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erminally Ill Young Master of the Baek Clan RAW novel - chapter (426)
426화 다시 찾은 서안 (2)
이강의 생각이 맞았다.
전 강호에 폭풍이 불었지만, 모든 방파들이 봉문하거나 멸문한 것은 아니다.
특히 원래부터 양지에 나서는 대신 밑바닥에서부터 세력을 확장해 왔던 문파들은 상대적으로 온존했다.
정파의 태산북두였던 소림과 무당은 현문을 걸어 잠근 채 산 위에 남아 있었지만.
저잣거리의 하오문은 여전히 활동을 이어 갔다.
그들에겐 생업(生業)이 있었다.
기방에서는 여전히 기녀들이 금을 뜯었고.
마방에서는 마부들이 말을 키웠다.
도박장은 여전히 살아남아 있었고, 푸줏간에서는 돼지를 잡았다.
이곳 하오문 서안지부는 정구라는 하오문도가 관리했다.
이강과 인연이 있었던 자다.
그리고 본디 정구가 모시던 서안지부장 금화는, 이강이 마지막으로 확인했을 때 섬서성 전체를 아우르는 향주가 되어 있었다.
지금 그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푸주한이 이강을 안내한 곳은 허름해 보이는 다루였다.
허나 언덕에 위치한 덕에 강가와 주변 환경이 그대로 내려다보이는 명당이었다.
이곳이 평범한 다루가 아님은 들어가자마자 알 수 있었다.
차향이 대단히 그윽하다.
집기들은 질박해 보이지만 하나같이 고급품이다.
이곳을 찾는 이들은 지금의 서안에서도 힘깨나 쓰는 자들일 것이다.
몇 가지 보안 절차가 있었지만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이강이 도착한 곳은 다루의 최상층에 있는 별실이었다.
실내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이강은 힐긋 천장을 살펴보았다.
세 명 정도가 이곳 실내에 숨어 있었다.
드르륵-
앉아 있으니, 민머리의 장년인과 젊은 여인 하나가 들어왔다.
정구와 금화였다. 그들은 공손한 태도로 이강에게 절했다.
“오랜만에 은인을 뵙습니다.”
이강은 고개를 가볍게 끄덕여서 그들의 인사를 받았다.
이강의 체감으로는 마지막으로 그들을 만난 게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았다.
하지만 실제 시간의 흐름을 따지자면 육칠 년쯤 지났으리라.
젊었던 정구의 눈가에는 주름이 졌고.
전 서안지부장의 젊은 딸이었던 금화 역시 성숙한 여인의 모습이 되었다.
“살아계셨으니 하늘의 돌보심이 아닐까 합니다.”
그녀는 감격스럽다는 듯 그리 말했다.
이강은 조용히 위쪽을 눈짓했다.
“아, 급한 일이어서 신경을 쓰지 못했습니다. 물러가 있거라.”
그녀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기척이 사라졌다.
하오문도들의 무공은 그리 대단하지 않다.
이강의 이목을 피해 숨어 있을 이는 없었다.
둘은 이강의 맞은편에 앉았다.
하준과 염광은 이강의 호위라도 되는 것처럼 앉지 않고 뒤에 서 있었다.
“차를 드시겠습니까?”
그러자 정구가 바깥에 기별을 넣었다.
조금 전까지 바깥에서 찻잎을 정리하던 점원 한 명이 다구를 들고 왔다.
청년이 다완에 찻잎과 물을 넣고 차를 우렸다.
“점원은 귀머거리입니다. 신경 쓰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금화가 그리 말했다.
이강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궁금했던 점을 물었다.
“와룡분지에 갇혀 계신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내가 죽었다고 알려졌다 들었는데.”
“저희는 다른 이들보다 귀가 밝지요. 와룡분지 내에서 활약하신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탈출한 자가 우리 말고도 더 있나?”
“예, 다만…… 미리 전선을 이탈한 자들입니다.”
“……이해했다.”
