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erminally Ill Young Master of the Baek Clan RAW novel - chapter (262)
262화 금수혈제 (5)
추영호와 적웅.
그들은 숨소리마저 숨긴 상태였다.
칠대선들은 각기 자신들만의 독특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요명사는 누구보다 예민한 영감(靈感)을 지니고 있었고, 이룡의 경우에는 소림사의 후기지수였던 만큼 탁월한 무재와 강인한 마음을 지녔다.
적웅은 뛰어난 신력(身力)을 타고났다.
마치 고대의 장수처럼, 혹은 정말 붉은 곰으로 태어난 것처럼 강인한 신체를.
추영호의 경우는 은신술(隱身術)에 재능이 있었다.
잘생겼던 용모가 추한 괴물처럼 변해 버린 이후에 개화한 재능이었다.
스스로의 모습을 부끄러워하고 숨기려는 마음에서 기원한 일일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 그럴 것이다.
여하튼, 그의 재능은 가히 수신호위의 은신에 비할 법했다.
단순히 무인이 기척을 숨기는 방식과는 또 달라서 맨눈으로 정확한 위치를 쳐다본다고 해도 그 은신을 눈치챌 수는 없다.
그렇기에 추영호와 추영호가 동반한 사람 한둘쯤은 완벽하게 모습을 숨기고 다닐 수 있었다.
당연히, 동창의 평위사 하나에게 모습을 들킬 일은 없었다.
“너희들. 뭐냐?”
그런데, 담현은 그런 추영호의 은신을 눈치챈 듯 말했다.
은신술에 자신이 있는 자라면, 이런 순간에 성급하게 모습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
상대가 약간의 기척만 감지했을 뿐인데 허장성세를 부리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추영호는 우선 침묵했다.
“…….”
“뭐냐고. 너희들.”
그런데 담현은 정확히 추영호와 눈을 마주쳤다.
더 이상 모른 척할 수는 없었다.
추영호와 적웅은 몰랐지만, 상대는 결코 평범한 동창 위사 따위가 아니었다.
-적웅.
-예.
추영호가 짧게 명령하자 곧바로 적웅이 움직였다.
덩치가 커서 우둔해 보였지만, 적웅은 결코 굼뜨지도 멍청하지도 않았다.
그가 손을 품에 넣었다가 빼자, 비도 한 자루가 쏘아졌다.
파공성조차 나지 않았다.
헌데 담현은 손을 뻗어 그것을 잡아챘다.
적웅이 제대로 된 공력을 담아 던진 것은 아니었지만 놀라운 솜씨였다.
다만, 담현이 잡아챈 비도의 손잡이에는 검은 부적이 붙어 있었다.
그것이 새파랗게 불타려는 순간.
“하.”
담현이 비웃으며 손으로 부적을 감싸 쥐었다.
치이익-
손바닥에서 연기가 거세게 피어올랐다.
허나, 담현은 얼굴조차 찡그리지 않았다.
놀란 것은 오히려 적웅과 추영호였다.
-위험한 자입니다.
-……도사다. 아니면…… 술사, 마도사.
적웅이 술법을 담아 둔 부적이다.
그것을 저런 식으로 파훼하는 것은 뛰어난 도사나 방사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다.
문제는 상대의 정체를 도저히 짐작할 수 없다는 것.
경지에 오른 방사로서, 담현이 어떤 자인지 쉽사리 알 수 없었다.
다만 머릿속에서 위험을 알리는 경종이 울렸다.
“그래, 너희들이 칠대선이라는 놈들이구나. 어떤 것들인지 궁금했는데…….”
더욱이 담현은 그들의 정체를 눈치챘다.
“……별것 없군.”
그 사이에 추영호와 적웅도 판단을 내렸다.
쉽게 상대할 수 있는 자가 아니니, 제일은 도주(逃走).
그러기 위해 가지고 있는 강력한 술수로 선공하고 도망친다.
“사바하!”
“흐읍!”
추영호가 도호를 외고, 적웅은 조금 전과 같은 비도를 한 번에 세 개나 흩뿌렸다.
그러곤 뒤도 돌아보지 않고 경신법을 발휘한다.
담현을 향해 사람 몸뚱이만 한 불꽃이 날아들었다. 그리고 그 불꽃 속에는 세 자루의 비도가 섞여 있었다.
일촉즉발의 위기.
그 상황에서 담현은 당황하지 않았다.
