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erminally Ill Young Master of the Baek Clan RAW novel - chapter (414)
414화 대회전(大會戰) (1)
지직, 직
천이 긁히는 소리다.
그것은 담현의 품속에서 났다.
담현은 옷깃을 들쳐 청호를 살폈다.
청호는 무언가 불안한 듯 옷을 긁어 댔다.
동물에게는 말씨가 고와지는 담현이다.
그러나 청호는 한차례 담현을 올려다보더니 머리를 푹 수그릴 뿐이었다.
“불안하냐?”
담현이 그리 물었다.
분지는 몹시 넓어서 정사연합의 무인 오 만여 명이 막사를 차려도 충분했다.
저 분지 반대편에서 마교도들이 보이면 전쟁이 시작되리라.
당연히 분지 내에는 흉흉한 공기가 감돌았다.
많은 피가 흐를 것이다.
‘분지라 그런가. 공기가 눅눅하고 무겁군.’
어째선지 공기에서 묘한 불쾌감이 느껴졌다.
긴장한 이들의 땀 냄새 같은 것이.
불안하냐는 질문에 답한 것은 청호가 아닌 누군가였다.
“안 불안합니다.”
그것은 옆에 있는 젊은 검수.
모용진의 말이었다.
“불안하지 않습니다. 저희는 승리할 것이니까요.”
모용진은 당당하게도 말했다.
긴 머리를 질끈 감아 내린 모용진의 귀에는 귀걸이 하나가 매달려 있었다.
호안검랑이라고 불리는 그의 형이 준 선물이었다.
장성한 모용진의 외모는 영준함으로 유명했던 그의 형과 닮아 있었다.
실제로 그는 무영대에 소속해서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남궁신, 소류, 모용진.
이 젊은 고수 세 명이 쓰러뜨린 사파인과 마인들이 몇이던가.
모용진은 더 이상 서안에서 두들겨 맞고 울던 애송이가 아니었다.
그러나 담현은 그런 모용진에게 가차 없이 핀잔을 주었다.
“누가 뭐래?”
“너한테 물어본 거 아니다.”
그러나 여전히 허술하고 얼빠진 면은 있는 듯했다.
모용진이 무안한 얼굴을 하든 말든 담현은 상관하지 않았다.
“왜 이길 거라고 자신하지?”
“그냥 이기는 것도 아니고 압도적으로 승리할 겁니다.”
“그러니까 왜.”
“고수의 질도 수도 우리가 낫습니다.”
모용진이 다시 자신감을 되찾았다.
그의 말에 틀린 것은 없었다.
탈마지경의 마인은 셋으로 추정한다.
마교가 단일 세력임을 감안하면 엄청나지만, 정사연합의 절대고수가 더 많다.
최근 정사연합의 연맹주가 된 철혈무정 백류산 역시 절대지경으로 오르지 않았던가.
“사만 하고 오만이면 수 차이가 크진 않지. 그리고 저놈들은 미친 마두들이고 이쪽은 헐거운 연합이고.”
담현이 지적했다. 그의 말도 옳았다.
수 차이가 크지 않은 데다가 마인이라는 것은 하나같이 위험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 반박쯤은 모용진도 예상하고 있었다.
“명군이 돕기로 했습니다.”
“명군?”
“철기군 삼천을 포함한 병사 육만 명이 참전할 겁니다. 손무 장군이 지휘할 거고요.”
모용진은 담현의 낮은 탄성에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모용진의 자신에는 근거가 있었다.
무림인들이야 관군을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 훈련된 군대는 몹시 위험하다.
명령에 복종하고 방진을 짜는 군사들은 고수도 잡아 죽인다.
사방에서 날아오는 창을 쳐 내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
상처 하나라도 생기면 마치 쥐 떼에게 잡아먹히는 고양이처럼 죽을 수밖에 없었다.
철기군의 진격은 또 어떠한가.
일백 철기대가 마상돌격을 감행하면 초절정고수에게도 위협이 된다. 그런 철기대가 물경 삼천.
지휘관인 손무 장군은 양민들에게도 존경받는 명장이다.
“잘난 척하기는.”
“……잘난 척 안 했습니다.”
모용진이 얼굴을 붉혔다.
남궁신과 소류는 한 발자국 물러나 있었다.
담현의 상대를 모용진에게 맡겨 버린 것이다.
담현은 그 이후로 여러 가지를 묻거나 모용진에게 이래라저래라를 반복했다.
모용진은 얌전히 따르다가도 울컥한 듯했다.
“너무 종놈 부리듯 하는 거 아닙니까?”
“어라? 감사함이 각골난망이라더니 태도가 싹 바뀌네?”
모용진은 결국 입을 꾸욱 다물었다.
그는 얼마 전 담현을 찾아가 감사를 표했다.
파천도까지 가서 팽무아를 비롯한 이들을 구출해 오지 않았던가. 은혜를 갚겠다는 말까지 했다.