세상에 용감한 자들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전쟁에 휘말려 개죽음당할 수 없다고 생각한 이들은 탈영했을 것이다.
하오문은 그들로부터 정보를 수집한 것이다.
“그곳에서 흐른 시간은 겨우 나흘 반에 불과했다.”
“……그런 일이.”
이강은 대충 설명했다.
결계 내부의 시간의 흐름이 왜곡되었다는 일이다.
세상에 어찌 그런 일이 가능한지 놀랄 법도 했지만 의외로 금화는 금방 받아들였다.
“이런 세상이니 그런 일이 가능할 수도 있겠군요.”
“그렇다면 궁금하신 것이 많을 줄로 압니다.”
염광에게 들은 것보다 더 자세한 이야기를 알아야 했다.
“청림, 참사교, 백씨세가의 현 상황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싶다.”
“잘 찾아오셨습니다. 지금은 개방보다 저희가 더 나을 겁니다.”
개방은 총타(總舵)가 있었다.
그 총타는 곧바로 참사교의 표적이 되어 무너졌다고 한다. 분타들이 살아남아 거지들을 이끌었지만 이전처럼 유기적으로 움직이지는 못하는 듯했다.
“참사교의 호교사령 셋이 전면에 나섰습니다. 그들은 명실상부 현 무림의 최강자들입니다. 천하십이존 대다수가 와룡분지에서 실종된 상태이니…… 그들을 막을 자가 없었습니다.”
와룡분지에 강호의 전력이 집중되었다.
대문파들의 핵심세력이며 천하에서 가장 강한 이들이 정사마를 가리지 않고 격리된 것이다.
애초에 그것부터 참사교의 계획이었음이 틀림없었다.
“원하던 대로 고수들을 전부 죽이지는 못했지만…… 격리했다는 것만으로도 절반의 성공이군.”
“예. 원래라면 무림이 그렇게 쉽게 무너지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들은 어디서 나타났지? 여태까지 숨어 있던 것 치고는 교도들이 많지 않은가.”
“새외에서 몰려들었습니다. 색목인들도 있고 왜구들도 끼어 있습니다.”
참사교의 교도들은 중원 바깥에 있었던 것이다.
중원만 해도 드넓기 그지없다. 어째서 그들의 흔적을 찾지 못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들은 무공과 사술, 또한 요괴들을 부림으로써 무림을 무너뜨렸다.
가장 강력한 수단은 역시 관의 개입이었다.
“청림은…… 아직 버티고 있습니다.”
놀라운 것은 청림의 분전이었다.
그들은 와룡분지에 문도들을 보내지 않음으로써 전력을 보존했다.
형산은 오악(五岳) 중 하나이다.
그 험한 지세를 바탕으로 참사교의 침공을 막아 내고 있었다.
“다만 슬슬 전세가 기울고 있다는 게 중론입니다.”
그렇다면 청림에도 얼른 가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강이 가장 궁금했던 말이 나왔다.
“백씨세가는 오랫동안 버텼습니다. 서안의 주인이셨으니…….”
금화의 말투는 조심스러웠다.
“다만 반년쯤 전부터 전면적인 공세가 시작되었습니다. 관군과 참사교도들이 힘을 합쳤지요. 향주와 향 하나. 그리고 일살대라는 이들이 찾아왔습니다.”
향은 참사교의 세력 하나를 구성하는 단위였다.
향은 여러 개의 조로 구성되어 있고, 붉은 수실을 단 자가 조장이다.
일살대는 놀랍게도 한 명 한 명이 초절정고수였다고 한다.
이강의 눈이 흔들렸다.
그리고 금화는 또 하나의 비보를 전했다.
“태상가주께서…… 그래, 그러셨군.”
이강의 증조할머니, 태상가주가 죽었다고 한다.
백류산과 이강, 하준까지 와룡분지에서 실종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일 년 뒤의 일이다.
이강은 씁쓸한 감정을 애써 삼켰다.
“생존자는 있습니다.”
살아남은 자가 있다면 다행이다.