그저 짤막하게 도호를 외고, 땅으로 쑥 잠겨 들었다.
불덩이와 비도 다섯 자루는 조금 전 담현이 있었던 자리에서 터져 나갈 뿐이었다.
콰앙!
그리고 담현은, 토중보행(土中步行)의 술법을 역으로 사용해 휙 솟구쳐올랐다.
적웅과 추영호의 도주 경로로.
그들은 지표면에서 솟아오르는 담현을 보고 경악했다.
담현은 웃고 있었다.
“너희들의 목을 꺾어 가면 나도 좀 사형으로서의 면이 서겠네.”
뜻밖의 행운에 만족하는 듯한 여유.
그는 한 자루의 새카만 흑도를 꺼내서 휘둘렀다.
그 검이 지나간 곳에 새파란 불꽃이 남았다.
추영호가 경악했다.
“청림!”
“오, 알아보는군.”
“네놈, 영화제자구나!”
추영호는 이를 악물었다.
마교의 방사라면 담현이 쓰는 기술의 정체를 모를 리가 없었다.
“적웅, 귀화인(鬼火刃)을 쓰는 놈이다!”
칼날에 푸른 도깨비불(鬼火)을 맺히게 하는 청림 영화제자들의 술법.
검기조차 쓰지 못하는 담현의 처지였지만 귀화인은 검기에 못지않은 기술이었다.
오히려 훨씬 무섭다.
그 도깨비불은 상대방의 무기와 맞부딪칠 때마다 푸른 불똥을 펑펑 튀기기 때문이다.
“크윽-!”
적웅이 팔에 붙은 도깨비불을 떼어내다가 이를 악물고 주먹을 내질렀다.
보통 사람의 두 배는 됨직한 큼지막한 주먹이 담현의 귀 옆을 스쳐 지나갔다.
후웅-
담현이 적웅의 주먹을 피하느라 움직이는 그 순간을, 추영호는 놓치지 않았다.
아무것도 없는 그의 손바닥에서 한 뼘은 되는 칼날이 쑤욱 튀어나왔다.
“죽어라-!”
저잣거리의 차력사들도 이렇게 기상천외하게 싸워 대지는 않을 것이다.
허나, 이것이 방사의 싸움 방법이었다.
푸욱-!
손끝에 확실한 감각이 느껴졌다.
담현의 복부에 한 뼘 길이의 칼날이 그대로 박혀 들었다.
추영호는 짜릿한 기쁨과 안도를 동시에 느꼈다.
“커헉!”
담현은 새빨간 선혈을 입으로 확 토해 냈다.
두말할 것 없이 치명상이었다.
“흐, 흐흐.”
그러나, 피로 새빨갛게 물든 이빨을 드러내며 담현은 웃었다.
그 모습이 어지간히 귀신같았을 것이다.
추영호와 적웅이 질린 듯한 얼굴을 한 것만 보아도 알았다.
명백한 죽음의 위기 앞에서, 담현의 정신은 가속(加速)을 경험했다.
됐다.
무인들은 이것을 심적권청(心滴券聽)의 순간이라고 표현한다.
생사의 갈림길, 혹은 지극한 고양의 순간에 찾아오는 사고의 초가속. 그것은 시간이 한없이 늘어지는 듯한 감각이었다.
어쩌면 검제의 초극절기와도 비슷할지 몰랐다.
다만, 신체의 움직임은 원래 시간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에는 달랐다만…….
쉽네.
담현은 마침내, 이렇게 사고의 초가속을 얻어 내는 데 익숙해졌다.
처음부터 가능했던 일은 아니었다.
백인섬예대법의 고통을 이강과 나누면서 원정을 소모했을 때부터였다.
비우는 것이 있다면 채워지는 것도 있는 법일까.
무공은 잃었지만 담현의 망가지고 황폐화된 몸은 새로운 변화를 맞이했다.
시간이 얼어붙은 것처럼 움직일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사고는 마음껏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재능 있는 술사(術士)로서 못할 것이 없다.
담현은 빨라진 사고 속에서 수많은 술법과 대법을 동시에 사용했다.
우선 신체의 감각을 제어하여 고통에서 벗어난다.
칼날이 찌른 복부의 혈관들을 수축시킨다. 그러면 출혈이 멎는다.
곧, 망가진 혈도에 섬세하게 진기를 흘려넣는다.
기는 곧 유형(有形)하면서도 무형(無刑)한 것.
