들어 용독하려던 것을 용케 눈치챈 것이다.
악중량은 과연 차기 총표파자를 노릴 만한 인물이었다.
자신의 위치를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으로 선정한 것도 혹시 모를 독을 막기 위해서였다.
꼴이 구질구질하기 그지없는 산채원들이 화살을 들어 그녀를 겨눴다.
“지나가게 두면, 피차 피를 볼 일은 없을 것이오.”
그렇게 나지막하게 말한 것은 능지평이 아니었다.
악중량은 눈썹을 비틀었다. 백이강, 무공은 강하나 몸이 약하니 생포 시 주의하라던 어린놈이 끼어든 것이다.
“애새끼가 감히 어른 말씀하시는데.”
“그 호랑이 가죽, 어디서 났소?”
“……뭐?”
악중량은 예상하지 못한 질문에, 순간 멈칫했다.
그의 등에는 산적 두목의 필수품 같은 것이 둘려 있었다.
그것도 최상품 중의 최상품이. 녹림패왕 갈사혁조차도 군침을 흘리던 호피(虎皮)였다.
등에 둘러 바람을 막는 동시에 채주로서의 위엄을 드높이는 물건이었다.
“애송이가 보는 눈은 있군.”
악중량이 천금을 주고 구한 이것은 보통 호피가 아니었다.
대호 중의 대호. 그것도 평범한 대호가 아닌 영물에 가까운 놈의 것이다.
무려 머리가 하나 더 달려 있는.
“……쌍두호의 호피지! 들어는 보았나? 쌍두귀호라는 귀물을!”
악중량이 가슴을 쫙 펴곤 자랑스레 말했다.
수년 전, 중원에서 쌍두귀호가 발견되었다는 소문이 돈 적이 있었다.
그 이후로 쌍두호를 찾으려는 유행이 돌았다.
산적 채주들은 권세가들만큼이나 호피를 좋아하는 군상들이었으니, 악중량은 그것을 반드시 얻고 싶었다.
그렇게 약 1년 전, 흑시(黑市)에서 쌍두호의 호피를 발견하고 일반 호피의 수십 배 값을 치러서 구매한 것이다.
하지만 악중량이 기대하던 반응은 나오지 않았다.
“쿡.”
“푸흐흐흐.”
이강과 능지평이 어처구니없다는 듯한 웃음을 흘렸기 때문이다.
그것이 비웃음이라는 것은 어린애들도 눈치챌 것이다.
“무엇이 웃기냐, 이놈들!”
“그게 쌍두귀호의 호피라는 걸 믿는다면…….”
격노를 터뜨리려던 악중량의 말을 이강이 절묘하게 끊어먹었다.
때마침, 하늘의 먹구름이 점차 크기를 불리고 있었다.
“똥개를 늑대라고 해도 믿겠군.”
“뭐야?”
“딱 봐도 엉성하게 호랑이 머리 하나를 꿰매 둔 잡품인데.”
쌍두귀호를 실제로 만났으며, 그 호피를 벗겨 아비에게 직접 선물한 이강이다.
능지평도 이강도 악중량이 몸에 걸친 호피가 쌍두귀호의 것이 아님을 바로 눈치챘다.
악중량은 필사적으로 부정했다. 분명 꼼꼼히 확인한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그, 그럴 리가!”
그리고 그가 고개를 돌려 자신의 호피를 바라본 순간이었다.
싸움 앞에서 한눈을 팔지 않는 것은 기본이다.
하지만 악중량은 그 기본을 잠시 잊었다.
화살을 겨누고 있는 자신의 수하들을 믿었기 때문도 있으리라.
쩌저저정-!
귀를 찢을 듯한 소음과 함께 뒤편이 번쩍했다.
벼락 같은 소리에 멍해진 악중량은 아예 몸을 돌렸다.
그곳에는 수하 한 명이 몸을 바르르르 떨며 혼절해 있었다.
온몸에서 새하얀 김을 뿜고 있고, 머리카락에는 불이 붙었는지 매캐한 연기를 흘렸다.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수하가 벼락에 맞았다는 사실을.
믿기지 않는 상황에, 귀호채의 도당들은 일제히 한눈을 팔았다.
