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became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120)
‘국새’의 촬영이 시작되고 며칠 지나서 유연서와 신예원이 찍었던 화보 사진이 웹 사이트에 선공개됐다. B컷, 비하인드 모음집이라고 했지만, 한 컷 한 컷 버리기 아까워 미리 풀어버린 것이다.
-국새 커플 화보 봄?
미쳤다 진짜 이게 나라다
└저게 B컷이면 A컷은ㄷㄷ
└케미개좋아
└미친 더줘
└근데 눈빛 왜저래? 유연서 유죄
사진은 화보 촬영 도중 잠시 쉬는 시간에 면류관의 구슬이 이상하게 얽혀서 웃고 있는 신예원과 그걸 풀어주려고 다가간 유연서가 담겨 있었다.
사실 애정이 담긴 시선을 연구하느라 쉬는 시간에도 쉬지 않고 몰입하고 있던 것이었는데, 사진사는 그걸 놓치지 않고 카메라에 담았다.
-국새 촬영 목격 떴다
└와
└놀이공원 데이트임? 아 뻔한데 벌써 맛있다
└작가 인텁보니까 클리셰 좋아하는거 같더라ㅋㅋ
└└오히려 좋아
└생각보다 케미 더 좋은데?
└국새 언제 방영임?
그리고 이어서 촬영 유출 사진이 SNS에 올라왔다. 놀이공원에서 머리띠를 쓴 두 주연이 소프트아이스크림을 손에 쥐고 있는 목격담이었다. 사실 이 중에는 제작사에서 일부러 목격 사진인 척 푼 사진도 있었다.
사진을 하나씩 풀면서 사람들에게 기대감을 심어 준 ‘국새’는 쉴 틈 없이 촬영에 열중했다.
성현우의 설득에 넘어간 이서은은 계약서에 사인한다. 다만, 이 계약에는 세세한 조건이 붙었다. 대부분은 이서은이 추가한 조항이었다.
(서은 씨, 내일 뭐 해요?)
“그날 아플 예정이에요.”
(그럼 모레는요?)
“그날은 약속이 있을 거 같은데?”
(이렇게 비협조적으로 나오시면 곤란하죠. 데이트 횟수 한 번 까요.)
그들의 계약 기간은 딱 반년, 데이트 횟수는 한 달에 네 번, 다만 언론에서 그들의 사이가 의심되는 기사를 쓴다면 횟수 차감 예외 등등의 조건이 포함되어 있었다.
“놀이공원이요?”
(네, 싫어요?)
“무슨, 애도 아니고 놀이공원이에요.”
(왜요? 난 좋은데. 사실 한 번도 가보지 못했거든요.)
사실 이서은도 가본 적은 없었다. 얘기를 들으니 가고 싶기도 하고. 하지만 선뜻 수락하기에는 자존심이 상했다.
결국, 성현우의 요청에 못 이긴 척 놀이공원에 온 이서은은 갑자기 손깍지를 낀 성현우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뭐에요?”
“뒤에 기자 붙었어요.”
이서은은 곧바로 표정을 풀고 입가에 웃음을 매달았다. 그 빠른 변화에 성현우는 고개를 숙여 이서은의 귓가에 속삭였다.
“이야, 우리 전하 연기하셔도 되겠어요.”
“뭐라고요?”
“저거! 저거 타요.”
“네? 어, 어어?!”
손이 붙잡힌 이서은이 끌려간다. 처음에는 뭐 이런 사람이 다 있나, 어이없었는데. 국민 사위라 불리는 재벌 3세가 어린애처럼 웃으며 뛰어다니는 것이 마치 한 마리 대형견을 보는 것 같아 이서은의 입꼬리도 점점 올라간다.
이 장면에서는 실제로 놀이공원에 가본 적 없는 유연서와 어릴 때 빼곤 와보지 않았다는 신예원은 놀이기구를 신나게 즐겼다. 그만큼 화면에는 성현우와 신예원의 첫 데이트 장면이 그럴싸하게 잘 나왔다.
“컷, 좋아요!”
이후로도 보는 사람을 설레게 할 계약 데이트 장면이 이어졌다. 감독의 특기가 자연의 색감을 도드라지게 보여주는 영상미였는데, 그걸 이용해서 이서은과 성현우는 데이지꽃이 가득한 꽃밭 한가운데를 느릿하게 걸어간다. 마침 하늘도 먼지 없이 깨끗했다.
“가끔은 이런 것도 좋죠?”
“네, 예쁘네요.”
이서은은 눈 앞에 펼쳐진 꽃밭을 보고 감탄한다. 그녀의 왼손은 이미 성현우에게 붙들려 있었다. 이제는 손을 잡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성현우는 그걸 눈치채고는 이서은의 앞에 서서 그녀의 얼굴을 응시한다.
“그거 알아요?”
“뭐가요?”
“여기 우리 둘밖에 없어요.”
애초에 그들의 계약 데이트는 사람이 목격할 만한 번화가에서 해야 했다. 그래서 기자가 기사를 올릴 만큼 파급력이 있어야 했다.