시간이 흐르고 있을 때는 불가능한 세밀한 방식으로 전신 세맥에 기를 충만하게 한다.
이렇게 하면 일순간이지만 초절정고수의 신체 능력을 뛰어넘을 수 있다.
나도 이강 그놈처럼…….
죽기 직전의 상태에서 순식간에 초인의 힘을 얻었다.
시간이 본래의 흐름을 되찾았을 때.
담현이 바로 한 행동은 적웅이나 추영호의 골통을 부수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칼날에 깃들어 있던 푸른 도깨비불을 꿀꺽 삼켰다.
“미, 미친놈……!”
방사인 추영호와 적웅이 보기에, 그것은 마치 뜨거운 용암을 삼킨 것과 다름없어 보였다.
죽기를 자처한 미친 짓이라는 뜻이다.
곧, 여전히 칼날이 박혀 있는 담현의 배에서 피 대신 새파란 불꽃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나도 요기를 얻었다!”
“크아아악!”
추영호의 오른손이 새카맣게 불타 버렸다.
담현이 흘린 푸른 불꽃은 그것은 본래의 도깨비불보다 더 진득하고 뜨거운 것이었다.
그 순간, 추영호와 적웅이 느낀 것은 아찔한 ‘위기감’.
“형님!”
적웅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외쳤다.
조금 전, 위기 상황이 오면 자신이 희생할 테니 먼저 가라고 했던 말.
“먼저 가십쇼-!”
설마 그것을 상예현주를 만나기도 전에 실행하게 될 줄은 몰랐다.
적웅은 추영호의 팔을 잡아당기더니, 거침없이 휘익 던졌다.
사람이 조약돌도 아닌데 추영호는 휘익 날아갔다.
“어딜!”
입으로 새파란 불꽃을 흘리는 담현이 손을 휘저었다.
적웅은 그것을 두고 보지 않았다.
“너는 내가 막겠다!”
적웅의 몸이 화악 부풀며 상의가 찢겨 나갔다.
몸을 덮고 있던 털이 더욱 자라나더니 시뻘겋게 물들었다.
적웅(赤熊), 그야말로 붉은 곰 같은 모습이다.
담현은 감히 얕보지 못했다.
“그게 폭혈공이란 것이구나!”
오히려 기쁨의 웃음을 담아 외쳤다.
자신의 원정을 깨뜨려서 힘을 폭주시키는 폭혈공(爆血功)을 적웅은 망설임 없이 시전했다.
적웅은 자신의 목숨을 바쳐 시간을 벌었고, 추영호는 동생의 목숨을 써서 살아남았다.
“크윽!”
추영호는 또 한 번 은신술을 펼쳐 상예현주를 찾아 달렸다.
* * *
계영왕은 조금 전 짐승이 울부짖는 듯한 소리를 내었다.
자식이 납치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였다.
내관은 상예현주가 납치되었다고 했지만, 조금 더 알아본 결과 그 반대였다.
납치된 것은 세자였다. 세자가 상예현주의 흉내를 냈다가 잡혀간 것이다.
“이럴 줄 알았더라니!”
세자는 상예현주의 말을 바꿔 타고 제 누이의 흉내를 냈다고 했다.
“그 아이들은 종종 그랬지. 폭풍이 치는 날이라든가. 내가 혼을 낸 날. 서로가 서로의 흉내를 냈어.”
“저하께서는 나쁜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거라고 예감하셨나 보군요.”
남매의 그 특이한 습관은 이강도 겪어 본 적 있는 일이었다.
오늘 아침 세자가 묘한 부탁을 했었지만, 설마 그렇게 말을 바꿔 타기까지 했을 줄이야.
“그렇다면 칠대선은 현주마마를 노렸던 걸까요?”
“그럴지도 모르겠네…….”
“왜 갑자기…….”
세자가 납치된 것이 칠대선의 착각이라고 친다면, 왜 하필 상예현주를 지금 노린 것일까.
곧, 이강은 이를 악물었다.
“일단, 현주마마의 안전을 먼저 확보해야겠습니다.”
“그래, 그래야지……!”
세자를 납치했던 자들이 상예현주의 납치를 다시 시도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계영왕은 얼른 말을 타고 이강을 따라 상예현주를 찾아다녔다.
그 과정은 쉽지 않았다.
드넓은 자금성에서 상예현주가 어디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사태가 사태이니만큼 어딘가에 숨어 있을 수도 있다. 최악의 경우로는 이미 납치되었을지도 모른다.