활로 이강 일행을 겨누던 자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조절을 못 하는 게 흠이군.”
이 벼락을 자신이 불러 냈다는 듯한 그 말은 이강이 한 것이었다.
귀호채 산적들이 다시 이강 일행을 돌아봤지만 이미 늦었다.
당은설이 틈을 놓치지 않고 검은 구슬 같은 것을 사방으로 뿌린 직후였다.
퍼퍼퍼펑-
매캐한 연무가 순식간에 시야를 가렸다.
“쏴앗!”
악중량을 보좌하던 부채주가 그리 외쳤지만, 산적들은 화살 시위를 다시 당기는 것보다 입과 코에 천을 두르는 데 더 열성이었다.
당문주의 딸이 일으킨 연무에 무슨 독이 섞여 있을지 몰랐기 때문이다.
뒤늦게 화살을 쏘았지만 이강 일행에게 적중한 건 하나도 없었다.
악중량은 콧김을 흥 뿜었다.
어차피 상관없는 일이었다. 여전히 불이 붙어 있는 자신의 귀두도를 강하게 움켜쥐고 연무를 향해 휘두른다.
후우우웅-
거친 파공음이 연무를 갈랐고, 그 안에서 튀어나오는 흰 칼날과 부딪쳤다.
까앙-!
악중량의 도강에도 검이 잘리지 않은 것은, 상대의 경지 역시 낮지 않음을 의미했다.
과연 능지평은 침착한 태도로 악중량에게 달라붙었다.
“진작부터 이랬어야지!”
능지평은 아직 초절정의 경지에 발을 내딛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표 중에서는 가장 강한 놈이다.
즉, 악중량 혼자로도 전부 제압할 수 있었다.
“네놈은 어차피 살려 둘 이유도 없었어!”
귀두도는 붉은 잔상을 미친 듯 뿌리며 춤을 췄다.
악중량의 거구를 보고 그가 둔하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그는 이전, 우연히 얻은 기연을 통해서 귀염참호도(鬼炎斬虎刀)라는 도법과 이 귀두도를 얻었다.
흉신악살 같은 악귀의 머리통이 끝에 달려 있는 기묘한 도는 악중량의 손발과 다름없었다.
캉!
능지평의 귀밑머리에서 구슬 같은 식은땀이 흘러나왔다.
분명 그가 더 하수였다.
“흐읍!”
하지만 능지평 역시 무당에 있던 도중에 얻은 것이 많았다.
그의 신형이 번쩍이더니, 잔상만이 남았다.
악중량은 직전에 능지평의 목이 있던 곳만 베었을 뿐이다.
악중량은 내심 가슴이 철렁했다.
‘이형환위……?’
적어도 신법만은 자신 이상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것이 신법이 아니라, 이강이 능지평에게 전해 준 광휘무영공의 일부임은 눈치채지 못했다.
그리고 등 뒤에서 검이 날아왔다.
일순간, 악중량이 능지평에 의해 등이 꿰뚫린 것처럼 보였다.
치익-
하지만 천우신조(天佑神助)일까.
능지평의 검은 악중량의 옆구리를 스치고 지나가, 되려 그 팔뚝에 붙잡혔다.
“흐흐, 끝이다!”
악중량이 웃었다.
최고수인 능지평만 해치운다면 나머지를 포획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다.
도강을 흠뻑 머금은 귀염도가 능지평의 몸통을 양단 낼 듯했다.
그때, 연무 속에서 하얀 검이 쑤욱 튀어나와 그 도를 막아 냈다.
이강의 창백한 얼굴이 유령처럼 뒤따랐다.
쩌어어어엉-!
악중량의 도가 밀렸다.
믿기지 않았지만 그러했다.
아무리 악중량의 경지가 초절정의 초입이라곤 하나, 도강에 맞서기 위해서는 같은 강기공(罡氣功)이 필요하다.
악중량은 이강의 검이 본디 흰색이 아님을 눈치챘다.
거무튀튀한 검날에 찬란하게 맺혀 있는 것은 분명 검강.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초절정의 경지에!’