그걸 뒤늦게 깨달은 이서은이 멍하니 성현우를 올려다본다. 그리고 때마침 바람이 불어 이서은의 긴 머리가 그녀의 이마를 간지럽힌다.
“아······.”
이서은이 눈을 찡그리고, 성현우는 손을 들어 그 머리를 정리해 준다. 경애가 담긴, 아주 조심스러운 손길이었다. 이건 대본에 없는 유연서의 애드리브였다.
“······.”
그 손길과 심장이 뚫릴 것 같은 시선을 이서은은 멍하니 바라본다.
서로 마주 보면서 손을 잡은 두 남녀, 광대뼈가 한껏 솟은 감독은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겨서 입을 연다.
“컷! 와, 좋다!”
그걸 숨죽여 지켜보던 스태프들이 작게 환호했다.
“어, 또 코피 난다.”
“······그러게요.”
“진짜 어디 아픈 거 아냐?”
‘국새’의 1회 방영을 앞두고 점심시간, 어김없이 유연서의 가족 중 하나가 보내온 밥차에서 밥을 먹던 신예원은 또다시 코피를 흘리는 유연서를 빤히 바라봤다.
“그런 거 아니에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병원 가 봐. 우리는 몸이 재산이야.”
글쎄, 병원 가도 여전할 텐데······ 그는 휴지 뭉치를 코에다 대면서 주변을 살폈다.
그가 가끔 코피를 흘리고 기침을 하면서 자리를 비우는 것이 꽤 빈번하게 일어나자, 스태프들 사이에서도 유연서 어디 아픈 거 아니야? 라는 뒷말이 나오고 있다고 한다.
‘소문이 퍼지면 곤란한데.’
그는 애써 밝은 표정을 지으며 수저를 입에 욱여넣었다. 뭘 씹는지도 모를 정도로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나저나 다음 씬 말이야.”
“네.”
“서은이가 이 강의 사고를 또 뒤집어쓰고 손가락질받잖아?”
성현우와 이서은의 열애가 일회성이 아니었고, 두 선남선녀가 조용히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에 이서은의 떨어진 지지율도 꽤 많이 회복됐다. 성현우는 부마가 될 가능성이 보이자, 부친의 관심을 받는다.
하지만 다시 올린 지지율을 또 떨어뜨리는 사건이 발생한다. 능력도 없고 사고만 치는 주제에 제 사촌 누나가 황위에 오르는 것을 질투하는 이 강이 일부러 죄를 뒤집어씌운 것이다.
“나 진짜 악의 없이 하는 말이다. 알지?”
“네, 괜찮아요. 말해봐요.”
“그······ 너는 어땠어? 너도 예전에는 이런 상황이었잖아.”
신예원은 자기가 생각해도 이상한 질문인지, 대답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된다고 덧붙였다.
“글쎄요······.”
유연서는 생각에 잠겼다. 그가 빙의하기 이전, 국민 비호감 이미지가 하늘을 찌를 때의 시절, 동기화 받은 기억에서의 본체는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그 당시 그는 오히려······.
“난 사람들이 날 욕하는 게 좋았거든요.”
그래야 내가 엄마를 죽게 했다는 사실을 계속 상기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차라리 넌 구제 불능이라고 삿대질 당하는 게 편했다.
‘어지간히도 땅을 팠구나.’
무심코 그렇게 생각했던 유연서는 몸을 흠칫 떨었다.
“뭐야, 욕먹어서 좋은 사람이 어디 있어.”
“뭐 어때. 그게 다 부러워서 그러는 거잖아요. 돈 많고 잘생기고······.”
“으. 성현우 씨, 들어가세요.”
유연서는 성현우에게 빙의해 애써 능글맞게 대답하고는 묵묵히 밥을 씹었다.
***
촬영을 마치고 집에 온 유연서는 다리를 질질 끌듯 침대로 걸어가 몸을 던졌다.
‘아······ 힘들어.’
신예원은 진짜 이러다가 반하겠다며 그의 연기에 대해 칭찬하고, 스태프들도 마찬가지였다. 그에 촬영장 분위기도 좋았지만, 사실 유연서는 꽤 많은 정신력을 소모해야 했다.
극 중 성현우는 점점 이서은에게 스며든다. 그만큼 극이 진행될수록 이서은을 보는 시선이나 행동에서 애정이 넘쳐야 했다.
그는 속칭 ‘멜로 눈깔’을 보여주기 위해 얼굴이 카메라에 비치는 모든 각도를 계산해서 감정을 조절해야 했고, 그렇게 몰입하다가 가끔 튀어나오는 환청과 환영 때문에 몇 번 NG를 내기도 했다.
촬영 시간은 한정되어 있으니 그걸 다 무시하고 어떻게든 감독에게서 오케이 사인을 받아내야 했기에, 그만큼 신경 써야 할 게 많았다.
“······네.”
한참을 침대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엎드려 누워 있던 그는 주머니에서 울리는 진동음에 확인도 안 하고 일단 전화를 받았다.