이강과 계영왕은 말을 타고 자금성을 가로질렀지만 상예현주를 찾지 못했다.
그동안 삼황자파에 의탁한 금의위 여럿을 만나 싸우기도 했다.
이강이 없었다면 계영왕마저 위험했을 것이다.
일행의 검에는 이미 피와 기름기가 끈적하게 묻어 있었다.
계영왕은 시간이 지날수록 얼굴이 창백해졌다.
“이대로는, 이대로는 안 되네…….”
이런 곳에서 어찌 숨어 있는 딸을 찾을 수 있을까.
그 아비마저 점차 희망을 잃었다.
하지만, 이강만은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희망을 잃지 마십시오, 전하.”
“세자사…….”
“현주마마와는 약속을 했습니다.”
이강은 남매와 약속을 한 바가 있었다.
만일 그들이 위험에 처했을 경우에는.
……줘요!
창룡파마후를 내지르겠다고.
아련하게 들려오는 목소리는 틀림없이 상예현주의 것이었다.
“저쪽입니다!”
“가, 가지!”
이강과 계영왕은 말을 돌려 미친 듯이 달렸다.
계영왕의 표정은 밝았지만, 이강의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상예현주는 어리석지 않았다.
그저 위치를 알리기 위해서만 창룡파마후를 지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것이 오히려 적을 부를 수도 있었으니.
이강과 계영왕이 내전의 담장을 꺾어 지나치는 순간.
일행은 일련의 사람들과 맞닥뜨렸다.
“너희들은!”
“저, 저언하!”
상예현주를 호위하게 한 내관과 호위무사들이었다.
그런데, 정작 상예현주가 없었다.
계영왕이 울부짖듯 추궁했다.
“현주는, 현주는 어디 있느냐!”
“괴, 괴인이 현주마마를 납치했습니다. 쫓았지만 순식간에 몸이 투명해지듯 사라져서…….”
“이놈드을!”
“동창의 옷을 입은 여인이 쫓아갔습니다.”
분노를 터뜨리는 계영왕의 앞에 이강이 끼어들었다.
“혹시, 연검을 쓰는 무인이냐?”
“예, 예에!”
혹시나 해서 물었는데, 진리연이 상예현주에게 합류해 있었다.
창룡파마후를 듣고 온 것일지도 몰랐다.
이강은 희망을 담아 물었다.
“어느 방향이냐!”
“저, 저쪽으로…….”
더 이상은 들을 필요도 없었다.
구해 줘요!
또 한 번 상예현주의 창룡파마후가 울렸기 때문이다.
이강은 말 위에서 담장 위로 뛰어올랐다.
본래라면 법도로 금지되어 있는 자금성 내의 월담.
허나 계영왕은 그런 이강에게 주먹 감자를 치켜들고 외쳤다.
“나도 따라가겠네! 부탁하네!”
이강은 대답하지 않고 기왓장을 박차고 달렸다.
퉁, 퉁, 한 발자국 뛸 때마다 도약하는 거리가 늘었다.
순식간에 이강은 내전의 담장 절반을 뛰어넘었다.
“사저!”
그곳에, 진리연이 있었다.
이강의 도착을 알고도 진리연은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그녀는 조금의 기척이라도 놓치지 않도록 집중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이강, 앞에 모습을 숨긴 방사가 있다. 상예현주를 납치했어.”
상대방의 위치를 알아내기만 한다면 당장이라도 꿰뚫겠다는 의지.
그 의지가 그녀의 연검에 깃들어 있었다.
“이 앞, 바로 근처다.”
진리연이 바라보고 있는 것은 그저 텅 빈 담장이었다.
만약 저곳에 사람이 숨어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은신술의 극치(極致)일 터.
이강은 잠시 침묵했다.
정확히는 목소리를 내지 않았을 뿐. 속으로는 무진뇌정경을 외운 것이다.
트여 버린 영안을 바탕으로, 이강은 한쪽을 가리켰다.
“사저의 정확히 정면, 삼 보 앞에 그놈이 있습니다. 상예현주의 목을 잡고 있으니까 찌르지는 마세요.”
“…….”
진리연은 여전히 무표정이었다.
그녀가 연검을 휘둘렀다.
지표면을 향해.
파악!
흙이 파이며 모래가 확 튀고.
그것이 앞으로 비산하며 숨어 있던 은신자 추영호의 형태를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