그들을 신경 써야 했다.
“장로분들의 노력이 지대했습니다. 격노검괴와 빙철나찰께서 세가원들을 이끌고 피신했습니다.”
격노검괴는 백도염. 빙철나찰은 백서옥.
각기 이강의 작은할아버지와 고모할머니다.
한때 이강과 대립했던 그 장로들이 세가를 멸족으로부터 구해 냈다.
“빙철나찰은 현재 청림으로 떠났다고 파악했습니다만, 격노검괴의 행방은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참사교에서 추격한 건가?”
“섬서성 어딘가에 숨어계시리라 파악합니다. 만일 참사교에서 추적에 성공했다면 저희가 알았을 겁니다.”
그 말에서는 하오문의 정보력에 대한 자신감이 느껴졌다.
사실이라면 그나마 다행인 일이었다.
다만 이강의 표정은 밝아지지 않았다.
“공자께서 원하신다면 저희가 견마지로를 다하여 돕겠습니다. 서안지부의 정보망은 아직 견고합니다.”
금화가 결의를 다지며 그리 말함에도 불구하고 그랬다.
“대가는 무엇으로 치르면 되겠나.”
“참사교는 저희 하오문의 적이기도 합니다. 이미 수많은 문도들이 그들에게 살해당했습니다.”
이강은 차를 단 한 모금도 마시지 않았다.
“난세일수록 남을 도울 여유는 없는 법이지.”
“저희의 인연이 그리 얄팍하지는 않은데…….”
“그리 정이 깊은지는 몰랐군.”
사람의 고마움이란 유효기간이 있는 법이다.
비록 이강이 금화와 정구를 구해 준 일이 있었지만 이미 십 년이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은혜를 갚으려는 마음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것을 이강은 믿지 않았다.
“아니면, 내게 바라는 것이 있던가.”
“혹은…….”
이강은 접시를 양손으로 쪼갰다.
반달 모양의 접시 조각.
그것이 절대고수의 손에 들린 이상, 흉악한 도검보다도 위험한 것이다.
이강은 그것으로 다구를 잡고 있는 점원을 가리켰다.
“신분을 숨기고 있는 이자와 관련이 있나?”
금화가 무엇이라 말을 하려던 순간이었다.
이강이 입을 다물라는 손짓을 했다.
“내가 농인과 함께 살았던 기간이 있어서 그 버릇을 잘 알지. 귀머거리가 아니야. 게다가 제법 무공도 강하군. 너희 둘보다도.”
“당신은 누구신가?”
그러자 점원이 고개를 돌려 입을 열었다.
“나는 귀머거리가 맞습니다. 그저 티를 내지 않도록 훈련했을 뿐이지요.”
“정체를 숨긴 것은 미안합니다. 제 처지도 급한 상황인지라.”
자신의 비밀이 들켰음에도 불구하고 위축된 태도가 아니었다.
이강의 눈이 반짝 빛났다.
설마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저희 문주님이십니다.”
금화가 조심스레 그리 말했다.
하오문 문주의 정체는 하오문 내에서도 철저히 비밀에 부쳐진다.
그 정체가 이렇게 젊은 청년이었다니.
“그러셨군. 앉으시지요.”
이강도 한 문파의 장문인 대우를 해 주었다.
“처음 인사드립니다. 하오문주 유시경이라 합니다.”
“백이강입니다.”
이강은 작게 감탄했다.
하오문주는 전혀 농인처럼 보이지 않았다.
소림의 추불 법재도 귀가 들리지 않았는데, 그에 비해서 훨씬 행동거지가 자연스럽다.
애초에 말투부터 전혀 어눌함이 없었다.
“청력을 잃은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하면 더욱 대단한 것이지.”
다만 입 모양을 읽어서 이해하는 게 확실해 보였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저희는 백 소협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도움이라 함은?”
“정확히는 그 무력이요.”
하오문에게 부족한 것은 무엇보다도 무력이었다.