그런데 담현은 곧바로 은혜를 갚으라며 그때부터 모용진을 끌고 다닌 것이다.
그는 씩 웃으며 말했다.
“어쩔 수 없어. 다른 놈들은 청림제자라고 하니까 고까운 표정으로 흘겨보기만 하던데.”
“……그렇긴 할 겁니다.”
청림은 존중받는 문파다.
구파일방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 외에도, 그 정통성으로 존중받는다.
무림에 대단한 환란이 일어날 때마다 산을 내려와 함께 싸운 이들이기 때문이다.
“청림이 참전을 거부했으니까요.”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청림 림주 임기학은 청림의 문도들을 보내지 않았다.
그뿐이 아니었다.
중원에 나가 있는 문도들에게도 소집령을 내렸다.
무림맹주 백류산을 비롯한 장문인들이 간곡히 요청해도 묵묵부답이었다.
청림에 대한 규탄이 하늘을 찔렀다.
담현이 청림제자임을 밝히고 캐묻고 다녔으니 백안시당할 법했다.
“여기까지로 하지.”
담현이 우뚝 멈춰 섰다.
“……더 궁금한 거 없으십니까?”
“그래. 난 이만.”
담현이 떠나려 하자 모용진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무운을 빕니다.”
“너희들도.”
당장 격전이 코앞이다.
이 중에 있는 누가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
담현은 대충 손을 휙휙 젓고 물러갔다.
그의 표정은 무언가 답답해 보였다.
‘……이상한 점은 없군.’
도인이자 방사로서 육감을 무시할 수는 없는 일.
그는 도맹과 도원명에게 그것을 이야기했다.
사숙들은 담현의 육감을 무시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과신하지도 않았다.
‘정말 전쟁을 앞둬서 이런 사기가 느껴지는 건지.’
작전에 변경은 없었다.
담현은 영화제자들에게 주어진 막사로 돌아갔다.
“들어와라.”
문을 지키고 있던 도원명이 담현을 들여보냈다.
실내에는 이미 영화제자들이 있었다.
도맹과 도원명만이 아니었다.
세 명의 영화제자들이 더 있었다.
북원의 대초원에서 온 소무태와 차무르. 대초원의 부족 출신이었던 그들은 어릴 적 청림의 영화제자에게 구출되어 입문했다.
담현은 얼굴조차 본 적 없는 사형뻘이었다.
조선에서 온 동예라는 사숙도 있었다.
담현을 포함한 여섯 명의 영화제자.
그들이 ‘작전’을 수행할 것이다.
“늦었잖냐 담현.”
“둘러보느라요.”
도맹이 영 마음에 안 든다는 듯 혀를 쯧 찼다.
“병력 배치를 알아 왔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겠나.”
도맹의 앞에는 큼지막한 종이가 놓여 있었다.
분지의 지형이 제법 정밀하게 그려져 있었고, 나뭇조각 같은 것이 군대의 형태로 도열되어 있다.
군의 지휘관들이나 쓰는 병력배치도, 혹은 작전도라고 불리는 것이다.
“이걸 연합 수뇌부에서 줬어요?”
담현이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그리 말했다.
기밀 중의 기밀인 물건이었다. 적과 아군의 배치가 모두 드러났으니.
구파일방과 사도련의 고수들이 앞에서 먼저 치고 나가는 형태다.
“조금은. 나머지는 차무르가 도와주었다.”
차무르라는 사형은 말수가 적은 자였다.
그린 얼굴로 무게를 잡고 있었는데, 그 어깨에 웬 매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매의 시야를 공유하는 독특한 술법을 익혔다고 들었다.
‘……멋지군.’
마음 같아서는 담현도 청호를 어깨 위에 올려두고 싶었지만, 청호는 어째선지 밖으로 나오기를 꺼려 했다.
“좋은 소식이 있고 나쁜 소식이 있다. 둘 중 뭘 먼저…….”
“그냥 한 번에 알려 주십쇼.”
담현의 말에 도맹이 맘에 안 든다는 표정을 지었다.
“호교사령 귀령으로 추정되는 쌍두마뇌. 놈의 위치는 쉽게 파악할 수 있을 듯하다.”
도맹은 채색이 된 그림 한 장을 꺼내 들어 보였다.
화려한 양식의 가마였다.
앞뒤로 가마꾼 한 명씩이 들고 있는 이인거(二人車)였다.
“마뇌는 가마를 타고 움직인다. 그가 탈마지경의 고수이긴 하지만 총군사인 만큼, 직접 전투에 참여하는 일은 적을 것이다.”
목표를 쉽게 식별할 수 있다는 것이 좋은 소식이었고, 그 목표에게 접근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나쁜 소식이었다.
“다만 스스로의 무력에 자신이 있으니, 자신의 개입이 필요한 곳을 찾아 돌아다닐 듯하다. 가마꾼 두 명 역시 극마지경의 고수들로 각기 이름은…….”