(유연서 씨 되시죠?)
“네, 그런데요?”
상대가 한숨을 쉬는 게 느껴졌다. 유연서는 눈살을 찌푸리고 화면을 바라봤다. 모르는 번호였다.
(유연서 씨 때문에 저희가 많이 곤란하게 됐습니다.)
“누구시죠?”
(아, 저는 ‘영화사 구상’의······.)
“뭐야.”
어디서 번호가 샜나. 사실 이대로 끊어버리고 싶었지만, 괜히 쫄아서 끊는 것처럼 여길까 봐 일단 상대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들어보기로 했다.
(이정훈 씨 빼간 거 맞으시죠? 지금 그것 때문에 저희가 몹시 곤란해요. 장예준 배우님도 이게 무슨 짓이냐며 화를 내셔서 말이죠.)
유연서의 무례한 대답에 상대도 꽤 삐딱한 어조로 쏘아붙였다. 그걸 가만히 듣고 있던 유연서는 어이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안 그래도 힘들어 죽겠는데. 내가 만만해?’
첫 로맨스 연기에다가 환영과 환청, 그리고 이희서를 죽인 범인 등 신경 쓸 게 많은데, 이제는 별 이상한 사람이 따지려고 전화를 거니 짜증이 솟구쳐 올랐다.
“아, 이 감독한테 들었지. 남의 시나리오 강탈할 땐 언제고, 다시 계약하자고 했다면서요?”
(이봐요 유연서 씨.)
“이제 와서 내가 나선다니까 쫄리나 보네.”
갑자기 공격적으로 스태프를 모으고, 배우가 어떤 개런티를 제시하든 최대한 조절해 보겠다는 파격적인 제안은 업계에 소문이 안 날 수가 없었다. 거의 기적에 가깝게 프리 프로덕션을 짧게 끝내고 바로 촬영을 시작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감독은 이정훈, 시나리오가 그렇게 단기간에 뚝딱하고 나오진 않을 것이다. 뒤늦게 ‘영화사 구상’에서는 감독이 유연서의 끈을 잡았다고 생각하고 부랴부랴 이정훈에게 연락했다고 한다.
[뭐라고요? 다시 계약하자고요? 미쳤습니까? 제가 호구에요?] [절대 당신네랑 계약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저 이미 JS 쪽이랑 두 편 더 계약했어요.]물론 이정훈은 그 제안을 거절했다. 이미 계약서에 사인하기도 했고, 한 번 뒤통수 친 제작사가 두 번이라고 못 하겠는가?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진짜 속 시원했다고 유연서에게 전했었다.
(우리 같은 업계 사람끼리 이러지 맙시다. 예? 개인의 취미 생활로 업계 물 흐리면 곤란하죠.)
개인의 취미 생활이라······ 참 재밌는 표현이다. 마치 그는 영화인이 아니라고 단정 짓고 그저 재벌의 돈지랄이라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그 재벌이 배급권을 가졌다는 사실을 상대가 망각한 것 같았다.
“남의 시나리오 강탈한 건 그럼 업계 물 흐리는 게 아니고?”
(유연서 씨, 당신이 이쪽 업계 일을 잘 몰라서 그러는데, 이런 일 흔해요.)
“흔하다고 잘못된 게 아닌 건 아니잖아. 안 그래요?”
이게 어디서 사람을 가르치려 들어? 유연서는 몸을 일으키고서는 신경질적으로 제 머리를 뒤로 넘겼다.
“창작자가 자기의 권리도 빼앗기고, 정당한 대가를 못 받는 게 흔한 일이라고요? 지금 뚫린 입이라고 지껄입니까?”
(저기요······.)
유연서의 공격적인 어투에 상대는 제법 당황한 듯 말끝을 흐렸다.
“난 이대로 무를 생각 없고. 그쪽은 알아서 영화 자알, 만들어 보시던가.”
(유연서 씨,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상도에 어긋나잖아요.)
“그래서 어쩌라고요. 불만이면 우리보다 먼저 영화 만들어서 개봉하시던가. 아, 받아줄 배급사는 있으신가?”
(하아······ 우리 페어플레이 합시다.)
배급사 얘기를 하니 갑자기 상대방의 태도가 변했다. 유연서는 그게 가소로워서 소리 내 웃었다.
(유연서 씨.)
“왜, 그 작품뿐만 아니라 그쪽에서 제작한 모든 영화 상영도 못 하게 막아 버릴까요? 어디 지방에 조조 심야로 걸어 드릴까? 진짜 상도가 없는 걸 보여줘?”
(아니, 잠깐······.)
“아, 그걸 원하시구나. 일단 알겠습니다.”
(잠시만요······!)
통화를 신경질적으로 끊은 그는 핸드폰을 옆에 던졌다. 핸드폰이 또 울렸지만, 무시했다. 꽤 큰 영화사이니 포기하지 않고 다시 연락하든 언플을 하든 그러겠지.
‘아······ 머리 아파.’
하지만 이젠 생각하기도 귀찮았다.