힘이 필요한 일이 그들의 코앞에 닥친 것이다.
“이제 좀 말이 통하는군. 그 대가로 백씨세가의 생존자들을 함께 찾아 주겠다는 것입니까?”
“그리고 추가적인 정보를 제공해 드릴 것이며, 앞으로도 계속 소협의 편의를 봐 드리겠습니다.”
“추가적인 정보는 또 뭡니까?”
이강이 돕겠다고 확언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하오문주는 거리낌 없이 금화에게 신호를 보냈다.
금화는 이강에게 백씨세가의 장원에서 일어나는 일을 설명해 주었다.
“참사교도들이 무언가를 찾고 있다고?”
“땅을 파고 벽을 뜯는 등 모든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세가에 그런 물건이 있나.”
백씨세가에 가장 귀한 물건이 무엇인가.
당연히 가주의 신패를 제외하고는, 아니 그것을 포함하더라도 운철검인 유성아다.
그것은 이강이 갖고 있었다. 헌데 참사교는 왜 세가에서 무언가를 찾고 있는 것일까.
하오문주는 정보를 충분히 주었다는 듯 빙긋 웃었다.
“그러면 저희의 부탁을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그러시지요.”
이강이 고개를 끄덕이자. 하오문주가 본론을 꺼냈다.
“현재, 서안의 어둠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저희 하오문과 한 세력입니다.”
“서안의 방파들은 다 무너진 것이 아니었습니까.”
“그랬지요. 하지만 새로 생긴 곳들이 있습니다.”
기존의 세력이 사라지면 그것을 기회 삼아 새로 부흥하는 자들이 생기는 법이다.
이곳 서안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 역시 참사교와 사이가 좋아 보이진 않지만, 저희와 대립하고 있지요.”
“어떤 놈들이?”
그리고 하오문주의 입에서는 예상하지 못한 이야기가 나왔다.
“마교의 서안분타입니다.”
“……뭐요?”
황당하기 그지없는 말이다.
마교의 전력 역시 대부분 와룡분지에 갇혀 있다.
그런데 그사이에 마교가 서안에 분타를 냈다는 것인가.
“사실입니다. 그들 역시 쇠락했지만. 아직 남아 있던 세력이 중원에 진출했습니다.”
“참사교가 그것을 묵인했습니까?”
“그것은 아닌 듯 보입니다.”
“그 마교도들이 하오문을 핍박한다는 것이군. 내가 그자들을 치워 주길 바랍니까?”
이강의 질문은 거짓이 아니었다.
노출을 무릅써야 할 위험이 있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그가 가지고 있는 천마의 권위로 찍어 누를 수도 있고, 일행 셋이라면 껍데기만 남았을 마교의 분타도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하오문주는 이강의 말을 농담이라고 생각한 듯했다.
“하하, 아니요. 설마 그런 부탁을 드리겠습니까.”
“오늘 밤, 그들과 회담을 가질 예정입니다. 그때 호위를 부탁드립니다.”
그게 하오문주의 요구였다.
“그거면 됩니까?”
“마인들의 기세가 무시무시하더군요. 부끄럽지만 저희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워서…….”
“좋습니다.”
이강은 흔쾌히 승낙했다.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다만 하오문주는 재차 강조했다.
“특히 그 우두머리가 몹시 강합니다. 나이가 젊음에도 불구하고 최소한 극마. 어쩌면 탈마지경까지 넘보고 있으리라 추정합니다.”
그 정도면 하오문이 감당하지 못할 법했다.
하지만 마교에 그런 인재가 장로들 말고 많이 남아 있었던가.
뒤따른 하오문주의 한마디가 이강을 한순간에 얼어붙게 했다.
“이름은 요연비. 진마궁주의 아들이라 합니다.”
“누구요……?”
그가 아는 요연비는 단 한 명뿐이었다.
게다가 고수와는 거리가 먼 인물.
일련의 사고과정을 마치고, 이강은 표정을 와락 구겼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하오문의 정보력.
과연 믿을 수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