도맹의 설명을 영화제자들이 경청했다.
“……동예가 분지의 서쪽 외곽에서 산공분이 섞여 있는 안개를 불러낼 것이다. 마뇌를 유인하는 것이 첫 번째 계책이다.”
도맹을 비롯한 영화제자들은 확실히 다른 청림제자들과 달랐다.
그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술법과 무공에 모두 정통한 특징 덕에 할 수 있는 일에 한계가 적다.
“그리고, 침투하여 사로잡는다.”
“마뇌가 호교사령이라면 포획이 쉽지 않을 겁니다.”
동예가 지적했다.
다만 지적하는 그녀의 표정이 담담했다.
도맹 역시 막힘없이 대답했다.
“차력의 한계를 푼다. 이번 작전에서의 기준은 무제한(無制限)이다.”
영화제자 몇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차력은 영화제자들의 독특한 힘이지만 만능이 아니다.
반동도 극심하며 필요한 공물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도맹의 말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금기보패 세 점을 준비했다.”
담현이 미소지었다.
그는 금기보패인 성무경종을 사용한 적이 있었다.
천마의 강대한 영혼을 봉인시킨 강력한 물건이었다.
이런 무공 외의 수단이야말로 청림의 진짜 저력이 아닐까.
담현은 그런 생각을 했다.
“담현이 하나, 동예가 하나, 그리고 내가 하나 지닌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
그때, 막사 바깥이 소란스러웠다.
영화제자들은 슬그머니 막사의 문을 들추고 나왔다.
무인들이 무기를 들고 동분서주했다.
소란의 원인은 금방 알 수 있었다.
수만의 훈련된 병사들이 걸을 때 나는 소리였다.
분지로 통하는 협로로, 철기병들이 나타났다.
갑주를 갖춰 입은 수만 명의 정병들이 분지 내로 도착했다.
그들을 맞이하는 무인들의 얼굴에는 희망이 엿보였다.
하지만 눈앞에 나타난 것은 명군뿐이 아니었다.
저 분지의 반대편.
커다랗고 시꺼먼 덩어리들이 산을 넘어오고 있었다.
덩어리는 사실 사람의 군집이었다.
흑의를 입고 있는 마인 수만이 분지의 반대편에 집결하고 있었다.
싸울 이들은 모두 모였다.
이제는 피를 흘릴 일만 남았을 뿐.
“내일을 준비해라.”
도맹이 그리 말했다.
전쟁이 시작되었다.
이곳 곤륜의 분지에는 다양한 이들이 모였다.
구파일방 같은 명문대파, 성 하나의 밤을 지배하는 흑도 방파의 정예들만 있는 게 아니다.
시골 군현의 작은 마을에서 무관을 운영하는 자.
코흘리개들의 돈을 갈취하며 먹고살던 흑도 조무래기들.
그들 역시 천마신교와 싸우기 위해 이 먼 청해성까지 왔다.
일평생 중원인이 그 곤륜산까지 갈 일이 얼마나 될까.
그들로서는 지금 상황이 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명군이 치는 전쟁북의 소리는 꼭 심장 소리 같았다.
절묘하게 울리는 둔중한 북소리에 심장박동이 일체화된 듯했다.
모든 사람의 심장 소리가 하나로 어우러진다.
그렇기에 개인은 군대가 되고, 다툼은 전쟁으로 화하는 것이다.
긴장으로 흐르는 식은땀들이 퀴퀴하고 고약한 악취를 풍겼다.
다만 저 앞의 마인들에게서는 그런 감정이 보이지 않았다.
역시 마교의 악명은 허투루 쌓인 것이 아니었다.
피에 굶주린 듯 웃으며 으르렁대는 것이 인간 같지 않다.
그러나 정사연합 측에도 용감한 이들은 많았다.
정사연합의 수좌, 연맹주.
철혈무정 백류산이 군세의 선두로 나섰다.
화살은 날아오지 않았다.
그는 검을 하늘 높이 치켜들고 외쳤다.
내기를 담은 고수의 목소리는 천지에 진동하는 법이다.
“돌겨억-!”
무림인들에게 신묘한 전술이고 병법이 무슨 소용인가.
마교 측에서도 같은 외침이 터져 나오고, 두 군세는 서로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뜀걸음은 곧 전력 질주가 되었다.
“가자아!”
군세의 우익에 있던 무인들도 긴장을 이겨 내려는 듯 크게 고함치며 달렸다.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그들 사이에 눈빛이 범상찮은 이들이 섞여 있었다.
담현을 비롯한 영화제자들이었다.
도맹이 극으로 앞을 가리켰다.
저 멀리 화려한 가마 한 대가 보였다.
“저것이 목표다.”
영화제자들이 군세 속에 몸을 숨기고 목표를 향해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