스물을 넘긴 지 얼마 되지 않는 나이에 초절정에 오르는 일은 드넓은 강호에서도 극소수다.
언젠가 능히 천하제일인을 노릴 재목.
악중량은 이를 악물고 이곳에서 이강을 처치할 결심을 했다.
능지평을 뒷발로 밀어 찬 뒤, 맹호처럼 이강에게 덤벼들었다.
하지만 이강은 능지평이 사라졌던 것과 같이 잔상만 남기고 사라졌다.
“이놈!”
그러나 악중량의 무의식 속에는 조금 전 능지평을 맞상대해 본 경험이 남아 있었다.
허공에서 공중제비를 돌 듯 허리를 휙 꺾어서 몸을 반전한다.
역시 뒤로 돌아가 있는 이강을 이번에는 제대로 베었다.
후웅-
하지만 악중량의 도는 맥없이 허공을 베고 지나갈 뿐이었다.
그가 벤 것은 이번에도 잔상이었다.
뒤에서 날아오는 예기에 악중량은 이를 악물고 귀두도를 휘둘러댔다.
언뜻 초식이 없는 듯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듯한데, 그 기세가 매섭기 그지없었다.
여덟 방위를 전부 공격한다 하여 팔방풍우(八方風雨).
저잣거리의 약장수들도 쓰는 초식이지만, 그와 같은 고수가 시전한다면 곧바로 절초(絶招)가 된다.
미꾸라지 같은 이강의 공격을 단 한 번만 쳐 내면 역으로 양단 낼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악중량은 곧 후회했다.
캉-
카강-
캉!
어찌 된 것인지, 이강은 동서남북으로 번쩍번쩍 이동하는 듯했다.
사방(四方), 아니 팔방(八方)에서 검을 찔러 온다.
어찌 팔방에서 검이 들어온단 말인가. 정신이 번쩍 들고, 눈앞이 현란한 빛으로 어지러워진다.
이것이 바로, 전진파의 신공절학인 광휘무영공(光輝無影功)이었다.
악중량이 허겁지겁 물러나려는 순간.
“…….”
이강의 얼굴이 코앞에서 나타났다.
그 심유한 눈빛과 눈이 마주친 순간이었다.
“……허억!”
가슴팍이 뜨끔했다.
너무도 어이없게, 이강의 검에 가슴이 뚫린 것이다.
그리고 능지평이 그 뒤에서 악중량의 목을 쳤다.
하늘로 부웅 떠오르는 그 시야가 악중량이 마지막으로 본 것이었다.
초절정고수인 귀호채의 채주가 그렇게 죽었다.
당은설이 흩뿌렸던 연무가 옅어진 시점이었기에 모두가 그 광경을 보았다.
이강이 귀호채에 군림하던 채주의 가슴팍을 꿰뚫은 것도 모두.
산적들은 혼란에 빠져 있었지만, 물량의 차이로 인해 이강 일행은 여전히 불리했다.
하지만 능지평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너희들의 채주는 이 불사신룡이 참살했다!”
악중량의 수급을 듣고 외친 소리였다.
이강은 순간 흠칫하여 능지평을 돌아봤지만, 그는 태연하게도 이강에게 손짓했다.
결국 이강도 검을 치켜들고 말했다.
“내가…… 처치했다!”
“감히 무림맹의 행사를 막고자 하는 놈이 더 누구더냐!”
귀호채는 잔뜩 혼란에 빠진 상태였다.
그때, 팽구인이 시기 좋게 도움을 주었다.
“흐으, 악, 이, 이 새끼들아! 활 내려!”
그가 제압한 부채주는 잘린 팔에서 피를 철철 흘리며 외쳤다.
그의 목에는 팽구인이 도를 들이대고 있었다.
“칼 내리라고, 이 새끼들아!”
악중량이 살아 있었다면 결코 그럴 일이 없었겠지만.
산적들은 슬그머니 무기들을 떨구기 시작했다.
명백한 이강 일행의 승리였다.
차기 녹림맹주로 예견되던 고수가 새파랗게 어린 후기지수에게 죽은 대사건이었다.
이날을 계기로, 불사신룡 백이강이 초절정고수에 올랐다는 사실이 전 중원에 퍼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